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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스펠인(人) 말씀묵상</title>

  <lastBuildDate>Wed, 27 May 2026 15:16:46 -0400</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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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 2026 가스펠인(人) 말씀묵상</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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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처음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배경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핍박이 있었습니다. 종교인들은 스데반이라는 사람을 신의 이름으로 죽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은 어쩔 수 없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열악한 상황에도 그들은 예수의 복음, 즉 왕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찌 보면 오히려 핍박 때문에 복음은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그 결과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기록합니다(사도행전 11장).</p><p><br></p><p>그런데 요즘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단어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는 '교회'의 타락이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75.4%가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에 놀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p><p><br></p><p>어찌하여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되었을까요? 저는 가장 큰 원인으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왕의 복음'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왕의 복음'이 왜곡되면서 '복음'은 천당행 티켓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울러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천당행 티켓을 판매하는 자들, 즉 기득권이 되고 말았습니다.</p><p><br></p><p>'그리스도인'이란 단어가 오염되었듯, 솔직히 '교회'라는 단어도 더 이상 복음 공동체를 뜻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재정 혹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p><p><br></p><p>가스펠인(人) 사역은 역사상 처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된 본질을 회복하고자 성경 말씀을 함께 찾아보는 흩어진 나그네, 즉 필그림을 위한 사역입니다. 요즘 이단들이 기승을 부림으로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만을 뜻하지 않아 하나님 나라의 복음(가스펠)을 듣고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가스펠인(人)'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p><p><br></p><p>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겠으나 온전함을 추구하는 복음 공동체를 세우고 싶은 마음에 가스펠인(人) 사역을 수년 전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스펠인(人) 사역은 '복음'과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생각보다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p><p><br></p><p>이렇게 이 채널은 가스펠인(人)들과 동행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이 채널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된다면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격려와 기도, 댓글, 그리고 후원은 이 시대에 신실하게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사역에 큰 힘이 됩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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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시대의 흐름을 아는 성도</itunes:title>
    <title>시대의 흐름을 아는 성도</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이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역대상 12:32)  사울의 시대가 저물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던 거대한 대전환의 순간,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였습니다. 다른 지파들이 수만 명의 무장한 군사들을 이끌고 나올 때, 이사갈 지파는 단 200명의 우두머리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적은 수가 온 형제를 통솔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에게는 군사력보다 강한 '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격변하는 흐름 속에서 지금이 바로 다윗을 따를 하나님의 때임을 분별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히브리어로 '이사갈(יִשָּׂשכָר)'이라는 이름의 뜻이 '대가가 있다', '보상이 있다'라는 의미라는 점입니다. 창세기에서 이사갈은 본래 땅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 땀 흘려 일하는 성실한 노동의 지파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역대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받...]]></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quot;이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quot; (역대상 12:32)<br/><br/>사울의 시대가 저물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던 거대한 대전환의 순간,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였습니다. 다른 지파들이 수만 명의 무장한 군사들을 이끌고 나올 때, 이사갈 지파는 단 200명의 우두머리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적은 수가 온 형제를 통솔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에게는 군사력보다 강한 &apos;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는 지혜&apos;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격변하는 흐름 속에서 지금이 바로 다윗을 따를 하나님의 때임을 분별했습니다.<br/><br/>재미있는 것은 히브리어로 &apos;이사갈(יִשָּׂשכָר)&apos;이라는 이름의 뜻이 &apos;대가가 있다&apos;, &apos;보상이 있다&apos;라는 의미라는 점입니다. 창세기에서 이사갈은 본래 땅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 땀 흘려 일하는 성실한 노동의 지파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역대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받은 가장 위대한 &apos;보상&apos;은 물질적 풍요가 아닌,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타이밍을 읽어내는 &apos;영적 분별력&apos;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지금 바로 그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br/><br/>변화하는 세상<br/>세계 금융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비트코인을 전략적 국가 자산으로 비축하는 행정명령을 실행하고 있고, 달러 연동 디지털 화폐(스테이블코인)에 관한 연방 규제 법안이 조만간 상원을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블랙록과 JP모건 같은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블록체인 위에서 실물 자산을 토큰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유행이 아닙니다. 돈의 본질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br/><br/>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br/>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quot;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quot;(요 17:15)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피해 은둔하는 삶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신실한 증인으로 살아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잠언 22장 3절은 &quot;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quot;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신실함과 시대를 읽는 안목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장 칼뱅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주어진 지혜를 외면하는 것은 경건이 아니라 태만입니다.<br/><br/>참여하되 얽매이지 않기<br/>우리가 경계해야 할 위험은 양방향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는 무지(無知), 즉 금융의 거대한 변화 흐름을 분별하지 못해 휩쓸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흡수(吸收), 즉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것입니다. 팀 켈러의 말처럼, 돈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안전과 의미, 그리고 자유를 약속하기에 가장 강력한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암호화폐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를 충분히 이해하여 마땅히 행할 바를 알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입니다.<br/><br/>목회적 권면<br/>블록체인 기술을 완벽히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과 성도들이 살아가는 치열한 현실 세계에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보에 밝다는 것이 결코 삶의 불안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quot;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quot;(빌 3:20).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졌지만, 바로 지금 이 경제적 현실 속에서, 그리고 취약한 이웃들의 곁에서 그 시민권을 살아냅니다.<br/><br/>이사갈 자손은 시대를 이해했습니다. 이름의 뜻처럼 세상의 자산이 아닌 &apos;하나님의 분별함&apos;을 최고의 보상으로 여겼던 이사갈 자손처럼, 우리 역시 우리가 발 디딘 시대를 깊이 이해하십시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지혜를 구하는 자들로서 이 분별함을 우리의 회중과 가정, 그리고 소명의 자리로 가져가기를 소망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quot;이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quot; (역대상 12:32)<br/><br/>사울의 시대가 저물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던 거대한 대전환의 순간,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였습니다. 다른 지파들이 수만 명의 무장한 군사들을 이끌고 나올 때, 이사갈 지파는 단 200명의 우두머리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적은 수가 온 형제를 통솔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에게는 군사력보다 강한 &apos;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바를 아는 지혜&apos;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격변하는 흐름 속에서 지금이 바로 다윗을 따를 하나님의 때임을 분별했습니다.<br/><br/>재미있는 것은 히브리어로 &apos;이사갈(יִשָּׂשכָר)&apos;이라는 이름의 뜻이 &apos;대가가 있다&apos;, &apos;보상이 있다&apos;라는 의미라는 점입니다. 창세기에서 이사갈은 본래 땅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 땀 흘려 일하는 성실한 노동의 지파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 역대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받은 가장 위대한 &apos;보상&apos;은 물질적 풍요가 아닌,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타이밍을 읽어내는 &apos;영적 분별력&apos;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지금 바로 그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br/><br/>변화하는 세상<br/>세계 금융 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비트코인을 전략적 국가 자산으로 비축하는 행정명령을 실행하고 있고, 달러 연동 디지털 화폐(스테이블코인)에 관한 연방 규제 법안이 조만간 상원을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블랙록과 JP모건 같은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블록체인 위에서 실물 자산을 토큰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유행이 아닙니다. 돈의 본질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br/><br/>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br/>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quot;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quot;(요 17:15)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피해 은둔하는 삶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신실한 증인으로 살아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잠언 22장 3절은 &quot;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quot;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신실함과 시대를 읽는 안목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장 칼뱅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주어진 지혜를 외면하는 것은 경건이 아니라 태만입니다.<br/><br/>참여하되 얽매이지 않기<br/>우리가 경계해야 할 위험은 양방향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는 무지(無知), 즉 금융의 거대한 변화 흐름을 분별하지 못해 휩쓸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흡수(吸收), 즉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것입니다. 팀 켈러의 말처럼, 돈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안전과 의미, 그리고 자유를 약속하기에 가장 강력한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암호화폐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를 충분히 이해하여 마땅히 행할 바를 알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입니다.<br/><br/>목회적 권면<br/>블록체인 기술을 완벽히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과 성도들이 살아가는 치열한 현실 세계에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보에 밝다는 것이 결코 삶의 불안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quot;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quot;(빌 3:20).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졌지만, 바로 지금 이 경제적 현실 속에서, 그리고 취약한 이웃들의 곁에서 그 시민권을 살아냅니다.<br/><br/>이사갈 자손은 시대를 이해했습니다. 이름의 뜻처럼 세상의 자산이 아닌 &apos;하나님의 분별함&apos;을 최고의 보상으로 여겼던 이사갈 자손처럼, 우리 역시 우리가 발 디딘 시대를 깊이 이해하십시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지혜를 구하는 자들로서 이 분별함을 우리의 회중과 가정, 그리고 소명의 자리로 가져가기를 소망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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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7 May 2026 15: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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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셉 이야기</itunes:title>
    <title>요셉 이야기</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본문: 창 41:46–57; 45:5–8; 50:20  경제 불안, 전쟁, 디지털 화폐와 암호화폐, 흔들리는 세계 질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의 불안을 건드립니다. 주님은 이미 죄와 죽음을 이기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과 결핍과 불확실성의 세상 속에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셨으나 아직 주님의 재림의 날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요셉을 통해 깨닫는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요셉의 내러티브는 창세기 37장에서 50장까지 나옵니다. 37장에서 요셉은 꿈을 꾸는 자로 소개되어 형들의 시기와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는 것에서 시작하여 보디발 집에서의 시련과 감옥 생활 그리고 관원들의 꿈 해석이 39-40장에 기록됩니다. 41장은 애굽의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가 되고 42-45장은 온 세상에 기근이 들어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과의 재회와 화해를 기록하고 46-50장은 요셉의 가...]]></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본문: 창 41:46–57; 45:5–8; 50:20<br/><br/>경제 불안, 전쟁, 디지털 화폐와 암호화폐, 흔들리는 세계 질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의 불안을 건드립니다. 주님은 이미 죄와 죽음을 이기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과 결핍과 불확실성의 세상 속에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셨으나 아직 주님의 재림의 날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요셉을 통해 깨닫는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br/><br/>요셉의 내러티브는 창세기 37장에서 50장까지 나옵니다. 37장에서 요셉은 꿈을 꾸는 자로 소개되어 형들의 시기와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는 것에서 시작하여 보디발 집에서의 시련과 감옥 생활 그리고 관원들의 꿈 해석이 39-40장에 기록됩니다. 41장은 애굽의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가 되고 42-45장은 온 세상에 기근이 들어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과의 재회와 화해를 기록하고 46-50장은 요셉의 가족이 애굽에 살게 되며 야곱과 요셉의 죽음을 기록합니다.<br/><br/>요셉의 이야기는 단순한 위기 관리 지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 불의한 제도, 감옥의 시간, 세계적 기근까지도 당신의 선하신 뜻 안에서 다스리신다는 복음의 증언입니다.<br/><br/>요셉은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종으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br/><br/>이 말씀은 인간의 죄를 축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죄의 삯이 사망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악과 죄가 하나님의 뜻과 은혜보다 크지는 않습니다. 죄로 인해 세상만사가 뒤틀릴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무너지지 않고, 은혜는 소멸되지 않습니다.<br/><br/>하나님은 형들에게 버림받고 억울한 누명을 쓴 요셉을 세우셔서 극심한 기근으로 죽음을 맛봐야 하는 이 세상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무엇보다 이 세상 가운데 언약 백성을 보존하여 장차 오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br/><br/>요셉은 형제들에게 버림받았지만, 결국 높임을 받아 굶주린 자들에게 양식을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버림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과 영광으로 높임을 받아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셨습니다. 요셉은 임시 창고를 열었지만, 예수님은 구속의 무한한 은혜를 여십니다. 요셉은 바로 아래에서 섬겼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왕과 제국과 경제와 전쟁과 우리의 내면의 폭풍 위에 다스리시는 왕의 왕이십니다.<br/><br/>요셉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 말씀은 우리도 이 &quot;애굽&quot;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어제와 오늘 변함없이 우리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기에 우리는 어떤 불확실성 앞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셉의 형들처럼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어떤 이들이 우리를 힘들게 해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br/><br/>우리 안에는 미래를 통제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돈, 정보, 투자, 계획으로 안전을 확보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지쳐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 다양한 마음들을 인정하되, 그들이 &apos;주인&apos;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그 마음들을 솔직하게 가져가야 합니다.<br/><br/>우리는 혼란스러운 이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은 우리의 주인은 아닙니다. 돈을 사용하지만 돈은 피난처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전문가로서 조언을 주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이 아닙니다. 다양한 기술이 발전해 편의를 제공하지만, 기술이 우리 영혼의 주인이 아닙니다.<br/><br/>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왕이십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모든 기근은 끝나고, 모든 거짓 왕국은 무너지며, 모든 무릎은 왕의 왕 앞에 꿇게 될 것입니다.<br/><br/>이번 주, 두려움이 아닌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은 무엇일까요?<br/><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본문: 창 41:46–57; 45:5–8; 50:20<br/><br/>경제 불안, 전쟁, 디지털 화폐와 암호화폐, 흔들리는 세계 질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의 불안을 건드립니다. 주님은 이미 죄와 죽음을 이기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두려움과 결핍과 불확실성의 세상 속에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셨으나 아직 주님의 재림의 날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요셉을 통해 깨닫는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br/><br/>요셉의 내러티브는 창세기 37장에서 50장까지 나옵니다. 37장에서 요셉은 꿈을 꾸는 자로 소개되어 형들의 시기와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는 것에서 시작하여 보디발 집에서의 시련과 감옥 생활 그리고 관원들의 꿈 해석이 39-40장에 기록됩니다. 41장은 애굽의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가 되고 42-45장은 온 세상에 기근이 들어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과의 재회와 화해를 기록하고 46-50장은 요셉의 가족이 애굽에 살게 되며 야곱과 요셉의 죽음을 기록합니다.<br/><br/>요셉의 이야기는 단순한 위기 관리 지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 불의한 제도, 감옥의 시간, 세계적 기근까지도 당신의 선하신 뜻 안에서 다스리신다는 복음의 증언입니다.<br/><br/>요셉은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종으로 팔려가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br/><br/>이 말씀은 인간의 죄를 축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죄의 삯이 사망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악과 죄가 하나님의 뜻과 은혜보다 크지는 않습니다. 죄로 인해 세상만사가 뒤틀릴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무너지지 않고, 은혜는 소멸되지 않습니다.<br/><br/>하나님은 형들에게 버림받고 억울한 누명을 쓴 요셉을 세우셔서 극심한 기근으로 죽음을 맛봐야 하는 이 세상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무엇보다 이 세상 가운데 언약 백성을 보존하여 장차 오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br/><br/>요셉은 형제들에게 버림받았지만, 결국 높임을 받아 굶주린 자들에게 양식을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버림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과 영광으로 높임을 받아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셨습니다. 요셉은 임시 창고를 열었지만, 예수님은 구속의 무한한 은혜를 여십니다. 요셉은 바로 아래에서 섬겼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왕과 제국과 경제와 전쟁과 우리의 내면의 폭풍 위에 다스리시는 왕의 왕이십니다.<br/><br/>요셉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 말씀은 우리도 이 &quot;애굽&quot;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어제와 오늘 변함없이 우리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기에 우리는 어떤 불확실성 앞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셉의 형들처럼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어떤 이들이 우리를 힘들게 해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br/><br/>우리 안에는 미래를 통제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돈, 정보, 투자, 계획으로 안전을 확보하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지쳐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 다양한 마음들을 인정하되, 그들이 &apos;주인&apos;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그 마음들을 솔직하게 가져가야 합니다.<br/><br/>우리는 혼란스러운 이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은 우리의 주인은 아닙니다. 돈을 사용하지만 돈은 피난처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전문가로서 조언을 주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이 아닙니다. 다양한 기술이 발전해 편의를 제공하지만, 기술이 우리 영혼의 주인이 아닙니다.<br/><br/>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왕이십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모든 기근은 끝나고, 모든 거짓 왕국은 무너지며, 모든 무릎은 왕의 왕 앞에 꿇게 될 것입니다.<br/><br/>이번 주, 두려움이 아닌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은 무엇일까요?<br/><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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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MZ 세대의 갈급함에서 배우는 것들</itunes:title>
    <title>MZ 세대의 갈급함에서 배우는 것들</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최근 KBS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기사는 수십만 명의 MZ세대가 불교 엑스포에 몰려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질만능 시대에 태어나 자란 MZ세대가 불교의 무상(無常)을 몸으로 배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스님은 EDM을 틀고, 젊은이들은 새벽 예불 종소리에 맞춰 절을 한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은 MZ세대의 유행일까요? 한국리서치 조사(2025년 12월)에 따르면 18~29세의 불교 호감도는 56.2점으로 1년 사이 5.3점 상승했습니다. 반면 같은 세대의 개신교 호감도는 30점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저는 MZ세대가 지난 몇십 년간 개신교가 지향해 온 가벼운 신앙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 어거스틴의 고백을 기억합니다. "주님은 주님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쉬지 못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도 같은 진리를 선언합니다. 인간의 최고 목적은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최근 KBS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기사는 수십만 명의 MZ세대가 불교 엑스포에 몰려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질만능 시대에 태어나 자란 MZ세대가 불교의 무상(無常)을 몸으로 배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스님은 EDM을 틀고, 젊은이들은 새벽 예불 종소리에 맞춰 절을 한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은 MZ세대의 유행일까요?</p><p>한국리서치 조사(2025년 12월)에 따르면 18~29세의 불교 호감도는 56.2점으로 1년 사이 5.3점 상승했습니다. 반면 같은 세대의 개신교 호감도는 30점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저는 MZ세대가 지난 몇십 년간 개신교가 지향해 온 가벼운 신앙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p>성 어거스틴의 고백을 기억합니다. &quot;주님은 주님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쉬지 못합니다.&quot;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도 같은 진리를 선언합니다. 인간의 최고 목적은 &quot;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quot;이라고. 전도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두셨다고 말한다(전 3:11). MZ세대의 갈망은 이 목적을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탈한 교회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p><p>다큐멘터리에서 한 청년이 말합니다. &quot;불교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강요하지 않아요.&quot;</p><p>취업난, 주거 불안,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대는 웃는 낯으로 박수 치며 &quot;다 잘될 거야&quot;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진리를 원합니다. 한국 정부가 &apos;고독부&apos;를 신설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정책 뉴스가 아닙니다. 나름 세상이 할 수 있는 영적 진단입니다. 이 세대는 침묵을 허락하는 공간을 원하지, &quot;주여 삼창&quot;을 강요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과 씨름할 수 있는 존엄한 자유를 원합니다. 만일 MZ 세대가 교회를 등진다면 신앙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가벼움을 떠나는 것입니다.</p><p>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경쾌한 찬양으로 십자가의 무게를 털어냈습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은 수천 년의 탄식을 품고 있습니다. 시편의 과반수는 탄식입니다. 시대를 벗어나 교회는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십자가 안에서 만나진다고. 신앙의 선배들은 침묵을 수련했고, 개혁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씨름을 신앙의 본질로 가르쳤습니다. 이 세대가 사찰에서 찾는 고요함은 원래 교회가 말씀을 묵상하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며, 함께 드리는 기도 안에서 이미 가졌던 유산입니다.</p><p>MZ세대가 사찰에서 찾는 것들 (무게, 침묵, 절제, 신비, 의미)</p><p>교회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연합된 가족이어야 합니다. 고독의 시대에 복음만이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양된 자녀의 정체성과 영원한 소속감입니다. 불교는 자아를 소멸시키라고 하지만 십자가는 자아를 구속합니다. 불교의 침묵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면, 복음은 창조주 앞에 잠잠하라고 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고통 속으로 직접 들어오신 구원자가 인간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 &quot;잠잠하여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quot;(시 46:10)</p><p>이 세대는 교회가 세속 문화를 흉내 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교회가 담대하게, 오래되고, 신비롭고 거룩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영적 대각성은 늘 성경을 일반 성도의 언어로 열어 말씀의 능력이 역사할 때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전략이 아니라 말씀의 선포가, 트렌드의 모방이 아니라 부패된 세상을 향한 정직함이 모든 세대가 원하는 것입니다.</p><p>MZ세대는 개신교의 가벼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압니다. 개신교가 제시하는 노래와 깊이 없는 설교가 답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잘 압니다. 이들이 거부하는 것은 진정한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세속화된, 그래서 세상과 다르지 않은,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세상보다 못한 구호화된 싸구려 종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p><p>&quot;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quot; — 이사야 40:8</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최근 KBS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기사는 수십만 명의 MZ세대가 불교 엑스포에 몰려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질만능 시대에 태어나 자란 MZ세대가 불교의 무상(無常)을 몸으로 배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스님은 EDM을 틀고, 젊은이들은 새벽 예불 종소리에 맞춰 절을 한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은 MZ세대의 유행일까요?</p><p>한국리서치 조사(2025년 12월)에 따르면 18~29세의 불교 호감도는 56.2점으로 1년 사이 5.3점 상승했습니다. 반면 같은 세대의 개신교 호감도는 30점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저는 MZ세대가 지난 몇십 년간 개신교가 지향해 온 가벼운 신앙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p>성 어거스틴의 고백을 기억합니다. &quot;주님은 주님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 쉬지 못합니다.&quot;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도 같은 진리를 선언합니다. 인간의 최고 목적은 &quot;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quot;이라고. 전도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두셨다고 말한다(전 3:11). MZ세대의 갈망은 이 목적을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탈한 교회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p><p>다큐멘터리에서 한 청년이 말합니다. &quot;불교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강요하지 않아요.&quot;</p><p>취업난, 주거 불안,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대는 웃는 낯으로 박수 치며 &quot;다 잘될 거야&quot;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진리를 원합니다. 한국 정부가 &apos;고독부&apos;를 신설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정책 뉴스가 아닙니다. 나름 세상이 할 수 있는 영적 진단입니다. 이 세대는 침묵을 허락하는 공간을 원하지, &quot;주여 삼창&quot;을 강요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과 씨름할 수 있는 존엄한 자유를 원합니다. 만일 MZ 세대가 교회를 등진다면 신앙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가벼움을 떠나는 것입니다.</p><p>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경쾌한 찬양으로 십자가의 무게를 털어냈습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은 수천 년의 탄식을 품고 있습니다. 시편의 과반수는 탄식입니다. 시대를 벗어나 교회는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십자가 안에서 만나진다고. 신앙의 선배들은 침묵을 수련했고, 개혁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씨름을 신앙의 본질로 가르쳤습니다. 이 세대가 사찰에서 찾는 고요함은 원래 교회가 말씀을 묵상하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며, 함께 드리는 기도 안에서 이미 가졌던 유산입니다.</p><p>MZ세대가 사찰에서 찾는 것들 (무게, 침묵, 절제, 신비, 의미)</p><p>교회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연합된 가족이어야 합니다. 고독의 시대에 복음만이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양된 자녀의 정체성과 영원한 소속감입니다. 불교는 자아를 소멸시키라고 하지만 십자가는 자아를 구속합니다. 불교의 침묵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면, 복음은 창조주 앞에 잠잠하라고 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고통 속으로 직접 들어오신 구원자가 인간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 &quot;잠잠하여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quot;(시 46:10)</p><p>이 세대는 교회가 세속 문화를 흉내 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교회가 담대하게, 오래되고, 신비롭고 거룩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영적 대각성은 늘 성경을 일반 성도의 언어로 열어 말씀의 능력이 역사할 때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전략이 아니라 말씀의 선포가, 트렌드의 모방이 아니라 부패된 세상을 향한 정직함이 모든 세대가 원하는 것입니다.</p><p>MZ세대는 개신교의 가벼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압니다. 개신교가 제시하는 노래와 깊이 없는 설교가 답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잘 압니다. 이들이 거부하는 것은 진정한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세속화된, 그래서 세상과 다르지 않은, 그러다 보니 오히려 세상보다 못한 구호화된 싸구려 종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p><p>&quot;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quot; — 이사야 40:8</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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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5 May 2026 1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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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소비자인가 제자인가?</itunes:title>
    <title>소비자인가 제자인가?</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내 입맛대로 고르고 주문하는 '소비자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참여하는 주님의 만찬(성찬)도 혹시 쇼핑몰의 서비스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1. 소비자주의가 망가뜨린 성찬의 의미 현대인들은 예배와 성찬에 나아오며 무의식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예배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뭐지?" "성찬 예식 때문에 예배가 너무 길어지지는 않을까?"  이런 태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험료 납부'나 '자기계발' 같은 대상화된 소비로 전락시킵니다. 성찬은 내가 소비하는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사건'입니다.  2. '당신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마르틴 루터는 기독교인의 삶을 '비타 파시바(vita passiva, 수동적인 삶)'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게으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동적인 주체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일하심을 받아들이는 '수납하는 삶'을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내 입맛대로 고르고 주문하는 &apos;소비자 사회&apos;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참여하는 주님의 만찬(성찬)도 혹시 쇼핑몰의 서비스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br/><br/>1. 소비자주의가 망가뜨린 성찬의 의미<br/>현대인들은 예배와 성찬에 나아오며 무의식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br/><br/>&quot;오늘 예배에서 내가 &apos;얻을&apos; 수 있는 건 뭐지?&quot;<br/>&quot;성찬 예식 때문에 예배가 너무 길어지지는 않을까?&quot;<br/><br/>이런 태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apos;보험료 납부&apos;나 &apos;자기계발&apos; 같은 대상화된 소비로 전락시킵니다. 성찬은 내가 소비하는 &apos;물건&apos;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apos;사건&apos;입니다.<br/><br/>2. &apos;당신의 방식&apos;이 아닌 &apos;하나님의 방식&apos;으로<br/>마르틴 루터는 기독교인의 삶을 &apos;비타 파시바(vita passiva, 수동적인 삶)&apos;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게으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동적인 주체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일하심을 받아들이는 &apos;수납하는 삶&apos;을 뜻합니다.<br/><br/>성찬은 내가 만들어 내거나 쟁취하는 경험이 아닙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예배를 통해, 떡과 잔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과 표징을 전달하시는 것입니다. 성찬을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감사함으로 받는 자들입니다.<br/><br/>&quot;우리가 성찬에 나아가는 것은 거기서 큰 보물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이 나의 것이 되고, 내 모든 악에 대항하는 확실한 보증이 되도록 먹고 마시라고 명하십니다.&quot; (루터, 대교리문답)<br/><br/>3. 소비를 넘어 소망으로<br/>성찬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미래에 열릴 &apos;어린 양의 혼인 잔치&apos;를 미리 맛보는 소망의 잔치입니다.<br/><br/>하나님은 성찬을 통해 우리의 거짓된 자아상을 부수시고, 그분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하십니다.<br/><br/>지나치게 능동적인 시대, 잠시 멈추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립시다. 성찬은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으로 인도하는 가장 확실한 선물 중 하나입니다.<br/><br/>원문: 다니엘 에골드, 『성찬을 소비하다』 중<br/>https://www.modernreformation.org/resources/articles/consuming-communion<br/><br/>신학적 한 걸음 더<br/>이 글의 저자 다니엘 에골드는 루터교 전통에 서 있습니다. 루터교는 성찬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행하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apos;수동적 수납&apos;을 강조합니다.<br/><br/>비록 성찬에 대한 세부적인 신학(루터교의 공재설 vs 개혁주의의 영적 임재설)은 교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quot;성찬은 나의 만족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quot;이라는 에골드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회복해야 할 제자도의 핵심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내 입맛대로 고르고 주문하는 &apos;소비자 사회&apos;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참여하는 주님의 만찬(성찬)도 혹시 쇼핑몰의 서비스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br/><br/>1. 소비자주의가 망가뜨린 성찬의 의미<br/>현대인들은 예배와 성찬에 나아오며 무의식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br/><br/>&quot;오늘 예배에서 내가 &apos;얻을&apos; 수 있는 건 뭐지?&quot;<br/>&quot;성찬 예식 때문에 예배가 너무 길어지지는 않을까?&quot;<br/><br/>이런 태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apos;보험료 납부&apos;나 &apos;자기계발&apos; 같은 대상화된 소비로 전락시킵니다. 성찬은 내가 소비하는 &apos;물건&apos;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apos;사건&apos;입니다.<br/><br/>2. &apos;당신의 방식&apos;이 아닌 &apos;하나님의 방식&apos;으로<br/>마르틴 루터는 기독교인의 삶을 &apos;비타 파시바(vita passiva, 수동적인 삶)&apos;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게으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동적인 주체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일하심을 받아들이는 &apos;수납하는 삶&apos;을 뜻합니다.<br/><br/>성찬은 내가 만들어 내거나 쟁취하는 경험이 아닙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예배를 통해, 떡과 잔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과 표징을 전달하시는 것입니다. 성찬을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감사함으로 받는 자들입니다.<br/><br/>&quot;우리가 성찬에 나아가는 것은 거기서 큰 보물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찬이 나의 것이 되고, 내 모든 악에 대항하는 확실한 보증이 되도록 먹고 마시라고 명하십니다.&quot; (루터, 대교리문답)<br/><br/>3. 소비를 넘어 소망으로<br/>성찬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미래에 열릴 &apos;어린 양의 혼인 잔치&apos;를 미리 맛보는 소망의 잔치입니다.<br/><br/>하나님은 성찬을 통해 우리의 거짓된 자아상을 부수시고, 그분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하십니다.<br/><br/>지나치게 능동적인 시대, 잠시 멈추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립시다. 성찬은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으로 인도하는 가장 확실한 선물 중 하나입니다.<br/><br/>원문: 다니엘 에골드, 『성찬을 소비하다』 중<br/>https://www.modernreformation.org/resources/articles/consuming-communion<br/><br/>신학적 한 걸음 더<br/>이 글의 저자 다니엘 에골드는 루터교 전통에 서 있습니다. 루터교는 성찬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행하기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apos;수동적 수납&apos;을 강조합니다.<br/><br/>비록 성찬에 대한 세부적인 신학(루터교의 공재설 vs 개혁주의의 영적 임재설)은 교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quot;성찬은 나의 만족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quot;이라는 에골드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회복해야 할 제자도의 핵심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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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5 May 2026 13: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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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41장 </itunes:title>
    <title>창세기 41장 </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셉의 삶은 참 드라마틱합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창세기 37:3). 그러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결국 노예로 팔렸습니다(창세기 37:4, 28). 애굽에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고(창세기 39:12–20)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창세기 41장은 바로가 이상한 꿈을 꾸는 장면으로 시작해 요셉을 소개합니다.   성경은 “만 이 년 후에”라고 아주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두 해가 요셉에게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는지는 시편 105편이 더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편 105:17–19)   요셉은 그의 도움을 받은 관원장이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억울함이 풀리고 감옥...]]></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셉의 삶은 참 드라마틱합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창세기 37:3). 그러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결국 노예로 팔렸습니다(창세기 37:4, 28). 애굽에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고(창세기 39:12–20)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창세기 41장은 바로가 이상한 꿈을 꾸는 장면으로 시작해 요셉을 소개합니다.</p><p><br/></p><p>성경은 “만 이 년 후에”라고 아주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두 해가 요셉에게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는지는 시편 105편이 더 생생하게 보여줍니다.</p><p>&quot;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p><p>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p><p>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quot;</p><p>(시편 105:17–19)</p><p><br/></p><p>요셉은 그의 도움을 받은 관원장이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억울함이 풀리고 감옥에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잊혔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결국 두 해가 흘렀습니다.</p><p><br/></p><p>고난 속에서 시간은 참 이상하게 흐릅니다. 기쁠 때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아플 때의 시간은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요셉에게 그 두 해는 아마 이십 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p><p><br/></p><p>우리는 종종 지연을 하나님의 부재로 해석합니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침묵이 길어지면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신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창세기 41장은 우리에게 다른 시각을 줍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감옥 속에서도 부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p><p><br/></p><p>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는 감옥처럼 느껴지는 고난의 자리에서,비로소 우리가 스스로는 결코 깨닫지 못했을 은혜와 축복을 알게 하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런 방식이 참 어렵습니다. 가능하다면 고난 없이 성숙하고 싶습니다. 기다림 없이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빚으신다고 말합니다.</p><p><br/></p><p>조니 에릭슨 타다라고 아실까요? 1967년, 열일곱 살이었던 그녀는 다이빙 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었습니다. 활발하게 운동하던 소녀가 평생 휠체어에 앉아 살아야 하는 삶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녀의 간증은 놀랍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두 발로 서 있는 것보다, 휠체어에 앉아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낫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마비를 단순히 인생을 멈추게 한 비극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혹독한 자비”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참 어렵지만 진리입니다. 우리가 가장 갇혀 있다고 느끼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때로 가장 넓고 깊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p><p><br/></p><p>요셉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이유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요셉은 사랑받는 아들로서 형제들에게 거절당합니다. 그는 겉옷을 빼앗기고, 은에 팔려 구덩이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이라는 무덤 같은 자리에서 결국 건져 올려져 왕의 오른편에 서게 됩니다.</p><p><br/></p><p>혹시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있나요?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 지연이 거절처럼 느껴지고, 침묵이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요셉의 삶을 묵상하시길 초대합니다. 힘이 들고 많이 지칠지라도 잊지 마십시다. 우리의 기다림은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인생이 잊혀지는 애굽의 감옥에서 요셉을 기억하신 하나님은 봉인된 무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이십니다. </p><p><br/></p><p>하나님은 어둠의 고요한 밤에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비록 오늘은 우리가 그 음성이 들리지 않더라도 믿음의 귀가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반드시 주님의 얼굴을 뵙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날은 분명히 듣게 될 것입니다. &quot;힘들었지. 고생했다. 잘하였고 수고했다. 나의 사랑, 나의 백성아.&quot;</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셉의 삶은 참 드라마틱합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창세기 37:3). 그러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결국 노예로 팔렸습니다(창세기 37:4, 28). 애굽에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고(창세기 39:12–20)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창세기 41장은 바로가 이상한 꿈을 꾸는 장면으로 시작해 요셉을 소개합니다.</p><p><br/></p><p>성경은 “만 이 년 후에”라고 아주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두 해가 요셉에게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는지는 시편 105편이 더 생생하게 보여줍니다.</p><p>&quot;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p><p>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p><p>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quot;</p><p>(시편 105:17–19)</p><p><br/></p><p>요셉은 그의 도움을 받은 관원장이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억울함이 풀리고 감옥에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잊혔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결국 두 해가 흘렀습니다.</p><p><br/></p><p>고난 속에서 시간은 참 이상하게 흐릅니다. 기쁠 때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아플 때의 시간은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요셉에게 그 두 해는 아마 이십 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p><p><br/></p><p>우리는 종종 지연을 하나님의 부재로 해석합니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침묵이 길어지면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신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창세기 41장은 우리에게 다른 시각을 줍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감옥 속에서도 부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늦지 않으십니다.</p><p><br/></p><p>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는 감옥처럼 느껴지는 고난의 자리에서,비로소 우리가 스스로는 결코 깨닫지 못했을 은혜와 축복을 알게 하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런 방식이 참 어렵습니다. 가능하다면 고난 없이 성숙하고 싶습니다. 기다림 없이 열매를 맺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빚으신다고 말합니다.</p><p><br/></p><p>조니 에릭슨 타다라고 아실까요? 1967년, 열일곱 살이었던 그녀는 다이빙 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었습니다. 활발하게 운동하던 소녀가 평생 휠체어에 앉아 살아야 하는 삶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녀의 간증은 놀랍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두 발로 서 있는 것보다, 휠체어에 앉아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낫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마비를 단순히 인생을 멈추게 한 비극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혹독한 자비”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참 어렵지만 진리입니다. 우리가 가장 갇혀 있다고 느끼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때로 가장 넓고 깊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p><p><br/></p><p>요셉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이유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요셉은 사랑받는 아들로서 형제들에게 거절당합니다. 그는 겉옷을 빼앗기고, 은에 팔려 구덩이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이라는 무덤 같은 자리에서 결국 건져 올려져 왕의 오른편에 서게 됩니다.</p><p><br/></p><p>혹시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있나요?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 지연이 거절처럼 느껴지고, 침묵이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요셉의 삶을 묵상하시길 초대합니다. 힘이 들고 많이 지칠지라도 잊지 마십시다. 우리의 기다림은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인생이 잊혀지는 애굽의 감옥에서 요셉을 기억하신 하나님은 봉인된 무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이십니다. </p><p><br/></p><p>하나님은 어둠의 고요한 밤에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비록 오늘은 우리가 그 음성이 들리지 않더라도 믿음의 귀가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반드시 주님의 얼굴을 뵙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날은 분명히 듣게 될 것입니다. &quot;힘들었지. 고생했다. 잘하였고 수고했다. 나의 사랑, 나의 백성아.&quot;</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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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4 May 2026 18: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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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암호화폐란 무엇인가요?</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암호화폐란 무엇인가? 판단하기 전에 먼저 디지털 자산을 이해하기 암호화폐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에게 암호화폐란 비트코인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을 잘 이해하는 건 아닌데, 그래서 이더리움과 XRP는 더더욱 알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비트코인과 비슷한 종류의 암호화폐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기도 바쁘고 가족 일로 마음이 분주하니 뭐 그런 것까지 굳이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평생 주식을 해오지도 않았고 주변에 주식이나 투자 혹은 비트코인으로 손해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서 크리스천은 필연적으로 몰라야 하는 것이 암호화폐라고 생각하며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평생 신학만 공부한 사람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성경 말씀 묵상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이 주제를 다루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암호화폐는 단일한 것이 아닙니다. 암호화폐는 블록...]]></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b>암호화폐란 무엇인가?</b></p><p>판단하기 전에 먼저 디지털 자산을 이해하기</p><p>암호화폐란 무엇일까요? </p><p>어떤 사람들에게 암호화폐란 비트코인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을 잘 이해하는 건 아닌데, 그래서 이더리움과 XRP는 더더욱 알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비트코인과 비슷한 종류의 암호화폐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기도 바쁘고 가족 일로 마음이 분주하니 뭐 그런 것까지 굳이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평생 주식을 해오지도 않았고 주변에 주식이나 투자 혹은 비트코인으로 손해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서 크리스천은 필연적으로 몰라야 하는 것이 암호화폐라고 생각하며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p><p>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평생 신학만 공부한 사람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성경 말씀 묵상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이 주제를 다루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p><p>암호화폐는 단일한 것이 아닙니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 위에 구축된 다양한 디지털 자산을 포괄하는 넓은 범주입니다. 어떤 것은 돈처럼 기능하도록 설계되었고, 어떤 것은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어떤 것은 결제를 위해, 또 어떤 것은 현실 세계의 자산과 연결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p><p>크리스천은 주식에 투자를 해도 괜찮을까요? 더 나아가 “암호화폐에 투자해도 되나요?”라고 묻기 전에, 블록체인 경제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해하는 것과 신앙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으나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로서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천은 절대로 신앙을 핑계로 이 세상을 도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점에서 블록체인 경제와 아울러 암호화폐에서 크리스천의 삶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가장 실질적이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이 암호가 아닌 &apos;비밀&apos;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apos;투자&apos;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시리즈를 나누고 있습니다.</p><p><b>블록체인: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기본 개념</b></p><p>블록체인에 대한 아주 간단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p><blockquote>블록체인은 “여러 사람이 함께 확인할 수 있지만, 어느 한 사람이 마음대로 지울 수 없는 공유된 디지털 장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blockquote><p>우리는 이제 국가들이 비트코인을 “무시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전략적 자산으로 “쌓아두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2026년 초 현재, 미국은 BTC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입니다(328,000개 이상 보유). 중국과 엘살바도르, 그리고 하다못해 부탄과 같은 작은 국가들도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p><p>미국의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 사이버 어택, 군사적 사용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강대국들은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를 사이버전쟁과 환율전쟁에 사용함은 물론 인류를 통제하기 위한 가장 뛰어난 기술로 사용하는 준비를 마쳐가고 있는 듯 합니다.</p><p><b>세 가지 주요 암호화폐 자산 — 그러나 전혀 다른 세 가지</b></p><p><b>비트코인(BTC): “디지털 금고”</b></p><p>정부가 임의로 더 많이 만들거나 동결할 수 없는 가치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희귀성에 있어서 금과 같습니다.</p><p><b>비유:</b> 미국 달러가 종이라면, 비트코인은 금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보통 금괴로 커피와 같은 일상용품을 사지 않습니다. 금은 발굴하는 데 많은 에너지와 자본이 필요하고 또 금의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보전됩니다.</p><p><b>핵심:</b> 비트코인은 영원히 2,100만 개만 존재합니다. 이런 점이 금과 아주 비슷합니다. 디지털 금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p><p><b>이더리움(ETH): “글로벌 인프라”</b></p><p>2015년 즈음에 세상에 소개된 이더리움은 중개자 없이 사람들이 애플리케이션과 계약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네트워크가 되는 것입니다.</p><p><b>비유: </b>비트코인이 금이라면, 이더리움은 석유나 전기와 같습니다. 이더리움은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이라는 거대한 공장을 움직이는 연료와 같습니다.</p><p><b>핵심:</b> 이더리움은 “스마트 계약”을 사용해 이제 보험, 소유권 이전, 그리고 여러 형태의 합의를 변호사나 은행 없이 안전하게 실행할 수 있게 합니다.</p><p><b>XRP: “고속 제트기”</b></p><p>거액의 돈을 국경을 넘어 거의 즉시, 그리고 매우 낮은 비용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p><p><b>비유:</b> XRP는 고속 제트기와 같습니다. 비트코인이 거래 정산에 10분에서 60분 정도 걸릴 수 있다면, XRP는 보통 3초에서 5초 안에 정산됩니다.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은 적어도 몇 일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XRP는 우리가 이메일로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듯이, 거래를 아주 빠르게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자 기술입니다.</p><p><b>핵심:</b> XRP는 은행을 “대체”하려 하기보다는 송금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거래망과 시장을 넓히는 데 있습니다. 은행 시스템이나 잘 구축되지 않은 개발도상국가에도 사람들이 스마트폰은 다 이제 갖고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XRP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을 엽니다.</p><ul><li>비트코인에 투자한다는 것은 디지털 희소성을 기반으로 화폐에 대한 불신을 해결하는 &apos;금&apos;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li><li>이더리움에 투자한다는 것은 탈중앙화 경제를 기대하며, 앞으로 이더리움의 가치도 함께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li><li>XRP에 투자한다는 것은 글로벌 결제 시스템이 현재 전통 은행 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스템이 합법화 되고 국가의 통제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여 그 역시 XRP의 가치도 함께 부상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li></ul><p>요약하면, 비트코인, 이더리움, 그리고 XRP는 서로 다릅니다. 각각 특정한 목적을 가진 디지털 도구인데요, 그 도구가 더 희소해지거나 더 유용해지거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해질 때 그 가치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br/><br/>(전체 내용은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https://www.jubileecoach.com/post/암호화폐란-무엇인가-1)</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b>암호화폐란 무엇인가?</b></p><p>판단하기 전에 먼저 디지털 자산을 이해하기</p><p>암호화폐란 무엇일까요? </p><p>어떤 사람들에게 암호화폐란 비트코인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을 잘 이해하는 건 아닌데, 그래서 이더리움과 XRP는 더더욱 알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비트코인과 비슷한 종류의 암호화폐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기도 바쁘고 가족 일로 마음이 분주하니 뭐 그런 것까지 굳이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평생 주식을 해오지도 않았고 주변에 주식이나 투자 혹은 비트코인으로 손해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서 크리스천은 필연적으로 몰라야 하는 것이 암호화폐라고 생각하며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p><p>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평생 신학만 공부한 사람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성경 말씀 묵상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이 주제를 다루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p><p>암호화폐는 단일한 것이 아닙니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 위에 구축된 다양한 디지털 자산을 포괄하는 넓은 범주입니다. 어떤 것은 돈처럼 기능하도록 설계되었고, 어떤 것은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어떤 것은 결제를 위해, 또 어떤 것은 현실 세계의 자산과 연결되도록 만들어졌습니다.</p><p>크리스천은 주식에 투자를 해도 괜찮을까요? 더 나아가 “암호화폐에 투자해도 되나요?”라고 묻기 전에, 블록체인 경제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해하는 것과 신앙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으나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로서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크리스천은 절대로 신앙을 핑계로 이 세상을 도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관점에서 블록체인 경제와 아울러 암호화폐에서 크리스천의 삶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가장 실질적이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이 암호가 아닌 &apos;비밀&apos;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apos;투자&apos;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시리즈를 나누고 있습니다.</p><p><b>블록체인: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기본 개념</b></p><p>블록체인에 대한 아주 간단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p><blockquote>블록체인은 “여러 사람이 함께 확인할 수 있지만, 어느 한 사람이 마음대로 지울 수 없는 공유된 디지털 장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blockquote><p>우리는 이제 국가들이 비트코인을 “무시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전략적 자산으로 “쌓아두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2026년 초 현재, 미국은 BTC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입니다(328,000개 이상 보유). 중국과 엘살바도르, 그리고 하다못해 부탄과 같은 작은 국가들도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p><p>미국의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 사이버 어택, 군사적 사용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강대국들은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를 사이버전쟁과 환율전쟁에 사용함은 물론 인류를 통제하기 위한 가장 뛰어난 기술로 사용하는 준비를 마쳐가고 있는 듯 합니다.</p><p><b>세 가지 주요 암호화폐 자산 — 그러나 전혀 다른 세 가지</b></p><p><b>비트코인(BTC): “디지털 금고”</b></p><p>정부가 임의로 더 많이 만들거나 동결할 수 없는 가치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희귀성에 있어서 금과 같습니다.</p><p><b>비유:</b> 미국 달러가 종이라면, 비트코인은 금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보통 금괴로 커피와 같은 일상용품을 사지 않습니다. 금은 발굴하는 데 많은 에너지와 자본이 필요하고 또 금의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보전됩니다.</p><p><b>핵심:</b> 비트코인은 영원히 2,100만 개만 존재합니다. 이런 점이 금과 아주 비슷합니다. 디지털 금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p><p><b>이더리움(ETH): “글로벌 인프라”</b></p><p>2015년 즈음에 세상에 소개된 이더리움은 중개자 없이 사람들이 애플리케이션과 계약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네트워크가 되는 것입니다.</p><p><b>비유: </b>비트코인이 금이라면, 이더리움은 석유나 전기와 같습니다. 이더리움은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이라는 거대한 공장을 움직이는 연료와 같습니다.</p><p><b>핵심:</b> 이더리움은 “스마트 계약”을 사용해 이제 보험, 소유권 이전, 그리고 여러 형태의 합의를 변호사나 은행 없이 안전하게 실행할 수 있게 합니다.</p><p><b>XRP: “고속 제트기”</b></p><p>거액의 돈을 국경을 넘어 거의 즉시, 그리고 매우 낮은 비용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p><p><b>비유:</b> XRP는 고속 제트기와 같습니다. 비트코인이 거래 정산에 10분에서 60분 정도 걸릴 수 있다면, XRP는 보통 3초에서 5초 안에 정산됩니다.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은 적어도 몇 일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XRP는 우리가 이메일로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듯이, 거래를 아주 빠르게 완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자 기술입니다.</p><p><b>핵심:</b> XRP는 은행을 “대체”하려 하기보다는 송금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거래망과 시장을 넓히는 데 있습니다. 은행 시스템이나 잘 구축되지 않은 개발도상국가에도 사람들이 스마트폰은 다 이제 갖고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XRP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을 엽니다.</p><ul><li>비트코인에 투자한다는 것은 디지털 희소성을 기반으로 화폐에 대한 불신을 해결하는 &apos;금&apos;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li><li>이더리움에 투자한다는 것은 탈중앙화 경제를 기대하며, 앞으로 이더리움의 가치도 함께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li><li>XRP에 투자한다는 것은 글로벌 결제 시스템이 현재 전통 은행 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스템이 합법화 되고 국가의 통제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여 그 역시 XRP의 가치도 함께 부상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li></ul><p>요약하면, 비트코인, 이더리움, 그리고 XRP는 서로 다릅니다. 각각 특정한 목적을 가진 디지털 도구인데요, 그 도구가 더 희소해지거나 더 유용해지거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해질 때 그 가치는 올라갈 수 있습니다.<br/><br/>(전체 내용은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https://www.jubileecoach.com/post/암호화폐란-무엇인가-1)</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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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3 May 2026 17: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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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2편: 비트코인이란 무엇인가?</itunes:title>
    <title>2편: 비트코인이란 무엇인가?</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비트코인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희소성, 불신, 그리고 건전한 돈을 향한 갈망 블록체인, 제한된 공급량, 탈중앙화, 채굴, 자기 보관, 변동성 — 그리고 그 너머의 신학적 질문 1. 비트코인의 배경: 투자 상품이 아닌 불신의 결과 비트코인은 처음부터 단순한 투자 상품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 사람들이 화폐, 정부, 은행, 인플레이션, 그리고 통제에 대해 품고 있던 깊은 불신과 문제의식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었습니다.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 또는 집단에 의해 세상에 소개되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커진 제도권 금융에 대한 불신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왜 우리는 돈을 맡기고, 보내고, 보관하기 위해 반드시 은행과 정부를 신뢰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이해하려면 가격이나 투자가치보다 먼저 이 질문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비트코인은 단지 돈의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b>비트코인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희소성, 불신, 그리고 건전한 돈을 향한 갈망</b></p><p>블록체인, 제한된 공급량, 탈중앙화, 채굴, 자기 보관, 변동성 — 그리고 그 너머의 신학적 질문</p><p><b>1. 비트코인의 배경: 투자 상품이 아닌 불신의 결과</b></p><p>비트코인은 처음부터 단순한 투자 상품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 사람들이 화폐, 정부, 은행, 인플레이션, 그리고 통제에 대해 품고 있던 <b>깊은 불신과 문제의식에 대한 하나의 대답</b>이었습니다.</p><p>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 또는 집단에 의해 세상에 소개되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커진 제도권 금융에 대한 불신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었습니다.</p><blockquote>“왜 우리는 돈을 맡기고, 보내고, 보관하기 위해 반드시 은행과 정부를 신뢰해야 하는가?”</blockquote><p><br/></p><p>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이해하려면 가격이나 투자가치보다 먼저 이 질문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비트코인은 단지 돈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뢰의 위기를 겪는 현대인의 마음을 보여 주는 현상입니다.</p><p><b>2. 비트코인의 기본 구조</b></p><p><b>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은 블록체인</b>입니다.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이 담긴 “블록”들이 시간 순서대로 “체인”처럼 연결된 분산 장부입니다. 은행이나 중앙 서버가 장부를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컴퓨터가 함께 보관하고 검증합니다.</p><p>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서는 신뢰가 기관에 맡겨집니다. 은행이 장부를 관리하고 거래를 승인합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신뢰를 사람이나 기관보다 공개된 규칙과 네트워크의 검증에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비트코인 세계에서는 <b>“신뢰하지 말고 검증하라”</b>는 말이 자주 쓰입니다.</p><p>또 하나의 핵심은 <b>제한된 공급량</b>입니다. 비트코인은 총 발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p><p>비트코인은 <b>채굴이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 발행</b>됩니다. 채굴자들은 강력한 컴퓨터 연산을 통해 거래를 검증하고 블록체인에 새 블록을 추가합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디지털 자산이지만, 그 발행에는 물리적 비용이 들어갑니다.</p><p>비트코인은 또한 <b>탈중앙화를 지향</b>합니다. </p><p>마지막으로 비트코인은 개인의 <b>자산으로 직접 보관</b>할 수<b> </b>있습니다. 누군가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점은 자유이면서 동시에 위험입니다.</p><p>그리고 <b>비트코인의 현실적인 상황은 변동성</b>입니다. 비트코인은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을 향한 가능성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자산이기도 합니다.</p><p><b>3. 비트코인이 드러내는 현대인의 불안</b></p><p>비트코인의 부상은 단순한 기술 혁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p><p>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합니다. 정부가 화폐를 너무 쉽게 찍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은행과 금융기관이 자신들을 보호하기보다 자신들을 이용한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평생 일해서 번 돈의 구매력이 조용히 줄어드는 것을 걱정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더 희소한 돈, 더 검증 가능한 돈, 더 통제받지 않는 돈을 찾습니다.</p><p>크리스천은 이 불안을 가볍게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불의한 경제 구조에 무관심하지 않습니다.</p><blockquote>“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11:1)</blockquote><p>하나님은 정직한 저울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돈, 정직한 거래, 책임 있는 금융 제도,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계는 성경적으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인플레이션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크리스천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p><p>그러나 크리스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비트코인이 드러내는 불안이 정당한 부분도 있다 해도, 그 불안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어야 합니다.</p><ul><li>나는 무엇을 신뢰하는가?</li><li>나는 무엇을 통해 안전해지려 하는가?</li><li>나는 하나님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li></ul><p><b>비트코인은 부패한 정부와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인간의 대안처럼 보입니다.</b>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b>그 시도는 인간이 서로의 부패성과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b>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p><p><b>하지만 비트코인은 문제를 보여 줄 수는 있어도, 인간의 죄성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b> 블록체인이 탐욕을 제거하지는 못합니다. 제한된 공급량이 절대적 안식을 주지는 못합니다. 자기 보관이 하나님 없는 자기 의존을 거룩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p><p>성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기까지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비트코인이 드러내는 통제와 안전에 대한 갈망은 결국 인간이 얼마나 깊이 불안한 존재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불안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은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p><p><b>4. 크리스천은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b></p><p>크리스천은 비트코인을 무조건 악한 것으로 볼 필요도 없고, 구원의 도구처럼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배워야 합니다. 분별해야 합니다. 질문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리즈를 나누는 이유입니다.</p><p>비트코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돈이란 무엇인가? 신뢰란 무엇인가? 정부와 금융기관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적 책임은 어떻게 함께 가야 하는가?</p><p>그러나 이 질문들의 마지막 답은 비트코인 안에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답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p><blockquote>“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디모데전서 6:17)</blockquote><p>성경은 재물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비트코인이든 달러든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모든 재물에는 정함이 없습니다. 변동성이 큰 자산만이 불안정한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안정되어 보이는 자산도 영원하지 않습니다.</p><p>그러므로 비트코인에 투자할 것인지 말 것인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돈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 수익인가, 안전인가, 자유인가, 통제감인가? 그리고 그 마음은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 없이도 안전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끌고 있는가?</p><p>비트코인이 새로운 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해도, 참된 생명과 의와 평안은 인간이 만든 시장에서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주어집니다. 비트코인은 건전한 돈을 향한 갈망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인간의 더 깊은 문제, 곧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 안전을 구축하려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p><p>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기술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한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인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궁극적 안전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다시 깨닫게 하십니다.</p><p>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부패하지 않는 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패한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구세주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b>비트코인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희소성, 불신, 그리고 건전한 돈을 향한 갈망</b></p><p>블록체인, 제한된 공급량, 탈중앙화, 채굴, 자기 보관, 변동성 — 그리고 그 너머의 신학적 질문</p><p><b>1. 비트코인의 배경: 투자 상품이 아닌 불신의 결과</b></p><p>비트코인은 처음부터 단순한 투자 상품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 사람들이 화폐, 정부, 은행, 인플레이션, 그리고 통제에 대해 품고 있던 <b>깊은 불신과 문제의식에 대한 하나의 대답</b>이었습니다.</p><p>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 또는 집단에 의해 세상에 소개되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커진 제도권 금융에 대한 불신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었습니다.</p><blockquote>“왜 우리는 돈을 맡기고, 보내고, 보관하기 위해 반드시 은행과 정부를 신뢰해야 하는가?”</blockquote><p><br/></p><p>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이해하려면 가격이나 투자가치보다 먼저 이 질문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비트코인은 단지 돈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뢰의 위기를 겪는 현대인의 마음을 보여 주는 현상입니다.</p><p><b>2. 비트코인의 기본 구조</b></p><p><b>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은 블록체인</b>입니다.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이 담긴 “블록”들이 시간 순서대로 “체인”처럼 연결된 분산 장부입니다. 은행이나 중앙 서버가 장부를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컴퓨터가 함께 보관하고 검증합니다.</p><p>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서는 신뢰가 기관에 맡겨집니다. 은행이 장부를 관리하고 거래를 승인합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신뢰를 사람이나 기관보다 공개된 규칙과 네트워크의 검증에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비트코인 세계에서는 <b>“신뢰하지 말고 검증하라”</b>는 말이 자주 쓰입니다.</p><p>또 하나의 핵심은 <b>제한된 공급량</b>입니다. 비트코인은 총 발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p><p>비트코인은 <b>채굴이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 발행</b>됩니다. 채굴자들은 강력한 컴퓨터 연산을 통해 거래를 검증하고 블록체인에 새 블록을 추가합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디지털 자산이지만, 그 발행에는 물리적 비용이 들어갑니다.</p><p>비트코인은 또한 <b>탈중앙화를 지향</b>합니다. </p><p>마지막으로 비트코인은 개인의 <b>자산으로 직접 보관</b>할 수<b> </b>있습니다. 누군가 대신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점은 자유이면서 동시에 위험입니다.</p><p>그리고 <b>비트코인의 현실적인 상황은 변동성</b>입니다. 비트코인은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을 향한 가능성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여전히 성장통을 겪고 있는 자산이기도 합니다.</p><p><b>3. 비트코인이 드러내는 현대인의 불안</b></p><p>비트코인의 부상은 단순한 기술 혁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p><p>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합니다. 정부가 화폐를 너무 쉽게 찍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은행과 금융기관이 자신들을 보호하기보다 자신들을 이용한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평생 일해서 번 돈의 구매력이 조용히 줄어드는 것을 걱정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더 희소한 돈, 더 검증 가능한 돈, 더 통제받지 않는 돈을 찾습니다.</p><p>크리스천은 이 불안을 가볍게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불의한 경제 구조에 무관심하지 않습니다.</p><blockquote>“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11:1)</blockquote><p>하나님은 정직한 저울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돈, 정직한 거래, 책임 있는 금융 제도,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계는 성경적으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인플레이션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크리스천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p><p>그러나 크리스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비트코인이 드러내는 불안이 정당한 부분도 있다 해도, 그 불안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어야 합니다.</p><ul><li>나는 무엇을 신뢰하는가?</li><li>나는 무엇을 통해 안전해지려 하는가?</li><li>나는 하나님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li></ul><p><b>비트코인은 부패한 정부와 금융 시스템에 대한 인간의 대안처럼 보입니다.</b>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b>그 시도는 인간이 서로의 부패성과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b>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p><p><b>하지만 비트코인은 문제를 보여 줄 수는 있어도, 인간의 죄성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b> 블록체인이 탐욕을 제거하지는 못합니다. 제한된 공급량이 절대적 안식을 주지는 못합니다. 자기 보관이 하나님 없는 자기 의존을 거룩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p><p>성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기까지 참된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비트코인이 드러내는 통제와 안전에 대한 갈망은 결국 인간이 얼마나 깊이 불안한 존재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불안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은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p><p><b>4. 크리스천은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b></p><p>크리스천은 비트코인을 무조건 악한 것으로 볼 필요도 없고, 구원의 도구처럼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배워야 합니다. 분별해야 합니다. 질문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리즈를 나누는 이유입니다.</p><p>비트코인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돈이란 무엇인가? 신뢰란 무엇인가? 정부와 금융기관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적 책임은 어떻게 함께 가야 하는가?</p><p>그러나 이 질문들의 마지막 답은 비트코인 안에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답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p><blockquote>“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디모데전서 6:17)</blockquote><p>성경은 재물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비트코인이든 달러든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모든 재물에는 정함이 없습니다. 변동성이 큰 자산만이 불안정한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안정되어 보이는 자산도 영원하지 않습니다.</p><p>그러므로 비트코인에 투자할 것인지 말 것인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돈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 수익인가, 안전인가, 자유인가, 통제감인가? 그리고 그 마음은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데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 없이도 안전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끌고 있는가?</p><p>비트코인이 새로운 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해도, 참된 생명과 의와 평안은 인간이 만든 시장에서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주어집니다. 비트코인은 건전한 돈을 향한 갈망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인간의 더 깊은 문제, 곧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 안전을 구축하려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p><p>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기술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한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인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궁극적 안전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다시 깨닫게 하십니다.</p><p>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부패하지 않는 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패한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구세주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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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2 May 2026 1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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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편: 돈이란 무엇이며 신뢰는 왜 중요한가?</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돈이란 무엇인가: 가치와 신뢰를 다시 묻다 블록체인 경제 시대에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 우리가 비트코인,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CBDC, ETF 같은 단어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돈이란 무엇입니까?이 질문은 단순히 경제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돈은 단순한 숫자나 종이, 혹은 은행 계좌 안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신뢰와 두려움과 욕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 속 사람의 실체를 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21).예수님은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네 보물도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를 보면, 우리의 속마음이 어디에 거하고 있는지 안다는 말씀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돈, 재물, 물질,...]]></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b>돈이란 무엇인가: 가치와 신뢰를 다시 묻다</b></p><p>블록체인 경제 시대에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p><p>우리가 비트코인,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CBDC, ETF 같은 단어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p><blockquote>돈이란 무엇입니까?</blockquote><p>이 질문은 단순히 경제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돈은 단순한 숫자나 종이, 혹은 은행 계좌 안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신뢰와 두려움과 욕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 속 사람의 실체를 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p><p>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p><blockquote>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21).</blockquote><p>예수님은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네 보물도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를 보면, 우리의 속마음이 어디에 거하고 있는지 안다는 말씀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돈, 재물, 물질, 그리고 보물을 모두 &quot;돈&quot;이라고 표현합니다.</p><p>자. &quot;돈이란 무엇일까요?&quot; 돈은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quot;도구&quot;죠. 물물교환할 때 필요한 도구입니다. 내가 귀중하게 여기는 보물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또 다른 재물입니다. 이렇게 돈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용하는 외적 도구이지만, 결코 우리 속마음과 분리된 것은 아닙니다. 외적 도구로 사용되는 돈은 우리 속사람이 마음으로 무엇을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보여줍니다. 즉, 돈은 우리가 무엇과 어떤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드러냅니다. 더 나아가 돈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p><p>즉, 돈이란 우리가 어떤 것들이 가치(worth)가 있다고 믿는지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중간신념이 될 수 있고 더 심각하게는 우리의 절대신념이 될 수도 있습니다.</p><p>경제적으로 말하면 돈은 보통 세 가지 기능을 합니다(안갑성, 2026). </p><p>첫째, 돈은 교환의 수단입니다. 우리는 물물교환을 하지 않고 돈을 통해 물건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것입니다. </p><p>둘째, 돈은 가치의 저장 수단입니다. 오늘 일해서 얻은 가치를 내일 사용할 수 있도록 보관합니다. </p><p>셋째, 돈은 계산의 단위입니다. 우리는 돈을 기준으로 물건의 가격과 노동의 대가를 비교합니다.</p><p>그러나 돈은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돈은 신뢰의 체계입니다.</p><p>우리가 종이돈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 종이 자체에 가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은행 계좌의 숫자를 신뢰하는 이유도 숫자 자체가 밥을 먹여 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돈을 다른 사람도 받아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 돈을 발행하고 관리하는 제도와 국가와 금융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적이라고 믿습니다.</p><p>이런 의미에서 돈은 언제나 “신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p><p>블록체인 경제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은 “우리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은행을 신뢰할 것인가? 정부를 신뢰할 것인가? 중앙기관을 신뢰할 것인가? 코드와 네트워크를 신뢰할 것인가? 시장 참여자들의 합의를 신뢰할 것인가?</p><p>그러나 크리스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p><p>그것은 &quot;우리의 궁극적 신뢰&quot;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크리스천이라면 꼭 대답해야 할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p><blockquote>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blockquote><p>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란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라고 말씀하여 지혜를 중요하게 언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명철, 우리의 판단, 우리의 투자 감각, 우리의 재정 계획이 궁극적 의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말합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도 다루면 좋겠지만 우선 여기서는 이 정도만 다룹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즉,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로 자신이 지혜롭다고 말하지 않고 또 지혜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어리석다고 고백하며 온전한 지혜 그 자체를 따르려는 겸허한 사람이다는 것입니다.</p><p>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크리스천은 금융 변화에 무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금융 변화를 구세주인양 붙들어서도 안 됩니다. 무지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망상은 비전이 아닙니다. 방법이나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지혜와는 아주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돈과 가치는 분명히 다릅니다.</p><p><b>크리스천은 돈과 가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b></p><p>(지면의 한계상 글은 여기까지. 전문은 홈페이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b>돈이란 무엇인가: 가치와 신뢰를 다시 묻다</b></p><p>블록체인 경제 시대에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p><p>우리가 비트코인,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CBDC, ETF 같은 단어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p><blockquote>돈이란 무엇입니까?</blockquote><p>이 질문은 단순히 경제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돈은 단순한 숫자나 종이, 혹은 은행 계좌 안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신뢰와 두려움과 욕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 속 사람의 실체를 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p><p>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p><blockquote>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21).</blockquote><p>예수님은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네 보물도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를 보면, 우리의 속마음이 어디에 거하고 있는지 안다는 말씀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돈, 재물, 물질, 그리고 보물을 모두 &quot;돈&quot;이라고 표현합니다.</p><p>자. &quot;돈이란 무엇일까요?&quot; 돈은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quot;도구&quot;죠. 물물교환할 때 필요한 도구입니다. 내가 귀중하게 여기는 보물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또 다른 재물입니다. 이렇게 돈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용하는 외적 도구이지만, 결코 우리 속마음과 분리된 것은 아닙니다. 외적 도구로 사용되는 돈은 우리 속사람이 마음으로 무엇을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보여줍니다. 즉, 돈은 우리가 무엇과 어떤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드러냅니다. 더 나아가 돈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p><p>즉, 돈이란 우리가 어떤 것들이 가치(worth)가 있다고 믿는지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중간신념이 될 수 있고 더 심각하게는 우리의 절대신념이 될 수도 있습니다.</p><p>경제적으로 말하면 돈은 보통 세 가지 기능을 합니다(안갑성, 2026). </p><p>첫째, 돈은 교환의 수단입니다. 우리는 물물교환을 하지 않고 돈을 통해 물건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것입니다. </p><p>둘째, 돈은 가치의 저장 수단입니다. 오늘 일해서 얻은 가치를 내일 사용할 수 있도록 보관합니다. </p><p>셋째, 돈은 계산의 단위입니다. 우리는 돈을 기준으로 물건의 가격과 노동의 대가를 비교합니다.</p><p>그러나 돈은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돈은 신뢰의 체계입니다.</p><p>우리가 종이돈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 종이 자체에 가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은행 계좌의 숫자를 신뢰하는 이유도 숫자 자체가 밥을 먹여 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돈을 다른 사람도 받아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 돈을 발행하고 관리하는 제도와 국가와 금융 시스템이 어느 정도 안정적이라고 믿습니다.</p><p>이런 의미에서 돈은 언제나 “신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p><p>블록체인 경제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은 “우리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은행을 신뢰할 것인가? 정부를 신뢰할 것인가? 중앙기관을 신뢰할 것인가? 코드와 네트워크를 신뢰할 것인가? 시장 참여자들의 합의를 신뢰할 것인가?</p><p>그러나 크리스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p><p>그것은 &quot;우리의 궁극적 신뢰&quot;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크리스천이라면 꼭 대답해야 할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p><blockquote>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blockquote><p>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란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라고 말씀하여 지혜를 중요하게 언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명철, 우리의 판단, 우리의 투자 감각, 우리의 재정 계획이 궁극적 의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말합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도 다루면 좋겠지만 우선 여기서는 이 정도만 다룹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즉,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로 자신이 지혜롭다고 말하지 않고 또 지혜를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어리석다고 고백하며 온전한 지혜 그 자체를 따르려는 겸허한 사람이다는 것입니다.</p><p>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크리스천은 금융 변화에 무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금융 변화를 구세주인양 붙들어서도 안 됩니다. 무지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망상은 비전이 아닙니다. 방법이나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지혜와는 아주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돈과 가치는 분명히 다릅니다.</p><p><b>크리스천은 돈과 가치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b></p><p>(지면의 한계상 글은 여기까지. 전문은 홈페이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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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author>Jubilee Christian Life Coach</itune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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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1 May 2026 1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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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블록체인 경제시대의 크리스천 (서론)</itunes:title>
    <title>블록체인 경제시대의 크리스천 (서론)</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이 시리즈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이 시리즈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를 장려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상황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을 전제로 쓰는 글도 아닙니다. 저는 칼빈주의 신학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자로서, 그리고 삶을 함께 고민하는 라이프 코치로서 우리 삶에서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 환경을 성경적으로, 정직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화폐와 금융의 변화를 기점으로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결국 저에게 선명한 것은 제도와 무관하게 "나는 하나님 나라 청지기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서론: 왜 그리스도인은 디지털 금융에 대해 성경적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은행, 화폐, 암호화폐, 토큰화, 스테이블코인, 거래소, ETF, 그리고 세계 금융 질서의 변화라는 큰 흐름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핵심 관심은 수익이 아니라 제자도입니다. 즉 돈과 금융의 세계가 급속히 바뀌고 있는 시...]]></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이 시리즈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이 시리즈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를 장려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상황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을 전제로 쓰는 글도 아닙니다. 저는 칼빈주의 신학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자로서, 그리고 삶을 함께 고민하는 라이프 코치로서 우리 삶에서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 환경을 성경적으로, 정직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화폐와 금융의 변화를 기점으로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결국 저에게 선명한 것은 제도와 무관하게 &quot;나는 하나님 나라 청지기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quot;라고 생각합니다.</p><p><b>서론: 왜 그리스도인은 디지털 금융에 대해 성경적으로 생각해야 하는가</b></p><p>은행, 화폐, 암호화폐, 토큰화, 스테이블코인, 거래소, ETF, 그리고 세계 금융 질서의 변화라는 큰 흐름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핵심 관심은 수익이 아니라 제자도입니다. 즉 돈과 금융의 세계가 급속히 바뀌고 있는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자 이 시리즈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p><p>우리는 지금 돈, 은행, 화폐, 거래, 소유, 신뢰에 대한 생각이 <b>크게 바뀌는 시대</b>를 지나고 있습니다. <b>우리가 당면한 시대는 블록체인 경제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금융과 경제 시스템의 큰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우리 일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b>이미 저는 요즘 운전면허증을 포함해 신용카드와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현대 소나타 하이브리드 자동차 열쇠도 제 핸드폰으로 작동하니 그저 핸드폰 하나면 운전에서 결제까지 웬만한 경우에 다 해결됩니다. 수표를 받아도 은행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핸드폰으로 찍으면 입금이 됩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입니다.</p><p>오랫동안 우리에게 돈이란 현금, 은행 계좌, 신용카드, 수표, 대출, 주택담보대출, 은퇴 계좌, 주식시장과 같은 나름 익숙해진 세계 안에 있었습니다. 그 모든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했습니다. 은행이 돈을 보관했고, 정부가 화폐를 발행했고, 증권시장이 투자를 관리했고, 카드 회사가 결제를 처리했습니다. <b>이런 제도를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b> 그 세계 안에서 살아왔습니다.</p><p>그런데 이제 전혀 <b>새로운 단어들이 일상에</b> 들어오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암호화폐, 블록체인, 이더리움, XRP,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지갑, 탈중앙화 금융, 토큰화, 거래소, ETF 같은 말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거의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린 것처럼 흥분하며 말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투기, 사기, 혹은 금융적 광기로 단정하기도 합니다. <b>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b>재정과 요리, 이 두 가지는 제 큰 약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시리즈에 감히 도전하는 것은 당연히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신학적이고 기독교 세계관적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p><p>먼저 혼란스러운 것들을 몇 가지 언급하겠습니다.</p><p><b>블록체인은 무엇이고 비트코인은 도대체 무엇입니까?</b> 돈입니까? 디지털 금입니까? 투자 자산입니까? 중앙은행 체제에 대한 반항입니까?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어떻게 다릅니까? 사람들은 왜 스마트 계약을 말합니까? XRP는 무엇이며, 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국제 결제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까? 암호화폐 거래소란 무엇입니까? 디지털 자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b>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져도 되는 것입니까? </b>이 시리즈를 마칠 때쯤에는 적어도 이것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도를 기대해도 좋겠습니다.</p><p>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시리즈는 절대로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이 시리즈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를 장려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상황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을 전제로 쓰는 글도 아닙니다. 도박이 아닌 투자에 대하여 성경적 윤리 도덕적인 부분을 조금 다루지만 전반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칼빈주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자로서, 그리고 삶을 함께 고민하는 라이프 코치로서 이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대한 질문을 정직하게 하며 크리스천 신학과 세계관을 가지고 데이터와 정보를 이해하는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p><p>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p><blockquote>“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개역개정)</blockquote><p>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어떤 어려움을 예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출발점을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순진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단지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눈을 감는 건 안 됩니다. 동시에 당연히 우리는 세속적이거나 탐욕스럽거나 불안에 사로잡히거나 무모해서도 안 됩니다. 지혜가 순결함을 잃으면 조작과 계산이 됩니다. 순결함이 지혜를 잃으면 순진함과 무지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둘 다로 부르십니다. 지혜롭되 순결하게, 깨어 있되 거룩하게, 세상을 이해하되 세상에 속하지 않게 부르십니다.</p><p>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해야 합니다. 새로운 기술과 금융 시스템이 어떤 도구인지, 어떤 가능성을 지니는지, 어떤 위험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유혹을 불러일으키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무엇이 실제인지, 무엇이 과장되었는지, 무엇이 유익한지, 무엇이 위험한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돈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깊은 영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p><p>성경은 부, 청지기 정신, 빚, 위험, 정의, 자족, 탐욕, 관대함, 신뢰에 대해 많이 말합니다. 재물은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드러냅니다. 투자는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드러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실제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오래된 우상을 새로운 형태로 깨울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안전과 안식을 찾으려는 유혹을 받아 왔습니다. 그것이 땅이든, 금이든, 은행 계좌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디지털 자산이든, 영적인 질문은 여전히 같습니다.</p><p>나는 어디에 나의 신뢰를 두고 있는가?</p><blockquote>&quot;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quot; (시편 121:1-2)</blockquote><p>그래서 이 시리즈는 두 가지 일을 함께하려고 합니다.</p><p><b>첫째, 블록체인 경제와 관련된 기본 용어와 작동 방식을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고 합니다. </b>비트코인, 암호화폐, 이더리움, XRP, 거래소, 지갑, 스테이블코인, ETF 같은 개념들을 차근차근 살펴볼 것입니다.</p><p><b>둘째, 더 중요하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 앞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묻고자 합니다.</b> 그리스도인은 투자해도 됩니까? 투자한다면 어떤 태도로 해야 합니까? 지혜로운 청지기 정신과 탐욕은 어떻게 구별됩니까?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은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금융적 불확실성과 투기적 열풍 속에서도 어떻게 자족과 관대함을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지식을 사용하되, 그 지식과 돈의 가능성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이 시리즈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이 시리즈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를 장려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상황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을 전제로 쓰는 글도 아닙니다. 저는 칼빈주의 신학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자로서, 그리고 삶을 함께 고민하는 라이프 코치로서 우리 삶에서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새로운 경제 환경을 성경적으로, 정직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화폐와 금융의 변화를 기점으로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결국 저에게 선명한 것은 제도와 무관하게 &quot;나는 하나님 나라 청지기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quot;라고 생각합니다.</p><p><b>서론: 왜 그리스도인은 디지털 금융에 대해 성경적으로 생각해야 하는가</b></p><p>은행, 화폐, 암호화폐, 토큰화, 스테이블코인, 거래소, ETF, 그리고 세계 금융 질서의 변화라는 큰 흐름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핵심 관심은 수익이 아니라 제자도입니다. 즉 돈과 금융의 세계가 급속히 바뀌고 있는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자 이 시리즈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p><p>우리는 지금 돈, 은행, 화폐, 거래, 소유, 신뢰에 대한 생각이 <b>크게 바뀌는 시대</b>를 지나고 있습니다. <b>우리가 당면한 시대는 블록체인 경제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금융과 경제 시스템의 큰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우리 일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b>이미 저는 요즘 운전면허증을 포함해 신용카드와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현대 소나타 하이브리드 자동차 열쇠도 제 핸드폰으로 작동하니 그저 핸드폰 하나면 운전에서 결제까지 웬만한 경우에 다 해결됩니다. 수표를 받아도 은행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핸드폰으로 찍으면 입금이 됩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입니다.</p><p>오랫동안 우리에게 돈이란 현금, 은행 계좌, 신용카드, 수표, 대출, 주택담보대출, 은퇴 계좌, 주식시장과 같은 나름 익숙해진 세계 안에 있었습니다. 그 모든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했습니다. 은행이 돈을 보관했고, 정부가 화폐를 발행했고, 증권시장이 투자를 관리했고, 카드 회사가 결제를 처리했습니다. <b>이런 제도를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b> 그 세계 안에서 살아왔습니다.</p><p>그런데 이제 전혀 <b>새로운 단어들이 일상에</b> 들어오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암호화폐, 블록체인, 이더리움, XRP,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지갑, 탈중앙화 금융, 토큰화, 거래소, ETF 같은 말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거의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린 것처럼 흥분하며 말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투기, 사기, 혹은 금융적 광기로 단정하기도 합니다. <b>그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b>재정과 요리, 이 두 가지는 제 큰 약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시리즈에 감히 도전하는 것은 당연히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신학적이고 기독교 세계관적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p><p>먼저 혼란스러운 것들을 몇 가지 언급하겠습니다.</p><p><b>블록체인은 무엇이고 비트코인은 도대체 무엇입니까?</b> 돈입니까? 디지털 금입니까? 투자 자산입니까? 중앙은행 체제에 대한 반항입니까?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어떻게 다릅니까? 사람들은 왜 스마트 계약을 말합니까? XRP는 무엇이며, 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국제 결제 시스템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까? 암호화폐 거래소란 무엇입니까? 디지털 자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b>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져도 되는 것입니까? </b>이 시리즈를 마칠 때쯤에는 적어도 이것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도를 기대해도 좋겠습니다.</p><p>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시리즈는 절대로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이 시리즈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를 장려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상황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을 전제로 쓰는 글도 아닙니다. 도박이 아닌 투자에 대하여 성경적 윤리 도덕적인 부분을 조금 다루지만 전반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칼빈주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자로서, 그리고 삶을 함께 고민하는 라이프 코치로서 이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대한 질문을 정직하게 하며 크리스천 신학과 세계관을 가지고 데이터와 정보를 이해하는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p><p>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p><blockquote>“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태복음 10:16, 개역개정)</blockquote><p>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어떤 어려움을 예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출발점을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순진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단지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눈을 감는 건 안 됩니다. 동시에 당연히 우리는 세속적이거나 탐욕스럽거나 불안에 사로잡히거나 무모해서도 안 됩니다. 지혜가 순결함을 잃으면 조작과 계산이 됩니다. 순결함이 지혜를 잃으면 순진함과 무지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둘 다로 부르십니다. 지혜롭되 순결하게, 깨어 있되 거룩하게, 세상을 이해하되 세상에 속하지 않게 부르십니다.</p><p>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질문해야 합니다. 새로운 기술과 금융 시스템이 어떤 도구인지, 어떤 가능성을 지니는지, 어떤 위험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유혹을 불러일으키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무엇이 실제인지, 무엇이 과장되었는지, 무엇이 유익한지, 무엇이 위험한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돈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깊은 영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p><p>성경은 부, 청지기 정신, 빚, 위험, 정의, 자족, 탐욕, 관대함, 신뢰에 대해 많이 말합니다. 재물은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드러냅니다. 투자는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드러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실제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오래된 우상을 새로운 형태로 깨울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안전과 안식을 찾으려는 유혹을 받아 왔습니다. 그것이 땅이든, 금이든, 은행 계좌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디지털 자산이든, 영적인 질문은 여전히 같습니다.</p><p>나는 어디에 나의 신뢰를 두고 있는가?</p><blockquote>&quot;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quot; (시편 121:1-2)</blockquote><p>그래서 이 시리즈는 두 가지 일을 함께하려고 합니다.</p><p><b>첫째, 블록체인 경제와 관련된 기본 용어와 작동 방식을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고 합니다. </b>비트코인, 암호화폐, 이더리움, XRP, 거래소, 지갑, 스테이블코인, ETF 같은 개념들을 차근차근 살펴볼 것입니다.</p><p><b>둘째, 더 중요하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 앞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묻고자 합니다.</b> 그리스도인은 투자해도 됩니까? 투자한다면 어떤 태도로 해야 합니까? 지혜로운 청지기 정신과 탐욕은 어떻게 구별됩니까?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은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금융적 불확실성과 투기적 열풍 속에서도 어떻게 자족과 관대함을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지식을 사용하되, 그 지식과 돈의 가능성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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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author>Jubilee Christian Life Coach</itune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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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09 May 2026 17: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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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벧엘로 돌아가는 길 (창세기 35장)</itunes:title>
    <title>벧엘로 돌아가는 길 (창세기 35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창세기 35장은 돌아옴과 정결함, 예배와 슬픔이 함께 담긴 장입니다. 창세기 34장의 어둠과 혼란 이후, 하나님께서 먼저 그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외롭고 두려운 도망자였을 때 처음 만나 주셨던 그 자리로 그를 다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다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창 35:1).  벧엘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에서를 피해 도망치던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누웠던 곳,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 자리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곳이었습니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야곱은 재산도 얻었고, 결혼도 했고, 자녀들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갈등과 타협, 두려움과 깊은 가정의 깨어짐도 경험했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다시 벧엘로 부르십니다.  그런데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창세기 35장은 돌아옴과 정결함, 예배와 슬픔이 함께 담긴 장입니다.<br/>창세기 34장의 어둠과 혼란 이후, 하나님께서 먼저 그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외롭고 두려운 도망자였을 때 처음 만나 주셨던 그 자리로 그를 다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다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창 35:1).<br/><br/>벧엘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에서를 피해 도망치던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누웠던 곳,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 자리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곳이었습니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야곱은 재산도 얻었고, 결혼도 했고, 자녀들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갈등과 타협, 두려움과 깊은 가정의 깨어짐도 경험했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다시 벧엘로 부르십니다.<br/><br/>그런데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창 35:2).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우상은 집 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가정 안에 있었습니다. 사실 그 우상들은 그들과 함께 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느새 그 우상들은 가족의 짐처럼 함께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br/><br/>우상숭배는 종종 이렇게 작동합니다. 언제나 극적이거나 종교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우리의 일상 속에 조용히 따라옵니다. 우상은 무엇이 되었든지 나에게 삶의 목적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은 나에게 힘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오래된 습관, 숨겨진 두려움, 잘못된 의지, 가족 안에 반복되는 패턴,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한 타협들. 우리가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것들이 믿음의 여정 속에서도 계속 우리와 함께할 수 있습니다.<br/><br/>야곱은 그 이방 신상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습니다(창 35:4). 조용하지만 매우 강력한 행동입니다. 그는 그것들과 협상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설명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그냥 묻습니다. 벧엘로 돌아가는 길에는, 새롭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는, 함께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br/><br/>야곱은 벧엘에 도착해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고 부릅니다. 곧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창 35:7). 그때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다시 확인해 주셨습니다.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창 35:10). 하나님은 이미 브니엘에서 야곱에게 이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여기서 다시 그 이름을 확인해 주십니다. 야곱은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돌아봐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정체성을 계속해서 깨닫고 받아들여야 합니다<br/><br/>창세기 35장에서는 드보라와 라헬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삭도 죽습니다. 르우벤은 심각한 죄를 범합니다. 한 장 안에서 야곱은 예배와 언약의 갱신, 출산과 배신, 슬픔과 장례를 모두 겪습니다. 성경은 영적 회복에 대한 기록을 아주 정직하게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해서 인생이 고통 없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벧엘의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슬픔이 하나님이라는 현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라헬은 죽지만 베냐민은 태어납니다. 이삭은 장사되지만 언약은 살아 있습니다. 르우벤은 죄를 범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여전히 깊이 깨어져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br/><br/>창세기 35장은 언약 백성의 갖은 실패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다시 자신에게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너무 오래 지내 온 우상들을 드러내십니다. 우상이란 우리 삶에서 “이것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모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보다 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없습니다. 예수가 아닌 다른 것들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창세기 35장은 돌아옴과 정결함, 예배와 슬픔이 함께 담긴 장입니다.<br/>창세기 34장의 어둠과 혼란 이후, 하나님께서 먼저 그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외롭고 두려운 도망자였을 때 처음 만나 주셨던 그 자리로 그를 다시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다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창 35:1).<br/><br/>벧엘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에서를 피해 도망치던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누웠던 곳,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 자리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곳이었습니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야곱은 재산도 얻었고, 결혼도 했고, 자녀들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갈등과 타협, 두려움과 깊은 가정의 깨어짐도 경험했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다시 벧엘로 부르십니다.<br/><br/>그런데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창 35:2).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우상은 집 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가정 안에 있었습니다. 사실 그 우상들은 그들과 함께 길을 걸어왔습니다. 어느새 그 우상들은 가족의 짐처럼 함께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br/><br/>우상숭배는 종종 이렇게 작동합니다. 언제나 극적이거나 종교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우리의 일상 속에 조용히 따라옵니다. 우상은 무엇이 되었든지 나에게 삶의 목적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은 나에게 힘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오래된 습관, 숨겨진 두려움, 잘못된 의지, 가족 안에 반복되는 패턴,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한 타협들. 우리가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것들이 믿음의 여정 속에서도 계속 우리와 함께할 수 있습니다.<br/><br/>야곱은 그 이방 신상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습니다(창 35:4). 조용하지만 매우 강력한 행동입니다. 그는 그것들과 협상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설명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그냥 묻습니다. 벧엘로 돌아가는 길에는, 새롭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는, 함께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br/><br/>야곱은 벧엘에 도착해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고 부릅니다. 곧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창 35:7). 그때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다시 확인해 주셨습니다.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창 35:10). 하나님은 이미 브니엘에서 야곱에게 이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여기서 다시 그 이름을 확인해 주십니다. 야곱은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돌아봐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정체성을 계속해서 깨닫고 받아들여야 합니다<br/><br/>창세기 35장에서는 드보라와 라헬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삭도 죽습니다. 르우벤은 심각한 죄를 범합니다. 한 장 안에서 야곱은 예배와 언약의 갱신, 출산과 배신, 슬픔과 장례를 모두 겪습니다. 성경은 영적 회복에 대한 기록을 아주 정직하게 말씀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해서 인생이 고통 없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벧엘의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슬픔이 하나님이라는 현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라헬은 죽지만 베냐민은 태어납니다. 이삭은 장사되지만 언약은 살아 있습니다. 르우벤은 죄를 범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여전히 깊이 깨어져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br/><br/>창세기 35장은 언약 백성의 갖은 실패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다시 자신에게로 부르십니다. 우리가 너무 오래 지내 온 우상들을 드러내십니다. 우상이란 우리 삶에서 “이것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모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보다 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없습니다. 예수가 아닌 다른 것들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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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5월 첫 주 말씀 묵상 (골로새서 1장 15-17절 말씀)</itunes:title>
    <title>5월 첫 주 말씀 묵상 (골로새서 1장 15-17절 말씀)</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한 청소년이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하나님과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저는 그 청소년의 부모가 얼마나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얼마나 마음 졸이며 애쓰고 노력해 왔는지 압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 아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예배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다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며 부모가 원하는 신앙생활을 시간 낭비라고  그렇게라도 말해 주니 오히려 저는 그 아이가 그나마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여전히 부모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격려를 받습니다. 이것은 절대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의 부모는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한 청소년이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하나님과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저는 그 청소년의 부모가 얼마나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얼마나 마음 졸이며 애쓰고 노력해 왔는지 압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 아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예배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다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며 부모가 원하는 신앙생활을 시간 낭비라고 </p><p>그렇게라도 말해 주니 오히려 저는 그 아이가 그나마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여전히 부모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격려를 받습니다. 이것은 절대 작은 일이 아닙니다. </p><p><br/></p><p>그의 부모는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p><p>&quot;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quot; (1:9).</p><p><br/></p><p>혹시 여러분의 삶에도 이 청소년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p><p>어쩌면 여러분의 배우자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바로 여러분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고, 기독교가 정말 진리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여러분도 이 기도를 매일 드리시길 바랍니다.</p><p>&quot;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옵소서.”</p><p><br/></p><p>지난 몇천 년 동안 성도들은 어떻게 기독교가 참된 진리인지 알 수 있었을까요? 세상에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기독교만이 참된 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p><p><br/></p><p>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p><p><br/></p><p>예수님은 자신이 여러 스승 중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진리를 가르치는 분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p><p>&quot;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quot; (요한복음 14:6).</p><p><br/></p><p>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길을 보여 주는 분이 아니라 길 그 자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잘 따라가면 언젠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p><p><br/></p><p>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이 참으로 자신이 말씀하신 그분이심을 알 수 있을까요?</p><p>&quot;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p><p>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p><p>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quot; (1:15-17)</p><p><br/></p><p>요즘 여러분의 삶은 얼마나 “함께 서” 있습니까? 혹시 집중이 어렵고, 수많은 생각으로 마음이 흩어지고, 감정은 출렁이는 파도처럼 불안하고, 해야 하는 일은 버겁게 느껴지고,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는 언젠가부터 조금씩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p><p><br/></p><p>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p><p>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삶에 균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우주의 조화를 노래하듯 우리의 삶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조화로운 삶이 되어 가기 시작합니다.</p><p><br/></p><p>하지만 우리는 죄로 물든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무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세상의 권세들로 말미암아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사회, 학교, 이웃, 친구, 그리고 끔찍하지만 하다못해 기독교 종교를 통해서도 섬김이 아닌 성공을, 그리고 성화가 아닌 성장이 마치 진리인양 강요당하고 있었습니다.</p><p><br/></p><p>앞서 말한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균형과 조화가 무너진 삶을 다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오직 예수가 아닌 다른 것들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스스로를 속이던 우리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p><p><br/></p><p>오직 예수만이 삶의 조화이자 균형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한 청소년이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하나님과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저는 그 청소년의 부모가 얼마나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얼마나 마음 졸이며 애쓰고 노력해 왔는지 압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 아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예배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다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며 부모가 원하는 신앙생활을 시간 낭비라고 </p><p>그렇게라도 말해 주니 오히려 저는 그 아이가 그나마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여전히 부모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격려를 받습니다. 이것은 절대 작은 일이 아닙니다. </p><p><br/></p><p>그의 부모는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p><p>&quot;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quot; (1:9).</p><p><br/></p><p>혹시 여러분의 삶에도 이 청소년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p><p>어쩌면 여러분의 배우자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바로 여러분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고, 기독교가 정말 진리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여러분도 이 기도를 매일 드리시길 바랍니다.</p><p>&quot;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옵소서.”</p><p><br/></p><p>지난 몇천 년 동안 성도들은 어떻게 기독교가 참된 진리인지 알 수 있었을까요? 세상에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기독교만이 참된 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p><p><br/></p><p>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p><p><br/></p><p>예수님은 자신이 여러 스승 중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진리를 가르치는 분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p><p>&quot;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quot; (요한복음 14:6).</p><p><br/></p><p>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길을 보여 주는 분이 아니라 길 그 자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잘 따라가면 언젠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p><p><br/></p><p>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이 참으로 자신이 말씀하신 그분이심을 알 수 있을까요?</p><p>&quot;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p><p>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p><p>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quot; (1:15-17)</p><p><br/></p><p>요즘 여러분의 삶은 얼마나 “함께 서” 있습니까? 혹시 집중이 어렵고, 수많은 생각으로 마음이 흩어지고, 감정은 출렁이는 파도처럼 불안하고, 해야 하는 일은 버겁게 느껴지고,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는 언젠가부터 조금씩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p><p><br/></p><p>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p><p>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삶에 균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우주의 조화를 노래하듯 우리의 삶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조화로운 삶이 되어 가기 시작합니다.</p><p><br/></p><p>하지만 우리는 죄로 물든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무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세상의 권세들로 말미암아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사회, 학교, 이웃, 친구, 그리고 끔찍하지만 하다못해 기독교 종교를 통해서도 섬김이 아닌 성공을, 그리고 성화가 아닌 성장이 마치 진리인양 강요당하고 있었습니다.</p><p><br/></p><p>앞서 말한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균형과 조화가 무너진 삶을 다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오직 예수가 아닌 다른 것들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스스로를 속이던 우리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p><p><br/></p><p>오직 예수만이 삶의 조화이자 균형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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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브니엘의 아침 | Biblical Narrative Praise Project 2026</itunes:title>
    <title>브니엘의 아침 | Biblical Narrative Praise Project 2026</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브니엘의 아침   홀로 남은 이 밤 끝나지 않는 씨름 무너진 나의 힘 자비를 간구 합니다   나를 축복하소서 주를 놓지 않으리 나를 축복하소서 주를 놓지 않으리 이 밤이 지나가기 전에 내 영혼 주의 이름 부르네   내 모든 힘 아침안개 같아라 나의 발걸음 이제 고르지 못하네 그러나 주 얼굴 뵙는 이 순간 새로운 피조물이라 내 이름 이스라엘!   이제야 깨닫네 하나님 축복을 내가 얻으려 하나 예수님 그분이 이미 나의 축복임을!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를 도와주소서. 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를 도와주소서. 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나를 축복하소서 주를 놓지 않으리 나를 축복하소서 주를 놓지 않으리 이 밤이 지나가기 전에 내 영혼 주의 이름 부르네   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 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 나의 발걸음 고르지 못하나 이제는 알았네 이제는 나 주와 함께 영원히 나 주와 함께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브니엘의 아침</p><p><br/></p><p>홀로 남은 이 밤</p><p>끝나지 않는 씨름</p><p>무너진 나의 힘</p><p>자비를 간구 합니다</p><p><br/></p><p>나를 축복하소서</p><p>주를 놓지 않으리</p><p>나를 축복하소서</p><p>주를 놓지 않으리</p><p>이 밤이 지나가기 전에</p><p>내 영혼 주의 이름 부르네</p><p><br/></p><p>내 모든 힘 아침안개 같아라</p><p>나의 발걸음 이제 고르지 못하네</p><p>그러나 주 얼굴 뵙는 이 순간</p><p>새로운 피조물이라 내 이름 이스라엘!</p><p><br/></p><p>이제야 깨닫네</p><p>하나님 축복을 내가 얻으려 하나</p><p>예수님 그분이 이미 나의 축복임을!</p><p><br/></p><p>주여 내가 믿나이다!</p><p>나를 도와주소서.</p><p>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p><p>주여 내가 믿나이다!</p><p>나를 도와주소서.</p><p>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p><p><br/></p><p>나를 축복하소서</p><p>주를 놓지 않으리</p><p>나를 축복하소서</p><p>주를 놓지 않으리</p><p>이 밤이 지나가기 전에</p><p>내 영혼 주의 이름 부르네</p><p><br/></p><p>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p><p>나의 발걸음 고르지 못하나 이제는 알았네</p><p>이제는 나 주와 함께</p><p>영원히 나 주와 함께 걷네</p><p><br/></p><p>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p><p>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br/></p><p>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p><p>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브니엘의 아침</p><p><br/></p><p>홀로 남은 이 밤</p><p>끝나지 않는 씨름</p><p>무너진 나의 힘</p><p>자비를 간구 합니다</p><p><br/></p><p>나를 축복하소서</p><p>주를 놓지 않으리</p><p>나를 축복하소서</p><p>주를 놓지 않으리</p><p>이 밤이 지나가기 전에</p><p>내 영혼 주의 이름 부르네</p><p><br/></p><p>내 모든 힘 아침안개 같아라</p><p>나의 발걸음 이제 고르지 못하네</p><p>그러나 주 얼굴 뵙는 이 순간</p><p>새로운 피조물이라 내 이름 이스라엘!</p><p><br/></p><p>이제야 깨닫네</p><p>하나님 축복을 내가 얻으려 하나</p><p>예수님 그분이 이미 나의 축복임을!</p><p><br/></p><p>주여 내가 믿나이다!</p><p>나를 도와주소서.</p><p>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p><p>주여 내가 믿나이다!</p><p>나를 도와주소서.</p><p>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p><p><br/></p><p>나를 축복하소서</p><p>주를 놓지 않으리</p><p>나를 축복하소서</p><p>주를 놓지 않으리</p><p>이 밤이 지나가기 전에</p><p>내 영혼 주의 이름 부르네</p><p><br/></p><p>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p><p>나의 발걸음 고르지 못하나 이제는 알았네</p><p>이제는 나 주와 함께</p><p>영원히 나 주와 함께 걷네</p><p><br/></p><p>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p><p>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br/></p><p>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p><p>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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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1 May 2026 10: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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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32장 브니엘의 아침</itunes:title>
    <title>창세기 32장 브니엘의 아침</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6)  홀로 남겨진 얍복 강가에서, 야곱의 씨름은 처절한 고독과 절망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두운 밤이 지나고 밝아온 브니엘의 아침은 이전과 전혀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바탕으로 노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전통 찬송가나 현대 찬양에 이미 만들어진 노래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사를 써 봤는데요. 야곱의 그 긴 밤의 상황을 마음에 그려보았습니다.   노래는 앞부분에서는 밤새 힘을 다 소멸한 야곱의 낮은 속삭임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한 승리의 나팔 소리로 끝을 맺습니다. 브니엘의 아침은 부활의 아침이죠.  우리 역시 야곱처럼 인생의 씨름 중에 우리의 "환도뼈"가 부서지는 아픔을 겪습니다. 신앙생활은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것이 어쩌면 너무...]]></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quot;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quot; (창 32:26)<br/><br/>홀로 남겨진 얍복 강가에서, 야곱의 씨름은 처절한 고독과 절망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두운 밤이 지나고 밝아온 브니엘의 아침은 이전과 전혀 다른 시작이었습니다.<br/><br/>오늘 본문을 바탕으로 노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전통 찬송가나 현대 찬양에 이미 만들어진 노래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사를 써 봤는데요. 야곱의 그 긴 밤의 상황을 마음에 그려보았습니다. <br/><br/>노래는 앞부분에서는 밤새 힘을 다 소멸한 야곱의 낮은 속삭임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한 승리의 나팔 소리로 끝을 맺습니다. 브니엘의 아침은 부활의 아침이죠.<br/><br/>우리 역시 야곱처럼 인생의 씨름 중에 우리의 &quot;환도뼈&quot;가 부서지는 아픔을 겪습니다. 신앙생활은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 망가진 세상에서 어떻게 제대로 걸을 수 있겠습니까? 신앙인의 발걸음은 고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면 우리의 자만이 부서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쓴 왕관이 벗겨질 때 얻는 그 &quot;상처&quot;는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영광의 흔적입니다.<br/><br/>오늘 이 찬양을 들으시며, 어두운 밤을 지나 우리를 위해 예비된 &apos;브니엘의 아침&apos;을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이름은 이제 &apos;속이는 자&apos;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이긴 자 &apos;이스라엘&apos;입니다. 할렐루야!<br/><br/><br/>브니엘의 아침<br/><br/>홀로 남은 이 밤<br/>끝나지 않는 씨름<br/>무너진 나의 힘<br/>자비를 간구 합니다<br/><br/>나를 축복하소서<br/>주를 놓지 않으리<br/>나를 축복하소서<br/>주를 놓지 않으리<br/>이 밤이 지나가기 전에<br/>내 영혼 주의 이름 부르네<br/><br/>내 모든 힘 아침안개 같아라<br/>나의 발걸음 이제 고르지 못하네<br/>그러나 주 얼굴 뵙는 이 순간<br/>새로운 피조물이라 내 이름 이스라엘!<br/><br/>(Gently building, but keeping it intimate)<br/>이제야 깨닫네 <br/>하나님 축복을 내가 얻으려 하나<br/>예수님 그분이 이미 나의 축복임을!<br/><br/>주여 내가 믿나이다!<br/>나를 도와주소서.<br/>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br/>주여 내가 믿나이다!<br/>나를 도와주소서.<br/>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br/><br/>나를 축복하소서<br/>주를 놓지 않으리<br/>나를 축복하소서<br/>주를 놓지 않으리<br/>이 밤이 지나가기 전에<br/>내 영혼 주의 이름 부르네<br/><br/>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br/>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br/>나의 발걸음 고르지 못하나 이제는 알았네<br/>이제는 나 주와 함께<br/>영원히 나 주와 함께 걷네<br/><br/>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br/>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br/>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br/><br/>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br/>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br/>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quot;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quot; (창 32:26)<br/><br/>홀로 남겨진 얍복 강가에서, 야곱의 씨름은 처절한 고독과 절망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두운 밤이 지나고 밝아온 브니엘의 아침은 이전과 전혀 다른 시작이었습니다.<br/><br/>오늘 본문을 바탕으로 노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전통 찬송가나 현대 찬양에 이미 만들어진 노래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사를 써 봤는데요. 야곱의 그 긴 밤의 상황을 마음에 그려보았습니다. <br/><br/>노래는 앞부분에서는 밤새 힘을 다 소멸한 야곱의 낮은 속삭임으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한 승리의 나팔 소리로 끝을 맺습니다. 브니엘의 아침은 부활의 아침이죠.<br/><br/>우리 역시 야곱처럼 인생의 씨름 중에 우리의 &quot;환도뼈&quot;가 부서지는 아픔을 겪습니다. 신앙생활은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 망가진 세상에서 어떻게 제대로 걸을 수 있겠습니까? 신앙인의 발걸음은 고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면 우리의 자만이 부서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쓴 왕관이 벗겨질 때 얻는 그 &quot;상처&quot;는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영광의 흔적입니다.<br/><br/>오늘 이 찬양을 들으시며, 어두운 밤을 지나 우리를 위해 예비된 &apos;브니엘의 아침&apos;을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이름은 이제 &apos;속이는 자&apos;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이긴 자 &apos;이스라엘&apos;입니다. 할렐루야!<br/><br/><br/>브니엘의 아침<br/><br/>홀로 남은 이 밤<br/>끝나지 않는 씨름<br/>무너진 나의 힘<br/>자비를 간구 합니다<br/><br/>나를 축복하소서<br/>주를 놓지 않으리<br/>나를 축복하소서<br/>주를 놓지 않으리<br/>이 밤이 지나가기 전에<br/>내 영혼 주의 이름 부르네<br/><br/>내 모든 힘 아침안개 같아라<br/>나의 발걸음 이제 고르지 못하네<br/>그러나 주 얼굴 뵙는 이 순간<br/>새로운 피조물이라 내 이름 이스라엘!<br/><br/>(Gently building, but keeping it intimate)<br/>이제야 깨닫네 <br/>하나님 축복을 내가 얻으려 하나<br/>예수님 그분이 이미 나의 축복임을!<br/><br/>주여 내가 믿나이다!<br/>나를 도와주소서.<br/>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br/>주여 내가 믿나이다!<br/>나를 도와주소서.<br/>나의 믿음 없음을 주께서 아시나이다.<br/><br/>나를 축복하소서<br/>주를 놓지 않으리<br/>나를 축복하소서<br/>주를 놓지 않으리<br/>이 밤이 지나가기 전에<br/>내 영혼 주의 이름 부르네<br/><br/>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br/>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br/>나의 발걸음 고르지 못하나 이제는 알았네<br/>이제는 나 주와 함께<br/>영원히 나 주와 함께 걷네<br/><br/>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br/>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br/>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br/><br/>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br/>내 이름 이스라엘, 주의 영광 보았네<br/>브니엘의 아침이 밝아오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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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30 Apr 2026 13: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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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32장 1-21절</itune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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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야곱의 여정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섭니다. 라반의 집을 떠난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한 언약의 걸음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두려움이 따릅니다. 31:36–55는 야곱의 성화된 모습을 기록합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속이는 자”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그래서 라반의 부당함을 마주하며, 지난 20년의 수고와 억울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라반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의 과거, 즉 라반과의 삶을 정리하시는 장면입니다. 이제 하란의 삶은 끝났습니다. 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앞으로 이끄십니다. 32장은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야곱은 그곳을 마하나임이라 부릅니다. 직역하면 “두 진영”입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와 지상의 나...]]></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야곱의 여정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섭니다. 라반의 집을 떠난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한 언약의 걸음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두려움이 따릅니다. 31:36–55는 야곱의 성화된 모습을 기록합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속이는 자”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그래서 라반의 부당함을 마주하며, 지난 20년의 수고와 억울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라반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의 과거, 즉 라반과의 삶을 정리하시는 장면입니다. 이제 하란의 삶은 끝났습니다. 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앞으로 이끄십니다. 32장은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야곱은 그곳을 마하나임이라 부릅니다. 직역하면 “두 진영”입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와 지상의 나라가 공존하는 것을 서서히 깨닫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동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야곱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곧 장정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본문은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두 진으로 나눕니다.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았지만, 여전히 두려움에 떱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상황이 주는 불안이 함께 존재합니다. 감사하게도 성경은 이것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불안 그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참된 믿음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기도합니다. &quot;나는 주께서 내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quot; (10절). 성경이 기록하는 야곱은 이제 서서히 자신의 삶을 은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붙잡고 쟁취해야 얻는다고 생각했던 축복이 이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선물임을 더욱 깨달아 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진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아 그는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매달립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철저히 준비합니다. 선물과 소유를 나누어 보냅니다. 이 모습은 믿음이 없는 모습이라기보다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다듬어진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적인 믿음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정리하시고, 약속을 향해 나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후가 아니라, 바로 그 한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야곱의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만, 당장 눈앞의 현실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하지만 동시에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면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지만 불안함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여기에서 더욱 빛납니다. 우리의 믿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야곱은 두려움 속에서 약속을 붙들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으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실하심 위에 세워집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에서”를 마주하고 있을까요?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문제를 바로 없애 주시기보다, 우리를 더 깊은 의지로 이끄십니다. 우리는 지금 내 삶을 내가 만든 결과로 보고 있나요, 아니면 은혜로 보고 있을까요?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시기 때문에 오늘도 필그림으로서 신앙생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야곱의 여정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섭니다. 라반의 집을 떠난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한 언약의 걸음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두려움이 따릅니다. 31:36–55는 야곱의 성화된 모습을 기록합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속이는 자”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그래서 라반의 부당함을 마주하며, 지난 20년의 수고와 억울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라반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의 과거, 즉 라반과의 삶을 정리하시는 장면입니다. 이제 하란의 삶은 끝났습니다. 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앞으로 이끄십니다. 32장은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야곱은 그곳을 마하나임이라 부릅니다. 직역하면 “두 진영”입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와 지상의 나라가 공존하는 것을 서서히 깨닫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동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야곱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곧 장정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본문은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두 진으로 나눕니다.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보았지만, 여전히 두려움에 떱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상황이 주는 불안이 함께 존재합니다. 감사하게도 성경은 이것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불안 그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참된 믿음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기도합니다. &quot;나는 주께서 내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quot; (10절). 성경이 기록하는 야곱은 이제 서서히 자신의 삶을 은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예전에는 붙잡고 쟁취해야 얻는다고 생각했던 축복이 이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선물임을 더욱 깨달아 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진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아 그는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매달립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철저히 준비합니다. 선물과 소유를 나누어 보냅니다. 이 모습은 믿음이 없는 모습이라기보다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다듬어진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적인 믿음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정리하시고, 약속을 향해 나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후가 아니라, 바로 그 한가운데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야곱의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만, 당장 눈앞의 현실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를 하지만 동시에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면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지만 불안함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여기에서 더욱 빛납니다. 우리의 믿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야곱은 두려움 속에서 약속을 붙들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순종으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실하심 위에 세워집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에서”를 마주하고 있을까요?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문제를 바로 없애 주시기보다, 우리를 더 깊은 의지로 이끄십니다. 우리는 지금 내 삶을 내가 만든 결과로 보고 있나요, 아니면 은혜로 보고 있을까요?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시기 때문에 오늘도 필그림으로서 신앙생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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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야곱은 이제 라반의 집을 떠나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네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31:3)고 말씀하신 이후, 그는 아내들과 자녀들, 그리고 모든 소유를 이끌고 길을 나섭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걸음입니다. 순례자로서 따라야 할 삶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라반의 집을 떠나는 야곱의 내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야곱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향을 향해 가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순종하는 야곱의 마음 안에는 다분히 그리고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얽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그가 양털을 깎으러 간 사이를 틈타 도망치듯 떠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도 여전히 사람이 두렵고 상황이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우리도 여전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야곱은 이제 라반의 집을 떠나 본향으로 돌아갑니다.<br/>하나님께서 “네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31:3)고 말씀하신 이후, 그는 아내들과 자녀들, 그리고 모든 소유를 이끌고 길을 나섭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걸음입니다. 순례자로서 따라야 할 삶입니다.<br/><br/>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라반의 집을 떠나는 야곱의 내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야곱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향을 향해 가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순종하는 야곱의 마음 안에는 다분히 그리고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얽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그가 양털을 깎으러 간 사이를 틈타 도망치듯 떠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도 여전히 사람이 두렵고 상황이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br/><br/>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우리도 여전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나아가지만, 여전히 사람을 의식하고 상황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단하고 움직이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불안하고, 마치 결과를 내가 책임져야 할 것처럼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br/><br/>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의 헛된 “신”들을 의지하려는 모습은 라반과 라헬의 삶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 곧 집안의 신상들을 훔칩니다. 라헬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심을 보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방식과 눈에 보이는 보호막을 떨치지 못합니다. 사실 이것은 라반과 라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은 아니더라도, 경제적 안정, 사회적 인정, 세상적 성공과 같은 것들을 의지하며 그것을 우리의 자랑이자 보호막으로 삼으려 합니다.<br/><br/>이렇게 성경은 우리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지만 여전히 두려움 속에 있고, 라헬은 떠나면서도 옛 의지의 대상을 붙들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르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다른 것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합니다.<br/><br/>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는 눈에 띄는 기적이 나타나지 않지만, 야곱의 여정은 막히지 않고, 라반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며,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결국 예수님께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순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우리의 의로움으로 여기시며 언약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복음, 즉 기쁜 소식입니다.<br/><br/>오늘도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합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더욱 분명히 보게 됩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다분히 부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를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도 함께 붙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불신이 섞인 온전하지 못한 순종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보십니다.<br/><br/>야곱과 라헬, 그리고 우리 모두의 순종은 불안하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부분적이며 상황에 따라 쉽게 무너지는 믿음을 가지고, 흠이 많은 순종이 우리의 최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동시에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다른 것을 붙들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할렐루야!<br/><br/>묵상 질문<br/>-분명히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통제하려는 삶의 영역은 어디입니까?<br/>-내가 의지하는 삶의 우상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br/>-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더 의지하는 이 습관에서, 나는 어떻게 벗어나고 있습니까?</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야곱은 이제 라반의 집을 떠나 본향으로 돌아갑니다.<br/>하나님께서 “네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31:3)고 말씀하신 이후, 그는 아내들과 자녀들, 그리고 모든 소유를 이끌고 길을 나섭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걸음입니다. 순례자로서 따라야 할 삶입니다.<br/><br/>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라반의 집을 떠나는 야곱의 내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야곱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향을 향해 가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순종하는 야곱의 마음 안에는 다분히 그리고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얽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그가 양털을 깎으러 간 사이를 틈타 도망치듯 떠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도 여전히 사람이 두렵고 상황이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br/><br/>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우리도 여전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나아가지만, 여전히 사람을 의식하고 상황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단하고 움직이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불안하고, 마치 결과를 내가 책임져야 할 것처럼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br/><br/>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의 헛된 “신”들을 의지하려는 모습은 라반과 라헬의 삶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 곧 집안의 신상들을 훔칩니다. 라헬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심을 보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방식과 눈에 보이는 보호막을 떨치지 못합니다. 사실 이것은 라반과 라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은 아니더라도, 경제적 안정, 사회적 인정, 세상적 성공과 같은 것들을 의지하며 그것을 우리의 자랑이자 보호막으로 삼으려 합니다.<br/><br/>이렇게 성경은 우리의 내면을 드러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지만 여전히 두려움 속에 있고, 라헬은 떠나면서도 옛 의지의 대상을 붙들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르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다른 것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합니다.<br/><br/>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는 눈에 띄는 기적이 나타나지 않지만, 야곱의 여정은 막히지 않고, 라반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며,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결국 예수님께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순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우리의 의로움으로 여기시며 언약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복음, 즉 기쁜 소식입니다.<br/><br/>오늘도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합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더욱 분명히 보게 됩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다분히 부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를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도 함께 붙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불신이 섞인 온전하지 못한 순종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보십니다.<br/><br/>야곱과 라헬, 그리고 우리 모두의 순종은 불안하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부분적이며 상황에 따라 쉽게 무너지는 믿음을 가지고, 흠이 많은 순종이 우리의 최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동시에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다른 것을 붙들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할렐루야!<br/><br/>묵상 질문<br/>-분명히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통제하려는 삶의 영역은 어디입니까?<br/>-내가 의지하는 삶의 우상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br/>-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더 의지하는 이 습관에서, 나는 어떻게 벗어나고 있습니까?</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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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8 Apr 2026 17: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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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창세기 31장 1-16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야곱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라반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에서를 피해 도망쳐 온 절박한 여정으로 시작된 삶은 이제 훨씬 풍요롭습니다. 아내들과 자녀들, 가축과 재산까지—겉으로 보기에 그는 무에서 유를 이루어낸 사람입니다. 누구나 이제 그 수고의 열매를 누려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향해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징조는 이미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먼저 라반의 아들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야곱을 향한 시선에는 점점 적대감이 담깁니다. 라반의 얼굴 역시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환대와 호의는 사라지고, 어딘가 냉랭한 기운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곱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벧엘 이후 오랫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말씀하십니다. 3절,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야곱의 떠남은 단순한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야곱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라반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에서를 피해 도망쳐 온 절박한 여정으로 시작된 삶은 이제 훨씬 풍요롭습니다. 아내들과 자녀들, 가축과 재산까지—겉으로 보기에 그는 무에서 유를 이루어낸 사람입니다. 누구나 이제 그 수고의 열매를 누려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향해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징조는 이미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습니다.<br/>먼저 라반의 아들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야곱을 향한 시선에는 점점 적대감이 담깁니다. 라반의 얼굴 역시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환대와 호의는 사라지고, 어딘가 냉랭한 기운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곱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벧엘 이후 오랫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말씀하십니다.<br/>3절,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br/><br/>야곱의 떠남은 단순한 현실 판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분위기가 나빠졌고 기회도 줄어들었으니,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상황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 모든 상황은 우연한 현명한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상황에 반응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황을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라반의 아들들과의 갈등, 라반의 얼굴 변화, 점점 깊어지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 모든 것은 야곱을 붙잡고 있던 자리를 놓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곳은 애초에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었습니다.<br/><br/>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한때는 분명 삶의 안정을 주던 것들(직장, 관계, 역할)이 어느 순간부터 불안정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려 하고, 상황을 다시 예전처럼 만들려 애씁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따라가야 할 방향이라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종종 현재의 자리를 불편하게 만드셔서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끄십니다.<br/><br/>이 본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야곱이 떠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떠남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그의 방식입니다. 그는 라헬과 레아를 들로 불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제 그는 자신의 삶을 전략이 아니라 신학으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br/>7절, 너희 아버지가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으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br/>9절, 하나님이 이같이 네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br/><br/>야곱은 더 이상 자신의 지혜나 수완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셨고, 하나님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가축이 번성한 것도, 꿈 가운데 보여주신 것도, 모든 과정 뒤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br/><br/>이것은 다른 야곱입니다. 가나안을 떠날 때의 야곱은 자신의 계산과 감각을 신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야곱은 자신의 생존과 번영,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졌음을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르게 읽기 시작하고 있습니다.<br/><br/>이 야곱의 여정은 더 큰 여정을 가리킵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고, 불확실한 길을 지나며, 오래 회피해 왔던 현실을 마주하는 이 길은 완전한 &quot;야곱&quot;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줍니다. 참된 약속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한 가정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늘을 떠나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야곱이 결과를 피하기 위해 떠났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야곱이 자신이 잘못한 형을 피해 도망쳤다면, 그리스도는 자신을 해칠 자들을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야곱이 불확실한 환대를 향해 돌아갔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우리를 아버지의 식탁으로 확실히 맞아들이셨습니다.<br/><br/>야곱이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그 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본향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지체하지 마십시다. 라반의 집을 떠나 본향으로 돌아가십시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야곱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라반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에서를 피해 도망쳐 온 절박한 여정으로 시작된 삶은 이제 훨씬 풍요롭습니다. 아내들과 자녀들, 가축과 재산까지—겉으로 보기에 그는 무에서 유를 이루어낸 사람입니다. 누구나 이제 그 수고의 열매를 누려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향해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징조는 이미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습니다.<br/>먼저 라반의 아들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야곱을 향한 시선에는 점점 적대감이 담깁니다. 라반의 얼굴 역시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환대와 호의는 사라지고, 어딘가 냉랭한 기운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야곱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벧엘 이후 오랫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말씀하십니다.<br/>3절,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br/><br/>야곱의 떠남은 단순한 현실 판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분위기가 나빠졌고 기회도 줄어들었으니,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상황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 모든 상황은 우연한 현명한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상황에 반응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황을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라반의 아들들과의 갈등, 라반의 얼굴 변화, 점점 깊어지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 모든 것은 야곱을 붙잡고 있던 자리를 놓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곳은 애초에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었습니다.<br/><br/>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한때는 분명 삶의 안정을 주던 것들(직장, 관계, 역할)이 어느 순간부터 불안정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려 하고, 상황을 다시 예전처럼 만들려 애씁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따라가야 할 방향이라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종종 현재의 자리를 불편하게 만드셔서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끄십니다.<br/><br/>이 본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야곱이 떠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떠남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그의 방식입니다. 그는 라헬과 레아를 들로 불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제 그는 자신의 삶을 전략이 아니라 신학으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br/>7절, 너희 아버지가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으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br/>9절, 하나님이 이같이 네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br/><br/>야곱은 더 이상 자신의 지혜나 수완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셨고, 하나님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가축이 번성한 것도, 꿈 가운데 보여주신 것도, 모든 과정 뒤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br/><br/>이것은 다른 야곱입니다. 가나안을 떠날 때의 야곱은 자신의 계산과 감각을 신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야곱은 자신의 생존과 번영,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졌음을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르게 읽기 시작하고 있습니다.<br/><br/>이 야곱의 여정은 더 큰 여정을 가리킵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고, 불확실한 길을 지나며, 오래 회피해 왔던 현실을 마주하는 이 길은 완전한 &quot;야곱&quot;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줍니다. 참된 약속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한 가정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늘을 떠나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야곱이 결과를 피하기 위해 떠났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야곱이 자신이 잘못한 형을 피해 도망쳤다면, 그리스도는 자신을 해칠 자들을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야곱이 불확실한 환대를 향해 돌아갔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우리를 아버지의 식탁으로 확실히 맞아들이셨습니다.<br/><br/>야곱이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그 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본향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지체하지 마십시다. 라반의 집을 떠나 본향으로 돌아가십시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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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7 Apr 2026 14: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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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29-30장</itunes:title>
    <title>창세기 29-30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야곱은 자신의 쌍둥이 형으로부터 도망쳐 하란에 도착합니다. 그런 그에게 벧엘에서 하나님은 언약과 축복, 흔들리지 않을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분명한 비전을 받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하란의 삶은 그 약속과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마치 야곱에게 하늘은 오히려 침묵하는 것 같습니다. 벧엘의 꿈 이후 자녀들이 태어나기까지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놀라운 벧엘의 경험과 달리, 그의 삶은 복잡한 가족 현실 속에 묻혀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우리도 종종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아니라 우리가 붙잡은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시기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성경은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난 야곱을 보여줍니다. 그는 첫눈에 반해, 칠 년의 세월이 며칠처럼 느껴질 만큼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야곱은 자신의 쌍둥이 형으로부터 도망쳐 하란에 도착합니다. 그런 그에게 벧엘에서 하나님은 언약과 축복, 흔들리지 않을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분명한 비전을 받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하란의 삶은 그 약속과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p><p><br/></p><p>마치 야곱에게 하늘은 오히려 침묵하는 것 같습니다. 벧엘의 꿈 이후 자녀들이 태어나기까지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놀라운 벧엘의 경험과 달리, 그의 삶은 복잡한 가족 현실 속에 묻혀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우리도 종종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아니라 우리가 붙잡은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시기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p><p><br/></p><p>그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요?</p><p><br/></p><p>성경은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난 야곱을 보여줍니다. 그는 첫눈에 반해, 칠 년의 세월이 며칠처럼 느껴질 만큼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삼촌 라반에게 속아 야곱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와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당시 문화를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야곱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바라보며 그 현실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p><p><br/></p><p>여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p><p><br/></p><p>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이 이제 속임을 당합니다. 다른 사람인 척했던 그가 이제 ‘다른 현실’ 속에 놓입니다. 야곱은 형에게서는 도망쳤지만, 자신에게서는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삶의 방식이 그대로 그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불운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야곱을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입니다.</p><p><br/></p><p>성경은 레아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마음은 라헬에게 있었고, 레아는 원치 않는 결혼 속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p><p><br/></p><p>“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다” (29:31)</p><p><br/></p><p>레아는 사람에게는 외면받았지만, 하나님께는 아닙니다. 그렇게 하늘의 축복으로 아들들을 낳던 중 넷째를 허락받고, 그 이름을 유다라 부릅니다.</p><p><br/></p><p>“이번에는 내가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29:35)</p><p><br/></p><p>먼 훗날 메시아가 바로 이 유다의 혈통에서 태어납니다.</p><p><br/></p><p>한편 라헬은 사랑받지만 임신하지 못합니다. 두 자매 사이에는 시기와 경쟁이 시작됩니다. 합환채가 거래되고, 여종이 대리모가 되며, 자녀는 점수판이 됩니다. 모두가 자신의 방법으로 축복을 만들려 합니다.</p><p><br/></p><p>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p><p><br/></p><p>“하나님이 라헬을 기억하시고… 그의 태를 여셨더라” (30:22)</p><p><br/></p><p>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 가십니다.</p><p><br/></p><p>우리 역시 비전과 현실, 약속과 현재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사실 그 자리는 위험합니다. 우리는 마치 분주함이 신실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로 신을 만족하게 하는 것과 관계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의 본질적 차이를 모르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저 자신들의 윤리와 도덕적 삶을 조금만 더 잘 정리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면 하늘의 축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격을 갖추면 되는 것처럼 살아갑니다.</p><p><br/></p><p>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종교의 삶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늘의 비전이 우리 현재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로 비쳐져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p><p><br/></p><p>메시아는 장자 에서가 아닌 야곱을 통해 오셨습니다. 첫눈에 반할 만한 외모를 가진 라헬이 아니라 레아를 통해 오셨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자를 통해,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 세상은 힘과 조건을 통해 꿈을 이룬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길로 일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군사력도, 재물도 아니라 십자가의 어린양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은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p><p><br/></p><p>묵상 질문</p><p>-나는 지금 ‘합환채’처럼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p><p>-지금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정직하게 빚어 가고 계신 부분은 어디입니까?</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야곱은 자신의 쌍둥이 형으로부터 도망쳐 하란에 도착합니다. 그런 그에게 벧엘에서 하나님은 언약과 축복, 흔들리지 않을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분명한 비전을 받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하란의 삶은 그 약속과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p><p><br/></p><p>마치 야곱에게 하늘은 오히려 침묵하는 것 같습니다. 벧엘의 꿈 이후 자녀들이 태어나기까지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놀라운 벧엘의 경험과 달리, 그의 삶은 복잡한 가족 현실 속에 묻혀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우리도 종종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아니라 우리가 붙잡은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시기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p><p><br/></p><p>그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실까요?</p><p><br/></p><p>성경은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난 야곱을 보여줍니다. 그는 첫눈에 반해, 칠 년의 세월이 며칠처럼 느껴질 만큼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삼촌 라반에게 속아 야곱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와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당시 문화를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야곱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바라보며 그 현실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p><p><br/></p><p>여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p><p><br/></p><p>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이 이제 속임을 당합니다. 다른 사람인 척했던 그가 이제 ‘다른 현실’ 속에 놓입니다. 야곱은 형에게서는 도망쳤지만, 자신에게서는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삶의 방식이 그대로 그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불운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야곱을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입니다.</p><p><br/></p><p>성경은 레아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마음은 라헬에게 있었고, 레아는 원치 않는 결혼 속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p><p><br/></p><p>“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다” (29:31)</p><p><br/></p><p>레아는 사람에게는 외면받았지만, 하나님께는 아닙니다. 그렇게 하늘의 축복으로 아들들을 낳던 중 넷째를 허락받고, 그 이름을 유다라 부릅니다.</p><p><br/></p><p>“이번에는 내가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29:35)</p><p><br/></p><p>먼 훗날 메시아가 바로 이 유다의 혈통에서 태어납니다.</p><p><br/></p><p>한편 라헬은 사랑받지만 임신하지 못합니다. 두 자매 사이에는 시기와 경쟁이 시작됩니다. 합환채가 거래되고, 여종이 대리모가 되며, 자녀는 점수판이 됩니다. 모두가 자신의 방법으로 축복을 만들려 합니다.</p><p><br/></p><p>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p><p><br/></p><p>“하나님이 라헬을 기억하시고… 그의 태를 여셨더라” (30:22)</p><p><br/></p><p>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 가십니다.</p><p><br/></p><p>우리 역시 비전과 현실, 약속과 현재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사실 그 자리는 위험합니다. 우리는 마치 분주함이 신실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로 신을 만족하게 하는 것과 관계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의 본질적 차이를 모르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저 자신들의 윤리와 도덕적 삶을 조금만 더 잘 정리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면 하늘의 축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격을 갖추면 되는 것처럼 살아갑니다.</p><p><br/></p><p>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종교의 삶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늘의 비전이 우리 현재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로 비쳐져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p><p><br/></p><p>메시아는 장자 에서가 아닌 야곱을 통해 오셨습니다. 첫눈에 반할 만한 외모를 가진 라헬이 아니라 레아를 통해 오셨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자를 통해,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 세상은 힘과 조건을 통해 꿈을 이룬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길로 일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군사력도, 재물도 아니라 십자가의 어린양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은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p><p><br/></p><p>묵상 질문</p><p>-나는 지금 ‘합환채’처럼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p><p>-지금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정직하게 빚어 가고 계신 부분은 어디입니까?</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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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5 Apr 2026 16: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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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26장 34-27장 14절</itunes:title>
    <title>창세기 26장 34-27장 14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에서의 이야기는 창세기 26장의 끝부분에서 마치 짧은 덧붙임처럼 보이지만, 이후에 펼쳐질 모든 일의 상황을 사실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에서가 헷 족속 여인 둘을 아내로 맞이한다고 간략하게 기록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26:35). 이것은 단순한 다문화 가정의 갈등을 넘어선 문제입니다. 성경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여기 "에서"는 언약의 가정 안에 그리고 언약이라는 환경에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그리고 성화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이 가까운 곳에 있으나, 그것들에 의해 성화되지 않는 삶입니다.   이 배경을 알면 27장이 훨씬 더 뚜렷하게 이해됩니다. 함께 보십니다.   이삭은 이제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지고, 자신의 삶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에서를 불러 축복을 하려고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에서의 이야기는 창세기 26장의 끝부분에서 마치 짧은 덧붙임처럼 보이지만, 이후에 펼쳐질 모든 일의 상황을 사실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에서가 헷 족속 여인 둘을 아내로 맞이한다고 간략하게 기록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26:35). 이것은 단순한 다문화 가정의 갈등을 넘어선 문제입니다. 성경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여기 &quot;에서&quot;는 언약의 가정 안에 그리고 언약이라는 환경에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그리고 성화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이 가까운 곳에 있으나, 그것들에 의해 성화되지 않는 삶입니다.</p><p><br/></p><p>이 배경을 알면 27장이 훨씬 더 뚜렷하게 이해됩니다. 함께 보십니다.</p><p><br/></p><p>이삭은 이제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지고, 자신의 삶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에서를 불러 축복을 하려고 합니다(27:1–4).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25: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그 약속보다는 자신의 애정과 익숙함,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입니다.</p><p><br/></p><p>리브가는 이 말을 듣고 곧바로 행동합니다. 그녀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개입해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도록 계획을 세웁니다. 그 결단은 빠르고, 대담하며, 심지어 희생적인 모습까지 보입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27:13)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의 뿌리는 신뢰가 아니라 조급함입니다.</p><p><br/></p><p>야곱도 망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속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들킬까 두려워서입니다(27:11–12). 그의 관심은 정직이 아니라 결과입니다.</p><p><br/></p><p>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만 그분을 신뢰하지는 않는 가정을 보게 됩니다.</p><p><br/></p><p>겉으로 드러나는 반역은 없지만, 그 밑에는 미묘한 불신앙이 흐르고 있습니다.</p><p><br/></p><p>이삭은 자신의 선호를 따라 축복하려 합니다.</p><p>리브가는 통제를 통해 약속을 이루려 합니다.</p><p>야곱은 계산하며 그 흐름에 올라탑니다.</p><p><br/></p><p>그리고 이 모습은 낯설기보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p><p><br/></p><p>우리는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결과를 스스로 관리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거절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기다리는 것이 불안하기에, 우리는 조정하고, 밀어붙이고, 상황을 만들어 갑니다.</p><p><br/></p><p>입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p><p><br/></p><p>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본문의 중심은 인간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p><p><br/></p><p>하나님의 약속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흔들릴 때에도, 그 약속은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옳게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끝까지 이루시기 때문입니다.</p><p><br/></p><p>이 사실은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불안정함 아래에 흔들리지 않는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p><p><br/></p><p>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신실하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신실하십니다.</p><p><br/></p><p>묵상 질문</p><p>-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서 우리는 기다리기보다 통제하고, 맡기기보다 관리하려 하고 있습니까?</p><p>-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뿐만 아니라, 그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식까지 신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일까요?</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에서의 이야기는 창세기 26장의 끝부분에서 마치 짧은 덧붙임처럼 보이지만, 이후에 펼쳐질 모든 일의 상황을 사실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에서가 헷 족속 여인 둘을 아내로 맞이한다고 간략하게 기록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26:35). 이것은 단순한 다문화 가정의 갈등을 넘어선 문제입니다. 성경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여기 &quot;에서&quot;는 언약의 가정 안에 그리고 언약이라는 환경에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그리고 성화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이 가까운 곳에 있으나, 그것들에 의해 성화되지 않는 삶입니다.</p><p><br/></p><p>이 배경을 알면 27장이 훨씬 더 뚜렷하게 이해됩니다. 함께 보십니다.</p><p><br/></p><p>이삭은 이제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지고, 자신의 삶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에서를 불러 축복을 하려고 합니다(27:1–4). 그런데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말씀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25: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그 약속보다는 자신의 애정과 익숙함,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입니다.</p><p><br/></p><p>리브가는 이 말을 듣고 곧바로 행동합니다. 그녀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개입해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도록 계획을 세웁니다. 그 결단은 빠르고, 대담하며, 심지어 희생적인 모습까지 보입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27:13)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의 뿌리는 신뢰가 아니라 조급함입니다.</p><p><br/></p><p>야곱도 망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속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들킬까 두려워서입니다(27:11–12). 그의 관심은 정직이 아니라 결과입니다.</p><p><br/></p><p>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만 그분을 신뢰하지는 않는 가정을 보게 됩니다.</p><p><br/></p><p>겉으로 드러나는 반역은 없지만, 그 밑에는 미묘한 불신앙이 흐르고 있습니다.</p><p><br/></p><p>이삭은 자신의 선호를 따라 축복하려 합니다.</p><p>리브가는 통제를 통해 약속을 이루려 합니다.</p><p>야곱은 계산하며 그 흐름에 올라탑니다.</p><p><br/></p><p>그리고 이 모습은 낯설기보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p><p><br/></p><p>우리는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결과를 스스로 관리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거절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기다리는 것이 불안하기에, 우리는 조정하고, 밀어붙이고, 상황을 만들어 갑니다.</p><p><br/></p><p>입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p><p><br/></p><p>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본문의 중심은 인간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p><p><br/></p><p>하나님의 약속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흔들릴 때에도, 그 약속은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옳게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끝까지 이루시기 때문입니다.</p><p><br/></p><p>이 사실은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불안정함 아래에 흔들리지 않는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p><p><br/></p><p>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신실하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신실하십니다.</p><p><br/></p><p>묵상 질문</p><p>-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서 우리는 기다리기보다 통제하고, 맡기기보다 관리하려 하고 있습니까?</p><p>-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뿐만 아니라, 그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식까지 신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일까요?</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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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7 Apr 2026 1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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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26장 12-33절</itunes:title>
    <title>창세기 26장 12-33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창세기 26:12–33은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이 이 죄로 물든, 그래서 망가진 세상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삭은 씨를 뿌려 백 배의 수확을 거둡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해서 우리 삶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삭의 삶은 늘 갈등이 따릅니다. 본문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아브라함의 우물들을 막아버립니다. 이삭이 다시 우물을 파면 또다시 다툼이 일어나고, 자리를 옮겨도 갈등은 계속 따라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 부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22절).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평안함 정도로 생각하지만, 이삭의 삶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창세기 26:12–33은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이 이 죄로 물든, 그래서 망가진 세상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삭은 씨를 뿌려 백 배의 수확을 거둡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해서 우리 삶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br/><br/>이삭의 삶은 늘 갈등이 따릅니다. 본문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아브라함의 우물들을 막아버립니다. 이삭이 다시 우물을 파면 또다시 다툼이 일어나고, 자리를 옮겨도 갈등은 계속 따라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 부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22절).<br/><br/>많은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평안함 정도로 생각하지만, 이삭의 삶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이 세상에서 그리고 이 세상과의 갈등을 없애기보다 오히려 드러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도, 어쩌면 우리 주변에는 &quot;블레셋&quot; 사람들처럼 우리의 &quot;우물&quot;을 막으려 하고 우리를 시기하며 어렵게 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br/><br/>이삭은 자신의 &quot;우물&quot;을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내려놓고 다시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이 아마도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는 것은 땅을 파서 만든 우물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생수,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영생의 생수를 가진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quot;우물&quot;을 내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판 우물에 고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땅끝까지 나누는 생수에 있습니다.<br/><br/>이것이 신앙이자 믿음의 삶입니다. 축복을 누리니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아 따르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주변에는 시기와 질투를 하는 종교인들이 블레셋 사람들처럼, 바리새인처럼 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를 잘 믿어서 갈등이 없는 삶이 아니라 죄로 망가진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다양한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말씀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br/><br/>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다시 나타나십니다. 문제 해결 이후가 아니라, 여전히 긴장 속에 있는 그 자리에서입니다.<br/>“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24절)<br/><br/>이삭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 자리에 장막을 칩니다. 이 말씀은 그가 무엇보다 먼저 예배자로 서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동행을 하는 모습입니다. 수많은 갈등이 빚어낸 이삭의 정체성은 우물이 아니라 생수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br/><br/>오늘 우리도 삶의 “우물들”—안정, 성공, 인정—을 붙들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삭은 언약의 축복이 이 세상의 소유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임재에 있음을 보여줍니다.<br/><br/>이삭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그가 예배자로 설 때, 아비멜렉이 찾아와 평화를 제안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삭에게는 우물과 평화가 깃듭니다. 그러나 우물과 평화를 고집해 예배를 망치게 되면 하나님도 생수도 놓칠 것입니다.<br/><br/>묵상 질문:<br/>지금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복”이 오히려 갈등처럼 느껴지는 영역은 어디입니까?<br/>내가 너무 붙들고 놓지 못하고 있는 “우물”은 무엇입니까?<br/>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예배자로 서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창세기 26:12–33은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이 이 죄로 물든, 그래서 망가진 세상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삭은 씨를 뿌려 백 배의 수확을 거둡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해서 우리 삶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br/><br/>이삭의 삶은 늘 갈등이 따릅니다. 본문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아브라함의 우물들을 막아버립니다. 이삭이 다시 우물을 파면 또다시 다툼이 일어나고, 자리를 옮겨도 갈등은 계속 따라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 부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22절).<br/><br/>많은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평안함 정도로 생각하지만, 이삭의 삶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이 세상에서 그리고 이 세상과의 갈등을 없애기보다 오히려 드러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도, 어쩌면 우리 주변에는 &quot;블레셋&quot; 사람들처럼 우리의 &quot;우물&quot;을 막으려 하고 우리를 시기하며 어렵게 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br/><br/>이삭은 자신의 &quot;우물&quot;을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내려놓고 다시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이 아마도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는 것은 땅을 파서 만든 우물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생수,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영생의 생수를 가진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quot;우물&quot;을 내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판 우물에 고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땅끝까지 나누는 생수에 있습니다.<br/><br/>이것이 신앙이자 믿음의 삶입니다. 축복을 누리니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알아 따르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주변에는 시기와 질투를 하는 종교인들이 블레셋 사람들처럼, 바리새인처럼 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를 잘 믿어서 갈등이 없는 삶이 아니라 죄로 망가진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다양한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말씀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br/><br/>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다시 나타나십니다. 문제 해결 이후가 아니라, 여전히 긴장 속에 있는 그 자리에서입니다.<br/>“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24절)<br/><br/>이삭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 자리에 장막을 칩니다. 이 말씀은 그가 무엇보다 먼저 예배자로 서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동행을 하는 모습입니다. 수많은 갈등이 빚어낸 이삭의 정체성은 우물이 아니라 생수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br/><br/>오늘 우리도 삶의 “우물들”—안정, 성공, 인정—을 붙들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삭은 언약의 축복이 이 세상의 소유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임재에 있음을 보여줍니다.<br/><br/>이삭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입니다. 그가 예배자로 설 때, 아비멜렉이 찾아와 평화를 제안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삭에게는 우물과 평화가 깃듭니다. 그러나 우물과 평화를 고집해 예배를 망치게 되면 하나님도 생수도 놓칠 것입니다.<br/><br/>묵상 질문:<br/>지금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복”이 오히려 갈등처럼 느껴지는 영역은 어디입니까?<br/>내가 너무 붙들고 놓지 못하고 있는 “우물”은 무엇입니까?<br/>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예배자로 서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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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찬송가 프로젝트: 힙합</itunes:title>
    <title>찬송가 프로젝트: 힙합</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내 주의 보혈은예수 앞에 나오면날 대속하신 예수께예수는 나의 힘이요내 맘이 낙심되며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Support the show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ol><li>내 주의 보혈은</li><li>예수 앞에 나오면</li><li>날 대속하신 예수께</li><li>예수는 나의 힘이요</li><li>내 맘이 낙심되며</li><li>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li></ol><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ol><li>내 주의 보혈은</li><li>예수 앞에 나오면</li><li>날 대속하신 예수께</li><li>예수는 나의 힘이요</li><li>내 맘이 낙심되며</li><li>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li></ol><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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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5 Apr 2026 2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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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26장 1-11절</itunes:title>
    <title>창세기 26장 1-11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오늘 본문에는 성도가 이 세상의 두려움 속에서도 결국 끝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삶을 산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품에 안긴 후 창세기의 내러티브는 언약의 아들 이삭에게 향합니다.  상황은 흔히 있었던 기근이 그 땅을 덮칩니다. 낯선 장면이 아닙니다. 이삭의 삶은 아브라함의 여정과도 많이 닮았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 그래서 조금이라도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치밀어 오릅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려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엔 눈에 보이는 경제적 안정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머무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2–3절)  우리 인생의 방향만 알려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 자체를 건드리는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늘 본문에는 성도가 이 세상의 두려움 속에서도 결국 끝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삶을 산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br/>아브라함이 하나님 품에 안긴 후 창세기의 내러티브는 언약의 아들 이삭에게 향합니다. <br/>상황은 흔히 있었던 기근이 그 땅을 덮칩니다. 낯선 장면이 아닙니다. 이삭의 삶은 아브라함의 여정과도 많이 닮았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 그래서 조금이라도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치밀어 오릅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려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엔 눈에 보이는 경제적 안정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br/>“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머무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2–3절)<br/><br/>우리 인생의 방향만 알려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 자체를 건드리는 시험입니다. 눈앞의 계산을 따라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기초 삼아 그 위에 살 것인가. 다행히도 이삭은 그 땅에 남습니다. 다만, 몸이 거기에 있는 것과 마음이 하나님께 기대어 있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그 지역 사람들의 시선이 리브가에게 쏠리자 이삭 안에서 두려움이 확 올라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행동합니다.<br/>“그는 내 누이라.”<br/><br/>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런데도 이삭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물론 이삭의 이 선택은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모습은 아닙니다. 다만 위험을 자기 방식대로 관리하는 조용하고 계산적인 선택입니다. 우리도 비슷하지 않나요? <br/>우리도 물론 하나님이 부르심을 거부하고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습니다. 겉으론 믿음의 순종인 것 같은데 사실은 상황을 주관하는 정도입니다.<br/>더 깊이 들어가면, 이삭의 반응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익숙한 습관, 굳어진 생각입니다. 아브라함도 같은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창세기 12장, 20장). 이삭은 무의식에서 물려받은 방식대로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부모의 불신은 이렇게 반복됩니다. <br/><br/>생각해 보셨나요? 오늘 우리의 반응은 그냥 그때그때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요. 내가 보고 배웠던 것, 예전에 나를 “살려줬다”고 느꼈던 방법들, 그런 것들이 지금의 선택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내면의 패턴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드러나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방어로 살아가게 됩니다. <br/><br/>본문의 초점은 이삭의 실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이런 상황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이 물러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이삭의 부족함 때문에 그를 내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전히 지키십니다. 아비멜렉이 뜻밖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통로가 됩니다. 절대로 이삭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br/><br/>결국 우리 삶은 우리 믿음이 얼마나 강하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신실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흔들리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이삭이 살려고 속였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구세주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두려움을 이겨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 그리고 불확실한 상황을 매니지하려 하지 말고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라는 초청입니다.<br/><br/>지금 내 삶에서 스스로 ‘지혜롭다’ 혹은 세상이 ‘현실적이다’라고 생각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혹시라도 믿음이 아니라, 사실은 관행과 익숙한 습관으로 길들여진 &apos;애굽&apos;으로의 길을 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늘 본문에는 성도가 이 세상의 두려움 속에서도 결국 끝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삶을 산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br/>아브라함이 하나님 품에 안긴 후 창세기의 내러티브는 언약의 아들 이삭에게 향합니다. <br/>상황은 흔히 있었던 기근이 그 땅을 덮칩니다. 낯선 장면이 아닙니다. 이삭의 삶은 아브라함의 여정과도 많이 닮았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함, 그래서 조금이라도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치밀어 오릅니다.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려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엔 눈에 보이는 경제적 안정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br/>“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머무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2–3절)<br/><br/>우리 인생의 방향만 알려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 자체를 건드리는 시험입니다. 눈앞의 계산을 따라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기초 삼아 그 위에 살 것인가. 다행히도 이삭은 그 땅에 남습니다. 다만, 몸이 거기에 있는 것과 마음이 하나님께 기대어 있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그 지역 사람들의 시선이 리브가에게 쏠리자 이삭 안에서 두려움이 확 올라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행동합니다.<br/>“그는 내 누이라.”<br/><br/>왠지 낯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런데도 이삭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물론 이삭의 이 선택은 노골적으로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모습은 아닙니다. 다만 위험을 자기 방식대로 관리하는 조용하고 계산적인 선택입니다. 우리도 비슷하지 않나요? <br/>우리도 물론 하나님이 부르심을 거부하고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습니다. 겉으론 믿음의 순종인 것 같은데 사실은 상황을 주관하는 정도입니다.<br/>더 깊이 들어가면, 이삭의 반응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익숙한 습관, 굳어진 생각입니다. 아브라함도 같은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창세기 12장, 20장). 이삭은 무의식에서 물려받은 방식대로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부모의 불신은 이렇게 반복됩니다. <br/><br/>생각해 보셨나요? 오늘 우리의 반응은 그냥 그때그때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요. 내가 보고 배웠던 것, 예전에 나를 “살려줬다”고 느꼈던 방법들, 그런 것들이 지금의 선택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내면의 패턴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드러나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방어로 살아가게 됩니다. <br/><br/>본문의 초점은 이삭의 실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이런 상황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이 물러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이삭의 부족함 때문에 그를 내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전히 지키십니다. 아비멜렉이 뜻밖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통로가 됩니다. 절대로 이삭이 잘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br/><br/>결국 우리 삶은 우리 믿음이 얼마나 강하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신실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흔들리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이삭이 살려고 속였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구세주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두려움을 이겨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 그리고 불확실한 상황을 매니지하려 하지 말고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라는 초청입니다.<br/><br/>지금 내 삶에서 스스로 ‘지혜롭다’ 혹은 세상이 ‘현실적이다’라고 생각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혹시라도 믿음이 아니라, 사실은 관행과 익숙한 습관으로 길들여진 &apos;애굽&apos;으로의 길을 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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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25장 1-34절</itunes:title>
    <title>창세기 25장 1-34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창세기 25장은 아브라함의 마지막 생애의 여러 장면들을 정리하면서, 이제 시선을 다음 세대로 옮깁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끝을 맺으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줍니다. 모든 축복이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자녀는 아브라함의 재산을 받았지만, 언약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자연적인 질서를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따라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그를 장사합니다. 그리고 구속에 대한 내러티브는 이삭에게로 좁혀집니다. 그런데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임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언약은 확실하지만 그 과정에는 언제나 긴장이 따릅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임신은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태중에서부터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갈...]]></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창세기 25장은 아브라함의 마지막 생애의 여러 장면들을 정리하면서, 이제 시선을 다음 세대로 옮깁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끝을 맺으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줍니다. 모든 축복이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자녀는 아브라함의 재산을 받았지만, 언약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자연적인 질서를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따라 이루어집니다.<br/><br/>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그를 장사합니다. 그리고 구속에 대한 내러티브는 이삭에게로 좁혀집니다. 그런데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임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언약은 확실하지만 그 과정에는 언제나 긴장이 따릅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임신은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태중에서부터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갈등을 통해 더 깊은 진리를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기대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는 말씀은 단순한 질서의 전복이 아니라 언약적 선언입니다. 첫 번째 아담이 마지막 아담을 섬기고, 옛 언약이 새 언약을 향해 나아가는 흐름과도 연결됩니다.<br/>이렇게 태어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통해 성경은 새 언약을 미리 보여줍니다. 먼저 태어난 에서는 들에서 돌아와 몹시 피곤한 상태에서 한 그릇의 죽과 장자의 명분을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br/><br/>본문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과정이 우리에게는 너무 느리고 더디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서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조급한 모습입니다. 그의 선택은 그 순간만 놓고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는 몹시 피곤했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 상태에서 장자의 명분, 곧 언약적 유산은 너무 멀고 추상적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반면에 죽 한 그릇은 눈앞에 있는, 당장 손에 잡히는 현실이었습니다.<br/><br/>이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3분 레인지에 돌리면 뚝딱 음식이 조리되는 것에 길들여진 우리는 “지금, 여기”의 필요와 욕구에 훨씬 더 쉽게 끌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되도록 쉽게, 그리고 짧게 설명해 주는 설교를 선호하기 일쑤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서론이나 설명을 듣는 것을 버거워합니다. 지금 당장과 빨리빨리가 너무도 당연한 듯, 영생에 소망을 두었다는 크리스천들도 당장 눈앞의 편안함, 지금 이 순간의 인정, 쉽게 얻어지는 안도감 등등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래서 슬픈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br/><br/>에서는 결국 영원을 현재와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의 행동보다 그의 마음을 더 정확하게 짚어 줍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여기서 “가볍게 여겼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치 판단입니다. 에서는 자신의 유산을 미워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순간에는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을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놓고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낸 것입니다.<br/><br/>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부인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크고 작은 선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덜 중요하게 여기며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편안함이 손에 잡힐 때, 인정이 절실할 때, 혹은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는 &quot;지금 당장&quot;이라는 선택을 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quot;지금 당장&quot; 배부르고자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순간적 만족이 영원함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치 선언이자 신앙 고백입니다.<br/><br/>지금 내 삶에서 ‘한 그릇의 죽’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br/>그것이 나의 영원한 목적과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창세기 25장은 아브라함의 마지막 생애의 여러 장면들을 정리하면서, 이제 시선을 다음 세대로 옮깁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끝을 맺으면서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줍니다. 모든 축복이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자녀는 아브라함의 재산을 받았지만, 언약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자연적인 질서를 따라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따라 이루어집니다.<br/><br/>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그를 장사합니다. 그리고 구속에 대한 내러티브는 이삭에게로 좁혀집니다. 그런데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임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언약은 확실하지만 그 과정에는 언제나 긴장이 따릅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임신은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태중에서부터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갈등을 통해 더 깊은 진리를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기대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는 말씀은 단순한 질서의 전복이 아니라 언약적 선언입니다. 첫 번째 아담이 마지막 아담을 섬기고, 옛 언약이 새 언약을 향해 나아가는 흐름과도 연결됩니다.<br/>이렇게 태어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통해 성경은 새 언약을 미리 보여줍니다. 먼저 태어난 에서는 들에서 돌아와 몹시 피곤한 상태에서 한 그릇의 죽과 장자의 명분을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사건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br/><br/>본문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과정이 우리에게는 너무 느리고 더디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서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조급한 모습입니다. 그의 선택은 그 순간만 놓고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는 몹시 피곤했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 상태에서 장자의 명분, 곧 언약적 유산은 너무 멀고 추상적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반면에 죽 한 그릇은 눈앞에 있는, 당장 손에 잡히는 현실이었습니다.<br/><br/>이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3분 레인지에 돌리면 뚝딱 음식이 조리되는 것에 길들여진 우리는 “지금, 여기”의 필요와 욕구에 훨씬 더 쉽게 끌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되도록 쉽게, 그리고 짧게 설명해 주는 설교를 선호하기 일쑤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서론이나 설명을 듣는 것을 버거워합니다. 지금 당장과 빨리빨리가 너무도 당연한 듯, 영생에 소망을 두었다는 크리스천들도 당장 눈앞의 편안함, 지금 이 순간의 인정, 쉽게 얻어지는 안도감 등등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래서 슬픈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br/><br/>에서는 결국 영원을 현재와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의 행동보다 그의 마음을 더 정확하게 짚어 줍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여기서 “가볍게 여겼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치 판단입니다. 에서는 자신의 유산을 미워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순간에는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을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놓고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낸 것입니다.<br/><br/>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부인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크고 작은 선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덜 중요하게 여기며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편안함이 손에 잡힐 때, 인정이 절실할 때, 혹은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는 &quot;지금 당장&quot;이라는 선택을 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quot;지금 당장&quot; 배부르고자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순간적 만족이 영원함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치 선언이자 신앙 고백입니다.<br/><br/>지금 내 삶에서 ‘한 그릇의 죽’처럼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br/>그것이 나의 영원한 목적과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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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4 Apr 2026 18: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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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23장 1-20절</itunes:title>
    <title>창세기 23장 1-20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오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제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약속의 땅 일부를 소유하게 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배경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의 나이로 죽자, 아브라함이 그녀의 무덤, 즉 매장지를 구매한 것입니다. 그는 헤브론 주민들의 족속 대표들을 만나, 헤브론의 소유인 막벨라 굴을 매입하려는 의향을 밝힙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장래에 만일 있을 수 있는 소유권 분쟁을 확실히 막기 위해 과한 금액을 다 주고 그곳을 자신의 법적 소유로 공식화합니다.   2절,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여기에는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라가 죽을 당시에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직 언약의 땅을 소유한 것이 없었습니다. 가나안에 거주는 하였으나 소유는 하지 못한 채 사라는 눈을 감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과 함께 언약을 직...]]></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제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약속의 땅 일부를 소유하게 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배경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의 나이로 죽자, 아브라함이 그녀의 무덤, 즉 매장지를 구매한 것입니다. 그는 헤브론 주민들의 족속 대표들을 만나, 헤브론의 소유인 막벨라 굴을 매입하려는 의향을 밝힙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장래에 만일 있을 수 있는 소유권 분쟁을 확실히 막기 위해 과한 금액을 다 주고 그곳을 자신의 법적 소유로 공식화합니다.</p><p><br/></p><p>2절, &quot;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quot;</p><p>여기에는 사라가 &quot;가나안 땅 헤브론&quot;에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라가 죽을 당시에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직 언약의 땅을 소유한 것이 없었습니다. 가나안에 거주는 하였으나 소유는 하지 못한 채 사라는 눈을 감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과 함께 언약을 직접 들은 동역자였습니다.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그 땅에서 대대로 번성하라는 약속과 연결되는데, 땅을 한 뼘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언약의 당사자가 죽음을 맞이한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apos;약속이 이루어지기 전에 끝났다&apos;는 허무함을 줄 수 있습니다. 짧은 구절이지만, 어쩌면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지 못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p><p>하나님은 &quot;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quot; 하셨지만, 현실은 아내의 시신을 둘 곳이 없어 이방인에게 땅을 구입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과 눈앞의 현실 사이의 극심한 괴리를 보여줍니다. 아직 순례자인 아브라함은 아내를 잃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오히려 사라의 죽음은 이제 가나안에 땅을 소유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 어쩌면 그것은 순례자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이 더욱 뚜렷이 성취되는 계기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안과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시길 하나님께 간구해봅니다.</p><p><br/></p><p>막벨라 굴과 밭은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의 소유가 됩니다. 아내 사라의 죽음이 언약의 땅에서 소유한 영원한 첫 유업이 됩니다. 사라가 처음 이 땅에 묻히고, 이후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이 묻힙니다. 아브라함은 단순히 묘지를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 땅에 &apos;소유권&apos;의 깃발을 꽂은 것입니다.</p><p><br/></p><p>순례자인 아브라함이 매장지를 구입하는 것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는 속하지 않았으나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부분적으로 배웁니다.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것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묘지에 대한 분쟁이 있을 것을 미리 대비해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과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혼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준비나 대책 없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례자로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나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계속 살기 위해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우리에게 어떤 책임감을 요구하고 있을까요?</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제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약속의 땅 일부를 소유하게 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배경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127세의 나이로 죽자, 아브라함이 그녀의 무덤, 즉 매장지를 구매한 것입니다. 그는 헤브론 주민들의 족속 대표들을 만나, 헤브론의 소유인 막벨라 굴을 매입하려는 의향을 밝힙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장래에 만일 있을 수 있는 소유권 분쟁을 확실히 막기 위해 과한 금액을 다 주고 그곳을 자신의 법적 소유로 공식화합니다.</p><p><br/></p><p>2절, &quot;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quot;</p><p>여기에는 사라가 &quot;가나안 땅 헤브론&quot;에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라가 죽을 당시에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직 언약의 땅을 소유한 것이 없었습니다. 가나안에 거주는 하였으나 소유는 하지 못한 채 사라는 눈을 감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과 함께 언약을 직접 들은 동역자였습니다.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그 땅에서 대대로 번성하라는 약속과 연결되는데, 땅을 한 뼘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언약의 당사자가 죽음을 맞이한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 &apos;약속이 이루어지기 전에 끝났다&apos;는 허무함을 줄 수 있습니다. 짧은 구절이지만, 어쩌면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지 못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p><p>하나님은 &quot;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quot; 하셨지만, 현실은 아내의 시신을 둘 곳이 없어 이방인에게 땅을 구입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과 눈앞의 현실 사이의 극심한 괴리를 보여줍니다. 아직 순례자인 아브라함은 아내를 잃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오히려 사라의 죽음은 이제 가나안에 땅을 소유하는 전환점이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 어쩌면 그것은 순례자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이 더욱 뚜렷이 성취되는 계기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안과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시길 하나님께 간구해봅니다.</p><p><br/></p><p>막벨라 굴과 밭은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의 소유가 됩니다. 아내 사라의 죽음이 언약의 땅에서 소유한 영원한 첫 유업이 됩니다. 사라가 처음 이 땅에 묻히고, 이후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이 묻힙니다. 아브라함은 단순히 묘지를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 땅에 &apos;소유권&apos;의 깃발을 꽂은 것입니다.</p><p><br/></p><p>순례자인 아브라함이 매장지를 구입하는 것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는 속하지 않았으나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부분적으로 배웁니다.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것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묘지에 대한 분쟁이 있을 것을 미리 대비해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과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혼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준비나 대책 없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순례자로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나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계속 살기 위해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우리에게 어떤 책임감을 요구하고 있을까요?</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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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Apr 2026 12: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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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22장 1-24절</itunes:title>
    <title>창세기 22장 1-24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한복음 묵상을 어제로 마치고 오늘부터는 다시 창세기로 돌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아들 이삭을 번제, 즉 죽여서 태우는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기록합니다. 이 내러티브는 많은 질문을 일으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살생을 명할 수 있나? 그것도 아비에게 아들을 죽이라고?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실 거면 왜 태어나게 하셨나? 처음부터 없는 것보다 있다가 빼앗기면 그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잔인하실 수 있나? 원래 제사는 양이나 염소와 같은 대체 동물로 해야지 사람을 태워서 바치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도 또 받아들일 수도 어렵지 않나?  저는 이런 질문들을 안 하는 것이 "좋은 믿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들과 씨름하면서 과연 우리가 믿고 섬기는 창조주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신지,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신지, 공의와 정의의 주님이신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을...]]></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한복음 묵상을 어제로 마치고 오늘부터는 다시 창세기로 돌아갑니다.<br/>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아들 이삭을 번제, 즉 죽여서 태우는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기록합니다. 이 내러티브는 많은 질문을 일으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살생을 명할 수 있나? 그것도 아비에게 아들을 죽이라고?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실 거면 왜 태어나게 하셨나? 처음부터 없는 것보다 있다가 빼앗기면 그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잔인하실 수 있나? 원래 제사는 양이나 염소와 같은 대체 동물로 해야지 사람을 태워서 바치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도 또 받아들일 수도 어렵지 않나?<br/><br/>저는 이런 질문들을 안 하는 것이 &quot;좋은 믿음&quot;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들과 씨름하면서 과연 우리가 믿고 섬기는 창조주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신지,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신지, 공의와 정의의 주님이신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br/><br/>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br/><br/>창세기 22:1–24은 성경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아들, 약속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이 명령은 우리를 멈추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신가? 전지하신 하나님이 굳이 이런 시험을 하셔야 하는가? 왜 아브라함은 이것을 불의하다고 따지지 않고 순종했는가? 이 본문은 그런 질문을 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깊이 보게 합니다.<br/><br/>묵상<br/>먼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모르셔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라고 말합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하나님이 정보를 얻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드러내고 연단하시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안정감, 미래, 자녀, 계획을 더 붙들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신뢰하는지를 드러내십니다.<br/><br/>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왜 항변하지 않았을까요?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소돔을 두고 하나님의 공의를 붙들며 질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창세기 22장의 순종은 생각 없는 맹종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오래 배워 왔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약속을 깨뜨리지 않으시며, 죽은 것 같은 사라의 몸에서도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앞에서도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라고 결론 내리기보다, 내가 다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깨뜨리지 않으신다고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학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신실하시고, 죽음 너머에서도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믿음입니다.<br/><br/>그리고 본문의 중심은 결국 이삭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숫양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요구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준비하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제사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삭 대신 숫양을 마련하심으로 대속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이 본문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실 것을 미리 비추어 줍니다. 아브라함의 손은 멈추었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위한 참된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br/><br/>그러므로 창세기 22장은 잔인한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여전히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배우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이 납득되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알기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늘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한복음 묵상을 어제로 마치고 오늘부터는 다시 창세기로 돌아갑니다.<br/>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아들 이삭을 번제, 즉 죽여서 태우는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기록합니다. 이 내러티브는 많은 질문을 일으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살생을 명할 수 있나? 그것도 아비에게 아들을 죽이라고?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실 거면 왜 태어나게 하셨나? 처음부터 없는 것보다 있다가 빼앗기면 그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잔인하실 수 있나? 원래 제사는 양이나 염소와 같은 대체 동물로 해야지 사람을 태워서 바치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도 또 받아들일 수도 어렵지 않나?<br/><br/>저는 이런 질문들을 안 하는 것이 &quot;좋은 믿음&quot;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들과 씨름하면서 과연 우리가 믿고 섬기는 창조주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신지,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신지, 공의와 정의의 주님이신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br/><br/>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br/><br/>창세기 22:1–24은 성경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아들, 약속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이 명령은 우리를 멈추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신가? 전지하신 하나님이 굳이 이런 시험을 하셔야 하는가? 왜 아브라함은 이것을 불의하다고 따지지 않고 순종했는가? 이 본문은 그런 질문을 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깊이 보게 합니다.<br/><br/>묵상<br/>먼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모르셔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라고 말합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험은 하나님이 정보를 얻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드러내고 연단하시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안정감, 미래, 자녀, 계획을 더 붙들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신뢰하는지를 드러내십니다.<br/><br/>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왜 항변하지 않았을까요?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소돔을 두고 하나님의 공의를 붙들며 질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창세기 22장의 순종은 생각 없는 맹종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오래 배워 왔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으시고, 약속을 깨뜨리지 않으시며, 죽은 것 같은 사라의 몸에서도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 앞에서도 “하나님이 불의하시다”라고 결론 내리기보다, 내가 다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깨뜨리지 않으신다고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학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신실하시고, 죽음 너머에서도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믿음입니다.<br/><br/>그리고 본문의 중심은 결국 이삭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숫양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요구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준비하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제사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삭 대신 숫양을 마련하심으로 대속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이 본문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실 것을 미리 비추어 줍니다. 아브라함의 손은 멈추었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위한 참된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br/><br/>그러므로 창세기 22장은 잔인한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여전히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배우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이 납득되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알기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늘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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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21장 15-25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21장 15-25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세 번 물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 사랑한다고 대답합니다. 아마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가 하나님의 성도들을 위한 사역을 하기 위하여 먼저 치유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장 좋은 치유자는 아무래도 '상처받은 치유자'인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실패를 경험하였고 실패를 뛰어넘는 은혜도 경험하였기 때문에 다른 성도들에게도 이제 유익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종종 다른 제자들을 대변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만이 아니라 모두 예수를 부인하고 비겁하게 도망쳤기 때문에 베드로의 회복은 바로 제자들의 회복이자 성도의 회복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실패"와 "아픔"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시고 계실까요?   묵상 숯불 앞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베드로야, 네...]]></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세 번 물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 사랑한다고 대답합니다. 아마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가 하나님의 성도들을 위한 사역을 하기 위하여 먼저 치유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장 좋은 치유자는 아무래도 &apos;상처받은 치유자&apos;인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실패를 경험하였고 실패를 뛰어넘는 은혜도 경험하였기 때문에 다른 성도들에게도 이제 유익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종종 다른 제자들을 대변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만이 아니라 모두 예수를 부인하고 비겁하게 도망쳤기 때문에 베드로의 회복은 바로 제자들의 회복이자 성도의 회복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quot;실패&quot;와 &quot;아픔&quot;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시고 계실까요?</p><p><br/></p><p>묵상</p><p>숯불 앞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p><p>&quot;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quot;</p><p><br/></p><p>숯불 앞에서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에게 회개와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이제 내 양을 돌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양들, 즉 성도를 돌보시던 일을 이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나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단순히 애틋한 감정만은 아닐 텐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선한 목자의 삶을 우리의 삶에서 구현하고 있나요?</p><p><br/></p><p>오늘 말씀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베드로가 가야 할 길과 요한이 가야 할 길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둘 다 </p><p>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지만 그 둘의 삶은 같지 않습니다. 둘 다 복된 길이고 생명의 길을 걷겠지만 다른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하거나 견줄 필요 없이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더욱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힘쓰게 될까요?</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세 번 물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 사랑한다고 대답합니다. 아마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가 하나님의 성도들을 위한 사역을 하기 위하여 먼저 치유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장 좋은 치유자는 아무래도 &apos;상처받은 치유자&apos;인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실패를 경험하였고 실패를 뛰어넘는 은혜도 경험하였기 때문에 다른 성도들에게도 이제 유익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종종 다른 제자들을 대변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만이 아니라 모두 예수를 부인하고 비겁하게 도망쳤기 때문에 베드로의 회복은 바로 제자들의 회복이자 성도의 회복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의 &quot;실패&quot;와 &quot;아픔&quot;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시고 계실까요?</p><p><br/></p><p>묵상</p><p>숯불 앞에서 베드로에게 세 번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p><p>&quot;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quot;</p><p><br/></p><p>숯불 앞에서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에게 회개와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이제 내 양을 돌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양들, 즉 성도를 돌보시던 일을 이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나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단순히 애틋한 감정만은 아닐 텐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선한 목자의 삶을 우리의 삶에서 구현하고 있나요?</p><p><br/></p><p>오늘 말씀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베드로가 가야 할 길과 요한이 가야 할 길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둘 다 </p><p>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지만 그 둘의 삶은 같지 않습니다. 둘 다 복된 길이고 생명의 길을 걷겠지만 다른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하거나 견줄 필요 없이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더욱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힘쓰게 될까요?</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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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07 Apr 2026 13: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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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21장 1-14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21장 1-14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갈릴리 디데랴 호수에서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제자들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며 자신들에게 익숙한 호수에 그물을 내립니다. 어부들로서 살아온 그들이었지만 웬일인지 그날 밤은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물가로 나오려던 그 이른 새벽에 주님의 말씀이 그들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4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6절,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누가복음 5장은 비슷한 장면을 기록합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갈릴리 디데랴 호수에서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제자들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며 자신들에게 익숙한 호수에 그물을 내립니다. 어부들로서 살아온 그들이었지만 웬일인지 그날 밤은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물가로 나오려던 그 이른 새벽에 주님의 말씀이 그들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p><p>4절, &quot;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quot;</p><p>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p><p>6절, &quot;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quot;</p><p>누가복음 5장은 비슷한 장면을 기록합니다.</p><p>&quot;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p><p>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quot;</p><p>누가복음 5장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제자들을 부르시던 장면인 점을 고려할 때, 요한복음 21장의 기록 역시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기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잡은 물고기 숫자가 153마리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21장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으로서 예수를 배반했던 베드로의 회복과 아울러 교회의 역할을 강조합니다.</p><p>묵상</p><p>제자들은 부활을 경험했지만 사명으로 나아가지 않고 갈릴리 어부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익숙한 환경이 주는 안도감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은 단순한 어부로서 살아갈 수 없는 듯합니다. 밤새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p><p>제자들을 모르지만 예수님은 호숫가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배가 텅 빈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날이 밝아오매 더 이상 물고기를 잡을 여건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quot;그물을 배의 오른편에 던지라&quot;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말씀에 순종한 제자들은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를 건집니다.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처럼, 죽은 나사로의 부활처럼,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는 것 처럼, 태어날 때 부터 소경이었던 자가 눈을 뜨게된 것 처럼,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보여집니다.</p><p>뭍으로 나온 제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의 책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밤새 수고한 제자들을 위하여 숯불에 생선과 떡을 준비하셨습니다. 숯불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던 밤 그 앞에서 타오르던 숯불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실패와 헛된 수고를 먼저 생각하겠지만 주님은 와서 &quot;조반을 먹으라&quot; (14절) 말씀하십니다.</p><p>참고로 흥미로운 것은 물고기 153마리입니다. 어떤 이들은 153은 시므온을 헬라어로 숫자화한 것이라 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1에서 17까지의 정수를 더한 숫자가 153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17은 온전함을 상징하는 10과 완전함과 은혜를 상징하는 7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153이 온 인류를 암시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에 내용들은 저보다 훨씬 성경을 더 많이 공부한 분들이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p><p>확실한 것은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이전 익숙한 삶으로 돌아간 현장에서 그들은 수고하였으나 열매가 없었고 그런 그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회복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허물을 떠올렸을 테지만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주님이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아니, 돌아가서도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험난한 길이 예비되었지만 그 길은 주님이 예비하신 길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동행하실 길입니다. 우리 쓸 것을 미리 아시는 주님이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아라고. 할렐루야!</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갈릴리 디데랴 호수에서 부활의 주님을 다시 만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제자들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며 자신들에게 익숙한 호수에 그물을 내립니다. 어부들로서 살아온 그들이었지만 웬일인지 그날 밤은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물가로 나오려던 그 이른 새벽에 주님의 말씀이 그들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p><p>4절, &quot;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quot;</p><p>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p><p>6절, &quot;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quot;</p><p>누가복음 5장은 비슷한 장면을 기록합니다.</p><p>&quot;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p><p>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quot;</p><p>누가복음 5장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제자들을 부르시던 장면인 점을 고려할 때, 요한복음 21장의 기록 역시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기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잡은 물고기 숫자가 153마리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21장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으로서 예수를 배반했던 베드로의 회복과 아울러 교회의 역할을 강조합니다.</p><p>묵상</p><p>제자들은 부활을 경험했지만 사명으로 나아가지 않고 갈릴리 어부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익숙한 환경이 주는 안도감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더 이상 그들은 단순한 어부로서 살아갈 수 없는 듯합니다. 밤새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p><p>제자들을 모르지만 예수님은 호숫가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배가 텅 빈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날이 밝아오매 더 이상 물고기를 잡을 여건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quot;그물을 배의 오른편에 던지라&quot;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말씀에 순종한 제자들은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를 건집니다.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처럼, 죽은 나사로의 부활처럼,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는 것 처럼, 태어날 때 부터 소경이었던 자가 눈을 뜨게된 것 처럼,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보여집니다.</p><p>뭍으로 나온 제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의 책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밤새 수고한 제자들을 위하여 숯불에 생선과 떡을 준비하셨습니다. 숯불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던 밤 그 앞에서 타오르던 숯불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실패와 헛된 수고를 먼저 생각하겠지만 주님은 와서 &quot;조반을 먹으라&quot; (14절) 말씀하십니다.</p><p>참고로 흥미로운 것은 물고기 153마리입니다. 어떤 이들은 153은 시므온을 헬라어로 숫자화한 것이라 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1에서 17까지의 정수를 더한 숫자가 153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17은 온전함을 상징하는 10과 완전함과 은혜를 상징하는 7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153이 온 인류를 암시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에 내용들은 저보다 훨씬 성경을 더 많이 공부한 분들이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p><p>확실한 것은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이전 익숙한 삶으로 돌아간 현장에서 그들은 수고하였으나 열매가 없었고 그런 그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회복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허물을 떠올렸을 테지만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주님이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아니, 돌아가서도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험난한 길이 예비되었지만 그 길은 주님이 예비하신 길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동행하실 길입니다. 우리 쓸 것을 미리 아시는 주님이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아라고. 할렐루야!</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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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6 Apr 2026 20: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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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19장 28-30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19장 28-30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요한복음 19:28–30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합니다. 28-30절,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이 말씀은 의미 없이 희생당한 사람의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분명히 아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조차 성경을 이루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시며, 자신이 오신 목적을 끝까지 이루십니다.  이 장면을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과 함께 읽으면 그 의미가 더 선명해집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고, 회개하는 강도에게는 “오늘 네...]]></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요한복음 19:28–30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합니다.<br/>28-30절,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br/><br/>이 말씀은 의미 없이 희생당한 사람의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분명히 아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조차 성경을 이루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시며, 자신이 오신 목적을 끝까지 이루십니다.<br/><br/>이 장면을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과 함께 읽으면 그 의미가 더 선명해집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고, 회개하는 강도에게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하십니다. 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시고, 마침내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십자가가 죄인에게 용서를 주고, 자격 없는 자에게 낙원을 열며, 우리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신 사건임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빚이 갚아졌고, 구속이 이루어졌습니다.<br/><br/>묵상<br/>예수님은 분명한 목적 가운데 죽으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예수님의 사역을 가로막은 비극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 목적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며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br/><br/>그래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이 이제 가능해졌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남은 것을 믿음이나 행위로 채워 넣어야 한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죄의 빚이 완전히 갚아졌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졌습니다.<br/><br/>십자가에서의 말씀들은 그 완성된 구원을 보여 줍니다.<br/>“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는 십자가가 용서의 자리임을 보여 줍니다.<br/>“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아무 공로 없는 죄인도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음을 보여 줍니다.<br/>“내가 목마르다”는 예수님의 고난이 참된 고난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멀리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친히 들어오셨습니다.<br/><br/>사실 저도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지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순종이나 회개로 내 의를 세우고 하나님에게 구원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려고 종교에 힘을 쓰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죄뿐 아니라 자신의 공로도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로움은 완전한 의로움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의로움은 죄인의 노력으로 성취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만이 완전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에게는 자신의 의로움을 주십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용서의 자리만이 아니라 죄인이 의로움을 받는 구원의 자리입니다.<br/><br/>그러므로 갈보리의 십자가는 우리 자신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만이 빚을 갚으셨고, 예수님만이 구원을 이루셨으며, 예수님만이 용서와 구속과 화평을 주십니다. 십자가는 죄인이 구원받을 가능성을 보여 준 사건이 아니라, 실제로 죄인을 구원한 사건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요한복음 19:28–30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합니다.<br/>28-30절,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br/><br/>이 말씀은 의미 없이 희생당한 사람의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분명히 아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조차 성경을 이루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시며, 자신이 오신 목적을 끝까지 이루십니다.<br/><br/>이 장면을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과 함께 읽으면 그 의미가 더 선명해집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고, 회개하는 강도에게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하십니다. 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시고, 마침내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십자가가 죄인에게 용서를 주고, 자격 없는 자에게 낙원을 열며, 우리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신 사건임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빚이 갚아졌고, 구속이 이루어졌습니다.<br/><br/>묵상<br/>예수님은 분명한 목적 가운데 죽으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예수님의 사역을 가로막은 비극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 목적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며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br/><br/>그래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이 이제 가능해졌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남은 것을 믿음이나 행위로 채워 넣어야 한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죄의 빚이 완전히 갚아졌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졌습니다.<br/><br/>십자가에서의 말씀들은 그 완성된 구원을 보여 줍니다.<br/>“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는 십자가가 용서의 자리임을 보여 줍니다.<br/>“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아무 공로 없는 죄인도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음을 보여 줍니다.<br/>“내가 목마르다”는 예수님의 고난이 참된 고난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멀리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친히 들어오셨습니다.<br/><br/>사실 저도 복음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지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순종이나 회개로 내 의를 세우고 하나님에게 구원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려고 종교에 힘을 쓰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죄뿐 아니라 자신의 공로도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로움은 완전한 의로움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의로움은 죄인의 노력으로 성취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만이 완전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에게는 자신의 의로움을 주십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용서의 자리만이 아니라 죄인이 의로움을 받는 구원의 자리입니다.<br/><br/>그러므로 갈보리의 십자가는 우리 자신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만이 빚을 갚으셨고, 예수님만이 구원을 이루셨으며, 예수님만이 용서와 구속과 화평을 주십니다. 십자가는 죄인이 구원받을 가능성을 보여 준 사건이 아니라, 실제로 죄인을 구원한 사건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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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3 Apr 2026 10: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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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복음 19장 17-27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본문은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나아가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그 숙명의 시간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십니다. 곧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버림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예수님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우리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2장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요한은 또 빌라도가 붙인 패를 기록합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그 패는 히브리어로, 로마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공개적이었고 누구나 볼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조롱의 뜻으로 썼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더 큰 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 아니라 온 인류의 참된 왕이십니다. 주권자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행동까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정죄하지만, 십자가는 오히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본문은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나아가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그 숙명의 시간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십니다. 곧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버림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예수님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우리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2장 &quot;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quot;<br/><br/>요한은 또 빌라도가 붙인 패를 기록합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quot; 그 패는 히브리어로, 로마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공개적이었고 누구나 볼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조롱의 뜻으로 썼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더 큰 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 아니라 온 인류의 참된 왕이십니다.<br/>주권자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행동까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정죄하지만, 십자가는 오히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선포합니다. 이렇게 악인들의 선택도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것을 본다면 감사한 일입니다.<br/>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누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사형수를 조롱하는 행위였고, 동시에 탐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말씀의 성취입니다.<br/>“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 22:18<br/>말씀이 바로 그들의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자기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짊어지고 계시는 순간에도 자기 사람들을 돌보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그 제자에게 맡기시고, 십자가 아래 새로운 언약의 가족을 세우십니다.<br/><br/>묵상<br/>세상 왕들은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고, 백성과 거리를 두며, 화려함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험에 노출되시고, 백성을 위하여 서시며, 수치 가운데 가시면류관을 쓰십니다. 그의 곁에는 충성된 신하들이 아니라 냉소적인 군인들과 적대적인 지도자들, 그리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이 서 있습니다.<br/><br/>군인들은 무엇을 빼앗을 수 있을지에 마음을 둡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무엇을 주기 위해 오셨는지를 잊지 않으십니다. 역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 앞에서도 죄인들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며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그들만의 문제일까요?<br/><br/>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물과 숫자와 프로그램으로 축소시키지는 않나요? 혹시 우리는 눈앞의 것들을 붙들다가 하나님의 아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야고보서 1:27은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br/><br/>예수님은 마리아와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십니다. 그 힘든 상황에서도 슬픔 가운데 있는 자를 돌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한 영혼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는 우리의 이름도 수고도 모르는 무명인으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러나 만유의 주재이신 주님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br/><br/>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언약의 가족을 만드십니다. “보라 네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br/>하나님의 교회는 건물이나 예산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예수의 피값으로 주고 사신 성도들, 즉 갈보리 십자가로 묶인 성도들로 세워집니다. 교회는 친분이나 익숙함으로 만들어지는 공동체가 아니라, 거절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성도의 공동체입니다.<br/><br/>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서 있기를 원합니까?<br/>군인들처럼 당장 눈앞의 것에 더 마음을 두고 있습니까?<br/>종교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의 왕 되심이 불편하십니까?<br/>아니면 십자가 곁에 서서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br/><br/>오늘 우리에게 부활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br/>우리는 진리와 긍휼과 정의와 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br/>죽어야 삽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본문은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나아가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그 숙명의 시간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십니다. 곧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버림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예수님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우리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2장 &quot;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quot;<br/><br/>요한은 또 빌라도가 붙인 패를 기록합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quot; 그 패는 히브리어로, 로마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공개적이었고 누구나 볼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조롱의 뜻으로 썼겠지만, 자기도 모르게 더 큰 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 아니라 온 인류의 참된 왕이십니다.<br/>주권자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행동까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정죄하지만, 십자가는 오히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선포합니다. 이렇게 악인들의 선택도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것을 본다면 감사한 일입니다.<br/>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누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사형수를 조롱하는 행위였고, 동시에 탐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말씀의 성취입니다.<br/>“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 22:18<br/>말씀이 바로 그들의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자기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짊어지고 계시는 순간에도 자기 사람들을 돌보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그 제자에게 맡기시고, 십자가 아래 새로운 언약의 가족을 세우십니다.<br/><br/>묵상<br/>세상 왕들은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고, 백성과 거리를 두며, 화려함으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험에 노출되시고, 백성을 위하여 서시며, 수치 가운데 가시면류관을 쓰십니다. 그의 곁에는 충성된 신하들이 아니라 냉소적인 군인들과 적대적인 지도자들, 그리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이 서 있습니다.<br/><br/>군인들은 무엇을 빼앗을 수 있을지에 마음을 둡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무엇을 주기 위해 오셨는지를 잊지 않으십니다. 역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 앞에서도 죄인들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며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그들만의 문제일까요?<br/><br/>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물과 숫자와 프로그램으로 축소시키지는 않나요? 혹시 우리는 눈앞의 것들을 붙들다가 하나님의 아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야고보서 1:27은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br/><br/>예수님은 마리아와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십니다. 그 힘든 상황에서도 슬픔 가운데 있는 자를 돌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한 영혼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는 우리의 이름도 수고도 모르는 무명인으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러나 만유의 주재이신 주님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br/><br/>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언약의 가족을 만드십니다. “보라 네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br/>하나님의 교회는 건물이나 예산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예수의 피값으로 주고 사신 성도들, 즉 갈보리 십자가로 묶인 성도들로 세워집니다. 교회는 친분이나 익숙함으로 만들어지는 공동체가 아니라, 거절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성도의 공동체입니다.<br/><br/>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서 있기를 원합니까?<br/>군인들처럼 당장 눈앞의 것에 더 마음을 두고 있습니까?<br/>종교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의 왕 되심이 불편하십니까?<br/>아니면 십자가 곁에 서서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지는 않습니까?<br/><br/>오늘 우리에게 부활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br/>우리는 진리와 긍휼과 정의와 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br/>죽어야 삽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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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2 Apr 2026 14: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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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18장 39절-19장 16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18장 39절-19장 16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한복음 18:39–19:16은 복음서에서 가장 어둡고도 가장 많은 것을 드러내는 장면 가운데 하나를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 서 계십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데 마치 죄인처럼 취급을 받으십니다. 빌라도조차 예수님께서 죽으실 만한 죄를 지으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내 옳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주려 하지만, 그들은 바라바를 달라고 외칩니다. 요한은 짧지만 무거운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18:40). 빌라도는 군중의 광기에 굴복합니다. 죄 있는 자는 놓임을 받고, 죄 없으신 분은 정죄를 받으십니다. 그 뒤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무죄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 벌을 내렸을까요? 자기 결정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자기 양심을 달래려 했던 것일까요? 이제 군인들까지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자색 옷...]]></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한복음 18:39–19:16은 복음서에서 가장 어둡고도 가장 많은 것을 드러내는 장면 가운데 하나를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 서 계십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데 마치 죄인처럼 취급을 받으십니다. 빌라도조차 예수님께서 죽으실 만한 죄를 지으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내 옳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br/><br/>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주려 하지만, 그들은 바라바를 달라고 외칩니다. 요한은 짧지만 무거운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18:40). 빌라도는 군중의 광기에 굴복합니다. 죄 있는 자는 놓임을 받고, 죄 없으신 분은 정죄를 받으십니다. 그 뒤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무죄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 벌을 내렸을까요? 자기 결정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자기 양심을 달래려 했던 것일까요? 이제 군인들까지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자색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우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19:3) 하고 조롱합니다. 그들은 비웃는 뜻으로 말했지만, 요한은 그 말 속에 담긴 아이러니를 보게 합니다. 로마 병정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왕이심을 선포하십니다.<br/><br/>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리고 나와 “보라 이 사람이로다” (19:5) 하고 말합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여기 참 사람이 서 계십니다. 의로우신 사람, 인간이 본래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시는 분이 서 계십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그들을 따르는 어리석은 무리는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19:6) 하고 외칩니다.<br/><br/>이어 유대 지도자들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으니” (19:7)라고 말합니다. 빌라도는 더욱 불안해집니다. 다시 예수님께 묻고, 마치 자신이 권세를 쥐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19:11)라고 대답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시는 길은 우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치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 가운데 계십니다. 예수님은 통제력을 잃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주신 길을 기꺼이 걸어가고 계십니다.<br/><br/>결국 빌라도는 무너집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 모든 권력은 무너집니다. 빌라도는 정의보다 자기 보전을 택합니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 (19:14) 하고 말하자, 대제사장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19:15) 하고 답합니다. 이것은 이 본문에서 가장 비극적인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솔로몬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신앙인 줄 착각한 어리석은 종교인들이 스스로 참된 왕을 거절하고 거짓 왕을 택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넘겨 줍니다. 그러나 요한은 단순한 불의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복음을 보여 줍니다. 죄 없으신 분이 정죄를 받으심으로 죄 있는 자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br/><br/>우리의 왕은 누구입니까? 유대 지도자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유대 종교인들은 가이사가 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준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무리는 그들이 유월절 명절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는 예수를 처리하고 가이사 통치하에 유월절 명절을 지키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아도, 그렇게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느니 불의한 상황에도 그냥 눌러앉습니다. 불안이 우리를 다스리고, 익숙한 환경에 노예가 되고, 세상의 기준이 우리를 규정하고, 그리스도 아닌 다른 무엇을 붙들 때마다 우리는 다른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입니다.<br/><br/>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 <br/>거절당하신 예수님이 참된 왕이십니다. 조롱당하신 왕이 구원하시는 왕이십니다. 정죄받으신 왕이 죄인들을 자유하게 하시는 왕이십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한복음 18:39–19:16은 복음서에서 가장 어둡고도 가장 많은 것을 드러내는 장면 가운데 하나를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 서 계십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데 마치 죄인처럼 취급을 받으십니다. 빌라도조차 예수님께서 죽으실 만한 죄를 지으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내 옳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br/><br/>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주려 하지만, 그들은 바라바를 달라고 외칩니다. 요한은 짧지만 무거운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18:40). 빌라도는 군중의 광기에 굴복합니다. 죄 있는 자는 놓임을 받고, 죄 없으신 분은 정죄를 받으십니다. 그 뒤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무죄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 벌을 내렸을까요? 자기 결정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자기 양심을 달래려 했던 것일까요? 이제 군인들까지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자색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우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19:3) 하고 조롱합니다. 그들은 비웃는 뜻으로 말했지만, 요한은 그 말 속에 담긴 아이러니를 보게 합니다. 로마 병정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몰랐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왕이심을 선포하십니다.<br/><br/>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리고 나와 “보라 이 사람이로다” (19:5) 하고 말합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여기 참 사람이 서 계십니다. 의로우신 사람, 인간이 본래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시는 분이 서 계십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그들을 따르는 어리석은 무리는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19:6) 하고 외칩니다.<br/><br/>이어 유대 지도자들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으니” (19:7)라고 말합니다. 빌라도는 더욱 불안해집니다. 다시 예수님께 묻고, 마치 자신이 권세를 쥐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19:11)라고 대답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시는 길은 우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치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 가운데 계십니다. 예수님은 통제력을 잃으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주신 길을 기꺼이 걸어가고 계십니다.<br/><br/>결국 빌라도는 무너집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 모든 권력은 무너집니다. 빌라도는 정의보다 자기 보전을 택합니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 (19:14) 하고 말하자, 대제사장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19:15) 하고 답합니다. 이것은 이 본문에서 가장 비극적인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솔로몬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신앙인 줄 착각한 어리석은 종교인들이 스스로 참된 왕을 거절하고 거짓 왕을 택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넘겨 줍니다. 그러나 요한은 단순한 불의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복음을 보여 줍니다. 죄 없으신 분이 정죄를 받으심으로 죄 있는 자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br/><br/>우리의 왕은 누구입니까? 유대 지도자들은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유대 종교인들은 가이사가 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준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무리는 그들이 유월절 명절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는 예수를 처리하고 가이사 통치하에 유월절 명절을 지키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아도, 그렇게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로 나아가느니 불의한 상황에도 그냥 눌러앉습니다. 불안이 우리를 다스리고, 익숙한 환경에 노예가 되고, 세상의 기준이 우리를 규정하고, 그리스도 아닌 다른 무엇을 붙들 때마다 우리는 다른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입니다.<br/><br/>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 <br/>거절당하신 예수님이 참된 왕이십니다. 조롱당하신 왕이 구원하시는 왕이십니다. 정죄받으신 왕이 죄인들을 자유하게 하시는 왕이십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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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요한복음 18:28–38은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빌라도에게로 끌려가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때는 이른 아침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뼈아픈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유대 종교 리더들은 유월절을 앞두고 부정하게 되지 않으려고 이방인 빌라도의 관정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부당하게 죽음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종교적 규칙은 지키려 하면서도, 오히려 그들이 경배한다고 말하는 하나님은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유대 전통을 따르면,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을 그것도 야밤에 하루 만에 내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불의와 불법의 조화를 자행하면서도 유월절은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부활절을 언급하지만, 불의를 일삼지는 않는지 우리 모두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빌라도가 도대체 예수가 뭘 잘못해서 사형에 처해야 하는지 묻자 그들은 뚜렷한 답을 피합니다. 이에 빌라도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하자...]]></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요한복음 18:28–38은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빌라도에게로 끌려가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때는 이른 아침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뼈아픈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유대 종교 리더들은 유월절을 앞두고 부정하게 되지 않으려고 이방인 빌라도의 관정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부당하게 죽음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종교적 규칙은 지키려 하면서도, 오히려 그들이 경배한다고 말하는 하나님은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유대 전통을 따르면,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을 그것도 야밤에 하루 만에 내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불의와 불법의 조화를 자행하면서도 유월절은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부활절을 언급하지만, 불의를 일삼지는 않는지 우리 모두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br/><br/>빌라도가 도대체 예수가 뭘 잘못해서 사형에 처해야 하는지 묻자 그들은 뚜렷한 답을 피합니다. 이에 빌라도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하자, 그들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들의 목적이 진실 규명이 아니라 예수님을 제거하는 데 있음을 드러냅니다. 어둠의 본심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혼란과 불의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악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br/><br/>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습니다.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빌라도가 생각하는 방식의 왕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이 왕이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만 빌라도가 상상하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권력이나 힘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apos;교회&apos;의 일도 권력이나 무력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br/><br/>끝으로 예수님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증언을 듣고도 빌라도는 냉소적으로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질문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진리 자체가 바로 우리 앞에 서 계셔도 진리를 못 알아보는 것이 영적으로 눈먼 이 세상입니다.<br/><br/>묵상<br/>겉으로는 신실하고 올바르게 보이려 하면서도, 우리 속마음을 드러내는 진리는 피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열심으로 우리 안의 어두움을 덮는 것이 너무도 익숙한 우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br/><br/>빌라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진리를 찾는 듯 보입니다. 예수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질문은 하지만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quot;빌라도&quot;가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기보다 관리하려 하고, 불의를 바로잡기보다는 빌라도처럼 “내 손은 깨끗하다”라고 말하며 &quot;중립&quot;을 지켜서 불의에 동조합니다.<br/><br/>예수님은 이 모든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당황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누구신지 분명히 아십니다. 십자가는 구원을 이루실 그리스도의 실패가 아니라 사명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우리가 익숙한(그래서 의지하는) 권력으로 세워지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quot;나는 정말 진리를 원하는가? 아니면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진리만 원하는가?&quot;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는 토론이나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새겨 듣고 따라야 할 인격체이십니다.<br/><br/>우리의 소망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애통하고 자복하는 심령을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마음이 갈라지기 쉽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을 위해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종교적 열심이나 이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진 소망의 근원입니다. 종교는 유월절 명절을 지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제자도는 유월절 어린양을 따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quot;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quot;</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요한복음 18:28–38은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로 말미암아 빌라도에게로 끌려가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때는 이른 아침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뼈아픈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유대 종교 리더들은 유월절을 앞두고 부정하게 되지 않으려고 이방인 빌라도의 관정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부당하게 죽음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종교적 규칙은 지키려 하면서도, 오히려 그들이 경배한다고 말하는 하나님은 거절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유대 전통을 따르면,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을 그것도 야밤에 하루 만에 내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불의와 불법의 조화를 자행하면서도 유월절은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부활절을 언급하지만, 불의를 일삼지는 않는지 우리 모두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br/><br/>빌라도가 도대체 예수가 뭘 잘못해서 사형에 처해야 하는지 묻자 그들은 뚜렷한 답을 피합니다. 이에 빌라도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하자, 그들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들의 목적이 진실 규명이 아니라 예수님을 제거하는 데 있음을 드러냅니다. 어둠의 본심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혼란과 불의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악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br/><br/>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습니다.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빌라도가 생각하는 방식의 왕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이 왕이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만 빌라도가 상상하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권력이나 힘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apos;교회&apos;의 일도 권력이나 무력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br/><br/>끝으로 예수님은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증언을 듣고도 빌라도는 냉소적으로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질문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진리 자체가 바로 우리 앞에 서 계셔도 진리를 못 알아보는 것이 영적으로 눈먼 이 세상입니다.<br/><br/>묵상<br/>겉으로는 신실하고 올바르게 보이려 하면서도, 우리 속마음을 드러내는 진리는 피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열심으로 우리 안의 어두움을 덮는 것이 너무도 익숙한 우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br/><br/>빌라도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진리를 찾는 듯 보입니다. 예수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질문은 하지만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quot;빌라도&quot;가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기보다 관리하려 하고, 불의를 바로잡기보다는 빌라도처럼 “내 손은 깨끗하다”라고 말하며 &quot;중립&quot;을 지켜서 불의에 동조합니다.<br/><br/>예수님은 이 모든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당황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누구신지 분명히 아십니다. 십자가는 구원을 이루실 그리스도의 실패가 아니라 사명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우리가 익숙한(그래서 의지하는) 권력으로 세워지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quot;나는 정말 진리를 원하는가? 아니면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진리만 원하는가?&quot;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는 토론이나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새겨 듣고 따라야 할 인격체이십니다.<br/><br/>우리의 소망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애통하고 자복하는 심령을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마음이 갈라지기 쉽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을 위해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종교적 열심이나 이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진 소망의 근원입니다. 종교는 유월절 명절을 지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제자도는 유월절 어린양을 따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quot;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quot;</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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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31 Mar 2026 1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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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18장 1-27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18장 1-27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요한복음 18:1–27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어떤 사건에 떠밀려 가는 연약한 피해자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앞으로 닥칠 일을 다 아시면서도 친히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구약의 다윗 왕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을 당하고, 다윗을 따라야 마땅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배반의 슬픔 가운데 기드론을 건넜었습니다, 이제 구약의 다윗보다 더 진정한 "다윗"이신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고,백성에게 버림을 받기위해 기드론을 건너십니다.  가룟 유다가 군인들을 데리고 왔을 때에도 예수님은 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먼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5절). 그러자 그들은 뒤로 물러가 땅에 엎드러집니다. 참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의 권능이 있으시지만, 그 능력으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시고 오...]]></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요한복음 18:1–27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어떤 사건에 떠밀려 가는 연약한 피해자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앞으로 닥칠 일을 다 아시면서도 친히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구약의 다윗 왕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을 당하고, 다윗을 따라야 마땅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배반의 슬픔 가운데 기드론을 건넜었습니다, 이제 구약의 다윗보다 더 진정한 &quot;다윗&quot;이신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고,백성에게 버림을 받기위해 기드론을 건너십니다.<br/><br/>가룟 유다가 군인들을 데리고 왔을 때에도 예수님은 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먼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5절). 그러자 그들은 뒤로 물러가 땅에 엎드러집니다. 참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의 권능이 있으시지만, 그 능력으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도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br/>8-9절, &quot;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quot;<br/><br/>반면 베드로는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벱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11절).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베드로의 열심이 아니라 아들의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br/><br/>묵상<br/>저는 오늘 본문에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결코 수동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적극적으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도” 앞으로 나아가십니다(4절).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연한 비극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마지못해 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 생명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순종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삶이 요동쳐도,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숨과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br/><br/>말씀은 우리의 모습을 베드로를 통해 보여 줍니다. 우리 안에도 다 “베드로”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한순간에는 용감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너무 약합니다. 칼을 휘두를 준비는 되어 있지만, 어린 여종의 질문 하나는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는 종종 강한 감정을 진리 혹은 신실함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열심과 헌신은 종교성이 강하고 우리 자신의 의를 세우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환난이나 어려움이 오면 쉽게 타협합니다. 그리고 무너집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상황을 힘들어하여 결국 베드로와 같은 비겁한 선택을 합니다.<br/><br/>예수님은 제자들이 실패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신 것은 우리가 신실함을 보셔서가 아니라, 우리가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주님을 붙드는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신실하심으로 우리를 붙드신다는 데 있습니다. 베드로는 넘어지지만 예수님은 넘어지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실패에서도 다시 일으켜 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br/><br/>기도<br/>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붙잡히시는 그 시간에도 완전한 순종으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셨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자주 베드로처럼 쉽게 흔들립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한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실하심 안에서 쉬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주님 가까이 두시고, 예수님을 더 담대히 시인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요한복음 18:1–27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시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어떤 사건에 떠밀려 가는 연약한 피해자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앞으로 닥칠 일을 다 아시면서도 친히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구약의 다윗 왕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을 당하고, 다윗을 따라야 마땅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배반의 슬픔 가운데 기드론을 건넜었습니다, 이제 구약의 다윗보다 더 진정한 &quot;다윗&quot;이신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고,백성에게 버림을 받기위해 기드론을 건너십니다.<br/><br/>가룟 유다가 군인들을 데리고 왔을 때에도 예수님은 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먼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5절). 그러자 그들은 뒤로 물러가 땅에 엎드러집니다. 참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의 권능이 있으시지만, 그 능력으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도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br/>8-9절, &quot;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quot;<br/><br/>반면 베드로는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벱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11절).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베드로의 열심이 아니라 아들의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br/><br/>묵상<br/>저는 오늘 본문에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결코 수동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적극적으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도” 앞으로 나아가십니다(4절).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연한 비극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을 위해 (마지못해 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 생명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순종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삶이 요동쳐도,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숨과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br/><br/>말씀은 우리의 모습을 베드로를 통해 보여 줍니다. 우리 안에도 다 “베드로”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한순간에는 용감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너무 약합니다. 칼을 휘두를 준비는 되어 있지만, 어린 여종의 질문 하나는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는 종종 강한 감정을 진리 혹은 신실함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열심과 헌신은 종교성이 강하고 우리 자신의 의를 세우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환난이나 어려움이 오면 쉽게 타협합니다. 그리고 무너집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상황을 힘들어하여 결국 베드로와 같은 비겁한 선택을 합니다.<br/><br/>예수님은 제자들이 실패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신 것은 우리가 신실함을 보셔서가 아니라, 우리가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주님을 붙드는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신실하심으로 우리를 붙드신다는 데 있습니다. 베드로는 넘어지지만 예수님은 넘어지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사람은 어떤 실패에서도 다시 일으켜 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br/><br/>기도<br/>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붙잡히시는 그 시간에도 완전한 순종으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셨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자주 베드로처럼 쉽게 흔들립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한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실하심 안에서 쉬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주님 가까이 두시고, 예수님을 더 담대히 시인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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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0 Mar 2026 12: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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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찬송가 프로젝트: 2026년 고난주간</itunes:title>
    <title>찬송가 프로젝트: 2026년 고난주간</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전통적인 찬송가를 현대 음악으로 재해석한 노래 모음 (2집) 어서 돌아오오나 주를 멀리 떠났다내 주의 보혈은나 같은 죄인 살리신내 영혼이 은총입어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c) Jubilee Coach, 2026, made with Suno. Support the show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전통적인 찬송가를 현대 음악으로 재해석한 노래 모음 (2집)</p><ol><li>어서 돌아오오</li><li>나 주를 멀리 떠났다</li><li>내 주의 보혈은</li><li>나 같은 죄인 살리신</li><li>내 영혼이 은총입어</li><li>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li></ol><p>(c) Jubilee Coach, 2026, made with Suno.</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전통적인 찬송가를 현대 음악으로 재해석한 노래 모음 (2집)</p><ol><li>어서 돌아오오</li><li>나 주를 멀리 떠났다</li><li>내 주의 보혈은</li><li>나 같은 죄인 살리신</li><li>내 영혼이 은총입어</li><li>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li></ol><p>(c) Jubilee Coach, 2026, made with Suno.</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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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7 Mar 2026 14: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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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17장 1-16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17장 1-16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기도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예수님은 1절에서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십자가가 갑작스러운 비극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시는 갈보리 십자가는 죄인들을 위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 아래 준비된 구원입니다.  그리고 3절은 영생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즉, 영생은 그저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하여 영원하신 그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6절에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고 하시고, 11절에서는 “그들을 보전하사,” 15절에서는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기도하십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기도는 제...]]></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본문에는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기도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br/><br/>예수님은 1절에서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십자가가 갑작스러운 비극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시는 갈보리 십자가는 죄인들을 위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 아래 준비된 구원입니다.<br/><br/>그리고 3절은 영생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br/>&quot;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quot;<br/>즉, 영생은 그저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하여 영원하신 그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br/><br/>이어서 예수님은 6절에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고 하시고, 11절에서는 “그들을 보전하사,” 15절에서는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기도하십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기도는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는 온갖 환난을 당할 것이나 그들을 이 세상 밖으로 데려가 달라고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세상 한가운데서 지켜 달라고 기도하십니다.<br/><br/>묵상<br/>저는 이 본문에서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지키시는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br/>예수님은 제자들이 곧 흔들릴 것을 아십니다. 이미 베드로의 부인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베드로와 제자들의 흔들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그들을 끊어내지 못합니다. <br/>12절, &quot;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는 그때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들릴 것을 미리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를 지키십니다.<br/><br/>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심판주가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br/><br/>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결코 우리의 결심이나 노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너무도 쉽게 흔들리고 베드로처럼 예수를 마음과 행동으로 부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본질이 진토임을 기억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br/><br/>현대 사회의 우리는 &quot;빨리빨리&quot;의 삶을 삽니다. 날마다 바쁘고 분주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쉽게 흩어지고 믿음은 자주 흔들립니다. 사실 베드로만이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날마다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주님을 부인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할 때, 주님의 영광보다 나의 자존심이 더 중요할 때, 우리는 조용히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놀랍게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br/><br/>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힘든 이 세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4절과 16절에서 자기 백성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성도의 소망은 삶이 편해지고 쉽게 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도의 소망은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붙드시는 것을 기억해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습니다.<br/><br/>기도<br/>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 주시고 악한 자에게서 보호해 주옵소서. 오늘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지만 이 세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 살게 하시고, 모든 상황에서도 주님께 붙들린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본문에는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기도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br/><br/>예수님은 1절에서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십자가가 갑작스러운 비극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시는 갈보리 십자가는 죄인들을 위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 아래 준비된 구원입니다.<br/><br/>그리고 3절은 영생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br/>&quot;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quot;<br/>즉, 영생은 그저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하여 영원하신 그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br/><br/>이어서 예수님은 6절에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고 하시고, 11절에서는 “그들을 보전하사,” 15절에서는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기도하십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기도는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는 온갖 환난을 당할 것이나 그들을 이 세상 밖으로 데려가 달라고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세상 한가운데서 지켜 달라고 기도하십니다.<br/><br/>묵상<br/>저는 이 본문에서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끝까지 지키시는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br/>예수님은 제자들이 곧 흔들릴 것을 아십니다. 이미 베드로의 부인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베드로와 제자들의 흔들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그들을 끊어내지 못합니다. <br/>12절, &quot;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는 그때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들릴 것을 미리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를 지키십니다.<br/><br/>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심판주가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br/><br/>잊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결코 우리의 결심이나 노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너무도 쉽게 흔들리고 베드로처럼 예수를 마음과 행동으로 부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본질이 진토임을 기억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br/><br/>현대 사회의 우리는 &quot;빨리빨리&quot;의 삶을 삽니다. 날마다 바쁘고 분주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쉽게 흩어지고 믿음은 자주 흔들립니다. 사실 베드로만이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날마다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주님을 부인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할 때, 주님의 영광보다 나의 자존심이 더 중요할 때, 우리는 조용히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놀랍게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br/><br/>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힘든 이 세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4절과 16절에서 자기 백성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성도의 소망은 삶이 편해지고 쉽게 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도의 소망은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붙드시는 것을 기억해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습니다.<br/><br/>기도<br/>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 주시고 악한 자에게서 보호해 주옵소서. 오늘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지만 이 세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 살게 하시고, 모든 상황에서도 주님께 붙들린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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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7 Mar 2026 12: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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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어서 돌아오오 (음악)</itunes:title>
    <title>어서 돌아오오 (음악)</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전통 찬송가를 현대화 한 곡입니다.  새찬송가 527장(통 317장) '어서 돌아오오'는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회개를 촉구하는 한국 찬송가입니다. 전영택 작사, 박재훈 작곡으로 1960년대부터 불린 이 곡은 어둔 세상과 우리 자신 중심의 신앙에서 떠나 주님 품으로 돌아오라는 애절한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Verse 1]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오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Verse 2]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마다 문 열어 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Verse 3]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Support the s...]]></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전통 찬송가를 현대화 한 곡입니다. </p><p>새찬송가 527장(통 317장) &apos;어서 돌아오오&apos;는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회개를 촉구하는 한국 찬송가입니다. 전영택 작사, 박재훈 작곡으로 1960년대부터 불린 이 곡은 어둔 세상과 우리 자신 중심의 신앙에서 떠나 주님 품으로 돌아오라는 애절한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p><p>[Verse 1]<br/>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br/>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br/>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오<br/>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br/><br/>[Verse 2]<br/>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br/>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br/>밤마다 문 열어 놓고 마음 졸이시며<br/>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br/><br/>[Verse 3]<br/>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br/>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br/>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br/>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br/>어서.<br/><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전통 찬송가를 현대화 한 곡입니다. </p><p>새찬송가 527장(통 317장) &apos;어서 돌아오오&apos;는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회개를 촉구하는 한국 찬송가입니다. 전영택 작사, 박재훈 작곡으로 1960년대부터 불린 이 곡은 어둔 세상과 우리 자신 중심의 신앙에서 떠나 주님 품으로 돌아오라는 애절한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p><p>[Verse 1]<br/>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br/>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br/>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오<br/>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br/><br/>[Verse 2]<br/>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br/>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br/>밤마다 문 열어 놓고 마음 졸이시며<br/>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br/><br/>[Verse 3]<br/>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br/>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br/>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br/>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br/>어서.<br/><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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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금까지는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아버지에 대하여 더 밝히 드러내어 말씀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의 모든 문제가 갑자기 쉽게 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부터 오셔서 세상에 들어오셨고, 이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분명히 알기를 원하십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은 제자들에게는 힘든 일들이겠지만 그것들은 우연이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자신감 있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시니, 이제는 알겠고 이제는 믿는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이다 …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29–30절). 그들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들은 자신...]]></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 </p><p>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금까지는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아버지에 대하여 더 밝히 드러내어 말씀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의 모든 문제가 갑자기 쉽게 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부터 오셔서 세상에 들어오셨고, 이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분명히 알기를 원하십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은 제자들에게는 힘든 일들이겠지만 그것들은 우연이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자신감 있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시니, 이제는 알겠고 이제는 믿는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이다 …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29–30절). 그들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보다 훨씬 연약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조용하지만 무게 있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1절). 실제로 그들은 이 고백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각자 자기 자리로 물러나고, 예수님은 홀로 남겨지실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 순간에도 자신이 참으로 혼자인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장 위로가 되는 약속 가운데 하나를 주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33절). </p><p>묵상 </p><p>이 본문에서 인상 깊은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말씀하시는가 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포장하거나 그들이 실제보다 더 강한 사람들인 것처럼 대해 주시지도 않으십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두려움이 곧 그들 안에 남아 있는 연약함을 드러낼 것을 아십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종종 어떤 진리를 잠시 깨달은 것을 깊은 성숙으로 착각합니다. 이제는 준비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압박의 시간이 오면 우리의 용기가 얼마나 빨리 무너지는지를 그제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심으로 제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붙들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버리고 흩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이미 그들을 위해 평안의 말씀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참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놀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두려워하는지, 얼마나 빨리 흩어지는지, 얼마나 자주 자기 안으로 숨으려 하는지를 이미 아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여전히 우리를 붙드시며, 계속해서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십니다. 제자들은 곧 크게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의 실패가 아버지의 사랑을 지워 버리지는 못합니다. 그들의 연약함이 예수님께서 열어 주신 관계를 무효로 만들지도 못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평안은 우리가 얼마나 잘 버티고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평안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이 이미 이루신 십자가 구원에 있습니다.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 안에서가 아닙니다. 환경 속에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 안에서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안입니다. 평안은 거기에서만 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trouble-free life를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그리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는 자기확신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쉬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떨 수 있습니다. 여전히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압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아직 모든 답을 다 얻지 못했어도, 이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 </p><p>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금까지는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아버지에 대하여 더 밝히 드러내어 말씀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의 모든 문제가 갑자기 쉽게 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부터 오셔서 세상에 들어오셨고, 이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분명히 알기를 원하십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은 제자들에게는 힘든 일들이겠지만 그것들은 우연이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자신감 있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시니, 이제는 알겠고 이제는 믿는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이다 …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29–30절). 그들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보다 훨씬 연약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조용하지만 무게 있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1절). 실제로 그들은 이 고백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각자 자기 자리로 물러나고, 예수님은 홀로 남겨지실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 순간에도 자신이 참으로 혼자인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가장 위로가 되는 약속 가운데 하나를 주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33절). </p><p>묵상 </p><p>이 본문에서 인상 깊은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말씀하시는가 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포장하거나 그들이 실제보다 더 강한 사람들인 것처럼 대해 주시지도 않으십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두려움이 곧 그들 안에 남아 있는 연약함을 드러낼 것을 아십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종종 어떤 진리를 잠시 깨달은 것을 깊은 성숙으로 착각합니다. 이제는 준비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압박의 시간이 오면 우리의 용기가 얼마나 빨리 무너지는지를 그제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심으로 제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붙들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을 버리고 흩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이미 그들을 위해 평안의 말씀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참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놀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두려워하는지, 얼마나 빨리 흩어지는지, 얼마나 자주 자기 안으로 숨으려 하는지를 이미 아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여전히 우리를 붙드시며, 계속해서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십니다. 제자들은 곧 크게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의 실패가 아버지의 사랑을 지워 버리지는 못합니다. 그들의 연약함이 예수님께서 열어 주신 관계를 무효로 만들지도 못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평안은 우리가 얼마나 잘 버티고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평안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이 이미 이루신 십자가 구원에 있습니다.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 안에서가 아닙니다. 환경 속에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 안에서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안입니다. 평안은 거기에서만 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trouble-free life를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그리고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는 자기확신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쉬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떨 수 있습니다. 여전히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압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아직 모든 답을 다 얻지 못했어도, 이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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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Mar 2026 1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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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복음 16장 1-24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요한복음 16:1–24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앞으로 그들에게 임할 일들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익숙하고 정들었던 회당에서 쫓겨나고, 더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을 해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미리 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에게 두렵움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넘어지지 않도록 준비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해하기 더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7절).   이 말씀은 제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정말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셔야 보혜사 성령께서 오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고,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흔히 "성령운동"이...]]></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요한복음 16:1–24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앞으로 그들에게 임할 일들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익숙하고 정들었던 회당에서 쫓겨나고, 더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을 해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미리 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에게 두렵움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넘어지지 않도록 준비시키기 위함입니다.</p><p><br/></p><p>예수님은 제자들이 이해하기 더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p><p>“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7절).</p><p><br/></p><p>이 말씀은 제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정말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셔야 보혜사 성령께서 오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고,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흔히 &quot;성령운동&quot;이라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스쳐 갑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모든 사역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함으로써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p><p><br/></p><p>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거듭 말씀하십니다.</p><p>“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0절).</p><p><br/></p><p>임산부에게 해산의 고통이 결국 출생이라는 기쁨으로 이어지듯이, 제자들의 슬픔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며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담대히 기도하는 삶으로 이어질 것입니다.</p><p><br/></p><p>묵상</p><p>이 말씀에서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삶을 절대로 쉽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은 편한 삶을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를 잘 따르는 자들에게 슬픔도 끊기지 않고, 저항도 많고, 혼란도 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다. 그 모든 것은 절대로 예수님의 돌보심과 계획 밖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p><p><br/></p><p>삶이 힘들고 또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가 무엇인가 잘못했나라고 자문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깊은 슬픔조차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당황하는 것은 상황의 통제권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우리 삶의 &quot;통제권&quot;은 아예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그리고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어쩌면 환난과 핍박을 통해 우리가 절실히 깨닫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p><p><br/></p><p>예수님은 떠나가시지만 자기 백성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셔서 그리스도를 더 분명히 알게 하시고, 더 귀하게 보게 하시며, 더 중심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단지 슬픔 뒤에 기쁨이 온다고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놀랍게도 슬픔 자체가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방식입니다. 십자가가 부활로 이어졌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슬픔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p><p><br/></p><p>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임한 슬픔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면 됩니다. 혼란과 슬픔을 가지고 주님 발 앞에 내려놓으면 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주님은 우리의 눈물과 슬픔을 주 안에서의 기쁨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할렐루야!</p><p><br/></p><p>기도</p><p>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아버지의 뜻이 잘 보이지 않을 때에도 주 예수님을 신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보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슬픔이 무겁게 느껴질 때,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이 마지막이 아님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요한복음 16:1–24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앞으로 그들에게 임할 일들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익숙하고 정들었던 회당에서 쫓겨나고, 더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을 해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미리 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에게 두렵움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넘어지지 않도록 준비시키기 위함입니다.</p><p><br/></p><p>예수님은 제자들이 이해하기 더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p><p>“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7절).</p><p><br/></p><p>이 말씀은 제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정말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셔야 보혜사 성령께서 오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고,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흔히 &quot;성령운동&quot;이라고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스쳐 갑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모든 사역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함으로써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p><p><br/></p><p>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거듭 말씀하십니다.</p><p>“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0절).</p><p><br/></p><p>임산부에게 해산의 고통이 결국 출생이라는 기쁨으로 이어지듯이, 제자들의 슬픔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며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담대히 기도하는 삶으로 이어질 것입니다.</p><p><br/></p><p>묵상</p><p>이 말씀에서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삶을 절대로 쉽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은 편한 삶을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를 잘 따르는 자들에게 슬픔도 끊기지 않고, 저항도 많고, 혼란도 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다. 그 모든 것은 절대로 예수님의 돌보심과 계획 밖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p><p><br/></p><p>삶이 힘들고 또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가 무엇인가 잘못했나라고 자문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깊은 슬픔조차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당황하는 것은 상황의 통제권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우리 삶의 &quot;통제권&quot;은 아예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그리고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어쩌면 환난과 핍박을 통해 우리가 절실히 깨닫는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p><p><br/></p><p>예수님은 떠나가시지만 자기 백성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령께서 오셔서 그리스도를 더 분명히 알게 하시고, 더 귀하게 보게 하시며, 더 중심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단지 슬픔 뒤에 기쁨이 온다고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놀랍게도 슬픔 자체가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방식입니다. 십자가가 부활로 이어졌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슬픔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p><p><br/></p><p>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임한 슬픔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면 됩니다. 혼란과 슬픔을 가지고 주님 발 앞에 내려놓으면 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전부 이해하지 못해도 주님은 우리의 눈물과 슬픔을 주 안에서의 기쁨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할렐루야!</p><p><br/></p><p>기도</p><p>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아버지의 뜻이 잘 보이지 않을 때에도 주 예수님을 신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보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슬픔이 무겁게 느껴질 때,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이 마지막이 아님을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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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5 Mar 2026 1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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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복음 15장 18-27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유도 함께 알려 주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18절).  다시 말해 제자들이 미움을 받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증거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9절).  예수님은 이 미움이 단지 사람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이 세상은 그리스도께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은 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인간의 교만을 흔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위는 우리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 중심...]]></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유도 함께 알려 주십니다. <br/>“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18절). <br/>다시 말해 제자들이 미움을 받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증거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9절).<br/><br/>예수님은 이 미움이 단지 사람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이 세상은 그리스도께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은 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인간의 교만을 흔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위는 우리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 중심을 건드립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무리 선을 행하고 진실을 말해도 예수를 거부하는 이 세상으로부터는 미움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br/><br/>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경고만 주지 않으십니다. 당연히 약속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다름이 아닌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이고, 아울러 이제 제자들도 그 증언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26–27절). 그러므로 이 본문은 단지 미움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확신과 인내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증거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br/><br/>묵상<br/>왜 세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선을 행하고 진실을 말할 때에도 그들을 미워할까요?<br/>세상은 우리의 중심을 바치지 않고 외적 행위와 열심만 내도 인정받는 종교는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려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어느 정도 적당한 도덕은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하는 우리 하늘 아버지가 거룩하심같이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br/><br/>성경이 제시하는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위로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섬겨야 마땅한 왕, 즉 주님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 중 하나가 하나님에 대한 진실,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 우리의 죄에 대한 것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분을 불편해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어둠으로 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어둠이 빛으로 말미암아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듯, 이 세상이 예수를 미워하듯, 그리스도를 닮은 선은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권위를 담은 진리의 말씀은 거절당하기 일쑤입니다.<br/><br/>물론 우리는 조심해야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옳은 이유로 반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교만과 편견 때문에 세상과 이웃으로부터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마땅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점을 인정한 뒤에도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분명합니다. 믿는 자들은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고 증언하기 때문입니다.<br/><br/>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미리 주십니다. 제자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할 때, 제자들이 무너지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까닭 없이 미움을 받으셨고, 거절당하셨으며,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미움은 하나님의 은혜를 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십자가의 은혜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br/><br/>우리는 인정받고 싶고 또 공동체에 속하고 싶기 때문에 미움을 받거나 거절을 받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은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주와 동행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증인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미워할 수 있어도 침묵하게 하지 못합니다. 할렐루야!</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br/>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유도 함께 알려 주십니다. <br/>“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18절). <br/>다시 말해 제자들이 미움을 받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증거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9절).<br/><br/>예수님은 이 미움이 단지 사람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이 세상은 그리스도께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은 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인간의 교만을 흔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권위는 우리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 중심을 건드립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무리 선을 행하고 진실을 말해도 예수를 거부하는 이 세상으로부터는 미움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br/><br/>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경고만 주지 않으십니다. 당연히 약속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다름이 아닌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이고, 아울러 이제 제자들도 그 증언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26–27절). 그러므로 이 본문은 단지 미움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확신과 인내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증거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br/><br/>묵상<br/>왜 세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선을 행하고 진실을 말할 때에도 그들을 미워할까요?<br/>세상은 우리의 중심을 바치지 않고 외적 행위와 열심만 내도 인정받는 종교는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려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어느 정도 적당한 도덕은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하는 우리 하늘 아버지가 거룩하심같이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br/><br/>성경이 제시하는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위로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섬겨야 마땅한 왕, 즉 주님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 중 하나가 하나님에 대한 진실,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 우리의 죄에 대한 것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분을 불편해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어둠으로 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어둠이 빛으로 말미암아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듯, 이 세상이 예수를 미워하듯, 그리스도를 닮은 선은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권위를 담은 진리의 말씀은 거절당하기 일쑤입니다.<br/><br/>물론 우리는 조심해야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옳은 이유로 반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교만과 편견 때문에 세상과 이웃으로부터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마땅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점을 인정한 뒤에도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분명합니다. 믿는 자들은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고 증언하기 때문입니다.<br/><br/>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미리 주십니다. 제자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할 때, 제자들이 무너지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까닭 없이 미움을 받으셨고, 거절당하셨으며,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미움은 하나님의 은혜를 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십자가의 은혜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br/><br/>우리는 인정받고 싶고 또 공동체에 속하고 싶기 때문에 미움을 받거나 거절을 받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은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진리의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주와 동행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증인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미워할 수 있어도 침묵하게 하지 못합니다. 할렐루야!</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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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4 Mar 2026 16: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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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15장 1-17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15장 1-17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요한복음 15:1–17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난 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나무로 불렸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온전히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로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포도나무가 아니라 가지입니다. 가지는 스스로 살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열매는 바쁨이나 종교 활동에서 나오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살아 있는 연합에서 나옵니다.   묵상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종교 단체 안에 남아 있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교회"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홀로...]]></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요한복음 15:1–17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난 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나무로 불렸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온전히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로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포도나무가 아니라 가지입니다. 가지는 스스로 살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열매는 바쁨이나 종교 활동에서 나오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살아 있는 연합에서 나옵니다.</p><p><br/></p><p>묵상</p><p>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종교 단체 안에 남아 있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quot;교회&quot;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홀로 서는 신앙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는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포도나무는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그리스도이시고,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p><p><br/></p><p>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주권 아래 사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게 하며, 주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주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매우 실제적이었습니다. 가이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우상을 버리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생각과 원함과 관계와 선택의 주인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로는 원하지만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은 원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열매는 원하지만 실제로 그리스도를 의존하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잊지 마십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p><p><br/></p><p>예수님은 메마른 가지에게 스스로 살아나 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가지치기는 버리심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가지치기는 때로 아픕니다. 누렇게 바랜 잎사귀들이 다 떨어져 나가면 마치 벗은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잃어버리는 것 같고,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 깎여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p><p>15장 2절,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p><p><br/></p><p>그렇다면 이렇게 맺는 열매는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p><p>야고보서 1장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p><p><br/></p><p>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힘으로 거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은 우리 힘이나 능력이나 숫자나 재물로 무엇을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붙드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신실히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요한복음 15:1–17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난 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나무로 불렸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온전히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로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포도나무가 아니라 가지입니다. 가지는 스스로 살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열매는 바쁨이나 종교 활동에서 나오지 않고, 그리스도와의 살아 있는 연합에서 나옵니다.</p><p><br/></p><p>묵상</p><p>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종교 단체 안에 남아 있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quot;교회&quot;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홀로 서는 신앙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는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포도나무는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그리스도이시고,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p><p><br/></p><p>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주권 아래 사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게 하며, 주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주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매우 실제적이었습니다. 가이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우상을 버리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생각과 원함과 관계와 선택의 주인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로는 원하지만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은 원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열매는 원하지만 실제로 그리스도를 의존하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잊지 마십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p><p><br/></p><p>예수님은 메마른 가지에게 스스로 살아나 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가지치기는 버리심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가지치기는 때로 아픕니다. 누렇게 바랜 잎사귀들이 다 떨어져 나가면 마치 벗은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잃어버리는 것 같고,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 깎여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p><p>15장 2절,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p><p><br/></p><p>그렇다면 이렇게 맺는 열매는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p><p>야고보서 1장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p><p><br/></p><p>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힘으로 거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은 우리 힘이나 능력이나 숫자나 재물로 무엇을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붙드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신실히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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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Mar 2026 17: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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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찬양: 나는 포도나무: 내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5장)</itunes:title>
    <title>찬양: 나는 포도나무: 내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5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Verse 1]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오늘 주를 위해 귀한 열매 맺으라 사랑 안에 거하라 나의 평안 주리니 주의 말씀 안에 살며 주를 따르라  [Chorus]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신실하고 진실하게 주를 섬기라 무엇이든 구하라 응답하여 주리니 그 큰 사랑 안에서 우리 거하리  [Verse 2] 내가 일러준 말로 너희 깨끗해졌으니 내 안에 거할 때 많은 열매 맺으리라 변함없는 약속 내 안에 거하라 하늘의 그 영광을 함께 나누리  [Bridge / Ending] 이제 내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환난의 폭풍 중에도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 마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마라 네 손 놓지 않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오직 나의 사랑하는 자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영원히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Support the show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Verse 1]<br/>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br/>오늘 주를 위해 귀한 열매 맺으라<br/>사랑 안에 거하라 나의 평안 주리니<br/>주의 말씀 안에 살며 주를 따르라<br/><br/>[Chorus]<br/>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br/>신실하고 진실하게 주를 섬기라<br/>무엇이든 구하라 응답하여 주리니<br/>그 큰 사랑 안에서 우리 거하리<br/><br/>[Verse 2]<br/>내가 일러준 말로 너희 깨끗해졌으니<br/>내 안에 거할 때 많은 열매 맺으리라<br/>변함없는 약속 내 안에 거하라<br/>하늘의 그 영광을 함께 나누리<br/><br/>[Bridge / Ending]<br/>이제 내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br/>환난의 폭풍 중에도 너를 지키는 자라<br/>두려워 마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br/>놀라지 마라 네 손 놓지 않으리라<br/><br/>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br/>내 것이라, 오직 나의 사랑하는 자라<br/>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br/>너를 영원히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Verse 1]<br/>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br/>오늘 주를 위해 귀한 열매 맺으라<br/>사랑 안에 거하라 나의 평안 주리니<br/>주의 말씀 안에 살며 주를 따르라<br/><br/>[Chorus]<br/>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br/>신실하고 진실하게 주를 섬기라<br/>무엇이든 구하라 응답하여 주리니<br/>그 큰 사랑 안에서 우리 거하리<br/><br/>[Verse 2]<br/>내가 일러준 말로 너희 깨끗해졌으니<br/>내 안에 거할 때 많은 열매 맺으리라<br/>변함없는 약속 내 안에 거하라<br/>하늘의 그 영광을 함께 나누리<br/><br/>[Bridge / Ending]<br/>이제 내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br/>환난의 폭풍 중에도 너를 지키는 자라<br/>두려워 마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br/>놀라지 마라 네 손 놓지 않으리라<br/><br/>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br/>내 것이라, 오직 나의 사랑하는 자라<br/>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br/>너를 영원히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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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3 Mar 2026 1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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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2026년 고난주간 찬송가 모음</itunes:title>
    <title>2026년 고난주간 찬송가 모음</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아 하나님의 은혜로갈보리산 위에주 달려 죽은 십자가만왕의 왕 내 주께서오 거룩하신 주님거기 너 있었는가(c) Jubilee Coach 2026, Made using Suno.ai technology   Support the show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ol><li>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li><li>아 하나님의 은혜로</li><li>갈보리산 위에</li><li>주 달려 죽은 십자가</li><li>만왕의 왕 내 주께서</li><li>오 거룩하신 주님</li><li>거기 너 있었는가</li></ol><p>(c) Jubilee Coach 2026, Made using Suno.ai technology</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ol><li>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li><li>아 하나님의 은혜로</li><li>갈보리산 위에</li><li>주 달려 죽은 십자가</li><li>만왕의 왕 내 주께서</li><li>오 거룩하신 주님</li><li>거기 너 있었는가</li></ol><p>(c) Jubilee Coach 2026, Made using Suno.ai technology</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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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Mar 2026 19: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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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14장 15-21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14장 15-21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Support the show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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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Mar 2026 19: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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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14장 1-14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14장 1-14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Support the show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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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Mar 2026 19: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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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살아계신 주 (힙합 버전)</itunes:title>
    <title>살아계신 주 (힙합 버전)</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Intro] Yeah, look. He’s alive. Not just a story, but a living hope. Check it. [Verse 1] 하늘 보좌 내려놓고 이 땅 위에 Descent  날 위해 걸어가신 고통의 그 Pavement  독생자 예수, 죄의 사슬을 다 끊었네  사망 권세 이기고 무덤 문을 열었네  My Savior, My King, 죽음에서 일어난 Life  내 모든 죄의 빚을 갚아주신 거룩한 Sacrifice   [Refrain] 살아계신 주, 내 영혼의 유일한 Hope  그분 안에 있기에 절망은 No Nope  걱정 근심 다 던져, He’s leading the way  기쁨이 넘쳐나, 내 삶은 매일이 Bright day   [Verse 2] Born again, 새로운 호흡, 이젠 달라진 Vibe  주의 사랑 안에서 난 비로소 Al...]]></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Intro]</p><p>Yeah, look. He’s alive. Not just a story, but a living hope. Check it.</p><p>[Verse 1]</p><p>하늘 보좌 내려놓고 이 땅 위에 <b>Descent</b> </p><p>날 위해 걸어가신 고통의 그 <b>Pavement</b> </p><p>독생자 예수, 죄의 사슬을 다 <b>끊었네</b> </p><p>사망 권세 이기고 무덤 문을 <b>열었네</b> </p><p>My Savior, My King, 죽음에서 일어난 <b>Life</b> </p><p>내 모든 죄의 빚을 갚아주신 거룩한 <b>Sacrifice</b></p><p><br/></p><p>[Refrain]</p><p>살아계신 주, 내 영혼의 유일한 <b>Hope</b> </p><p>그분 안에 있기에 절망은 No <b>Nope</b> </p><p>걱정 근심 다 던져, He’s leading the <b>way</b> </p><p>기쁨이 넘쳐나, 내 삶은 매일이 <b>Bright day</b></p><p><br/></p><p>[Verse 2]</p><p>Born again, 새로운 호흡, 이젠 달라진 <b>Vibe</b> </p><p>주의 사랑 안에서 난 비로소 <b>Alive</b> </p><p>세상은 흔들려도 난 흔들리지 <b>않아</b> </p><p>주님의 손 잡고 확신 속에 <b>살아</b> 도우시는 그 은혜, 매일 느껴지는 <b>Touch</b> </p><p>주님을 향한 내 믿음, I love You so <b>much</b></p><p><br/></p><p>[Verse 3]</p><p>영광의 그날까지 멈추지 않는 <b>Fight</b> </p><p>어둠 속에서도 난 비추지 그 <b>Light</b> </p><p>멀고 험한 승리의 길, 땀방울이 <b>맺혀도</b> </p><p>주님 내 앞길 지키시니 결코 안 <b>지쳐</b> </p><p>Last breath까지 주를 위해 난 <b>Run</b> </p><p>이미 이긴 싸움, 승리는 오직 <b>The Son</b></p><p><br/></p><p>[Refrain]</p><p>살아계신 주, 내 영혼의 유일한 <b>Hope</b> </p><p>그분 안에 있기에 절망은 No <b>Nope</b> </p><p>걱정 근심 다 던져, He’s leading the <b>way</b> </p><p>기쁨이 넘쳐나, 내 삶은 매일이 <b>Bright day</b></p><p><br/></p><p>(c) JubileeeCoach with Suno</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Intro]</p><p>Yeah, look. He’s alive. Not just a story, but a living hope. Check it.</p><p>[Verse 1]</p><p>하늘 보좌 내려놓고 이 땅 위에 <b>Descent</b> </p><p>날 위해 걸어가신 고통의 그 <b>Pavement</b> </p><p>독생자 예수, 죄의 사슬을 다 <b>끊었네</b> </p><p>사망 권세 이기고 무덤 문을 <b>열었네</b> </p><p>My Savior, My King, 죽음에서 일어난 <b>Life</b> </p><p>내 모든 죄의 빚을 갚아주신 거룩한 <b>Sacrifice</b></p><p><br/></p><p>[Refrain]</p><p>살아계신 주, 내 영혼의 유일한 <b>Hope</b> </p><p>그분 안에 있기에 절망은 No <b>Nope</b> </p><p>걱정 근심 다 던져, He’s leading the <b>way</b> </p><p>기쁨이 넘쳐나, 내 삶은 매일이 <b>Bright day</b></p><p><br/></p><p>[Verse 2]</p><p>Born again, 새로운 호흡, 이젠 달라진 <b>Vibe</b> </p><p>주의 사랑 안에서 난 비로소 <b>Alive</b> </p><p>세상은 흔들려도 난 흔들리지 <b>않아</b> </p><p>주님의 손 잡고 확신 속에 <b>살아</b> 도우시는 그 은혜, 매일 느껴지는 <b>Touch</b> </p><p>주님을 향한 내 믿음, I love You so <b>much</b></p><p><br/></p><p>[Verse 3]</p><p>영광의 그날까지 멈추지 않는 <b>Fight</b> </p><p>어둠 속에서도 난 비추지 그 <b>Light</b> </p><p>멀고 험한 승리의 길, 땀방울이 <b>맺혀도</b> </p><p>주님 내 앞길 지키시니 결코 안 <b>지쳐</b> </p><p>Last breath까지 주를 위해 난 <b>Run</b> </p><p>이미 이긴 싸움, 승리는 오직 <b>The Son</b></p><p><br/></p><p>[Refrain]</p><p>살아계신 주, 내 영혼의 유일한 <b>Hope</b> </p><p>그분 안에 있기에 절망은 No <b>Nope</b> </p><p>걱정 근심 다 던져, He’s leading the <b>way</b> </p><p>기쁨이 넘쳐나, 내 삶은 매일이 <b>Bright day</b></p><p><br/></p><p>(c) JubileeeCoach with Suno</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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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9 Mar 2026 1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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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묵상과 찬양</itunes:title>
    <title>묵상과 찬양</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오직 예수뿐이네, 내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하나님의 은혜 (내게 족하네) 선한 목자 예수 나를 위하여 주 달려 죽은 십자가 빛나고 높은 보좌와 회개의 노래 여호와께 돌아가자 Support the show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직 예수뿐이네,</p><p>내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p><p>내 기도하는 그 시간</p><p>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p><p>하나님의 은혜 (내게 족하네)</p><p>선한 목자 예수 나를 위하여</p><p>주 달려 죽은 십자가</p><p>빛나고 높은 보좌와</p><p>회개의 노래</p><p>여호와께 돌아가자</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직 예수뿐이네,</p><p>내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p><p>내 기도하는 그 시간</p><p>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p><p>하나님의 은혜 (내게 족하네)</p><p>선한 목자 예수 나를 위하여</p><p>주 달려 죽은 십자가</p><p>빛나고 높은 보좌와</p><p>회개의 노래</p><p>여호와께 돌아가자</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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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8 Mar 2026 14: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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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시편 146편</itunes:title>
    <title>시편 146편</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시편 146편은 '여호와를 찬양하자'라는 뜻을 가진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끝맺는 시편입니다. 시편 150편의 마지막 5편의 첫번째 시입니다. 이 시편들에서 '할렐루야'는 모두 10회 반복이 됩니다. 성경에서 숫자 10은 완전함을 뜻합니다. 1-2절,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시인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즉 여호와만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구원하시는 왕이라 노래합니다. 우리가 이제 2025년을 마무리 지으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신뢰하고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5절,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인은 아무리 크게 보여...]]></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시편 146편은 &apos;여호와를 찬양하자&apos;라는 뜻을 가진 &apos;할렐루야&apos;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끝맺는 시편입니다. 시편 150편의 마지막 5편의 첫번째 시입니다. 이 시편들에서 &apos;할렐루야&apos;는 모두 10회 반복이 됩니다. 성경에서 숫자 10은 완전함을 뜻합니다.</p><p>1-2절, &quot;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p><p>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quot;</p><p><br/></p><p>시인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즉 여호와만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구원하시는 왕이라 노래합니다. 우리가 이제 2025년을 마무리 지으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신뢰하고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p><p>3-5절, &quot;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p><p>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p><p>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quot;</p><p><br/></p><p>시인은 아무리 크게 보여도 이 세상 통치자들을 신뢰하지 말라는 권고로 부터 야곱 즉 언약의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자의 진정한 행복을 노래하며 끝으로 이 세상에서 소외되기 쉽고 약자라서 흔히 천대를 받는 자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p><p><br/></p><p>시인은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인 듯 자신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는 유력한 것들을 의지하지 않고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겠다는 의지를 실천으로 옮기겠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자신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길 원합니다. 과연 우리는 찬양할 이유를 오직 하나님 그 분에게서만 찾으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p><p><br/></p><p>6-10절, &quot;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p><p>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p><p>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p><p>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p><p>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quot;</p><p><br/></p><p>시인의 하나님은 약한 자의 고통에 함께하시면서 그들의 아픔을 해결하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인애와 공의와 정의가 무너진 이 세상의 어그러진 재판을 바로잡고, 굶주린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으로 만족을 주시고, 억울한 자들에게 자유를, 장애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십니다.</p><p><br/></p><p>시인의 믿음에는 결국 강하게 보여도 악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는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공의가 뒤틀어진 상황에 냉소하는 정도로 부분적 우월감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비난하는 것이 마치 연약한 사람들을 실제로 돕는 듯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apos;고아와 과부&apos;를 그들의 환난 중에 조금이라도 보살필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요?</p><p><br/></p><p>파란만장한 지난 한 해 동안 파동치는 물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갑은 더욱 얇아지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도 메말라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더욱 뚜렷이 보여줄 수 있을까요? 헐벗고 굶주린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다 도울 수는 없겠지만 우리 모두는 한 사람의 &apos;이웃&apos;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복음의 진정성을 우리 삶으로 증명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p><p><br/></p><p>아무쪼록 하나님 나라의 인애와 공의와 정의를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p><p><br/></p><p>주 안에서</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시편 146편은 &apos;여호와를 찬양하자&apos;라는 뜻을 가진 &apos;할렐루야&apos;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끝맺는 시편입니다. 시편 150편의 마지막 5편의 첫번째 시입니다. 이 시편들에서 &apos;할렐루야&apos;는 모두 10회 반복이 됩니다. 성경에서 숫자 10은 완전함을 뜻합니다.</p><p>1-2절, &quot;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p><p>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quot;</p><p><br/></p><p>시인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즉 여호와만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구원하시는 왕이라 노래합니다. 우리가 이제 2025년을 마무리 지으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신뢰하고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p><p>3-5절, &quot;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p><p>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p><p>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quot;</p><p><br/></p><p>시인은 아무리 크게 보여도 이 세상 통치자들을 신뢰하지 말라는 권고로 부터 야곱 즉 언약의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자의 진정한 행복을 노래하며 끝으로 이 세상에서 소외되기 쉽고 약자라서 흔히 천대를 받는 자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p><p><br/></p><p>시인은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인 듯 자신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는 유력한 것들을 의지하지 않고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겠다는 의지를 실천으로 옮기겠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 자신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길 원합니다. 과연 우리는 찬양할 이유를 오직 하나님 그 분에게서만 찾으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p><p><br/></p><p>6-10절, &quot;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p><p>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p><p>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p><p>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p><p>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quot;</p><p><br/></p><p>시인의 하나님은 약한 자의 고통에 함께하시면서 그들의 아픔을 해결하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인애와 공의와 정의가 무너진 이 세상의 어그러진 재판을 바로잡고, 굶주린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으로 만족을 주시고, 억울한 자들에게 자유를, 장애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십니다.</p><p><br/></p><p>시인의 믿음에는 결국 강하게 보여도 악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는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공의가 뒤틀어진 상황에 냉소하는 정도로 부분적 우월감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비난하는 것이 마치 연약한 사람들을 실제로 돕는 듯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apos;고아와 과부&apos;를 그들의 환난 중에 조금이라도 보살필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요?</p><p><br/></p><p>파란만장한 지난 한 해 동안 파동치는 물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갑은 더욱 얇아지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도 메말라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더욱 뚜렷이 보여줄 수 있을까요? 헐벗고 굶주린 모든 사람들을 우리가 다 도울 수는 없겠지만 우리 모두는 한 사람의 &apos;이웃&apos;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복음의 진정성을 우리 삶으로 증명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p><p><br/></p><p>아무쪼록 하나님 나라의 인애와 공의와 정의를 세워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p><p><br/></p><p>주 안에서</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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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Mar 2026 2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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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미가서 1장</itunes:title>
    <title>미가서 1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선지자 미가는 이사야와 호세아와 동시대 인물로, 대략 주전 735–690년경에 활동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구약의 열두 소선지서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소선지서를 하나의 두루마리로 읽을 때, 미가서는 이스라엘(사마리아-예루살렘)을 향한 지역적 심판(호세아·아모스)과 니느웨를 향한 열방의 심판(요나·나훔)을 잇는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    1절, "여호와의 말씀이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하였으니"  이 짧은 소개는 매우 중요합니다. 미가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 가문 출신이 아닙니다. 그는 유다의 작은 시골 마을 모레셋, 블레셋 국경 인근에서 왔습니다. 말하자면 명문대가 아니라 지방대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 지도자들과 제도가 어떻게 평범한 "변두리"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는지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온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힘이 있습니다.    미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사역했습니다. 그당시 예루살렘 성...]]></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선지자 미가는 이사야와 호세아와 동시대 인물로, 대략 주전 735–690년경에 활동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구약의 열두 소선지서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소선지서를 하나의 두루마리로 읽을 때, 미가서는 이스라엘(사마리아-예루살렘)을 향한 지역적 심판(호세아·아모스)과 니느웨를 향한 열방의 심판(요나·나훔)을 잇는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br/><br/><br/><br/>1절, &quot;여호와의 말씀이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하였으니&quot;<br/><br/>이 짧은 소개는 매우 중요합니다. 미가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 가문 출신이 아닙니다. 그는 유다의 작은 시골 마을 모레셋, 블레셋 국경 인근에서 왔습니다. 말하자면 명문대가 아니라 지방대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 지도자들과 제도가 어떻게 평범한 &quot;변두리&quot;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는지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온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힘이 있습니다.<br/><br/><br/><br/>미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사역했습니다. 그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는 계속되었고, 이스라엘은 종교에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신실함은 점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앗수르가 급속히 강대해졌고,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피할 수 없는 현실처럼 보였습니다. 이 시점에 미가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멸망을 막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는 회개를 하도록 설교를 하였습니다.<br/><br/><br/><br/>선지자의 설교는 법정을 상기시킵니다. 심판주이시자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온 땅을 증인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향해 증인이 되시는 분으로 분명히 개입하십니다. 오늘 교회에게 하나님은 미가서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계실까요? 하나님과 온 땅이 증인이 되어서 교회를 고발하는 내용은 무엇일까요?<br/><br/><br/><br/>5절, &quot;이 모든 일이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 족속의 죄 때문이라.&quot;<br/><br/><br/><br/>여기서 ‘허물’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반역을 뜻합니다.<br/><br/>사마리아(북)와 예루살렘(남)은 권력과 예배와 정체성의 중심지로 부르심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타락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일상에서 우상숭배는 더 이상 숨겨진 죄가 아니었습니다. 우상 숭배가 너무도 정상화되고, 경제화되고, 제도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는 폐허가 되고(6–7절), 유다의 상처는 예루살렘 성문까지 이르게 됩니다(9절).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삶의 목적을, 행복을, 그리고 힘을 공급하고 있을까요? 그 아무리 &quot;좋은 것&quot;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신 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것들을 의지하고 살고 있을까요?<br/><br/><br/><br/>이후 본문은 유다의 여러 성읍을 지나가는 하나의 장례 행렬처럼 이어집니다. 마지막에 남는 현실은 포로됨입니다(16절). 아직은 복음처럼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만 회개를 가로막는 거짓된 안전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으십니다.<br/><br/><br/><br/>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의 백성이 예배를 왜곡하고 값싼 은혜에 안주할 때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오래 참으시지만 결코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실 때 산이 흔들리고 땅이 갈라집니다(2–4절). 이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산이 진동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출 19:18). 하나님은 영화로우시며, 그 영광의 무게는 어떤 피조물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br/><br/><br/><br/>7장 18절, &quot;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quot;<br/><br/><br/><br/>미가서가 드러내는 죄는 지식의 무지가 아니라 적극적인 반역입니다. 죄를 종교로 구조화 하고, 기독교 게토 문화를 형성하여, 성도로 하여금 안일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백성에게 미가서는 외칩니다.<br/><br/>&quot;성전&quot;이 있으니, 우리가 수고하고 희생도 하였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하실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돌이키라 말씀하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선지자 미가는 이사야와 호세아와 동시대 인물로, 대략 주전 735–690년경에 활동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구약의 열두 소선지서 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소선지서를 하나의 두루마리로 읽을 때, 미가서는 이스라엘(사마리아-예루살렘)을 향한 지역적 심판(호세아·아모스)과 니느웨를 향한 열방의 심판(요나·나훔)을 잇는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br/><br/><br/><br/>1절, &quot;여호와의 말씀이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하였으니&quot;<br/><br/>이 짧은 소개는 매우 중요합니다. 미가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 가문 출신이 아닙니다. 그는 유다의 작은 시골 마을 모레셋, 블레셋 국경 인근에서 왔습니다. 말하자면 명문대가 아니라 지방대 출신입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 지도자들과 제도가 어떻게 평범한 &quot;변두리&quot;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는지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온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힘이 있습니다.<br/><br/><br/><br/>미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사역했습니다. 그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는 계속되었고, 이스라엘은 종교에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신실함은 점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앗수르가 급속히 강대해졌고,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피할 수 없는 현실처럼 보였습니다. 이 시점에 미가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멸망을 막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는 회개를 하도록 설교를 하였습니다.<br/><br/><br/><br/>선지자의 설교는 법정을 상기시킵니다. 심판주이시자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온 땅을 증인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향해 증인이 되시는 분으로 분명히 개입하십니다. 오늘 교회에게 하나님은 미가서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계실까요? 하나님과 온 땅이 증인이 되어서 교회를 고발하는 내용은 무엇일까요?<br/><br/><br/><br/>5절, &quot;이 모든 일이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 족속의 죄 때문이라.&quot;<br/><br/><br/><br/>여기서 ‘허물’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반역을 뜻합니다.<br/><br/>사마리아(북)와 예루살렘(남)은 권력과 예배와 정체성의 중심지로 부르심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타락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일상에서 우상숭배는 더 이상 숨겨진 죄가 아니었습니다. 우상 숭배가 너무도 정상화되고, 경제화되고, 제도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는 폐허가 되고(6–7절), 유다의 상처는 예루살렘 성문까지 이르게 됩니다(9절).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삶의 목적을, 행복을, 그리고 힘을 공급하고 있을까요? 그 아무리 &quot;좋은 것&quot;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신 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것들을 의지하고 살고 있을까요?<br/><br/><br/><br/>이후 본문은 유다의 여러 성읍을 지나가는 하나의 장례 행렬처럼 이어집니다. 마지막에 남는 현실은 포로됨입니다(16절). 아직은 복음처럼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다만 회개를 가로막는 거짓된 안전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으십니다.<br/><br/><br/><br/>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의 백성이 예배를 왜곡하고 값싼 은혜에 안주할 때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오래 참으시지만 결코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실 때 산이 흔들리고 땅이 갈라집니다(2–4절). 이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산이 진동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출 19:18). 하나님은 영화로우시며, 그 영광의 무게는 어떤 피조물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br/><br/><br/><br/>7장 18절, &quot;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quot;<br/><br/><br/><br/>미가서가 드러내는 죄는 지식의 무지가 아니라 적극적인 반역입니다. 죄를 종교로 구조화 하고, 기독교 게토 문화를 형성하여, 성도로 하여금 안일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백성에게 미가서는 외칩니다.<br/><br/>&quot;성전&quot;이 있으니, 우리가 수고하고 희생도 하였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하실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돌이키라 말씀하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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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Mar 2026 2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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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창세기 1-3장</itunes:title>
    <title>창세기 1-3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창세기 1–3장은 성경 전체의 시작이자,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초를 제공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1장),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셔서 복과 사명을 주셨으며(1:26–28), 안식으로 창조의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과 질서”로 완성하셨습니다(2:1–3). 그러나 3장에서 죄가 들어오며,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스스로 기준이 되려 하고, 그 결과 관계의 파열(하나님-인간, 인간-인간), 수치와 두려움, 저주와 죽음이 현실이 됩니다(3:1–19). 그럼에도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은혜를 비추시며,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약속을 주시고(3:15), 죄인을 찾아오셔서 입히시고(3:21), 에덴에서의 추방조차 영원한 멸망이 아니라 구속의 역사로 인도하시는 “거룩한 자비”로 나타내십니다.   창세기 1–3장 우리의 정체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 하나님은 사람을 “우리의 형상을...]]></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창세기 1–3장은 성경 전체의 시작이자,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초를 제공합니다.</p><p>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1장),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셔서 복과 사명을 주셨으며(1:26–28), 안식으로 창조의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과 질서”로 완성하셨습니다(2:1–3). 그러나 3장에서 죄가 들어오며,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스스로 기준이 되려 하고, 그 결과 관계의 파열(하나님-인간, 인간-인간), 수치와 두려움, 저주와 죽음이 현실이 됩니다(3:1–19). 그럼에도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은혜를 비추시며,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약속을 주시고(3:15), 죄인을 찾아오셔서 입히시고(3:21), 에덴에서의 추방조차 영원한 멸망이 아니라 구속의 역사로 인도하시는 “거룩한 자비”로 나타내십니다.</p><p><br/></p><p>창세기 1–3장</p><p>우리의 정체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p><p>하나님은 사람을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지으셨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뒤 복을 주시며 땅을 다스리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1:26–28). 여기서 형상이란 겉 모습이 아니고 더 나아가 단순한 지적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라는 신비로운 공동체적 하나님을 대표하여 그의 선하신 통치를 드러내는 언약적 소명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존엄은 성취나 업적이 아닌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옵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존귀함 속에서 함께 사명을 맡는 동역자입니다(1:27–28).</p><p><br/></p><p>세상: 우연이 아니라 ‘말씀’으로 세워진 질서</p><p>창세기 1장은 반복적으로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를 통해, 세계가 혼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의해 질서 있게 세워졌음을 선포합니다(1:3, 1:6–7 등).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를 보시고 “좋았더라” 선언하십니다(1:4, 1:10, 1:31). 즉, 물질 세계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닙니다. 물질 세계는 본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창조입니다. 우리의 일상(노동, 관계, 문화)도 본래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선한 것입니다.</p><p><br/></p><p>죄: ‘열매’ 이전에 ‘하나님 불신’에서 시작된 반역</p><p>3장에서 뱀의 유혹은 단순히 “규칙을 어기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고(“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3:1), 하나님의 선하심을 왜곡하며(3:4–5), 인간을 자기중심의 판단자로 세웁니다(“선악을 알게 하는” 3:5–6). 죄의 본질은 관계적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마음이 죄의 뿌리입니다. 그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납니다. 수치(3:7), 두려움(3:10), 회피와 자기정당화(3:12–13), 그리고 저주와 죽음(3:16–19)이 인간의 삶에 스며듭니다.</p><p><br/></p><p>은혜: 심판 속에 심어진 약속과 ‘입히심’</p><p>창세기 3장은 단지 타락의 기록이 아니라, 복음의 씨앗이 처음 심기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뱀에게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시며, 그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3:15). 이는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흐름 (결국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꺾으시는 승리)를 예고하는 첫 약속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시고(3:9), 그들의 수치를 스스로 해결하게 두지 않으시며,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3:21). 죄의 현실을 덮는 은혜, 죄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언약적 자비가 여기서 이미 드러납니다.</p><p><br/></p><p>나가는 말</p><p>창세기는 “세상은 왜 이런가?”라는 질문에 가장 깊은 답을 줍니다.</p><p>세상은 원래 하나님이 “좋다”고 선언하신 선한 창조이며, 인간은 형상으로 지음 받아 존귀하고 사명을 받은 존재입니다(1:26–31). 그러나 죄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 삶 전체를 깨뜨리고 관계를 뒤틀며 죽음을 가져옵니다(3:1–19). 그럼에도 하나님은 죄인이 숨은 곳까지 찾아오셔서 질문하시고(3:9), 약속하시고(3:15), 입히시며(3:21), 구속의 길을 여십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3장은 “나의 정체성, 죄의 실체, 은혜의 시작”을 동시에 보여 주는 복음의 기초입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창세기 1–3장은 성경 전체의 시작이자,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초를 제공합니다.</p><p>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1장),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셔서 복과 사명을 주셨으며(1:26–28), 안식으로 창조의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과 질서”로 완성하셨습니다(2:1–3). 그러나 3장에서 죄가 들어오며,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스스로 기준이 되려 하고, 그 결과 관계의 파열(하나님-인간, 인간-인간), 수치와 두려움, 저주와 죽음이 현실이 됩니다(3:1–19). 그럼에도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은혜를 비추시며,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약속을 주시고(3:15), 죄인을 찾아오셔서 입히시고(3:21), 에덴에서의 추방조차 영원한 멸망이 아니라 구속의 역사로 인도하시는 “거룩한 자비”로 나타내십니다.</p><p><br/></p><p>창세기 1–3장</p><p>우리의 정체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p><p>하나님은 사람을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지으셨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뒤 복을 주시며 땅을 다스리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1:26–28). 여기서 형상이란 겉 모습이 아니고 더 나아가 단순한 지적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라는 신비로운 공동체적 하나님을 대표하여 그의 선하신 통치를 드러내는 언약적 소명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존엄은 성취나 업적이 아닌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옵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존귀함 속에서 함께 사명을 맡는 동역자입니다(1:27–28).</p><p><br/></p><p>세상: 우연이 아니라 ‘말씀’으로 세워진 질서</p><p>창세기 1장은 반복적으로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를 통해, 세계가 혼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의해 질서 있게 세워졌음을 선포합니다(1:3, 1:6–7 등). 그리고 하나님은 창조를 보시고 “좋았더라” 선언하십니다(1:4, 1:10, 1:31). 즉, 물질 세계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닙니다. 물질 세계는 본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창조입니다. 우리의 일상(노동, 관계, 문화)도 본래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선한 것입니다.</p><p><br/></p><p>죄: ‘열매’ 이전에 ‘하나님 불신’에서 시작된 반역</p><p>3장에서 뱀의 유혹은 단순히 “규칙을 어기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고(“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3:1), 하나님의 선하심을 왜곡하며(3:4–5), 인간을 자기중심의 판단자로 세웁니다(“선악을 알게 하는” 3:5–6). 죄의 본질은 관계적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마음이 죄의 뿌리입니다. 그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납니다. 수치(3:7), 두려움(3:10), 회피와 자기정당화(3:12–13), 그리고 저주와 죽음(3:16–19)이 인간의 삶에 스며듭니다.</p><p><br/></p><p>은혜: 심판 속에 심어진 약속과 ‘입히심’</p><p>창세기 3장은 단지 타락의 기록이 아니라, 복음의 씨앗이 처음 심기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뱀에게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시며, 그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3:15). 이는 성경 전체의 구속사적 흐름 (결국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꺾으시는 승리)를 예고하는 첫 약속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시고(3:9), 그들의 수치를 스스로 해결하게 두지 않으시며,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3:21). 죄의 현실을 덮는 은혜, 죄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언약적 자비가 여기서 이미 드러납니다.</p><p><br/></p><p>나가는 말</p><p>창세기는 “세상은 왜 이런가?”라는 질문에 가장 깊은 답을 줍니다.</p><p>세상은 원래 하나님이 “좋다”고 선언하신 선한 창조이며, 인간은 형상으로 지음 받아 존귀하고 사명을 받은 존재입니다(1:26–31). 그러나 죄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 삶 전체를 깨뜨리고 관계를 뒤틀며 죽음을 가져옵니다(3:1–19). 그럼에도 하나님은 죄인이 숨은 곳까지 찾아오셔서 질문하시고(3:9), 약속하시고(3:15), 입히시며(3:21), 구속의 길을 여십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3장은 “나의 정체성, 죄의 실체, 은혜의 시작”을 동시에 보여 주는 복음의 기초입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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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7 Mar 2026 2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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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노아와 우리의 삶</itunes:title>
    <title>노아와 우리의 삶</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필립 얀시라는 기독교 저자가 있습니다. 그가 저술한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그의 인사이트는 신앙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76세인 그가 그동안 수년 간의 불륜의 관계를 고백하며 모든 활동을 멈추었습니다. 그런 그의 고백에 많은 크리스천은 실망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올해 77세이신 박영선 목사님께서 이미 은퇴 하신지 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개척을 언급하시며 40억이라는 교회 헌금을 너무도 당연하게 요구하는 상황에 대하여 역시 많은 크리스천은 안타까움과 실망을 경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지만 박 목사님의 사역과 저술하신 책들은 나름 좋은 평판을 받았기에 더욱 실망은 컸습니다. 저도 이분들의 책을 통하여 많은 깨달음이 있었기에 필립 얀시와 박영선 목사님의 상황은 정말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약간은 두렵기도 합니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 우리 크리스천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p><p>필립 얀시라는 기독교 저자가 있습니다. 그가 저술한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그의 인사이트는 신앙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76세인 그가 그동안 수년 간의 불륜의 관계를 고백하며 모든 활동을 멈추었습니다. 그런 그의 고백에 많은 크리스천은 실망을 했습니다</p><p>한국 교회에서는 올해 77세이신 박영선 목사님께서 이미 은퇴 하신지 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개척을 언급하시며 40억이라는 교회 헌금을 너무도 당연하게 요구하는 상황에 대하여 역시 많은 크리스천은 안타까움과 실망을 경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지만 박 목사님의 사역과 저술하신 책들은 나름 좋은 평판을 받았기에 더욱 실망은 컸습니다.</p><p>저도 이분들의 책을 통하여 많은 깨달음이 있었기에 필립 얀시와 박영선 목사님의 상황은 정말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약간은 두렵기도 합니다</p><p><br/></p><p>이런 뉴스를 접하면 우리 크리스천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p><p><br/></p><p>창세기 9장에 노아에 대한 기록이 떠오릅니다</p><p>&quot;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p><p>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quot;</p><p><br/></p><p>노아는 어떤 사람입니까?</p><p><br/></p><p>창세기 6장을 보시면 이 세상이 온통 죄악으로 뒤덮였을 당시 노아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의로운 사람으로 기록이 됩니다</p><p>5-7절,</p><p>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p><p>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p><p>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p><p><br/></p><p>8-9절,</p><p>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p><p>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p><p><br/></p><p>오해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가 의로운 사람이라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노아는 의롭다 칭함을 얻은 것입니다</p><p><br/></p><p>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노아의 삶에 믿음의 열매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무려 100년이 넘도록 같은 방향으로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방주를 완성하였습니다</p><p><br/></p><p>성경은 노아를 동시에 죄인이자 의로운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노아가 자신의 삶의 열매에 만취하듯 필립 얀시도 그리고 박영선 목사님도 당신들이 지은 &apos;농사&apos;의 열매에 만취하여 &apos;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apos;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보는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p><p><br/></p><p>먼저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마치 우리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 처럼 그들을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p><p>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출신의 독일 정치철학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녀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며 &quot;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quo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악은 시뻘건 뿔과 흉칙한 이빨을 들어내지 않습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악은 계속 존재합니다. 그녀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현대 사회의 관료주의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도덕적 책임과 주체적인 사고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p><p>그렇다고 무조건 감싸서도 안 됩니다. &quot;하나님의 종들이니 우리는 모른 척 하자&quot;는 너무도 게으른 선택입니다</p><p>회개해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이 다시 이방 여인들과 통혼하며 영적으로 타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옷을 찢고 머리털을 뜯으며 땅에 주저앉아 통곡을 한 에스라처럼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를 비방하는 정도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교회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처절하게 회개해야 합니다</p><p>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들이 불탄 것에 대하여 책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quot;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였나다&quot; 회개한 느헤미야 처럼 말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p><p>필립 얀시라는 기독교 저자가 있습니다. 그가 저술한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그의 인사이트는 신앙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76세인 그가 그동안 수년 간의 불륜의 관계를 고백하며 모든 활동을 멈추었습니다. 그런 그의 고백에 많은 크리스천은 실망을 했습니다</p><p>한국 교회에서는 올해 77세이신 박영선 목사님께서 이미 은퇴 하신지 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개척을 언급하시며 40억이라는 교회 헌금을 너무도 당연하게 요구하는 상황에 대하여 역시 많은 크리스천은 안타까움과 실망을 경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지만 박 목사님의 사역과 저술하신 책들은 나름 좋은 평판을 받았기에 더욱 실망은 컸습니다.</p><p>저도 이분들의 책을 통하여 많은 깨달음이 있었기에 필립 얀시와 박영선 목사님의 상황은 정말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약간은 두렵기도 합니다</p><p><br/></p><p>이런 뉴스를 접하면 우리 크리스천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p><p><br/></p><p>창세기 9장에 노아에 대한 기록이 떠오릅니다</p><p>&quot;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p><p>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quot;</p><p><br/></p><p>노아는 어떤 사람입니까?</p><p><br/></p><p>창세기 6장을 보시면 이 세상이 온통 죄악으로 뒤덮였을 당시 노아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의로운 사람으로 기록이 됩니다</p><p>5-7절,</p><p>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p><p>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p><p>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p><p><br/></p><p>8-9절,</p><p>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p><p>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p><p><br/></p><p>오해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가 의로운 사람이라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노아는 의롭다 칭함을 얻은 것입니다</p><p><br/></p><p>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노아의 삶에 믿음의 열매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무려 100년이 넘도록 같은 방향으로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방주를 완성하였습니다</p><p><br/></p><p>성경은 노아를 동시에 죄인이자 의로운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노아가 자신의 삶의 열매에 만취하듯 필립 얀시도 그리고 박영선 목사님도 당신들이 지은 &apos;농사&apos;의 열매에 만취하여 &apos;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apos;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보는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p><p><br/></p><p>먼저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마치 우리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 처럼 그들을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p><p>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출신의 독일 정치철학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녀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며 &quot;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quo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악은 시뻘건 뿔과 흉칙한 이빨을 들어내지 않습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악은 계속 존재합니다. 그녀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현대 사회의 관료주의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도덕적 책임과 주체적인 사고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p><p>그렇다고 무조건 감싸서도 안 됩니다. &quot;하나님의 종들이니 우리는 모른 척 하자&quot;는 너무도 게으른 선택입니다</p><p>회개해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이 다시 이방 여인들과 통혼하며 영적으로 타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옷을 찢고 머리털을 뜯으며 땅에 주저앉아 통곡을 한 에스라처럼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를 비방하는 정도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교회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처절하게 회개해야 합니다</p><p>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들이 불탄 것에 대하여 책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quot;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였나다&quot; 회개한 느헤미야 처럼 말입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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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11장 47절-12장 11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11장 47절-12장 11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오늘 본문은 종교인들, 즉 바리새인들이 나사로의 부활을 산헤드린 공회에 알리자 공회원들이 긴급히 모이는 내용이 기록됩니다. 그들은 예수를 어떻게든 관리하고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예수가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와 왕의 복음은 종교 기득권을 위협하는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해 대제사장 가야바를 중심으로 공회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맞대어 싸우지 않으시고 베다니에서 에브라임으로 은밀하게 옮기십니다.   나사로가 부활한 사건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그것보다 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기득권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이 군림하는 이 세상의 작지만 확실한 그들의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왕국을 지키려면 로마제국에게 위협을 하면 안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어느 제국과 견줄 수 없기 때문에 종...]]></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늘 본문은 종교인들, 즉 바리새인들이 나사로의 부활을 산헤드린 공회에 알리자 공회원들이 긴급히 모이는 내용이 기록됩니다. 그들은 예수를 어떻게든 관리하고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예수가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와 왕의 복음은 종교 기득권을 위협하는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해 대제사장 가야바를 중심으로 공회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맞대어 싸우지 않으시고 베다니에서 에브라임으로 은밀하게 옮기십니다.</p><p><br/></p><p>나사로가 부활한 사건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그것보다 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기득권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이 군림하는 이 세상의 작지만 확실한 그들의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왕국을 지키려면 로마제국에게 위협을 하면 안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어느 제국과 견줄 수 없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자신들만의 왕국을 선택합니다.</p><p><br/></p><p>대제사장은 &apos;민족 전체&apos;와 예수 &apos;한 사람&apos;을 대조하며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현실적인지 질문합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을 묻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과연 그들이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성전에서의 종교생활이 가능할 지, 아니면 예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성전과 그들이 익숙한 종교생활이 흔들릴지에 대하여만 집중되었습니다.</p><p><br/></p><p>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공모하자, 예수님은 그 자리를 우선 피해 빈들 가까운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십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도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를 구하기 위한 순종입니다.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바리새인들과 종교 기득권과 맞싸워 이기는 것만이 길이 아닙니다.</p><p><br/></p><p>12장 1-11절에서는 유월절을 배경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을 기록합니다.</p><p>&quot;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quot;</p><p><br/></p><p>그때 마리아가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발을 씻는 데 사용하는 것도 놀랍지만 여인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는 것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것을 예수님은 허락하십니다.</p><p><br/></p><p>유월절과 예수님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즉 애굽을 떠나기 위해 흠없는 어린 양의 피를 흘려야만 했던 것과 죄와 사망권세가 군림하는 이 어두운 세상에서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해서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 것을 요한은 분명히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굳이 마리아의 행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p><p><br/></p><p>마리아는 단순히 예수님의 발을 닦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 &apos;주의 발아래&apos;에 있었던 마리아가 이제 십자가 죽음을 앞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리아의 헌신은 가롯 유다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를 이룹니다.</p><p><br/></p><p>가롯 유다는 가난한 자를 운운했지만, 성경은 실제로는 유다는 권력과 재물에 눈이 어두운 자로 설명합니다. 사랑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도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긍휼을 베푸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성경은 말합니다.</p><p><br/></p><p>바리새인들과 종교 기득권은 예수만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사로도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들이 익숙한 전통과 자랑스러워하는 성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성경은 기록합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없애려고 합니다. 자신들이 구축한 질서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누구든 억압하며 살인도 도모하는 끔직한 자들을 기록합니다.</p><p><br/></p><p>&apos;이 성전을 헐라&apos; 말씀하시는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까?</p><p>우리에게 허락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먼저 가신 그 길을 따르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늘 본문은 종교인들, 즉 바리새인들이 나사로의 부활을 산헤드린 공회에 알리자 공회원들이 긴급히 모이는 내용이 기록됩니다. 그들은 예수를 어떻게든 관리하고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예수가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와 왕의 복음은 종교 기득권을 위협하는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해 대제사장 가야바를 중심으로 공회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맞대어 싸우지 않으시고 베다니에서 에브라임으로 은밀하게 옮기십니다.</p><p><br/></p><p>나사로가 부활한 사건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그것보다 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기득권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이 군림하는 이 세상의 작지만 확실한 그들의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왕국을 지키려면 로마제국에게 위협을 하면 안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어느 제국과 견줄 수 없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자신들만의 왕국을 선택합니다.</p><p><br/></p><p>대제사장은 &apos;민족 전체&apos;와 예수 &apos;한 사람&apos;을 대조하며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게 현실적인지 질문합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을 묻지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과연 그들이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성전에서의 종교생활이 가능할 지, 아니면 예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성전과 그들이 익숙한 종교생활이 흔들릴지에 대하여만 집중되었습니다.</p><p><br/></p><p>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공모하자, 예수님은 그 자리를 우선 피해 빈들 가까운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십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도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를 구하기 위한 순종입니다.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바리새인들과 종교 기득권과 맞싸워 이기는 것만이 길이 아닙니다.</p><p><br/></p><p>12장 1-11절에서는 유월절을 배경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을 기록합니다.</p><p>&quot;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quot;</p><p><br/></p><p>그때 마리아가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발을 씻는 데 사용하는 것도 놀랍지만 여인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는 것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것을 예수님은 허락하십니다.</p><p><br/></p><p>유월절과 예수님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즉 애굽을 떠나기 위해 흠없는 어린 양의 피를 흘려야만 했던 것과 죄와 사망권세가 군림하는 이 어두운 세상에서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해서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 것을 요한은 분명히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굳이 마리아의 행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p><p><br/></p><p>마리아는 단순히 예수님의 발을 닦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 &apos;주의 발아래&apos;에 있었던 마리아가 이제 십자가 죽음을 앞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리아의 헌신은 가롯 유다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를 이룹니다.</p><p><br/></p><p>가롯 유다는 가난한 자를 운운했지만, 성경은 실제로는 유다는 권력과 재물에 눈이 어두운 자로 설명합니다. 사랑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도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긍휼을 베푸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성경은 말합니다.</p><p><br/></p><p>바리새인들과 종교 기득권은 예수만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사로도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들이 익숙한 전통과 자랑스러워하는 성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성경은 기록합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없애려고 합니다. 자신들이 구축한 질서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누구든 억압하며 살인도 도모하는 끔직한 자들을 기록합니다.</p><p><br/></p><p>&apos;이 성전을 헐라&apos; 말씀하시는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까?</p><p>우리에게 허락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먼저 가신 그 길을 따르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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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복음 11장 38-46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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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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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복음 11장 1-27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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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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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12장 12-19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12장 12-19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무리가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마중을 나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밖에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무리와 안에서 예수님을 마중 나온 무리가 합쳐집니다.   12-15절,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무리의 환호성은 점점 커졌고 그 소리는 예루살렘 밖 기드론 골짜기를 타고 세상으로 퍼집니다. 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 상황에도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하는 무리와 탄식하는 무리로 나뉩니다. 같은 상황이지만 두 가지 다른 반응입니다.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무리가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마중을 나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밖에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무리와 안에서 예수님을 마중 나온 무리가 합쳐집니다.</p><p><br/></p><p>12-15절, &quot;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p><p>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p><p>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p><p>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quot;</p><p>무리의 환호성은 점점 커졌고 그 소리는 예루살렘 밖 기드론 골짜기를 타고 세상으로 퍼집니다. 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장면이 펼쳐집니다.</p><p><br/></p><p>이 상황에도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하는 무리와 탄식하는 무리로 나뉩니다. 같은 상황이지만 두 가지 다른 반응입니다.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로 부르신 예수에 대한 무리의 관심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백성의 환호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자취를 감춥니다. 백성이 원했던 것은 전쟁을 이기는 왕이자 세상 권세를 억누르는 왕이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아는 힘도 없고 보잘것없는 어린양이었습니다. 혹시 오늘 우리도 바리새인들이나 백성과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기대했던 그리스도가 아니라서 성경 말씀에 기록된 예수가 아니라 우리 멋대로, 마음대로 &quot;주님&quot;을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p><p><br/></p><p>마태복음 7장 21-23절, &quot;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p><p>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p><p>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quot;</p><p><br/></p><p>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apos;왕&apos;이셔야만 하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지자 스가랴가 예언한 메시아는 &quot;고난당하는 메시아&quot;입니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들의 죄를 덮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인들은 물론 언약 백성의 죄도 노출되어야 했고 메시아는 그들의 죄를 먼저 감당해야 했습니다.</p><p><br/></p><p>이사야 53장, &quot;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quot;</p><p><br/></p><p>하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인들의 방해로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백성의 죄를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 만큼 죄값을 치르지 않고는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는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가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애와 공의와 정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p><p>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작게 시작할지라도 이 세상의 어떤 권력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가 우리 삶을 인도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일지라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나라에 걸맞는 인생이 축복의 삶이자 은혜를 누리는 삶입니다.</p><p>예수님과 3년을 함께했던 제자들도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홀로 외롭게 지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p><p><br/></p><p>마태복음 16장 24-26절, &quot;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quot;</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무리가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마중을 나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밖에서 예수님과 함께하는 무리와 안에서 예수님을 마중 나온 무리가 합쳐집니다.</p><p><br/></p><p>12-15절, &quot;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p><p>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p><p>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p><p>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quot;</p><p>무리의 환호성은 점점 커졌고 그 소리는 예루살렘 밖 기드론 골짜기를 타고 세상으로 퍼집니다. 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장면이 펼쳐집니다.</p><p><br/></p><p>이 상황에도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하는 무리와 탄식하는 무리로 나뉩니다. 같은 상황이지만 두 가지 다른 반응입니다.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로 부르신 예수에 대한 무리의 관심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백성의 환호는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자취를 감춥니다. 백성이 원했던 것은 전쟁을 이기는 왕이자 세상 권세를 억누르는 왕이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아는 힘도 없고 보잘것없는 어린양이었습니다. 혹시 오늘 우리도 바리새인들이나 백성과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기대했던 그리스도가 아니라서 성경 말씀에 기록된 예수가 아니라 우리 멋대로, 마음대로 &quot;주님&quot;을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p><p><br/></p><p>마태복음 7장 21-23절, &quot;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p><p>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p><p>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quot;</p><p><br/></p><p>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그리스도는 어떤 &apos;왕&apos;이셔야만 하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지자 스가랴가 예언한 메시아는 &quot;고난당하는 메시아&quot;입니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들의 죄를 덮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인들은 물론 언약 백성의 죄도 노출되어야 했고 메시아는 그들의 죄를 먼저 감당해야 했습니다.</p><p><br/></p><p>이사야 53장, &quot;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quot;</p><p><br/></p><p>하나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인들의 방해로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백성의 죄를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 만큼 죄값을 치르지 않고는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는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가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애와 공의와 정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p><p>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작게 시작할지라도 이 세상의 어떤 권력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가 우리 삶을 인도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일지라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나라에 걸맞는 인생이 축복의 삶이자 은혜를 누리는 삶입니다.</p><p>예수님과 3년을 함께했던 제자들도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홀로 외롭게 지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p><p><br/></p><p>마태복음 16장 24-26절, &quot;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quot;</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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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복음 12장 20-33절</itunes:title>
    <title>요한복음 12장 20-33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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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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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복음 13장 18-38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한은 계속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때를 완성해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성경이 예언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 말씀은 오늘 우리도 "혹시 나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배반한 자는 세리나 무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대놓고 예수를 죽이려 하였지만 예수를 마음속으로 버린 자는 예수에게 아주 가까운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발도 씻으셨습니다. 그 말씀은 오늘 우리도 자신의 믿음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시편 41:9에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 제자들은 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지만 그 길은 절망의 길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는 용서의 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한은 계속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때를 완성해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성경이 예언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 말씀은 오늘 우리도 &quot;혹시 나인가&quot;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p><p><br/></p><p>예수를 배반한 자는 세리나 무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대놓고 예수를 죽이려 하였지만 예수를 마음속으로 버린 자는 예수에게 아주 가까운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발도 씻으셨습니다. 그 말씀은 오늘 우리도 자신의 믿음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시편 41:9에 &quot;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quot;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 제자들은 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지만 그 길은 절망의 길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는 용서의 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p><p><br/></p><p>예수님으로부터 떡 조각을 받아 든 유다는 이제 예수를 팔아넘기기로 결심합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quot;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quot;고 표현합니다. 유다는 빛 되신 예수를 떠나 그날 밤 짙은 어둠으로 나섭니다. 무엇이 예수의 제자로 3년을 함께한 유다를 어둠의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메시아에 대한 실망이었을까요? 재물에 대한 욕심이었을까요?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강건해서라기보다 우리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가 신실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믿음을 믿지 말고 예수를 믿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p><p><br/></p><p>가롯 유다가 예수를 팔러 나가는 상황에도 예수님은 &quot;지금 자신이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자신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quot;고 선포하십니다. 배신과 어둠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사탄의 어두움도 흔들지 못합니다.</p><p><br/></p><p>유다가 어둠으로 돌아간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p><p>34-35절, &quot;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p><p>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quot;</p><p>언약 백성으로서 서로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구약 레위기 19장에도 이미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quot;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quot;라고 더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정도가 아닙니다. 선생이 제자의 발을 주인이 종의 발을 씻기는 그런 새로운 계명입니다.</p><p><br/></p><p>본문에서 예수님은 이제 잠시 후면 제자들과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quot;내가 가는 곳에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quot;라며 위로하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자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quot;네 마음은 이해하나 네가 결국 닭 울기 전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될 것이다&quot;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p><p><br/></p><p>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는 것과 시몬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p><p>물론 유다는 어둠으로 가서 악의 축이 되는 결정을 합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떳떳이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유다의 배반은 베드로의 부인보다는 훨씬 더 나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도 잘한 것은 없습니다. 즉, 베드로가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가 유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서입니다. 베드로가 유다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비하신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베드로가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p><p><br/></p><p>우리도 예수님 재림하시는 그날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 끝까지 있는다고 할지라도 우리 입술은 고백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였다고.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루를 살아도 산 것이었고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앙을 지켰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할렐루야!</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한은 계속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때를 완성해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성경이 예언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 말씀은 오늘 우리도 &quot;혹시 나인가&quot;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p><p><br/></p><p>예수를 배반한 자는 세리나 무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대놓고 예수를 죽이려 하였지만 예수를 마음속으로 버린 자는 예수에게 아주 가까운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발도 씻으셨습니다. 그 말씀은 오늘 우리도 자신의 믿음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미 시편 41:9에 &quot;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quot;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 제자들은 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십자가를 지는 길을 가지만 그 길은 절망의 길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는 용서의 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p><p><br/></p><p>예수님으로부터 떡 조각을 받아 든 유다는 이제 예수를 팔아넘기기로 결심합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quot;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quot;고 표현합니다. 유다는 빛 되신 예수를 떠나 그날 밤 짙은 어둠으로 나섭니다. 무엇이 예수의 제자로 3년을 함께한 유다를 어둠의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메시아에 대한 실망이었을까요? 재물에 대한 욕심이었을까요?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강건해서라기보다 우리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가 신실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믿음을 믿지 말고 예수를 믿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p><p><br/></p><p>가롯 유다가 예수를 팔러 나가는 상황에도 예수님은 &quot;지금 자신이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자신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quot;고 선포하십니다. 배신과 어둠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나 사탄의 어두움도 흔들지 못합니다.</p><p><br/></p><p>유다가 어둠으로 돌아간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십니다.</p><p>34-35절, &quot;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p><p>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quot;</p><p>언약 백성으로서 서로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구약 레위기 19장에도 이미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quot;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quot;라고 더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정도가 아닙니다. 선생이 제자의 발을 주인이 종의 발을 씻기는 그런 새로운 계명입니다.</p><p><br/></p><p>본문에서 예수님은 이제 잠시 후면 제자들과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quot;내가 가는 곳에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quot;라며 위로하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자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quot;네 마음은 이해하나 네가 결국 닭 울기 전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될 것이다&quot;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p><p><br/></p><p>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는 것과 시몬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p><p>물론 유다는 어둠으로 가서 악의 축이 되는 결정을 합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떳떳이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유다의 배반은 베드로의 부인보다는 훨씬 더 나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도 잘한 것은 없습니다. 즉, 베드로가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가 유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서입니다. 베드로가 유다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비하신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베드로가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p><p><br/></p><p>우리도 예수님 재림하시는 그날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 끝까지 있는다고 할지라도 우리 입술은 고백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였다고.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루를 살아도 산 것이었고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앙을 지켰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할렐루야!</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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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계시록 9장</itunes:title>
    <title>요한계시록 9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이 울려 퍼지자, 심판은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됩니다. 이제 더 이상 자연 재해가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악한 영적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 열쇠를 받습니다(1절). 그가 그것을 열자 연기가 솟구쳐 나오고, 그 안에서 무시무시한 황충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다섯 달 동안 괴롭힙니다(3–5절). 이 황충들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하는 영적 고통과 미혹을 상징합니다. 여섯째 나팔이 불리자(13절), 유브라데 강가에 결박되어 있던 네 천사가 풀려나 인류의 삼분의 일을 죽입니다(15절). 불과 연기와 유황을 내뿜는 기병대가 등장하고, 그들은 죽음의 군대처럼 묘사됩니다. 이는 출애굽기의 재앙을 떠올리게 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재앙들에 죽지 아니하고 남은 사람들은 그...]]></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이 울려 퍼지자, 심판은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됩니다. 이제 더 이상 자연 재해가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악한 영적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 열쇠를 받습니다(1절). 그가 그것을 열자 연기가 솟구쳐 나오고, 그 안에서 무시무시한 황충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다섯 달 동안 괴롭힙니다(3–5절). 이 황충들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하는 영적 고통과 미혹을 상징합니다.</p><p>여섯째 나팔이 불리자(13절), 유브라데 강가에 결박되어 있던 네 천사가 풀려나 인류의 삼분의 일을 죽입니다(15절). 불과 연기와 유황을 내뿜는 기병대가 등장하고, 그들은 죽음의 군대처럼 묘사됩니다. 이는 출애굽기의 재앙을 떠올리게 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보여줍니다.</p><p>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재앙들에 죽지 아니하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20–21절). 이것이 이 장의 가장 무서운 결론입니다. 심판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이 인류를 덮고 있습니다.</p><p>하나님은?</p><p>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뿐 아니라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까지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계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무저갱의 열쇠는 ‘주는’ 방식으로 전달되고(1절), 황충은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고 괴롭히는 데에만 제한됩니다(5절). 여섯째 나팔에 등장하는 네 천사도 정확한 “년, 월, 일, 시”에 맞춰 풀려납니다(15절). 악은 무제한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시며,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의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p><p>하나님은 또한 거룩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이 모든 재앙이 단번에 끝장을 내는 심판이 아니라,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죄를 가만히 두지 않지만, 그 심판 속에서도 구원의 기회를 남겨두십니다.</p><p>우리의 죄는?</p><p>우리의 죄는 영적 눈멀음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에서 드러납니다. 이 장에서 황충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지 못한 자들”(4절)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분리된 상태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우상과 거짓 종교, 자기중심적 삶 속에 갇혀 영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p><p>더욱 큰 죄는 경고가 주어졌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입니다(20–21절). 사람들은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악령을 따르고, 살인과 마술(φαρμακεία—주술적 행위), 음행, 도둑질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 죄들은 단순한 윤리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망가진 사회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은 선과 악을 뒤섞었으며,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p><p>은혜는?</p><p>은혜는 제한 속에서 드러납니다. 황충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고, 고통의 시간은 다섯 달로 제한됩니다. 불과 유황을 내뿜는 심판도 전체 인류를 향하지 않고 삼분의 일만을 향합니다. 이 모든 제한은 단지 징벌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려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p><p>은혜는 또한 회개의 초청에서 빛납니다. 본문이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회개할 수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며(벧후 3:9), 가장 깊은 반역 속에 있는 자에게도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p><p>무엇보다 은혜는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히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무저갱의 어둠과 사망의 권세를 스스로 짊어지셨고, 십자가에서 그 모든 심판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 심판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에서 구원받았는지를 일깨우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이 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이 울려 퍼지자, 심판은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됩니다. 이제 더 이상 자연 재해가 아니라, 초자연적이고 악한 영적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 열쇠를 받습니다(1절). 그가 그것을 열자 연기가 솟구쳐 나오고, 그 안에서 무시무시한 황충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다섯 달 동안 괴롭힙니다(3–5절). 이 황충들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하는 영적 고통과 미혹을 상징합니다.</p><p>여섯째 나팔이 불리자(13절), 유브라데 강가에 결박되어 있던 네 천사가 풀려나 인류의 삼분의 일을 죽입니다(15절). 불과 연기와 유황을 내뿜는 기병대가 등장하고, 그들은 죽음의 군대처럼 묘사됩니다. 이는 출애굽기의 재앙을 떠올리게 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보여줍니다.</p><p>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재앙들에 죽지 아니하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20–21절). 이것이 이 장의 가장 무서운 결론입니다. 심판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이 인류를 덮고 있습니다.</p><p>하나님은?</p><p>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뿐 아니라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까지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계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무저갱의 열쇠는 ‘주는’ 방식으로 전달되고(1절), 황충은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고 괴롭히는 데에만 제한됩니다(5절). 여섯째 나팔에 등장하는 네 천사도 정확한 “년, 월, 일, 시”에 맞춰 풀려납니다(15절). 악은 무제한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시며,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의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p><p>하나님은 또한 거룩하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이 모든 재앙이 단번에 끝장을 내는 심판이 아니라,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죄를 가만히 두지 않지만, 그 심판 속에서도 구원의 기회를 남겨두십니다.</p><p>우리의 죄는?</p><p>우리의 죄는 영적 눈멀음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에서 드러납니다. 이 장에서 황충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지 못한 자들”(4절)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분리된 상태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우상과 거짓 종교, 자기중심적 삶 속에 갇혀 영적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p><p>더욱 큰 죄는 경고가 주어졌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입니다(20–21절). 사람들은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악령을 따르고, 살인과 마술(φαρμακεία—주술적 행위), 음행, 도둑질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 죄들은 단순한 윤리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망가진 사회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은 선과 악을 뒤섞었으며,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p><p>은혜는?</p><p>은혜는 제한 속에서 드러납니다. 황충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고, 고통의 시간은 다섯 달로 제한됩니다. 불과 유황을 내뿜는 심판도 전체 인류를 향하지 않고 삼분의 일만을 향합니다. 이 모든 제한은 단지 징벌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려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p><p>은혜는 또한 회개의 초청에서 빛납니다. 본문이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 회개할 수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며(벧후 3:9), 가장 깊은 반역 속에 있는 자에게도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p><p>무엇보다 은혜는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히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무저갱의 어둠과 사망의 권세를 스스로 짊어지셨고, 십자가에서 그 모든 심판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 심판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에서 구원받았는지를 일깨우고,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이 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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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Mar 2026 10: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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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한계시록 8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일곱째 인이 떼어지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해집니다(1절). 이 침묵은 중단이 아니라, 거룩한 기대와 경외 속의 적극적인 기다림입니다. 성경의 침묵은 종종 하나님의 행동 직전에 나타나며(하박국 2:20; 스바냐 1:7), 본문은 심판 앞의 거룩한 정적을 기록합니다. 이후, 한 천사가 금 향로를 가지고 나아와 성도들의 기도와 향을 함께 제단에 드립니다(3절). 이 기도는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던지자, 우레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납니다(5절). 하늘은 성도의 기도에 침묵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움직이실 때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나팔 재앙이 기록됩니다. 첫째 나팔부터 넷째 나팔까지 자연 질서의 일부가 3분의 1씩 파괴되며, 창조세계 전체가 요동합니다(7–12절). 그러나 이 재앙들은 아직 전면적 심판이 아니라 부분적인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입니다.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일곱째 인이 떼어지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해집니다(1절). 이 침묵은 중단이 아니라, 거룩한 기대와 경외 속의 적극적인 기다림입니다. 성경의 침묵은 종종 하나님의 행동 직전에 나타나며(하박국 2:20; 스바냐 1:7), 본문은 심판 앞의 거룩한 정적을 기록합니다.</p><p>이후, 한 천사가 금 향로를 가지고 나아와 성도들의 기도와 향을 함께 제단에 드립니다(3절). 이 기도는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던지자, 우레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납니다(5절).</p><p>하늘은 성도의 기도에 침묵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움직이실 때 사용하십니다.</p><p>그리고 나팔 재앙이 기록됩니다.</p><p>첫째 나팔부터 넷째 나팔까지 자연 질서의 일부가 3분의 1씩 파괴되며, 창조세계 전체가 요동합니다(7–12절). 그러나 이 재앙들은 아직 전면적 심판이 아니라 부분적인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입니다. 이렇게 회개를 향한 초대가 여전히 열려 있는 것이 기록됩니다. 그러나 아직 닫히지 않은 것이지 무작정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시나요?</p><p>하나님은?</p><p>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실 뿐 아니라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오래 참으십니다. 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동참케 하십니다. 우리가 느끼는 하늘의 침묵은 절대로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닙니다. 침묵도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거룩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앞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표현합니다.</p><p>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나팔 재앙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악을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8장에서 언급되는 심판은 우선은 제한적입니다. 창조세계의 일부만 영향을 받으며, 그 말씀은 아직은 여전히 회개의 기회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영원히 용납하지 않으십니다.</p><p>우리의 죄는?</p><p>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볍게 여기고, 기도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나요?</p><p>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때로 &quot;허락&quot;으로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면, 괜찮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분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부분적인 심판은 회개를 향한 하나님의 기다리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때에 우리는 돌이켜야 합니다. 애통하고 자복하는 심령을 간구해야 합니다.</p><p>또한, 우리는 기도에 침묵합니다. 하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만, 우리는 정작 하늘을 향한 입을 다물고 살아갑니다. 게시록 8장은 기도가 하늘의 거룩한 침묵을 깨는 힘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p><p>은혜는?</p><p>은혜는 침묵 속에서도 빛납니다. 하늘의 침묵은 심판 전의 마지막으로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자비의 시간입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박국 3:2)는 고백처럼, 하나님은 끝까지 돌아올 길을 열어두십니다.</p><p>은혜는 기도 속에서도 빛납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무시되지 않습니다. 향처럼 하나님 앞에 올라가며, 그리스도의 중보 속에서 들려집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하늘의 불과 함께 역사에 응답됩니다.</p><p>심판의 불도 제단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 제단은 어린양이 희생된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심판은 이미 그리스도 위에 내렸고, 우리는 그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p><p>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그 깨달음은 우리 삶에서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할까요?</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일곱째 인이 떼어지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해집니다(1절). 이 침묵은 중단이 아니라, 거룩한 기대와 경외 속의 적극적인 기다림입니다. 성경의 침묵은 종종 하나님의 행동 직전에 나타나며(하박국 2:20; 스바냐 1:7), 본문은 심판 앞의 거룩한 정적을 기록합니다.</p><p>이후, 한 천사가 금 향로를 가지고 나아와 성도들의 기도와 향을 함께 제단에 드립니다(3절). 이 기도는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던지자, 우레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납니다(5절).</p><p>하늘은 성도의 기도에 침묵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움직이실 때 사용하십니다.</p><p>그리고 나팔 재앙이 기록됩니다.</p><p>첫째 나팔부터 넷째 나팔까지 자연 질서의 일부가 3분의 1씩 파괴되며, 창조세계 전체가 요동합니다(7–12절). 그러나 이 재앙들은 아직 전면적 심판이 아니라 부분적인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입니다. 이렇게 회개를 향한 초대가 여전히 열려 있는 것이 기록됩니다. 그러나 아직 닫히지 않은 것이지 무작정 열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시나요?</p><p>하나님은?</p><p>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실 뿐 아니라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오래 참으십니다. 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동참케 하십니다. 우리가 느끼는 하늘의 침묵은 절대로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닙니다. 침묵도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거룩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앞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표현합니다.</p><p>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나팔 재앙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악을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8장에서 언급되는 심판은 우선은 제한적입니다. 창조세계의 일부만 영향을 받으며, 그 말씀은 아직은 여전히 회개의 기회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영원히 용납하지 않으십니다.</p><p>우리의 죄는?</p><p>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볍게 여기고, 기도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나요?</p><p>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때로 &quot;허락&quot;으로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면, 괜찮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분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부분적인 심판은 회개를 향한 하나님의 기다리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때에 우리는 돌이켜야 합니다. 애통하고 자복하는 심령을 간구해야 합니다.</p><p>또한, 우리는 기도에 침묵합니다. 하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만, 우리는 정작 하늘을 향한 입을 다물고 살아갑니다. 게시록 8장은 기도가 하늘의 거룩한 침묵을 깨는 힘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p><p>은혜는?</p><p>은혜는 침묵 속에서도 빛납니다. 하늘의 침묵은 심판 전의 마지막으로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자비의 시간입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박국 3:2)는 고백처럼, 하나님은 끝까지 돌아올 길을 열어두십니다.</p><p>은혜는 기도 속에서도 빛납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무시되지 않습니다. 향처럼 하나님 앞에 올라가며, 그리스도의 중보 속에서 들려집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하늘의 불과 함께 역사에 응답됩니다.</p><p>심판의 불도 제단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그 제단은 어린양이 희생된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심판은 이미 그리스도 위에 내렸고, 우리는 그 은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p><p>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그 깨달음은 우리 삶에서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할까요?</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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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6 Mar 2026 10: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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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계시록 7장</itunes:title>
    <title>요한계시록 7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인침 받은 자들과 흰옷 입은 무리 —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완전함 서론: 요한계시록의 해석과 144,000에 대한 개혁주의적 시각 요한계시록은 단순한 예언서가 아니라, 상징과 이미지로 가득한 묵시문학으로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개혁주의 전통, 특히 무천년주의(amillennialism)는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 그 상징 속에 담긴 구속사적 메시지를 조명합니다. 이는 G.K. Beale, Anthony Hoekema, James Boice와 같은 학자들의 통찰을 따릅니다. 7장에 나오는 144,000은 문자적인 숫자나 민족적 유대인, 즉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 전체—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12는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상징하는 숫자이며(12지파, 12사도), 12×12×1000은 하나님의 백성이 온전하게 인치심을 받았다는 상징입니다. 즉, 144,000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시고 보호...]]></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인침 받은 자들과 흰옷 입은 무리 —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완전함</p><p>서론: 요한계시록의 해석과 144,000에 대한 개혁주의적 시각</p><p>요한계시록은 단순한 예언서가 아니라, 상징과 이미지로 가득한 묵시문학으로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개혁주의 전통, 특히 무천년주의(amillennialism)는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 그 상징 속에 담긴 구속사적 메시지를 조명합니다. 이는 G.K. Beale, Anthony Hoekema, James Boice와 같은 학자들의 통찰을 따릅니다.</p><p>7장에 나오는 144,000은 문자적인 숫자나 민족적 유대인, 즉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 전체—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12는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상징하는 숫자이며(12지파, 12사도), 12×12×1000은 하나님의 백성이 온전하게 인치심을 받았다는 상징입니다. 즉, 144,000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시고 보호하시는 &apos;온전한 교회&apos;를 나타냅니다.</p><p>요약</p><p>요한계시록 7장은 여섯 번째 인이 열린 후, 일곱 번째 인이 열리기 전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심판의 바람이 아직 불기 전에, 하나님은 종들에게 인을 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상징적 설명입니다. 이어서, 요한은 흰 옷을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를 보게 됩니다. 이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가운데서 나온 자들이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p><p>묵상</p><p>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인치시며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1–8절)</p><p>“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3절).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기 전, 주께서는 먼저 자신의 백성에게 ‘인의 표’를 주십니다. 이는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되었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고난과 심판의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지키십니다.</p><p>어린 양의 피로 씻김 받은 모든 족속의 무리는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나타냅니다 (9–14절)</p><p>요한이 본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가운데서 온 자들입니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로, 고난을 통과한 후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입니다. 교회는 단지 유대인이라는 민족의 회복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복음의 보편성과 구속사의 전개를 잘 드러냅니다.</p><p>하나님의 장막 아래서 흰옷 입은 자들은 영원한 위로와 생명수를 누립니다 (15–17절)</p><p>“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이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5절). 고난 속에서 믿음을 지킨 이들은 이제 더 이상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으며, 해와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 속으로 인도됩니다. “어린 양이… 그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니라” (17절). 하나님의 위로는 고난 이후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임하며, 결국 완전한 회복으로 나아갑니다.</p><p>적용</p><p>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의 백성을 인치시며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환난 속에서 흔들릴 수 있지만, 우리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의 고난과 박해는 예외가 아니라 예정된 과정이며, 그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순결하게 하시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수로 인도하십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인침 받은 자들과 흰옷 입은 무리 —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완전함</p><p>서론: 요한계시록의 해석과 144,000에 대한 개혁주의적 시각</p><p>요한계시록은 단순한 예언서가 아니라, 상징과 이미지로 가득한 묵시문학으로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개혁주의 전통, 특히 무천년주의(amillennialism)는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 그 상징 속에 담긴 구속사적 메시지를 조명합니다. 이는 G.K. Beale, Anthony Hoekema, James Boice와 같은 학자들의 통찰을 따릅니다.</p><p>7장에 나오는 144,000은 문자적인 숫자나 민족적 유대인, 즉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 전체—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12는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상징하는 숫자이며(12지파, 12사도), 12×12×1000은 하나님의 백성이 온전하게 인치심을 받았다는 상징입니다. 즉, 144,000은 하나님께서 구속하시고 보호하시는 &apos;온전한 교회&apos;를 나타냅니다.</p><p>요약</p><p>요한계시록 7장은 여섯 번째 인이 열린 후, 일곱 번째 인이 열리기 전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심판의 바람이 아직 불기 전에, 하나님은 종들에게 인을 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상징적 설명입니다. 이어서, 요한은 흰 옷을 입은 셀 수 없는 무리를 보게 됩니다. 이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가운데서 나온 자들이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p><p>묵상</p><p>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인치시며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1–8절)</p><p>“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3절).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기 전, 주께서는 먼저 자신의 백성에게 ‘인의 표’를 주십니다. 이는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되었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고난과 심판의 시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지키십니다.</p><p>어린 양의 피로 씻김 받은 모든 족속의 무리는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나타냅니다 (9–14절)</p><p>요한이 본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가운데서 온 자들입니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로, 고난을 통과한 후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입니다. 교회는 단지 유대인이라는 민족의 회복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복음의 보편성과 구속사의 전개를 잘 드러냅니다.</p><p>하나님의 장막 아래서 흰옷 입은 자들은 영원한 위로와 생명수를 누립니다 (15–17절)</p><p>“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이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5절). 고난 속에서 믿음을 지킨 이들은 이제 더 이상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으며, 해와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안식 속으로 인도됩니다. “어린 양이… 그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니라” (17절). 하나님의 위로는 고난 이후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임하며, 결국 완전한 회복으로 나아갑니다.</p><p>적용</p><p>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의 백성을 인치시며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환난 속에서 흔들릴 수 있지만, 우리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의 고난과 박해는 예외가 아니라 예정된 과정이며, 그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순결하게 하시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수로 인도하십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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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세대주의 이해하기</itunes:title>
    <title>세대주의 이해하기</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한 구속 역사를 여러 시대(세대, dispensation)로 나누어 다르게 다루셨다고 보는 신학 체계입니다. 이 관점은 성경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별하며, 미래 중심적 종말론을 강조합니다. 세대주의는 일반적으로 환란 이전의 휴거, 7년 대환란, 그리고 지상에서의 천년 왕국(그리스도의 재림 후)을 믿습니다. 세대주의는 19세기 영국의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이후 스코필드 주석 성경을 통해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세대(Dispensation) 개념 하나님은 인류 역사 속에서 총 7개의 시기(예: 무죄의 시대, 율법의 시대, 은혜의 시대 등)를 통해 다르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셨다고 봅니다. 각 세대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특정한 책임을 맡기시고, 인간은 그 시험에 실패하며 다음 세...]]></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한 구속 역사를 여러 시대(세대, dispensation)로 나누어 다르게 다루셨다고 보는 신학 체계입니다. 이 관점은 성경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별하며, 미래 중심적 종말론을 강조합니다. 세대주의는 일반적으로 환란 이전의 휴거, 7년 대환란, 그리고 지상에서의 천년 왕국(그리스도의 재림 후)을 믿습니다. 세대주의는 19세기 영국의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이후 스코필드 주석 성경을 통해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p><p><br/></p><p>1. 세대(Dispensation) 개념</p><p>하나님은 인류 역사 속에서 총 7개의 시기(예: 무죄의 시대, 율법의 시대, 은혜의 시대 등)를 통해 다르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셨다고 봅니다. 각 세대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특정한 책임을 맡기시고, 인간은 그 시험에 실패하며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고 이해됩니다.</p><p><br/></p><p>2.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p><p>세대주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교회에 각각 다른 계획과 약속을 가지고 계시다고 주장합니다. 교회는 신약 시대에 시작된 별도의 존재이며, 이스라엘은 종말에 회복되어 천년왕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p><p><br/></p><p>3. 성경 예언의 문자적 해석</p><p>구약과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거의 대부분 미래에 문자적으로 성취될 사건들로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성전 재건, 다니엘의 70이레, 요한계시록의 재앙들과 천년왕국 등은 실제 역사 속 사건으로 간주됩니다.</p><p><br/></p><p>4. 종말론적 체계</p><p>휴거(Rapture): 예수님의 재림 이전, 교회가 비밀리에 공중으로 들려올라간다는 견해입니다 (주로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근거로).</p><p>7년 대환란(Great Tribulation): 휴거 이후 지상에는 7년간 전무후무한 환란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봅니다.</p><p>천년왕국(Millennium): 예수님께서 직접 예루살렘에서 1,000년 동안 통치하시며 이스라엘과 세상 열방을 다스리신다고 믿습니다.</p><p><br/></p><p>구분 세대주의 관점</p><p>역사 해석 시대별(세대별)로 나뉜 하나님과의 관계</p><p>이스라엘 vs. 교회 완전히 다른 존재, 다른 계획</p><p>예언 해석 방식 대부분 문자적이고 미래 지향적</p><p>종말 사건 순서 휴거 → 7년 환란 → 재림 → 천년왕국 → 새 하늘과 새 땅</p><p>대표 신학자 및 전통 다비, 스코필드, 라이리, 맥아더 등</p><p><br/></p><p>세대주의 vs. 개혁주의 종말론</p><p>세대주의는 성경의 역사를 여러 시대로 분리하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하나님 계획 안의 별개 단위로 구분합니다. 그 결과 요한계시록을 미래의 문자적인 사건들—7년 환난, 비밀 휴거, 문자적 천년왕국 등—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성경 전체의 흐름, 곧 하나님의 언약과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를 단절시키며, 오늘날 교회와 성도에게 주는 실제적 메시지를 약화시킵니다.</p><p><br/></p><p>반면 개혁주의 종말론은 성경 전체를 언약의 연속성 안에서 읽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점진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그 중심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먼 미래의 예언이 아니라, 고난과 시험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영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p><p><br/></p><p>계시록의 상징은 단순한 비유나 장식이 아니라, 현실을 더 깊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apos;네 마리 말&apos;(계 6장)이나 &apos;일곱 인&apos;, &apos;보좌&apos;와 같은 이미지들은 모두 문자적 사건보다 더 실제적이며, 역사 전체에 걸친 반복적이고 포괄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p><p><br/></p><p>계시록은 “하늘의 시각으로 본 교회의 현실”입니다. 상징적 언어는 문자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상징은 숨기려는 언어가 아니라, 더 깊은 영적 실재를 드러내는 감동적 언어입니다. 세대주의자들처럼 성경을 문맥 없이 문자적으로 읽는 것은 위험합니다. 상징적 언어는 상징적으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왕이신 예수의 구속사의 큰 흐름 안에서 계시록을 읽어야 합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한 구속 역사를 여러 시대(세대, dispensation)로 나누어 다르게 다루셨다고 보는 신학 체계입니다. 이 관점은 성경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별하며, 미래 중심적 종말론을 강조합니다. 세대주의는 일반적으로 환란 이전의 휴거, 7년 대환란, 그리고 지상에서의 천년 왕국(그리스도의 재림 후)을 믿습니다. 세대주의는 19세기 영국의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이후 스코필드 주석 성경을 통해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p><p><br/></p><p>1. 세대(Dispensation) 개념</p><p>하나님은 인류 역사 속에서 총 7개의 시기(예: 무죄의 시대, 율법의 시대, 은혜의 시대 등)를 통해 다르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셨다고 봅니다. 각 세대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특정한 책임을 맡기시고, 인간은 그 시험에 실패하며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고 이해됩니다.</p><p><br/></p><p>2.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p><p>세대주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교회에 각각 다른 계획과 약속을 가지고 계시다고 주장합니다. 교회는 신약 시대에 시작된 별도의 존재이며, 이스라엘은 종말에 회복되어 천년왕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p><p><br/></p><p>3. 성경 예언의 문자적 해석</p><p>구약과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거의 대부분 미래에 문자적으로 성취될 사건들로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성전 재건, 다니엘의 70이레, 요한계시록의 재앙들과 천년왕국 등은 실제 역사 속 사건으로 간주됩니다.</p><p><br/></p><p>4. 종말론적 체계</p><p>휴거(Rapture): 예수님의 재림 이전, 교회가 비밀리에 공중으로 들려올라간다는 견해입니다 (주로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근거로).</p><p>7년 대환란(Great Tribulation): 휴거 이후 지상에는 7년간 전무후무한 환란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봅니다.</p><p>천년왕국(Millennium): 예수님께서 직접 예루살렘에서 1,000년 동안 통치하시며 이스라엘과 세상 열방을 다스리신다고 믿습니다.</p><p><br/></p><p>구분 세대주의 관점</p><p>역사 해석 시대별(세대별)로 나뉜 하나님과의 관계</p><p>이스라엘 vs. 교회 완전히 다른 존재, 다른 계획</p><p>예언 해석 방식 대부분 문자적이고 미래 지향적</p><p>종말 사건 순서 휴거 → 7년 환란 → 재림 → 천년왕국 → 새 하늘과 새 땅</p><p>대표 신학자 및 전통 다비, 스코필드, 라이리, 맥아더 등</p><p><br/></p><p>세대주의 vs. 개혁주의 종말론</p><p>세대주의는 성경의 역사를 여러 시대로 분리하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하나님 계획 안의 별개 단위로 구분합니다. 그 결과 요한계시록을 미래의 문자적인 사건들—7년 환난, 비밀 휴거, 문자적 천년왕국 등—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성경 전체의 흐름, 곧 하나님의 언약과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를 단절시키며, 오늘날 교회와 성도에게 주는 실제적 메시지를 약화시킵니다.</p><p><br/></p><p>반면 개혁주의 종말론은 성경 전체를 언약의 연속성 안에서 읽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점진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그 중심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먼 미래의 예언이 아니라, 고난과 시험 속에서 살아가는 교회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영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p><p><br/></p><p>계시록의 상징은 단순한 비유나 장식이 아니라, 현실을 더 깊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시각입니다. &apos;네 마리 말&apos;(계 6장)이나 &apos;일곱 인&apos;, &apos;보좌&apos;와 같은 이미지들은 모두 문자적 사건보다 더 실제적이며, 역사 전체에 걸친 반복적이고 포괄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p><p><br/></p><p>계시록은 “하늘의 시각으로 본 교회의 현실”입니다. 상징적 언어는 문자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상징은 숨기려는 언어가 아니라, 더 깊은 영적 실재를 드러내는 감동적 언어입니다. 세대주의자들처럼 성경을 문맥 없이 문자적으로 읽는 것은 위험합니다. 상징적 언어는 상징적으로 읽는 것이 옳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왕이신 예수의 구속사의 큰 흐름 안에서 계시록을 읽어야 합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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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Mar 2026 12: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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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계시록 6장</itunes:title>
    <title>요한계시록 6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하늘에서 찬양이 가득했던 요한계시록 4–5장 이후, 6장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됩니다. 죽임당한 어린양이 첫째 인을 떼시자,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 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말탄 자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 이들은 정복, 전쟁, 기근, 죽음을 상징하며,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섯째 인이 떼어질 때, 하나님의 제단 아래에서 순교자들의 음성이 들립니다.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10절). 그들은 복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길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잠시만 더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11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망각되거나 무관심 속에 남겨지지 않습니다.   여섯...]]></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하늘에서 찬양이 가득했던 요한계시록 4–5장 이후, 6장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됩니다. 죽임당한 어린양이 첫째 인을 떼시자,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 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말탄 자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 이들은 정복, 전쟁, 기근, 죽음을 상징하며,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p><p><br/></p><p>다섯째 인이 떼어질 때, 하나님의 제단 아래에서 순교자들의 음성이 들립니다.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10절). 그들은 복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길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잠시만 더 쉬라”고 말씀하십니다.</p><p>11절, &quot;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quot;</p><p>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망각되거나 무관심 속에 남겨지지 않습니다.</p><p><br/></p><p>여섯째 인이 떼어지자 자연과 우주의 대격변이 일어납니다—지진, 해의 흑암, 달의 혈색,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이 말려지는 듯한 묘사입니다. 왕이든 종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숨으며 외칩니다</p><p>16-17절, &quot;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p><p>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quot;</p><p><br/></p><p>하나님은?</p><p>하나님은 역사의 모든 순간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만이 두루마리의 인을 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그분은 심판의 주로서 지금도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종종 심판을 하나님과 어울리지 않는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p><p><br/></p><p>심판은 하나님의 분노가 폭주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완전하고 정당한 반응입니다. 이 심판의 주도권은 어린양께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이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해 마지막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p><p><br/></p><p>우리의 죄는?</p><p>우리의 죄는 심판을 경시하거나 외면하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다고 생각하며 절망하거나, 반대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교만해집니다.</p><p><br/></p><p>또한, 우리는 순교자들의 외침과는 달리 “언제까지입니까?”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갈망하기보다, 현실의 안락함에 익숙해져 그저 조용히 살아가려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 두려워해야 하지만, 정작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p><p><br/></p><p>은혜는?</p><p>은혜는 제단 아래 순교자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기다린다는 사실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응답받지 못한 기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그들이 온전히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끝까지 보호받으며,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p><p><br/></p><p>또한,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는 사실 자체가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악을 그대로 두시지 않습니다. 그날은 크고 두려운 날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정의가 완전히 드러나는 날입니다. 지금은 회개의 때이며, 하나님의 자비가 아직 열려 있는 시간입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하늘에서 찬양이 가득했던 요한계시록 4–5장 이후, 6장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됩니다. 죽임당한 어린양이 첫째 인을 떼시자, 네 생물 중 하나가 “오라!” 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말탄 자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 이들은 정복, 전쟁, 기근, 죽음을 상징하며,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p><p><br/></p><p>다섯째 인이 떼어질 때, 하나님의 제단 아래에서 순교자들의 음성이 들립니다.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10절). 그들은 복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길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잠시만 더 쉬라”고 말씀하십니다.</p><p>11절, &quot;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quot;</p><p>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망각되거나 무관심 속에 남겨지지 않습니다.</p><p><br/></p><p>여섯째 인이 떼어지자 자연과 우주의 대격변이 일어납니다—지진, 해의 흑암, 달의 혈색,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이 말려지는 듯한 묘사입니다. 왕이든 종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숨으며 외칩니다</p><p>16-17절, &quot;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p><p>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quot;</p><p><br/></p><p>하나님은?</p><p>하나님은 역사의 모든 순간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만이 두루마리의 인을 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그분은 심판의 주로서 지금도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종종 심판을 하나님과 어울리지 않는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p><p><br/></p><p>심판은 하나님의 분노가 폭주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완전하고 정당한 반응입니다. 이 심판의 주도권은 어린양께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이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해 마지막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p><p><br/></p><p>우리의 죄는?</p><p>우리의 죄는 심판을 경시하거나 외면하는 데 있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다고 생각하며 절망하거나, 반대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교만해집니다.</p><p><br/></p><p>또한, 우리는 순교자들의 외침과는 달리 “언제까지입니까?”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갈망하기보다, 현실의 안락함에 익숙해져 그저 조용히 살아가려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 두려워해야 하지만, 정작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p><p><br/></p><p>은혜는?</p><p>은혜는 제단 아래 순교자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기다린다는 사실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응답받지 못한 기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그들이 온전히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끝까지 보호받으며,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p><p><br/></p><p>또한,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는 사실 자체가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악을 그대로 두시지 않습니다. 그날은 크고 두려운 날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정의가 완전히 드러나는 날입니다. 지금은 회개의 때이며, 하나님의 자비가 아직 열려 있는 시간입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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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Mar 2026 12: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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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계시록 5장</itunes:title>
    <title>요한계시록 5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하늘에서의 요한의 환상은 계속됩니다. 4장에서 초점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그분의 보좌였습니다. 이제 5장에서는 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들린 두루마리(1절)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이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의 계획, 곧 역사의 완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 어디에도 그것을 열 자격이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요한은 크게 울기 시작합니다(4절). 만일 아무도 이 두루마리를 열 수 없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감추어진 채로 남고, 인류는 소망 없이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말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5절). 요한이 눈을 돌려 보았을 때, 사자가 아니라 죽임을 당하신 것 같은 어린양이 서 있는 것을 봅니다(6절).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제시하는 복음의 역설, 즉 아이러니입니다. 인류가...]]></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하늘에서의 요한의 환상은 계속됩니다. 4장에서 초점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그분의 보좌였습니다. 이제 5장에서는 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들린 두루마리(1절)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이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의 계획, 곧 역사의 완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 어디에도 그것을 열 자격이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요한은 크게 울기 시작합니다(4절). 만일 아무도 이 두루마리를 열 수 없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감추어진 채로 남고, 인류는 소망 없이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p><p><br/></p><p>그때,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말합니다. &quot;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5절). 요한이 눈을 돌려 보았을 때, 사자가 아니라 죽임을 당하신 것 같은 어린양이 서 있는 것을 봅니다(6절).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제시하는 복음의 역설, 즉 아이러니입니다. 인류가 고대하는 왕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입니다.</p><p><br/></p><p>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자(7절), 천상의 예배는 폭발하듯 터집니다.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가 어린양 앞에 엎드려 새 노래를 부릅니다.</p><p>9-10절,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p><p>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라 하더라&quot;</p><p><br/></p><p>이후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합류하고, 마지막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이 한 목소리로 찬양합니다</p><p>13절,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p><p>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p><p>세세토록 돌릴지어다!”</p><p><br/></p><p>하늘은 어린양 앞에서 침묵하지 않습니다.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p><p>십자가는 역사의 중심이며, 죽임당한 어린양은 모든 피조물이 드리는 경배의 중심입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역사를 손에 쥐고 계신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두루마리는 통제 밖의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뜻에 따라 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통치자이실 뿐 아니라 구속자이십니다. 그분은 그 권세를 오직 홀로 자격이 있으신 어린양에게 맡기셨습니다.</p><p><br/></p><p>예수님의 승리는 죽음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그분은 죽임을 당하신 상처를 지닌 어린양이시지만,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그는 모든 존귀와 경배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합니다</p><p>하늘은 이 사실을 분명히 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어린양과 함께 공유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길은, 죽임당하신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것입니다</p><p><br/></p><p>우리의 죄</p><p>우리는 요한처럼 울 때가 있지만, 정작 이유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멀어졌다는 자각이나 자신의 자격 없음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불편함이나 통제력 상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울곤 합니다.</p><p>그리고 울지 않을 상황에는 자만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두루마리를 스스로 열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미래를 풀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능력이 있느냐”가 아니라, “자격이 있느냐”입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 어디에도 그 자격 있는 자는 없습니다.</p><p><br/></p><p>우리의 죄는 예배의 부재에도 드러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거룩한 부담이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유익에는 지대한 관심을 갖지만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우리 가운데 임하고 있는가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p><p><br/></p><p>당장 내일, 거대한 태풍이 온다면 우리 삶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바뀔까요?</p><p>주식시장이 폭락한다면, 세계 경제가 파탄이 난다면, 세계가 전쟁으로 치닫는다면 과연 오늘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계속 중요할까요?</p><p><br/></p><p>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위에 언급한 것보다 더 확실하게 이 세상의 기반을 흔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하늘에서의 요한의 환상은 계속됩니다. 4장에서 초점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그분의 보좌였습니다. 이제 5장에서는 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들린 두루마리(1절)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이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의 계획, 곧 역사의 완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 어디에도 그것을 열 자격이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요한은 크게 울기 시작합니다(4절). 만일 아무도 이 두루마리를 열 수 없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감추어진 채로 남고, 인류는 소망 없이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p><p><br/></p><p>그때,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말합니다. &quot;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5절). 요한이 눈을 돌려 보았을 때, 사자가 아니라 죽임을 당하신 것 같은 어린양이 서 있는 것을 봅니다(6절).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제시하는 복음의 역설, 즉 아이러니입니다. 인류가 고대하는 왕은 바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입니다.</p><p><br/></p><p>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자(7절), 천상의 예배는 폭발하듯 터집니다. 네 생물과 스물네 장로가 어린양 앞에 엎드려 새 노래를 부릅니다.</p><p>9-10절,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p><p>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라 하더라&quot;</p><p><br/></p><p>이후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합류하고, 마지막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이 한 목소리로 찬양합니다</p><p>13절,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p><p>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p><p>세세토록 돌릴지어다!”</p><p><br/></p><p>하늘은 어린양 앞에서 침묵하지 않습니다.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p><p>십자가는 역사의 중심이며, 죽임당한 어린양은 모든 피조물이 드리는 경배의 중심입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역사를 손에 쥐고 계신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두루마리는 통제 밖의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뜻에 따라 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통치자이실 뿐 아니라 구속자이십니다. 그분은 그 권세를 오직 홀로 자격이 있으신 어린양에게 맡기셨습니다.</p><p><br/></p><p>예수님의 승리는 죽음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그분은 죽임을 당하신 상처를 지닌 어린양이시지만, 부활로 죽음을 이기신 그는 모든 존귀와 경배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합니다</p><p>하늘은 이 사실을 분명히 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어린양과 함께 공유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길은, 죽임당하신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것입니다</p><p><br/></p><p>우리의 죄</p><p>우리는 요한처럼 울 때가 있지만, 정작 이유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멀어졌다는 자각이나 자신의 자격 없음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불편함이나 통제력 상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울곤 합니다.</p><p>그리고 울지 않을 상황에는 자만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두루마리를 스스로 열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미래를 풀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능력이 있느냐”가 아니라, “자격이 있느냐”입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 어디에도 그 자격 있는 자는 없습니다.</p><p><br/></p><p>우리의 죄는 예배의 부재에도 드러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거룩한 부담이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유익에는 지대한 관심을 갖지만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우리 가운데 임하고 있는가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p><p><br/></p><p>당장 내일, 거대한 태풍이 온다면 우리 삶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바뀔까요?</p><p>주식시장이 폭락한다면, 세계 경제가 파탄이 난다면, 세계가 전쟁으로 치닫는다면 과연 오늘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계속 중요할까요?</p><p><br/></p><p>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위에 언급한 것보다 더 확실하게 이 세상의 기반을 흔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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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계시록 4장</itunes:title>
    <title>요한계시록 4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가 끝난 후, 요한은 이제 하늘을 향해 열린 문을 보게 됩니다. “이리로 올라오라”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은 요한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부릅니다(1절).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보기 전에, 요한은 항상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현실, 곧 하늘 보좌를 보게 됩니다. ‘보좌’는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중심적인 상징입니다. 계시록 전체에서 40번 넘게 등장하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와 주권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을 평생 공부한 비일에 따르면, “보좌는 계시록 전체에서 가장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상징이며, 모든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 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은 벽옥과 홍보석 같은 광채를 띠고 계시며, 무지개가 보좌를 둘러싸고 있습니다(3절).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동시에 언약의 자비를 상징합니다. 보좌 주위에는 스물네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는데, 이는 구속받은 하나님의...]]></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가 끝난 후, 요한은 이제 하늘을 향해 열린 문을 보게 됩니다. “이리로 올라오라”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은 요한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부릅니다(1절).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보기 전에, 요한은 항상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현실, 곧 하늘 보좌를 보게 됩니다.</p><p>‘보좌’는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중심적인 상징입니다. 계시록 전체에서 40번 넘게 등장하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와 주권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을 평생 공부한 비일에 따르면, “보좌는 계시록 전체에서 가장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상징이며, 모든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 합니다.</p><p>보좌에 앉으신 분은 벽옥과 홍보석 같은 광채를 띠고 계시며, 무지개가 보좌를 둘러싸고 있습니다(3절).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동시에 언약의 자비를 상징합니다. 보좌 주위에는 스물네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는데, 이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구약의 열두 지파 + 신약의 열두 사도)을 대표합니다.</p><p>보좌로부터는 번개와 음성과 우뢰가 흘러나오고(5절), 일곱 불은 성령의 충만함을 나타내며, 수정 같은 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순결과 초월성을 상징합니다(6절). 네 생물은 날개와 눈으로 가득하며 에스겔과 이사야의 환상 속 존재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외칩니다:</p><p>“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8절) 이 모든 것이 상징적 언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p><p><br/></p><p>이에 스물네 장로들은 면류관을 내려놓고 엎드려 예배하며 고백합니다:</p><p>“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고 또 주의 뜻대로 있었고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11절)</p><p>이 장은 앞으로 펼쳐질 모든 계시의 방향을 정리해 줍니다. 재앙이 시작되기 전에, 어린 양이 등장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하늘의 보좌를 보아야 합니다. 경배는 계시록의 결말이 아니라, 그 시작이자 중심입니다</p><p><br/></p><p>하나님은?</p><p>하나님은 하늘에 보좌를 두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응하시는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거룩하심 앞에는 네 생물들이 밤낮으로 엎드려 경배하고, 그분의 주권 앞에는 장로들이 면류관을 내려놓습니다.</p><p>우주 전체에 하나님 보좌의 통제를 벗어난 단 하나의 분자라도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은 말합니다. 하늘의 보좌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신 자리인데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는 무지개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실 뿐 아니라, 자비로우신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p><p><br/></p><p>우리의 연약함은?</p><p>그런데 우리는 마치 이 보좌가 비어 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우리의 계획, 정치, 물질, 감정이 중심이 되어 버리고, 하나님은 주변으로 밀려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염려와 통제 욕구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p><p>우리 삶 속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가 사라졌다는 것은 사실은 우리는 이미 실질적인 무신론주의자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크리스천에게 주일 예배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탄 대신 무관심으로, 경배 대신 자기중심적 습관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면류관을 쥐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p><p><br/></p><p>은혜는?</p><p>은혜는 요한이 하늘로 초대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나타납니다. 요한은 스스로 보좌에 접근할 수 없지만, 성령 안에서 그곳으로 인도됩니다. 우리 또한 은혜로만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p><p>하늘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기쁨 때문입니다. 장로들은 면류관을 내려놓으며 기꺼이 엎드립니다. 팀 켈러는 말했습니다. “은혜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찬양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된다.” 하늘의 중심은 바로 그 예배의 자리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삶에서 찬양이 결핍된 것은 은혜를 잊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요?</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가 끝난 후, 요한은 이제 하늘을 향해 열린 문을 보게 됩니다. “이리로 올라오라”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은 요한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부릅니다(1절).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보기 전에, 요한은 항상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현실, 곧 하늘 보좌를 보게 됩니다.</p><p>‘보좌’는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중심적인 상징입니다. 계시록 전체에서 40번 넘게 등장하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와 주권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을 평생 공부한 비일에 따르면, “보좌는 계시록 전체에서 가장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상징이며, 모든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 합니다.</p><p>보좌에 앉으신 분은 벽옥과 홍보석 같은 광채를 띠고 계시며, 무지개가 보좌를 둘러싸고 있습니다(3절).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동시에 언약의 자비를 상징합니다. 보좌 주위에는 스물네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는데, 이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구약의 열두 지파 + 신약의 열두 사도)을 대표합니다.</p><p>보좌로부터는 번개와 음성과 우뢰가 흘러나오고(5절), 일곱 불은 성령의 충만함을 나타내며, 수정 같은 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순결과 초월성을 상징합니다(6절). 네 생물은 날개와 눈으로 가득하며 에스겔과 이사야의 환상 속 존재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외칩니다:</p><p>“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8절) 이 모든 것이 상징적 언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p><p><br/></p><p>이에 스물네 장로들은 면류관을 내려놓고 엎드려 예배하며 고백합니다:</p><p>“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셨고 또 주의 뜻대로 있었고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11절)</p><p>이 장은 앞으로 펼쳐질 모든 계시의 방향을 정리해 줍니다. 재앙이 시작되기 전에, 어린 양이 등장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하늘의 보좌를 보아야 합니다. 경배는 계시록의 결말이 아니라, 그 시작이자 중심입니다</p><p><br/></p><p>하나님은?</p><p>하나님은 하늘에 보좌를 두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응하시는 분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거룩하심 앞에는 네 생물들이 밤낮으로 엎드려 경배하고, 그분의 주권 앞에는 장로들이 면류관을 내려놓습니다.</p><p>우주 전체에 하나님 보좌의 통제를 벗어난 단 하나의 분자라도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은 말합니다. 하늘의 보좌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신 자리인데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는 무지개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실 뿐 아니라, 자비로우신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p><p><br/></p><p>우리의 연약함은?</p><p>그런데 우리는 마치 이 보좌가 비어 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우리의 계획, 정치, 물질, 감정이 중심이 되어 버리고, 하나님은 주변으로 밀려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염려와 통제 욕구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p><p>우리 삶 속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가 사라졌다는 것은 사실은 우리는 이미 실질적인 무신론주의자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크리스천에게 주일 예배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탄 대신 무관심으로, 경배 대신 자기중심적 습관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면류관을 쥐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p><p><br/></p><p>은혜는?</p><p>은혜는 요한이 하늘로 초대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나타납니다. 요한은 스스로 보좌에 접근할 수 없지만, 성령 안에서 그곳으로 인도됩니다. 우리 또한 은혜로만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p><p>하늘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기쁨 때문입니다. 장로들은 면류관을 내려놓으며 기꺼이 엎드립니다. 팀 켈러는 말했습니다. “은혜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찬양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된다.” 하늘의 중심은 바로 그 예배의 자리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삶에서 찬양이 결핍된 것은 은혜를 잊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요?</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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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계시록 소개</itunes:title>
    <title>요한계시록 소개</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묵학적 장르인 "묵시" 혹은 "계시" 장르입니다. 여기 '계시’라는 단어는 헬라어 아포칼립시스(ἀποκάλυψις)에서 유래한 말로, “드러냄, 벗겨냄”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이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셨고, 예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전달하셨다고 기록합니다. 흔히 오해하듯 요한계시록은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끝까지 견디도록 돕기 위해 주어진 그리스도 중심의 상징적 기록입니다 1절에 나오는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은 다니엘 2:28–29을 상기시키며, 예수님의 부활로 이미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음을 나타냅니다(비일, 요한계시록, NIGTC). 즉, 성도들은 먼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지막 시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편지를 보내는 일곱 교회는 실제 존재했지만, 이 숫자는 완...]]></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묵학적 장르인 &quot;묵시&quot; 혹은 &quot;계시&quot; 장르입니다. 여기 &apos;계시’라는 단어는 헬라어 아포칼립시스(ἀποκάλυψις)에서 유래한 말로, “드러냄, 벗겨냄”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이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셨고, 예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전달하셨다고 기록합니다. 흔히 오해하듯 요한계시록은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끝까지 견디도록 돕기 위해 주어진 그리스도 중심의 상징적 기록입니다</p><p>1절에 나오는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은 다니엘 2:28–29을 상기시키며, 예수님의 부활로 이미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음을 나타냅니다(비일, 요한계시록, NIGTC). 즉, 성도들은 먼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지막 시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편지를 보내는 일곱 교회는 실제 존재했지만, 이 숫자는 완전함과 보편성을 상징하며 (비일), 전 시대와 전 세계의 모든 교회를 대변합니다</p><p>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복의 약속은 요한계시록이 단지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퍼즐처럼 해석하라고 주어진 책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순종과 인내를 길러 주는 목회적이고 실제적인 목적을 가진 책입니다(맥아더).</p><p>4–6절은 다음과 같은 삼위일체적 문안 인사로 이어집니다:</p><p>“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p><p>예수님은 세 가지 명칭으로 묘사됩니다: 충성된 증인(지상 사역),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신 이(부활 권세), 땅의 임금들의 머리(현재의 통치자). 교회가 고난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메시지가 아니라, 보좌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다시 보는 것입니다.</p><p>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자기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고(5절),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으셨습니다(6절). 우리는 영광을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그의 통치와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7절에 이르러 이 환상은 절정에 이릅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p><p>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감추인 모습으로가 아니라,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십니다.</p><p>하나님은 구속사의 주권적인 작가이십니다. 그는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4절)로서 시간과 영원을 주관하십니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예언자가 아니라, 보좌 위에 계신 왕이자 신실한 증인이며, 부활하신 주님이요 온 우주의 통치자이십니다(5절). 팀 켈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님이 지금은 우주를 다스리고 계시며, 장차 그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p><p>하나님은 교회를 어둠 속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뜻과 계획을 드러내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시며, 고난 가운데서도 굳건히 세우기를 원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p><p>우리의 죄는 누가 참으로 다스리시는지를 망각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권력자들이 최종 권위를 가진 것처럼 살거나 그리스도의 통치를 단지 먼 미래의 일로만 여깁니다. 초대교회처럼, 우리도 타협하거나 낙심하거나 무감각해질 수 있습니다. 이미 구속받은 자들이면서도, 마치 아직도 속박 가운데 있는 자들처럼 살아갑니다.</p><p>요한계시록은 이러한 나태함을 흔들어 깨웁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고,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배를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예배자로서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p><p>이 책은 해석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마도 순종하기 어려운 책일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찢으며 무릎을 꿇고 겸허히 이 책을 읽고 묵상하길 원합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묵학적 장르인 &quot;묵시&quot; 혹은 &quot;계시&quot; 장르입니다. 여기 &apos;계시’라는 단어는 헬라어 아포칼립시스(ἀποκάλυψις)에서 유래한 말로, “드러냄, 벗겨냄”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이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셨고, 예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전달하셨다고 기록합니다. 흔히 오해하듯 요한계시록은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끝까지 견디도록 돕기 위해 주어진 그리스도 중심의 상징적 기록입니다</p><p>1절에 나오는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은 다니엘 2:28–29을 상기시키며, 예수님의 부활로 이미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음을 나타냅니다(비일, 요한계시록, NIGTC). 즉, 성도들은 먼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지막 시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편지를 보내는 일곱 교회는 실제 존재했지만, 이 숫자는 완전함과 보편성을 상징하며 (비일), 전 시대와 전 세계의 모든 교회를 대변합니다</p><p>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복의 약속은 요한계시록이 단지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퍼즐처럼 해석하라고 주어진 책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순종과 인내를 길러 주는 목회적이고 실제적인 목적을 가진 책입니다(맥아더).</p><p>4–6절은 다음과 같은 삼위일체적 문안 인사로 이어집니다:</p><p>“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p><p>예수님은 세 가지 명칭으로 묘사됩니다: 충성된 증인(지상 사역),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신 이(부활 권세), 땅의 임금들의 머리(현재의 통치자). 교회가 고난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메시지가 아니라, 보좌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다시 보는 것입니다.</p><p>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자기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고(5절),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으셨습니다(6절). 우리는 영광을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그의 통치와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7절에 이르러 이 환상은 절정에 이릅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p><p>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감추인 모습으로가 아니라,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십니다.</p><p>하나님은 구속사의 주권적인 작가이십니다. 그는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4절)로서 시간과 영원을 주관하십니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예언자가 아니라, 보좌 위에 계신 왕이자 신실한 증인이며, 부활하신 주님이요 온 우주의 통치자이십니다(5절). 팀 켈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님이 지금은 우주를 다스리고 계시며, 장차 그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p><p>하나님은 교회를 어둠 속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뜻과 계획을 드러내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시며, 고난 가운데서도 굳건히 세우기를 원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p><p>우리의 죄는 누가 참으로 다스리시는지를 망각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권력자들이 최종 권위를 가진 것처럼 살거나 그리스도의 통치를 단지 먼 미래의 일로만 여깁니다. 초대교회처럼, 우리도 타협하거나 낙심하거나 무감각해질 수 있습니다. 이미 구속받은 자들이면서도, 마치 아직도 속박 가운데 있는 자들처럼 살아갑니다.</p><p>요한계시록은 이러한 나태함을 흔들어 깨웁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고,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배를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예배자로서 일상을 살아가야 합니다.</p><p>이 책은 해석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마도 순종하기 어려운 책일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찢으며 무릎을 꿇고 겸허히 이 책을 읽고 묵상하길 원합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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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Mar 2026 11: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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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요한계시록 1-3장</itunes:title>
    <title>요한계시록 1-3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한계시록의 처음 세 장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깊고도 경외로운 서론입니다. 1장에서 요한은 일곱 금촛대(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영화로운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며, 그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천사 혹은 사자들)이 들려 있습니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면서도 결정적인 진리를 전합니다: 예수님은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진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교회 가운데에 계시며, 보고 계시고, 말씀하시며, 무엇보다 다스리고 계십니다. 교회는 그분의 것이며, 주님은 사랑과 거룩함으로 교회를 돌보십니다.   2–3장에서는 이 예수님께서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에 각각 편지를 보내십니다. 각 편지는 1장의 환상에 근거한 예수님의 명칭으로 시작되고, 승리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으로 끝납니다. 구조는 대부분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소개하심 -교회를 칭찬하심 (해당되는 경우) -책망 혹은 경고하심 -회개하거나 인내하라는 부르심 -약속을 주...]]></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한계시록의 처음 세 장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깊고도 경외로운 서론입니다. 1장에서 요한은 일곱 금촛대(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영화로운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며, 그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천사 혹은 사자들)이 들려 있습니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면서도 결정적인 진리를 전합니다: 예수님은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진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교회 가운데에 계시며, 보고 계시고, 말씀하시며, 무엇보다 다스리고 계십니다. 교회는 그분의 것이며, 주님은 사랑과 거룩함으로 교회를 돌보십니다.</p><p><br/></p><p>2–3장에서는 이 예수님께서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에 각각 편지를 보내십니다. 각 편지는 1장의 환상에 근거한 예수님의 명칭으로 시작되고, 승리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으로 끝납니다. 구조는 대부분 다음과 같습니다:</p><p><br/></p><p>-예수님이 자신을 소개하심</p><p>-교회를 칭찬하심 (해당되는 경우)</p><p>-책망 혹은 경고하심</p><p>-회개하거나 인내하라는 부르심</p><p>-약속을 주심</p><p><br/></p><p>그러나 각 편지의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상황에 맞춰져 있으며, 예수님이 각 교회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심을 드러냅니다. “일곱 교회를 통해 전체 교회가 대표적으로,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여 함께 말씀을 듣도록 초대되고 있다” (비일). 즉, 이 편지들은 단지 과거의 일곱 교회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를 향한 것입니다.</p><p><br/></p><p>각 교회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p><p><br/></p><p>-에베소는 바른 교리를 가졌으나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2:1–7).</p><p>-서머나는 고난 중에 충성되었습니다. 책망 없이 생명의 관을 약속받습니다(2:8–11).</p><p>-버가모는 주의 이름을 붙잡았지만, 거짓 가르침과 타협을 허용했습니다(2:12–17).</p><p>-두아디라는 사랑과 봉사는 있었지만, 음행과 영적 기만을 용납했습니다(2:18–29).</p><p>-사데는 살아 있는 체하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깨어 회개해야 합니다(3:1–6).</p><p>-빌라델비아는 작은 능력으로도 주의 말씀을 지켰고, 시험의 때에 보호받는 약속을 받았습니다(3:7–13).</p><p>-라오디게아는 칭찬이 전혀 없는 교회로, 미지근함과 자만으로 책망받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십니다(3:14–22).</p><p><br/></p><p>이 일곱 교회는 교회의 모든 영적 상태를 포괄합니다—사랑 없는 정통, 고난 중의 신실함, 타협, 도덕적 해이, 겉모습뿐인 생명, 겸손한 인내, 그리고 미지근한 자만. 예수님은 칭찬하시고, 책망하시며, 모든 교회에게 다시 자신을 기억하고 회복된 충성으로 응답하라고 부르십니다.</p><p><br/></p><p>“이 편지들은 모든 위선을 걷어내고,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교회 안에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제임스 보이스).</p><p><br/></p><p>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p><p>하나님은 교회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멀리 계신 분도, 단지 미래의 심판주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회들 사이를 거니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공동체의 실제 영적 상태를 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며, 사랑하시기에 말씀하십니다.</p><p><br/></p><p>그는 별들을 붙들고(1:13, 20), 촛대들 사이를 거니시며, 눈은 불꽃 같고(2:18), 입에는 날선 검이 있으며(2:12), 닫으면 열 자 없고 열면 닫을 자 없는 분이십니다(3:7). 그분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판단은 완전하며, 약속은 영원합니다.</p><p><br/></p><p>우리가 고쳐야 할 부분들</p><p>우리의 죄는 자만과 타협, 그리고 자기기만에 드러납니다. 에베소처럼 우리는 교리는 지키되 사랑을 잃을 수 있고, 버가모와 두아디라처럼 예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사데처럼 생명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죽어 있을 수 있으며, 라오디게아처럼 스스로 부유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가련하고 눈 먼 상태일 수 있습니다.</p><p><br/></p><p>“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갈수록, 자신의 죄가 더욱 뚜렷이 보이게 된다” (R.C. 스프롤). 교회들에게 보내신 이 편지들은 공동체뿐 아니라 각 개인에게도 거울처럼 작용합니다. 예수님의 책망은 무정한 정죄가 아니라 자비의 부르심입니다—지금 깨어나라는 초대입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한계시록의 처음 세 장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깊고도 경외로운 서론입니다. 1장에서 요한은 일곱 금촛대(교회) 사이를 거니시는 영화로운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며, 그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천사 혹은 사자들)이 들려 있습니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면서도 결정적인 진리를 전합니다: 예수님은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진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교회 가운데에 계시며, 보고 계시고, 말씀하시며, 무엇보다 다스리고 계십니다. 교회는 그분의 것이며, 주님은 사랑과 거룩함으로 교회를 돌보십니다.</p><p><br/></p><p>2–3장에서는 이 예수님께서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에 각각 편지를 보내십니다. 각 편지는 1장의 환상에 근거한 예수님의 명칭으로 시작되고, 승리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으로 끝납니다. 구조는 대부분 다음과 같습니다:</p><p><br/></p><p>-예수님이 자신을 소개하심</p><p>-교회를 칭찬하심 (해당되는 경우)</p><p>-책망 혹은 경고하심</p><p>-회개하거나 인내하라는 부르심</p><p>-약속을 주심</p><p><br/></p><p>그러나 각 편지의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상황에 맞춰져 있으며, 예수님이 각 교회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심을 드러냅니다. “일곱 교회를 통해 전체 교회가 대표적으로,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여 함께 말씀을 듣도록 초대되고 있다” (비일). 즉, 이 편지들은 단지 과거의 일곱 교회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를 향한 것입니다.</p><p><br/></p><p>각 교회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p><p><br/></p><p>-에베소는 바른 교리를 가졌으나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2:1–7).</p><p>-서머나는 고난 중에 충성되었습니다. 책망 없이 생명의 관을 약속받습니다(2:8–11).</p><p>-버가모는 주의 이름을 붙잡았지만, 거짓 가르침과 타협을 허용했습니다(2:12–17).</p><p>-두아디라는 사랑과 봉사는 있었지만, 음행과 영적 기만을 용납했습니다(2:18–29).</p><p>-사데는 살아 있는 체하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깨어 회개해야 합니다(3:1–6).</p><p>-빌라델비아는 작은 능력으로도 주의 말씀을 지켰고, 시험의 때에 보호받는 약속을 받았습니다(3:7–13).</p><p>-라오디게아는 칭찬이 전혀 없는 교회로, 미지근함과 자만으로 책망받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십니다(3:14–22).</p><p><br/></p><p>이 일곱 교회는 교회의 모든 영적 상태를 포괄합니다—사랑 없는 정통, 고난 중의 신실함, 타협, 도덕적 해이, 겉모습뿐인 생명, 겸손한 인내, 그리고 미지근한 자만. 예수님은 칭찬하시고, 책망하시며, 모든 교회에게 다시 자신을 기억하고 회복된 충성으로 응답하라고 부르십니다.</p><p><br/></p><p>“이 편지들은 모든 위선을 걷어내고,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교회 안에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제임스 보이스).</p><p><br/></p><p>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p><p>하나님은 교회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멀리 계신 분도, 단지 미래의 심판주도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회들 사이를 거니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공동체의 실제 영적 상태를 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며, 사랑하시기에 말씀하십니다.</p><p><br/></p><p>그는 별들을 붙들고(1:13, 20), 촛대들 사이를 거니시며, 눈은 불꽃 같고(2:18), 입에는 날선 검이 있으며(2:12), 닫으면 열 자 없고 열면 닫을 자 없는 분이십니다(3:7). 그분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판단은 완전하며, 약속은 영원합니다.</p><p><br/></p><p>우리가 고쳐야 할 부분들</p><p>우리의 죄는 자만과 타협, 그리고 자기기만에 드러납니다. 에베소처럼 우리는 교리는 지키되 사랑을 잃을 수 있고, 버가모와 두아디라처럼 예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용납할 수 있습니다. 사데처럼 생명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죽어 있을 수 있으며, 라오디게아처럼 스스로 부유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가련하고 눈 먼 상태일 수 있습니다.</p><p><br/></p><p>“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갈수록, 자신의 죄가 더욱 뚜렷이 보이게 된다” (R.C. 스프롤). 교회들에게 보내신 이 편지들은 공동체뿐 아니라 각 개인에게도 거울처럼 작용합니다. 예수님의 책망은 무정한 정죄가 아니라 자비의 부르심입니다—지금 깨어나라는 초대입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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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시편 126-127편</itunes:title>
    <title>시편 126-127편</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시편 126편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기억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126:1–2).   그리고 시인은 동시에 더 큰 회복을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126:4).   여기서 “돌려보내소서”라는 말은 히브리어 שׁוּב (shuv)에서 온 표현으로, 단순히 돌아간다는 의미를 넘어 회복시키다, '새롭게 하다'라는 풍성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인은 단순히 포로의 귀환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인적 회복을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남방 시내들”은 팔레스타인 남쪽 네겝 지역의 건천을 가리킵니다. 평소에는 메마르고 황량하지만, 우기에 비가 내리면 갑자기 물이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br/>요약</p><p>시편 126편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기억합니다.</p><p>“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p><p>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126:1–2).</p><p><br/></p><p>그리고 시인은 동시에 더 큰 회복을 간구합니다.</p><p>“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126:4).</p><p><br/></p><p>여기서 “돌려보내소서”라는 말은 히브리어 שׁוּב (shuv)에서 온 표현으로, 단순히 돌아간다는 의미를 넘어 회복시키다, &apos;새롭게 하다&apos;라는 풍성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인은 단순히 포로의 귀환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인적 회복을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p><p><br/></p><p>여기서 “남방 시내들”은 팔레스타인 남쪽 네겝 지역의 건천을 가리킵니다. 평소에는 메마르고 황량하지만, 우기에 비가 내리면 갑자기 물이 넘쳐 흘러 메마른 땅을 적시는 급류가 됩니다. 시인은 바로 그 광경처럼, 하나님의 회복이 전격적이고 풍성하며, 전혀 예상치 못한 은혜로 임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p><p><br/></p><p>그리고 시편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가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마무리됩니다(126:5–6).</p><p><br/></p><p>시편 127편은 하나님 없이 행하는 인간의 모든 수고가 헛됨을 상기시킵니다.</p><p>“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27:1).</p><p><br/></p><p>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안식을 주시며(127:2), 자녀를 기업과 상급으로 주십니다(127:3–5).</p><p>이 두 시편은 하나님께서 회복하시고, 우리의 수고를 세우시며, 영원한 기업을 주시는 분임을 가르쳐 줍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회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며 웃음과 찬양으로 채워주십니다(126:2). 그는 과거의 포로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자이시며, 지금도 우리의 삶과 수고를 붙드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풍성히 주시는 분이시며,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고(127:2), 자녀를 기업으로 주십니다(127:3).</p><p><br/></p><p>우리의 죄</p><p>우리의 죄는 자기 의존, 불안함, 그리고 감사하지 않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과거의 구원을 쉽게 잊습니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뻐하였도다” (126:3)라고 고백하지만, 우리는 곧 그 은혜를 망각하고 절망에 빠집니다. 또한 우리는 스스로의 힘에 지나치게 의지하며 미래를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27:1).</p><p><br/></p><p>은혜</p><p>하나님의 은혜는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장하십니다.</p><p>“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126:5).</p><p>여기서 “눈물로 씨를 뿌린다”는 표현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믿음으로 씨앗을 심는 고난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반드시 결실한다는 언약적 확신을 보여줍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됩니다. 그분은 슬픔과 죽음 가운데 생명을 뿌리셨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거두게 하셨습니다.</p><p><br/></p><p>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를 세우시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은혜는 안식 가운데 드러납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며(127:2),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피곤한 자들을 초대하십니다.</p><p>“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p><p><br/></p><p>아무쪼록 이 세상에서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지만 말씀과 기도 가운데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시는 주의 백성 되시길 바라며 오늘 말씀 묵상 마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br/>요약</p><p>시편 126편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기억합니다.</p><p>“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p><p>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126:1–2).</p><p><br/></p><p>그리고 시인은 동시에 더 큰 회복을 간구합니다.</p><p>“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126:4).</p><p><br/></p><p>여기서 “돌려보내소서”라는 말은 히브리어 שׁוּב (shuv)에서 온 표현으로, 단순히 돌아간다는 의미를 넘어 회복시키다, &apos;새롭게 하다&apos;라는 풍성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인은 단순히 포로의 귀환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인적 회복을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p><p><br/></p><p>여기서 “남방 시내들”은 팔레스타인 남쪽 네겝 지역의 건천을 가리킵니다. 평소에는 메마르고 황량하지만, 우기에 비가 내리면 갑자기 물이 넘쳐 흘러 메마른 땅을 적시는 급류가 됩니다. 시인은 바로 그 광경처럼, 하나님의 회복이 전격적이고 풍성하며, 전혀 예상치 못한 은혜로 임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p><p><br/></p><p>그리고 시편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가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마무리됩니다(126:5–6).</p><p><br/></p><p>시편 127편은 하나님 없이 행하는 인간의 모든 수고가 헛됨을 상기시킵니다.</p><p>“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27:1).</p><p><br/></p><p>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안식을 주시며(127:2), 자녀를 기업과 상급으로 주십니다(127:3–5).</p><p>이 두 시편은 하나님께서 회복하시고, 우리의 수고를 세우시며, 영원한 기업을 주시는 분임을 가르쳐 줍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회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며 웃음과 찬양으로 채워주십니다(126:2). 그는 과거의 포로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자이시며, 지금도 우리의 삶과 수고를 붙드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풍성히 주시는 분이시며,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고(127:2), 자녀를 기업으로 주십니다(127:3).</p><p><br/></p><p>우리의 죄</p><p>우리의 죄는 자기 의존, 불안함, 그리고 감사하지 않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과거의 구원을 쉽게 잊습니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뻐하였도다” (126:3)라고 고백하지만, 우리는 곧 그 은혜를 망각하고 절망에 빠집니다. 또한 우리는 스스로의 힘에 지나치게 의지하며 미래를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27:1).</p><p><br/></p><p>은혜</p><p>하나님의 은혜는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장하십니다.</p><p>“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126:5).</p><p>여기서 “눈물로 씨를 뿌린다”는 표현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믿음으로 씨앗을 심는 고난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반드시 결실한다는 언약적 확신을 보여줍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됩니다. 그분은 슬픔과 죽음 가운데 생명을 뿌리셨고,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거두게 하셨습니다.</p><p><br/></p><p>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를 세우시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은혜는 안식 가운데 드러납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며(127:2),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피곤한 자들을 초대하십니다.</p><p>“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p><p><br/></p><p>아무쪼록 이 세상에서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지만 말씀과 기도 가운데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시는 주의 백성 되시길 바라며 오늘 말씀 묵상 마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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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Mar 2026 09: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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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스가랴 14장 12-21</itunes:title>
    <title>스가랴 14장 12-21</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 14:12–21은 여호와의 날에 임할 최후의 심판과 구원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온 모든 민족은 여호와의 재앙으로 그 살이 썩고 눈과 혀가 마르게 될 것입니다(12절). 큰 혼란과 공포 속에 그들은 서로를 치며 무너질 것입니다(13절).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서는 매년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경배하고 초막절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16–17절). 그 명령을 거부하는 민족에게는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18–19절).   마지막으로 본문은 거대한 선언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날에는 말 방울에도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기록될 것이며,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도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그릇처럼 성결하게 될 것입니다(20–21절). 즉, 하나님의 통치가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며, 모든 것이 거룩하게 구별될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심판자이십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14:12–21은 여호와의 날에 임할 최후의 심판과 구원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온 모든 민족은 여호와의 재앙으로 그 살이 썩고 눈과 혀가 마르게 될 것입니다(12절). 큰 혼란과 공포 속에 그들은 서로를 치며 무너질 것입니다(13절).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서는 매년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경배하고 초막절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16–17절). 그 명령을 거부하는 민족에게는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18–19절).</p><p><br/></p><p>마지막으로 본문은 거대한 선언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날에는 말 방울에도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기록될 것이며,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도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그릇처럼 성결하게 될 것입니다(20–21절). 즉, 하나님의 통치가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며, 모든 것이 거룩하게 구별될 것입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심판자이십니다.</p><p>“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12절).</p><p>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고 완전합니다.</p><p><br/></p><p>또한 하나님은 만민의 왕이십니다.</p><p>“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16절).</p><p>모든 민족이 그분을 예배하게 하실 것입니다.</p><p><br/></p><p>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거룩을 온 땅에 확장하시는 분이십니다.</p><p>“그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며…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이라”(20–21절).</p><p>하나님 앞에 보통과 거룩의 구별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여호와께 드려질 것입니다.</p><p><br/></p><p>우리의 죄</p><p>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방 나라들처럼 무기로 하나님을 대적하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자기 나라와 자기 왕국을 세우며 살아갑니다. 힘든 제자의 삶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17–18절).</p><p><br/></p><p>또한 우리는 삶을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 영역”으로 나누려 합니다. 주일 예배와 종교적 의무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일상에서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분명히 말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이라”(21절).</p><p>종교인들은 &quot;하나님이 우선&quot;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은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quot;하나님이 중심&quot;인 삶을 사는 살고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quot;안식&quot;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p><p><br/></p><p>은혜</p><p>은혜는 하나님께서 심판받을 열방 가운데서도 남은 자를 구원하시고, 그들을 예배자로 부르신 데 있습니다(16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약속은 성취되어, 열방이 이제 “왕이신 주 예수”를 예배합니다.</p><p>은혜는 또한 거룩이 온 삶에 스며드는 데 있습니다.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20절)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서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드려지게 하심을 보여 줍니다(고전 10:31).</p><p>마지막으로 은혜는 십자가에서 심판을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아 이제는 “여호와께 성결”이라 불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p><p><br/></p><p>아무쪼록 왕이신 하나님께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영광을 돌리는 삶 전체를 중심으로 부터 온전히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 스가랴서 말씀 묵상을 마칩니다. 할렐루야!</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14:12–21은 여호와의 날에 임할 최후의 심판과 구원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온 모든 민족은 여호와의 재앙으로 그 살이 썩고 눈과 혀가 마르게 될 것입니다(12절). 큰 혼란과 공포 속에 그들은 서로를 치며 무너질 것입니다(13절).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서는 매년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경배하고 초막절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16–17절). 그 명령을 거부하는 민족에게는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18–19절).</p><p><br/></p><p>마지막으로 본문은 거대한 선언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날에는 말 방울에도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기록될 것이며,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도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그릇처럼 성결하게 될 것입니다(20–21절). 즉, 하나님의 통치가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며, 모든 것이 거룩하게 구별될 것입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심판자이십니다.</p><p>“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12절).</p><p>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고 완전합니다.</p><p><br/></p><p>또한 하나님은 만민의 왕이십니다.</p><p>“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16절).</p><p>모든 민족이 그분을 예배하게 하실 것입니다.</p><p><br/></p><p>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거룩을 온 땅에 확장하시는 분이십니다.</p><p>“그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며…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이라”(20–21절).</p><p>하나님 앞에 보통과 거룩의 구별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여호와께 드려질 것입니다.</p><p><br/></p><p>우리의 죄</p><p>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방 나라들처럼 무기로 하나님을 대적하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자기 나라와 자기 왕국을 세우며 살아갑니다. 힘든 제자의 삶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17–18절).</p><p><br/></p><p>또한 우리는 삶을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 영역”으로 나누려 합니다. 주일 예배와 종교적 의무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일상에서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분명히 말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이라”(21절).</p><p>종교인들은 &quot;하나님이 우선&quot;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은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quot;하나님이 중심&quot;인 삶을 사는 살고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quot;안식&quot;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p><p><br/></p><p>은혜</p><p>은혜는 하나님께서 심판받을 열방 가운데서도 남은 자를 구원하시고, 그들을 예배자로 부르신 데 있습니다(16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약속은 성취되어, 열방이 이제 “왕이신 주 예수”를 예배합니다.</p><p>은혜는 또한 거룩이 온 삶에 스며드는 데 있습니다.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20절)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셔서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드려지게 하심을 보여 줍니다(고전 10:31).</p><p>마지막으로 은혜는 십자가에서 심판을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아 이제는 “여호와께 성결”이라 불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p><p><br/></p><p>아무쪼록 왕이신 하나님께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영광을 돌리는 삶 전체를 중심으로 부터 온전히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 스가랴서 말씀 묵상을 마칩니다. 할렐루야!</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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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스가랴 14장 1-11절</itunes:title>
    <title>스가랴 14장 1-11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 14:1–11은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최후의 전쟁과 구원의 광경을 보여줍니다.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을 치러 모여 성은 함락되고 주민의 절반은 포로로 끌려갑니다(1–2절). 그러나 바로 그때 여호와께서 용사로서 친히 싸우시며 개입하십니다(3절).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여호와가 친히 감람산에 서실 것이며, 산은 둘로 갈라져 큰 골짜기가 생기고 백성은 그곳으로 피하게 될 것입니다(4–5절). 6-7절,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아주 특이한 날입니다. 그리고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동쪽(사해)과 서쪽(지중해)으로 흘러 사계절 끊임없이 흘러가게 됩니다(8절).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온 땅의 왕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십니다. 이 세상의 왕노릇하던 것들은 다 무너지고 오직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그 이름만...]]></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14:1–11은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최후의 전쟁과 구원의 광경을 보여줍니다.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을 치러 모여 성은 함락되고 주민의 절반은 포로로 끌려갑니다(1–2절). 그러나 바로 그때 여호와께서 용사로서 친히 싸우시며 개입하십니다(3절).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여호와가 친히 감람산에 서실 것이며, 산은 둘로 갈라져 큰 골짜기가 생기고 백성은 그곳으로 피하게 될 것입니다(4–5절).</p><p>6-7절, &quot;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p><p>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quot;</p><p>아주 특이한 날입니다. 그리고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동쪽(사해)과 서쪽(지중해)으로 흘러 사계절 끊임없이 흘러가게 됩니다(8절).</p><p>마침내 여호와께서는 온 땅의 왕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십니다. 이 세상의 왕노릇하던 것들은 다 무너지고 오직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그 이름만이 홀로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은 높이 들려 안전히 거하며, 다시는 저주받지 않고 영원히 견고히 설 것입니다(10–11절). 할렐루야</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친히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어쩌면 많은 분들은 이 부분은 생각하고 싶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다니요. 그런데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 노예로 있을 때에 이스라엘은 열 가지 재앙 중 아홉 가지로 부터는 보호하심을 받았지만 열번 째 재앙은 이스라엘도 동일하게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에 있어야 했던 것 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예루살렘도 심판을 먼저 받는 것이 옳습니다.</p><p>이렇게 예루살렘은 그 죄로 인해 무너지고 백성이 포로로 잡혀 가는 심판을 당합니다(1–2절).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나님은 죄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먼저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십니다.</p><p>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용사처럼 일어나 예루살렘을 위해 모든 나라와 싸우시고(3절), 감람산에 서십니다. 그리고 새 길을 여십니다(4–5절).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는 창조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구원을 일으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시대가 이미 펼쳐지고 있으며 이제 곧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날에 완성될 것입니다.</p><p><br/></p><p>우리의 죄</p><p>우리는 여호와를 왕으로 모시기보다, 세상의 권력과 재물을 의지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예루살렘처럼, 인간의 방어와 자원에 의지하다가 결국 무너지는 길을 걷습니다.</p><p>또한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만 높이지 않고, 이 세상의 수많은 이름들(권력, 재물, 명예)을 함께 높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오직 예수만 믿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홀로 하나이신” 분으로서 홀로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p><p><br/></p><p>은혜</p><p>시련이 닥칠 때도 우리는 쉽게 두려워하며,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실 것처럼 낙심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구원과 새 창조로 이어지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멀리 계신 것이 아닙니다. 친히 개입하심에 있습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직접 발을 딛고 내려오십니다(4절). 이렇게 회복되는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강을 떠올리게 합니다(요 7:38). 이렇게 은혜는 영원한 평안으로 완성됩니다. 예루살렘이 높아지고 다시는 저주받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장차 새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계 21:2–4).</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14:1–11은 여호와의 날에 일어날 최후의 전쟁과 구원의 광경을 보여줍니다.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을 치러 모여 성은 함락되고 주민의 절반은 포로로 끌려갑니다(1–2절). 그러나 바로 그때 여호와께서 용사로서 친히 싸우시며 개입하십니다(3절).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여호와가 친히 감람산에 서실 것이며, 산은 둘로 갈라져 큰 골짜기가 생기고 백성은 그곳으로 피하게 될 것입니다(4–5절).</p><p>6-7절, &quot;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것들이 떠날 것이라</p><p>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quot;</p><p>아주 특이한 날입니다. 그리고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동쪽(사해)과 서쪽(지중해)으로 흘러 사계절 끊임없이 흘러가게 됩니다(8절).</p><p>마침내 여호와께서는 온 땅의 왕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십니다. 이 세상의 왕노릇하던 것들은 다 무너지고 오직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그 이름만이 홀로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은 높이 들려 안전히 거하며, 다시는 저주받지 않고 영원히 견고히 설 것입니다(10–11절). 할렐루야</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친히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어쩌면 많은 분들은 이 부분은 생각하고 싶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다니요. 그런데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에 노예로 있을 때에 이스라엘은 열 가지 재앙 중 아홉 가지로 부터는 보호하심을 받았지만 열번 째 재앙은 이스라엘도 동일하게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에 있어야 했던 것 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예루살렘도 심판을 먼저 받는 것이 옳습니다.</p><p>이렇게 예루살렘은 그 죄로 인해 무너지고 백성이 포로로 잡혀 가는 심판을 당합니다(1–2절).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나님은 죄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먼저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십니다.</p><p>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용사처럼 일어나 예루살렘을 위해 모든 나라와 싸우시고(3절), 감람산에 서십니다. 그리고 새 길을 여십니다(4–5절).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는 창조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구원을 일으킵니다.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시대가 이미 펼쳐지고 있으며 이제 곧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날에 완성될 것입니다.</p><p><br/></p><p>우리의 죄</p><p>우리는 여호와를 왕으로 모시기보다, 세상의 권력과 재물을 의지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예루살렘처럼, 인간의 방어와 자원에 의지하다가 결국 무너지는 길을 걷습니다.</p><p>또한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만 높이지 않고, 이 세상의 수많은 이름들(권력, 재물, 명예)을 함께 높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오직 예수만 믿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홀로 하나이신” 분으로서 홀로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p><p><br/></p><p>은혜</p><p>시련이 닥칠 때도 우리는 쉽게 두려워하며,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실 것처럼 낙심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날은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구원과 새 창조로 이어지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멀리 계신 것이 아닙니다. 친히 개입하심에 있습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직접 발을 딛고 내려오십니다(4절). 이렇게 회복되는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강을 떠올리게 합니다(요 7:38). 이렇게 은혜는 영원한 평안으로 완성됩니다. 예루살렘이 높아지고 다시는 저주받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장차 새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계 21:2–4).</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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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Mar 2026 09: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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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가랴 13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 13장은 12장에서 은혜와 간구하는 영이 부어진 사건에 이어, 하나님께서 그날에 이루실 정결과 구원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먼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립니다(1절). 이 샘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인 정결을 주어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으로 변화시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우상과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을 그 땅에서 제거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2–6절). 더 이상 백성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으며, 심지어 거짓 선지자 자신들도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연단하십니다. 이스라엘 중 3분의 2는 멸망하지만, 3분의 1은 불 속에서 단련되어 정금같이 나오게 됩니다. 이 남은 자들은 참된 언약 백성이 되어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은 “이는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8–9절). 결국 예루살렘은 정결(거룩), 진실(거짓 없음), 성결(하나님께 속한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13장은 12장에서 은혜와 간구하는 영이 부어진 사건에 이어, 하나님께서 그날에 이루실 정결과 구원의 역사를 보여줍니다.</p><p>먼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립니다(1절). 이 샘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인 정결을 주어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으로 변화시킵니다.</p><p>또한 여호와께서는 우상과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을 그 땅에서 제거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2–6절). 더 이상 백성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으며, 심지어 거짓 선지자 자신들도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p><p>마지막으로,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연단하십니다. 이스라엘 중 3분의 2는 멸망하지만, 3분의 1은 불 속에서 단련되어 정금같이 나오게 됩니다. 이 남은 자들은 참된 언약 백성이 되어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은 “이는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8–9절).</p><p>결국 예루살렘은 정결(거룩), 진실(거짓 없음), 성결(하나님께 속한 백성)로 회복될 것입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정결케 하시는 샘을 여시는 분이십니다.</p><p>“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1절)</p><p>또한 하나님은 거짓과 더러움을 제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거짓 예언, 우상 숭배, 더러운 영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가운데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2–6절).</p><p>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연단하시는 분이십니다. 불로 단련하셔서 멸망이 아닌 정결을 이루시며, 언약의 교제를 확증하십니다.</p><p>“내가 불 가운데서 그 3분의 1을 달려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내가 이르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이르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9절)</p><p><br/></p><p>우리의 죄</p><p>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와 더러움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p><p>또한 우리는 거짓을 쉽게 용납합니다. 세상의 철학, 종교적 거짓, 자기기만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권위를 부여할 때가 많습니다. 듣기 좋은 거짓을 진리보다 선택합니다.</p><p>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연단을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불같은 시험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실 때, 원망하거나 낙심하며 돌아서려 합니다. 그러나 그 불은 멸망이 아닌 정결의 불인데도 말입니다.</p><p><br/></p><p>은혜</p><p>은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샘을 여셨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고, 그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와 더러움이 깨끗하게 씻깁니다.</p><p>또한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짓을 제거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거짓을 분별하게 하십니다.</p><p>마지막으로 은혜는 연단 속에서 나타납니다. 고난과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니라, 정금같이 빚어내시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남은 자는 불 속에서 단련되어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13장은 12장에서 은혜와 간구하는 영이 부어진 사건에 이어, 하나님께서 그날에 이루실 정결과 구원의 역사를 보여줍니다.</p><p>먼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립니다(1절). 이 샘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인 정결을 주어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으로 변화시킵니다.</p><p>또한 여호와께서는 우상과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을 그 땅에서 제거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2–6절). 더 이상 백성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으며, 심지어 거짓 선지자 자신들도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p><p>마지막으로,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연단하십니다. 이스라엘 중 3분의 2는 멸망하지만, 3분의 1은 불 속에서 단련되어 정금같이 나오게 됩니다. 이 남은 자들은 참된 언약 백성이 되어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은 “이는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8–9절).</p><p>결국 예루살렘은 정결(거룩), 진실(거짓 없음), 성결(하나님께 속한 백성)로 회복될 것입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정결케 하시는 샘을 여시는 분이십니다.</p><p>“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1절)</p><p>또한 하나님은 거짓과 더러움을 제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거짓 예언, 우상 숭배, 더러운 영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가운데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2–6절).</p><p>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연단하시는 분이십니다. 불로 단련하셔서 멸망이 아닌 정결을 이루시며, 언약의 교제를 확증하십니다.</p><p>“내가 불 가운데서 그 3분의 1을 달려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내가 이르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이르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9절)</p><p><br/></p><p>우리의 죄</p><p>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와 더러움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p><p>또한 우리는 거짓을 쉽게 용납합니다. 세상의 철학, 종교적 거짓, 자기기만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권위를 부여할 때가 많습니다. 듣기 좋은 거짓을 진리보다 선택합니다.</p><p>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연단을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불같은 시험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실 때, 원망하거나 낙심하며 돌아서려 합니다. 그러나 그 불은 멸망이 아닌 정결의 불인데도 말입니다.</p><p><br/></p><p>은혜</p><p>은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샘을 여셨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고, 그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와 더러움이 깨끗하게 씻깁니다.</p><p>또한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짓을 제거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거짓을 분별하게 하십니다.</p><p>마지막으로 은혜는 연단 속에서 나타납니다. 고난과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니라, 정금같이 빚어내시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남은 자는 불 속에서 단련되어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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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가랴 12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 12장은 종말론적 전쟁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보여줍니다. 사면에서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을 에워싸 공격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 성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술 취하게 하는 잔, 무겁게 하는 돌로 삼아 공격하는 자마다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1–4절).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힘을 얻으며, 유다는 결코 패하지 않습니다(5–9절). 그러나 그 승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은총과 간구하는 영을 부으시는 사건이 있습니다.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10–14절).   예루살렘의 회복 (12:1–4) 1절, “이스라엘을 위하여 말씀하시는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기초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창조주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면 모든 민족에게 술 취하게 하는 잔”(2절)이 되게 하시고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돌”(3절)로 삼으셔서 누구든 그것을 들...]]></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12장은 종말론적 전쟁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보여줍니다. 사면에서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을 에워싸 공격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 성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술 취하게 하는 잔, 무겁게 하는 돌로 삼아 공격하는 자마다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1–4절).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힘을 얻으며, 유다는 결코 패하지 않습니다(5–9절). 그러나 그 승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은총과 간구하는 영을 부으시는 사건이 있습니다.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10–14절).</p><p><br/></p><p>예루살렘의 회복 (12:1–4)</p><p>1절, “이스라엘을 위하여 말씀하시는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기초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p><p>창조주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면 모든 민족에게 술 취하게 하는 잔”(2절)이 되게 하시고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돌”(3절)로 삼으셔서 누구든 그것을 들어 옮기려는 자는 상하게 하십니다.</p><p>4절,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보려니와”</p><p>이렇게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의 회복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p><p><br/></p><p>예루살렘의 패하지 않음 (12:5–9)</p><p>5절, “유다의 지도자들이 마음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지라”</p><p>하나님께서 유다를 강하게 하셔서,</p><p>6절, “ 날에 내가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에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p><p>또한 8절,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quot; 말씀하십니다.</p><p>이렇게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여금 결코 패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이방 나라를 멸하시고 지켜 주십니다(9절).</p><p><br/></p><p>예루살렘의 애통 (12:10–14)</p><p>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회복입니다.</p><p>10절,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p><p>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와 간구의 영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깊은 애통에 잠깁니다. 그러나 이 애통은 절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차 십자가에서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이루어질 회개의 애통이기에 희망에서 나오는 애통입니다.</p><p>“그 땅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11절).</p><p>각 집안이 따로 애통하는 모습(12–14절)은 애통이 단순히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 하나하나가 제대로 세워지는 철저하고 진실한 회개를 뜻합니다.</p><p><br/></p><p>참된 승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진정한 우리의 회개의 눈물에서 시작됩니다. 참된 영적 각성을 위해서 기도하는 오늘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찢고, 애통하고 자복하는 심령으로 주님의 품을 사모하는 주의 백성이 되길 원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12장은 종말론적 전쟁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보여줍니다. 사면에서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을 에워싸 공격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 성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술 취하게 하는 잔, 무겁게 하는 돌로 삼아 공격하는 자마다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1–4절).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힘을 얻으며, 유다는 결코 패하지 않습니다(5–9절). 그러나 그 승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은총과 간구하는 영을 부으시는 사건이 있습니다.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10–14절).</p><p><br/></p><p>예루살렘의 회복 (12:1–4)</p><p>1절, “이스라엘을 위하여 말씀하시는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기초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p><p>창조주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사면 모든 민족에게 술 취하게 하는 잔”(2절)이 되게 하시고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돌”(3절)로 삼으셔서 누구든 그것을 들어 옮기려는 자는 상하게 하십니다.</p><p>4절,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 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보려니와”</p><p>이렇게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의 회복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p><p><br/></p><p>예루살렘의 패하지 않음 (12:5–9)</p><p>5절, “유다의 지도자들이 마음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지라”</p><p>하나님께서 유다를 강하게 하셔서,</p><p>6절, “ 날에 내가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에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민족들을 불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들은 다시 그 본 곳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p><p>또한 8절,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quot; 말씀하십니다.</p><p>이렇게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여금 결코 패하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이방 나라를 멸하시고 지켜 주십니다(9절).</p><p><br/></p><p>예루살렘의 애통 (12:10–14)</p><p>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회복입니다.</p><p>10절,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p><p>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와 간구의 영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깊은 애통에 잠깁니다. 그러나 이 애통은 절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차 십자가에서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이루어질 회개의 애통이기에 희망에서 나오는 애통입니다.</p><p>“그 땅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11절).</p><p>각 집안이 따로 애통하는 모습(12–14절)은 애통이 단순히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 하나하나가 제대로 세워지는 철저하고 진실한 회개를 뜻합니다.</p><p><br/></p><p>참된 승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진정한 우리의 회개의 눈물에서 시작됩니다. 참된 영적 각성을 위해서 기도하는 오늘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찢고, 애통하고 자복하는 심령으로 주님의 품을 사모하는 주의 백성이 되길 원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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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1 Mar 2026 09: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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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스가랴 11장</itunes:title>
    <title>스가랴 11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 11장은 실패한 지도자들과 버림받은 목자들을 중심으로 한 심판의 비전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시적인 심판 이미지로 시작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이 불타고, 바산의 상수리나무가 무너지고, 목자들이 울부짖으며, 요단 숲의 어린 사자가 부르짖습니다(1–3절). 여기서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주시는 말씀은 땅과 지도자들에게 임할 파멸입니다. 그리고 스가랴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잡힐 양 떼”(4절), 곧 부패한 지도자와 이방 압제자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는 목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그는 두 지팡이를 잡습니다. 하나는 은총(Favor), 다른 하나는 연합(Union)이라 이름합니다(7절).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은혜와 백성의 연합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양떼는 그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은총은 거두어집니다. 그는 은총이라는 지팡이를 꺾어 열방과의 언약을 폐하고(10절), 그 삯으로 은 삼십...]]></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11장은 실패한 지도자들과 버림받은 목자들을 중심으로 한 심판의 비전을 보여 줍니다.</p><p>본문은 시적인 심판 이미지로 시작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이 불타고, 바산의 상수리나무가 무너지고, 목자들이 울부짖으며, 요단 숲의 어린 사자가 부르짖습니다(1–3절). 여기서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주시는 말씀은 땅과 지도자들에게 임할 파멸입니다.</p><p>그리고 스가랴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p><p>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잡힐 양 떼”(4절), 곧 부패한 지도자와 이방 압제자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는 목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그는 두 지팡이를 잡습니다. 하나는 은총(Favor), 다른 하나는 연합(Union)이라 이름합니다(7절).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은혜와 백성의 연합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양떼는 그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은총은 거두어집니다.</p><p>그는 은총이라는 지팡이를 꺾어 열방과의 언약을 폐하고(10절), 그 삯으로 은 삼십 개를 받습니다(12절). 이는 보잘것없는 대가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들이 나를 헤아린 값”이라 말씀하시며 성전에 던지게 하십니다(13절). 이것은 후에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사건에서 성취됩니다. 이어서 그는 연합이라는 지팡이를 꺾어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형제관계가 깨어짐을 선포합니다(14절).</p><p>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어리석은 목자의 역할을 맡기십니다(15–17절). 불의한 &quot;목자&quot;는 양떼를 돌보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목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선포하시며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십니다. 오늘도 &quot;목자&quot;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p><p>하나님</p><p>하나님은 실패한 인간 지도자들과 달리 참된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양떼를 정의와 진리와 긍휼로 돌보라고 지도자들을 세우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양떼를 방치하고 착취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심판하십니다.</p><p>또한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그분의 은총을 거두실 수도 있습니다.</p><p>“그날에 그것이 파하여지매 양을 파는 상인들이 그것을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찌니라” (11절).</p><p>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구속자이십니다. 이 본문은 장차 오실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은 삼십 개, 버림받은 목자, 멸시와 배반은 모두 그리스도의 고난을 지시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가 되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십니다.</p><p>우리의 죄</p><p>우리의 죄는 참된 목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종종 우리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세상적 안정을 약속하는 지도자를 따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은 결국 양떼를 삼키는 자들입니다.</p><p>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하찮게 여깁니다. 백성이 목자의 수고를 겨우 은 삼십 개로 평가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취급합니다. 우리 안에 그런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길 원합니다.</p><p>더 나아가 우리는 공동체를 깨뜨립니다. 지팡이 ‘연합’이 부러진 사건은 죄와 교만, 불신앙이 공동체의 형제애를 무너뜨리는 것을 경고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된 교회의 연합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는 사소한 일로 분열합니다.</p><p>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을 거부합니다. 참 목자의 돌보심으로 만족하지 않고, 어리석은 목자들을 좇아갑니다.</p><p>은혜</p><p>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납니다. 비록 스가랴가 맡았던 목자가 멸시와 배반을 당했지만, 이는 장차 오실 참 목자의 그림자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은 삼십 개의 값에 팔리셨고, 양떼를 위해 상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십자가에서 상함을 당하심으로 양떼를 구원하셨습니다.</p><p>은혜는 또한 거짓 목자들에 대한 심판 속에서도 빛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영원히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을 모으고 보호하며 먹이십니다.</p><p>궁극적으로 은혜는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납니다. ‘은총’이 부러진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히 회복하십니다. ‘연합’이 깨어진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묶어 한 목자 아래 한 양 무리가 되게 하십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11장은 실패한 지도자들과 버림받은 목자들을 중심으로 한 심판의 비전을 보여 줍니다.</p><p>본문은 시적인 심판 이미지로 시작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이 불타고, 바산의 상수리나무가 무너지고, 목자들이 울부짖으며, 요단 숲의 어린 사자가 부르짖습니다(1–3절). 여기서 하나님이 스가랴에게 주시는 말씀은 땅과 지도자들에게 임할 파멸입니다.</p><p>그리고 스가랴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p><p>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잡힐 양 떼”(4절), 곧 부패한 지도자와 이방 압제자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는 목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그는 두 지팡이를 잡습니다. 하나는 은총(Favor), 다른 하나는 연합(Union)이라 이름합니다(7절).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은혜와 백성의 연합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양떼는 그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은총은 거두어집니다.</p><p>그는 은총이라는 지팡이를 꺾어 열방과의 언약을 폐하고(10절), 그 삯으로 은 삼십 개를 받습니다(12절). 이는 보잘것없는 대가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들이 나를 헤아린 값”이라 말씀하시며 성전에 던지게 하십니다(13절). 이것은 후에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사건에서 성취됩니다. 이어서 그는 연합이라는 지팡이를 꺾어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형제관계가 깨어짐을 선포합니다(14절).</p><p>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어리석은 목자의 역할을 맡기십니다(15–17절). 불의한 &quot;목자&quot;는 양떼를 돌보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목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선포하시며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십니다. 오늘도 &quot;목자&quot;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p><p>하나님</p><p>하나님은 실패한 인간 지도자들과 달리 참된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양떼를 정의와 진리와 긍휼로 돌보라고 지도자들을 세우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양떼를 방치하고 착취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심판하십니다.</p><p>또한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그분의 은총을 거두실 수도 있습니다.</p><p>“그날에 그것이 파하여지매 양을 파는 상인들이 그것을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찌니라” (11절).</p><p>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구속자이십니다. 이 본문은 장차 오실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은 삼십 개, 버림받은 목자, 멸시와 배반은 모두 그리스도의 고난을 지시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가 되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십니다.</p><p>우리의 죄</p><p>우리의 죄는 참된 목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종종 우리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세상적 안정을 약속하는 지도자를 따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은 결국 양떼를 삼키는 자들입니다.</p><p>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하찮게 여깁니다. 백성이 목자의 수고를 겨우 은 삼십 개로 평가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취급합니다. 우리 안에 그런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길 원합니다.</p><p>더 나아가 우리는 공동체를 깨뜨립니다. 지팡이 ‘연합’이 부러진 사건은 죄와 교만, 불신앙이 공동체의 형제애를 무너뜨리는 것을 경고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된 교회의 연합을 지켜야 하지만, 우리는 사소한 일로 분열합니다.</p><p>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을 거부합니다. 참 목자의 돌보심으로 만족하지 않고, 어리석은 목자들을 좇아갑니다.</p><p>은혜</p><p>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납니다. 비록 스가랴가 맡았던 목자가 멸시와 배반을 당했지만, 이는 장차 오실 참 목자의 그림자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은 삼십 개의 값에 팔리셨고, 양떼를 위해 상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십자가에서 상함을 당하심으로 양떼를 구원하셨습니다.</p><p>은혜는 또한 거짓 목자들에 대한 심판 속에서도 빛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영원히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을 모으고 보호하며 먹이십니다.</p><p>궁극적으로 은혜는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납니다. ‘은총’이 부러진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영원히 회복하십니다. ‘연합’이 깨어진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묶어 한 목자 아래 한 양 무리가 되게 하십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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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스가랴 9장 1-17절</itunes:title>
    <title>스가랴 9장 1-17절</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 9장은 책의 후반부를 여는 “경고의 말씀”(1절)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북쪽의 하드락, 다메섹, 하맛에서부터 두로와 시돈, 남쪽 블레셋 성읍들(아스글론, 가사, 에그론, 아스돗)에 이르기까지 주변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1–7절). 두로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은을 티끌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 재물과 권세를 바다에 던지시고 불로 멸하실 것입니다(3–4절). 블레셋은 거민이 뽑히고, 하나님께서 “그 입에서 가증한 것과 그 입 사이에서 미워하는 것을 제거”하심으로, 열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을 자가 있게 하십니다(7절). 8절에서 하나님은 “이제 내가 눈으로 보고 있으므로” 내 집을 둘러 진을 치고 지키셔서 다시는 압제자가 왕래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어 시온의 딸과 예루살렘의 딸에게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하...]]></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9장은 책의 후반부를 여는 “경고의 말씀”(1절)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북쪽의 하드락, 다메섹, 하맛에서부터 두로와 시돈, 남쪽 블레셋 성읍들(아스글론, 가사, 에그론, 아스돗)에 이르기까지 주변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1–7절). 두로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은을 티끌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 재물과 권세를 바다에 던지시고 불로 멸하실 것입니다(3–4절). 블레셋은 거민이 뽑히고, 하나님께서 “그 입에서 가증한 것과 그 입 사이에서 미워하는 것을 제거”하심으로, 열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을 자가 있게 하십니다(7절).</p><p>8절에서 하나님은 “이제 내가 눈으로 보고 있으므로” 내 집을 둘러 진을 치고 지키셔서 다시는 압제자가 왕래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어 시온의 딸과 예루살렘의 딸에게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겸손하신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며,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성취됩니다. 왕이신 그리스도는 전쟁 무기를 제하시고(10절) “땅끝까지” 평화를 선포하십니다.</p><p>이렇게 하나님은 언약의 피로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고(11절), 시온의 아들들이 헬라의 아들들과 맞서게 하시며(13절), 하나님의 위엄과 보호로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그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은 왕관의 보석들처럼 여호와의 땅에 빛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16절). 할렐루야!</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 위에 군림하시며, 모든 민족을 보시고 심판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1절). 그런데 이 하나님이 우리 아바 아버지라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와 재물, 군사력으로 자신을 견고히 하는 자라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p><p>“두로가 자기를 위하여 보루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몰수히 쫓아내시며 그의 재물을 바다에 던지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3–4절)</p><p>하나님은 심판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약 백성을 친히 지키십니다. 천사들을 보내셔도 되지만,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집을 둘러 진을 치고 지키십니다(8절). 무엇보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이 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평화를 이루시는 메시아로 오십니다(9–10절).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결과, 이 세상 나라들도 전쟁을 멈추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땅끝까지 구원을 이루십니다.</p><p><br/></p><p>우리의 죄</p><p>우리는 종종 두로처럼 눈에 보이는 안전망(재물과 권력)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교만과 자기 의존을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의 ‘성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보호를 당연하게 여기게 하며, 거룩을 추구하지 않는 영적 나태함에 빠지게 합니다. 블레셋처럼 “그 입에서 가증한 것과 그 입 사이에서 미워하는 것”(7절)을 간직한 채 살아가면서도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여길 때가 있습니다.</p><p>오늘 우리도 왕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 앞에서, 그리스도를 닮기보다 세상의 방식으로 살려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찢고 애통하며 자복해야 합니다.</p><p><br/></p><p>은혜</p><p>은혜는 하나님께서 원수의 나라 가운데서도 남은 자를 구원하시고, 그들을 유다 족속과 하나로 삼으신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은혜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신” 메시아 왕의 오심에 나타납니다(9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언약을 완성하시고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11절). 이제 그분은 땅끝까지 평화를 선포하시며, 우리를 죄와 사망, 사탄의 압제에서 영원히 지키십니다(8절, 10절).</p><p>마지막 날에 주님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리로다” (16절)라는 약속을 완전히 이루실 것입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9장은 책의 후반부를 여는 “경고의 말씀”(1절)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북쪽의 하드락, 다메섹, 하맛에서부터 두로와 시돈, 남쪽 블레셋 성읍들(아스글론, 가사, 에그론, 아스돗)에 이르기까지 주변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1–7절). 두로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은을 티끌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 재물과 권세를 바다에 던지시고 불로 멸하실 것입니다(3–4절). 블레셋은 거민이 뽑히고, 하나님께서 “그 입에서 가증한 것과 그 입 사이에서 미워하는 것을 제거”하심으로, 열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을 자가 있게 하십니다(7절).</p><p>8절에서 하나님은 “이제 내가 눈으로 보고 있으므로” 내 집을 둘러 진을 치고 지키셔서 다시는 압제자가 왕래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어 시온의 딸과 예루살렘의 딸에게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겸손하신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며,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성취됩니다. 왕이신 그리스도는 전쟁 무기를 제하시고(10절) “땅끝까지” 평화를 선포하십니다.</p><p>이렇게 하나님은 언약의 피로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고(11절), 시온의 아들들이 헬라의 아들들과 맞서게 하시며(13절), 하나님의 위엄과 보호로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그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은 왕관의 보석들처럼 여호와의 땅에 빛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16절). 할렐루야!</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 위에 군림하시며, 모든 민족을 보시고 심판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1절). 그런데 이 하나님이 우리 아바 아버지라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와 재물, 군사력으로 자신을 견고히 하는 자라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p><p>“두로가 자기를 위하여 보루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몰수히 쫓아내시며 그의 재물을 바다에 던지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3–4절)</p><p>하나님은 심판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언약 백성을 친히 지키십니다. 천사들을 보내셔도 되지만,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집을 둘러 진을 치고 지키십니다(8절). 무엇보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이 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평화를 이루시는 메시아로 오십니다(9–10절).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결과, 이 세상 나라들도 전쟁을 멈추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땅끝까지 구원을 이루십니다.</p><p><br/></p><p>우리의 죄</p><p>우리는 종종 두로처럼 눈에 보이는 안전망(재물과 권력)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교만과 자기 의존을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의 ‘성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보호를 당연하게 여기게 하며, 거룩을 추구하지 않는 영적 나태함에 빠지게 합니다. 블레셋처럼 “그 입에서 가증한 것과 그 입 사이에서 미워하는 것”(7절)을 간직한 채 살아가면서도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여길 때가 있습니다.</p><p>오늘 우리도 왕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 앞에서, 그리스도를 닮기보다 세상의 방식으로 살려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찢고 애통하며 자복해야 합니다.</p><p><br/></p><p>은혜</p><p>은혜는 하나님께서 원수의 나라 가운데서도 남은 자를 구원하시고, 그들을 유다 족속과 하나로 삼으신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은혜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신” 메시아 왕의 오심에 나타납니다(9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언약을 완성하시고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11절). 이제 그분은 땅끝까지 평화를 선포하시며, 우리를 죄와 사망, 사탄의 압제에서 영원히 지키십니다(8절, 10절).</p><p>마지막 날에 주님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리로다” (16절)라는 약속을 완전히 이루실 것입니다.</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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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Mar 2026 13: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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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가랴 8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 8장은 포로기 이후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격려와 회복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에 다시 돌아오셔서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시고, 그 성은 ‘진리의 성읍’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1–3절). 3절,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연로한 자들이 거리에 앉아 평안을 누리고, 남녀 아이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는 장면은 하나님의 회복을 생생히 보여 줍니다(4–5절).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시고, 진리와 의를 행하는 백성으로 세우십니다(6–8절). 그러므로 그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강하게 하여 성전 건축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9–13절).   과거 조상들이 진노를 불러와 심판을 받았던 것이 언약의 확실함인 것처럼 이번에는 하나님이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8장은 포로기 이후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격려와 회복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에 다시 돌아오셔서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시고, 그 성은 ‘진리의 성읍’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1–3절).</p><p>3절, &quot;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quot;</p><p><br/></p><p>연로한 자들이 거리에 앉아 평안을 누리고, 남녀 아이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는 장면은 하나님의 회복을 생생히 보여 줍니다(4–5절).</p><p><br/></p><p>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시고, 진리와 의를 행하는 백성으로 세우십니다(6–8절). 그러므로 그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강하게 하여 성전 건축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9–13절).</p><p><br/></p><p>과거 조상들이 진노를 불러와 심판을 받았던 것이 언약의 확실함인 것처럼 이번에는 하나님이 선을 행하시기로 작정하셨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4–15절).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진리와 정의를 행하고, 거짓 맹세나 악한 꾀를 버려야 합니다(16–17절).</p><p><br/></p><p>이스라엘이 과거 심판과 슬픔을 기념하던 금식일들은 이제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로 바뀔 것입니다(18–19절). 하나님의 축복은 흘러넘쳐 여러 나라와 강대한 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여호와를 찾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열 명이 유다 사람의 옷자락을 잡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고 동행하길 구하는 모습으로 장이 끝맺습니다(20–23절).</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변함없으신 언약의 여호와로서, 심판하실 때도 반드시 이루시고, 복 주시기로 하실 때도 반드시 이루십니다.</p><p>“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p><p>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14–15절)</p><p><br/></p><p>하나님은 금식을 잔치로, 슬픔을 기쁨으로, 남은 자를 열방에 복을 전하는 증인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p><p>“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19절)</p><p><br/></p><p>우리의 죄</p><p>이스라엘처럼 우리도 금식, 예배, 봉사와 같은 것을 사랑이 아니라 겉치레 종교 행위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 의무감만 갖고 형식적으로만 행하며 우리의 중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진리, 의, 화평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p><p><br/></p><p>“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6–17절)</p><p><br/></p><p>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뜻을 의심하거나, 두려움과 냉소로 인해 손을 놓고, 세상 앞에서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증인의 부르심을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p><p><br/></p><p>은혜</p><p>은혜는 하나님이 변함없이 그분의 백성을 선으로 인도하시며, 그 축복이 경계를 넘어 열방으로 흘러가게 하신다는 데 있습니다.</p><p><br/></p><p>“이제는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복을 주기로 뜻하였은즉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15절)</p><p><br/></p><p>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약속은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금식은 잔치로, 슬픔은 기쁨으로 변했습니다(19절). 오순절 이후 지금까지 각 나라 사람들이 참된 유다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아옵니다(23절). 이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진리를 말하고 정의를 행하며, 평화를 사랑하고, 열방을 예배로 초청하는 하나님의 임재된 백성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할렐루야!</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 8장은 포로기 이후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격려와 회복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에 다시 돌아오셔서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시고, 그 성은 ‘진리의 성읍’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1–3절).</p><p>3절, &quot;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quot;</p><p><br/></p><p>연로한 자들이 거리에 앉아 평안을 누리고, 남녀 아이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는 장면은 하나님의 회복을 생생히 보여 줍니다(4–5절).</p><p><br/></p><p>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흩어진 백성을 다시 모으시고, 진리와 의를 행하는 백성으로 세우십니다(6–8절). 그러므로 그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강하게 하여 성전 건축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9–13절).</p><p><br/></p><p>과거 조상들이 진노를 불러와 심판을 받았던 것이 언약의 확실함인 것처럼 이번에는 하나님이 선을 행하시기로 작정하셨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4–15절).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진리와 정의를 행하고, 거짓 맹세나 악한 꾀를 버려야 합니다(16–17절).</p><p><br/></p><p>이스라엘이 과거 심판과 슬픔을 기념하던 금식일들은 이제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로 바뀔 것입니다(18–19절). 하나님의 축복은 흘러넘쳐 여러 나라와 강대한 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여호와를 찾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열 명이 유다 사람의 옷자락을 잡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고 동행하길 구하는 모습으로 장이 끝맺습니다(20–23절).</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변함없으신 언약의 여호와로서, 심판하실 때도 반드시 이루시고, 복 주시기로 하실 때도 반드시 이루십니다.</p><p>“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p><p>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14–15절)</p><p><br/></p><p>하나님은 금식을 잔치로, 슬픔을 기쁨으로, 남은 자를 열방에 복을 전하는 증인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p><p>“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19절)</p><p><br/></p><p>우리의 죄</p><p>이스라엘처럼 우리도 금식, 예배, 봉사와 같은 것을 사랑이 아니라 겉치레 종교 행위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 의무감만 갖고 형식적으로만 행하며 우리의 중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진리, 의, 화평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p><p><br/></p><p>“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6–17절)</p><p><br/></p><p>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뜻을 의심하거나, 두려움과 냉소로 인해 손을 놓고, 세상 앞에서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증인의 부르심을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p><p><br/></p><p>은혜</p><p>은혜는 하나님이 변함없이 그분의 백성을 선으로 인도하시며, 그 축복이 경계를 넘어 열방으로 흘러가게 하신다는 데 있습니다.</p><p><br/></p><p>“이제는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복을 주기로 뜻하였은즉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15절)</p><p><br/></p><p>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약속은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금식은 잔치로, 슬픔은 기쁨으로 변했습니다(19절). 오순절 이후 지금까지 각 나라 사람들이 참된 유다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아옵니다(23절). 이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진리를 말하고 정의를 행하며, 평화를 사랑하고, 열방을 예배로 초청하는 하나님의 임재된 백성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할렐루야!</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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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Mar 2026 13: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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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스가랴 6장</itunes:title>
    <title>스가랴 6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는 여덟 번째 환상에서 두 개의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를 봅니다. 그 산은 구리 산이며, 병거들은 각각 붉은 말, 검은 말, 흰 말, 그리고 어룽진 말이 끄는 모습입니다(1–3절). 천사는 이것이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아가는 하늘의 네 영이라고 설명합니다(5절). 특별히 북쪽 땅으로 간 자들이 여호와의 영을 쉬게 하였다고 말합니다(8절).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통치가 온 땅에 미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환상 후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명령하십니다. 9-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사로잡힌 자 가운데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어갔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받되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br/>요약</p><p>스가랴는 여덟 번째 환상에서 두 개의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를 봅니다. 그 산은 구리 산이며, 병거들은 각각 붉은 말, 검은 말, 흰 말, 그리고 어룽진 말이 끄는 모습입니다(1–3절). 천사는 이것이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아가는 하늘의 네 영이라고 설명합니다(5절). 특별히 북쪽 땅으로 간 자들이 여호와의 영을 쉬게 하였다고 말합니다(8절).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통치가 온 땅에 미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p><p><br/></p><p>환상 후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명령하십니다.</p><p>9-12절, &quot;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p><p>사로잡힌 자 가운데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어갔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받되</p><p>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p><p>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quot;</p><p><br/></p><p>그리고 그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이름이 ‘싹’이라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12절) 하십니다. 그는 제사장의 위임을 받았고 동시에 왕권을 가진 분으로서, 평화로운 통치를 이루실 것입니다(13절). 이 면류관은 여호와의 성전에 기념이 되게 하라고 명하십니다(14절). 이 모든 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 곧 왕이시며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줍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온 땅을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네 병거의 환상은 하나님의 주권이 온 세상 나라 위에 미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전을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싹’이라 불리는 이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함께 가지며, 평화를 이루십니다(12–13절).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그분이 친히 이루시는 사역입니다.</p><p><br/></p><p>우리의 죄</p><p>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을 신뢰하기보다 세상의 힘과 전략에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고 거룩한 나라가 완성되는 것은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지혜와 자원으로 이루려 합니다. 또한 왕이시며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삶의 일부만 그분께 맡기려는 죄를 범합니다.</p><p><br/></p><p>은혜</p><p>하나님은 ‘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왕국과 완전한 성전을 세우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왕으로 다스리시며 제사장으로 우리를 중보하십니다(히 7:25). 면류관은 우리를 위해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상징하며, 그분 안에서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게 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br/>요약</p><p>스가랴는 여덟 번째 환상에서 두 개의 산 사이에서 나오는 네 병거를 봅니다. 그 산은 구리 산이며, 병거들은 각각 붉은 말, 검은 말, 흰 말, 그리고 어룽진 말이 끄는 모습입니다(1–3절). 천사는 이것이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아가는 하늘의 네 영이라고 설명합니다(5절). 특별히 북쪽 땅으로 간 자들이 여호와의 영을 쉬게 하였다고 말합니다(8절).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통치가 온 땅에 미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p><p><br/></p><p>환상 후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명령하십니다.</p><p>9-12절, &quot;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p><p>사로잡힌 자 가운데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어갔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받되</p><p>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p><p>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quot;</p><p><br/></p><p>그리고 그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이름이 ‘싹’이라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12절) 하십니다. 그는 제사장의 위임을 받았고 동시에 왕권을 가진 분으로서, 평화로운 통치를 이루실 것입니다(13절). 이 면류관은 여호와의 성전에 기념이 되게 하라고 명하십니다(14절). 이 모든 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 곧 왕이시며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줍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온 땅을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네 병거의 환상은 하나님의 주권이 온 세상 나라 위에 미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전을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싹’이라 불리는 이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함께 가지며, 평화를 이루십니다(12–13절).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그분이 친히 이루시는 사역입니다.</p><p><br/></p><p>우리의 죄</p><p>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을 신뢰하기보다 세상의 힘과 전략에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고 거룩한 나라가 완성되는 것은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지혜와 자원으로 이루려 합니다. 또한 왕이시며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삶의 일부만 그분께 맡기려는 죄를 범합니다.</p><p><br/></p><p>은혜</p><p>하나님은 ‘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왕국과 완전한 성전을 세우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왕으로 다스리시며 제사장으로 우리를 중보하십니다(히 7:25). 면류관은 우리를 위해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상징하며, 그분 안에서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게 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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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0 Mar 2026 13: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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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스가랴 4-5장</itunes:title>
    <title>스가랴 4-5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의 다섯 번째 환상(4:1–14)은 하나님의 일을 향한 격려의 주제를 다시 다룹니다. 선지자는 위에 그릇이 있고, 일곱 등잔과 등잔마다 일곱 관이 달린 금 등잔대를 보았습니다. 등잔대의 양쪽에는 두 감람나무가 서 있습니다. 이 등잔대는 성전의 금촛대를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서는 끊임없이 기름이 공급되어 빛을 발합니다. 스가랴가 그 의미를 묻자, 천사가 이 환상의 핵심 해석을 6절에서 말합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 성전 재건 사역과 언약 사명을 완수하는 일은 인간의 힘이나 재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두 감람나무는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서 있는 두 기름 부음 받은 자”(14절)로 설명되는데, 문맥상 성전 재건을 위해 세우신 지도자 스룹바벨과 대제...]]></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의 다섯 번째 환상(4:1–14)은 하나님의 일을 향한 격려의 주제를 다시 다룹니다. 선지자는 위에 그릇이 있고, 일곱 등잔과 등잔마다 일곱 관이 달린 금 등잔대를 보았습니다. 등잔대의 양쪽에는 두 감람나무가 서 있습니다. 이 등잔대는 성전의 금촛대를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서는 끊임없이 기름이 공급되어 빛을 발합니다. 스가랴가 그 의미를 묻자, 천사가 이 환상의 핵심 해석을 6절에서 말합니다.</p><p>“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p><p>성전 재건 사역과 언약 사명을 완수하는 일은 인간의 힘이나 재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두 감람나무는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서 있는 두 기름 부음 받은 자”(14절)로 설명되는데, 문맥상 성전 재건을 위해 세우신 지도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먼저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하나로 이루신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줍니다.</p><p>여섯 번째 환상(5:1–4)은 길이 20규빗, 너비 10규빗의 큰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봅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의 율법을 상징하며, 도둑질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 위에 날아가 심판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죄를 드러내고 백성을 깨끗하게 하시는 장면입니다.</p><p>일곱 번째 환상(5:5–11)은 한 에바(곡식 단위의 큰 되)에 “악”이라 불리는 여인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뚜껑으로 봉해진 채, 날개 달린 두 여인에 의해 시날 땅(바벨론)으로 옮겨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가운데서 악을 제거하여 멀리 치워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p><p>이 모든 환상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집을 세우시고, 죄를 제거하셔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거룩한 처소를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합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집을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나라의 힘이나 인간 지도자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으시며, 오직 성령으로 그 일을 이루십니다(4:6).</p><p>그분은 언약의 거룩함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빛을 비추고 심판하며, 순종하는 자를 복 주시고 회개치 않는 자를 제거하심을 보여줍니다.</p><p>또한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악을 제거하시는 분이십니다. 단순히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거룩한 처소로 성결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등잔대”와 같이 성령의 기름으로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p><p><br/></p><p>우리의 죄</p><p>이 환상들은 두 가지 형태의 죄를 드러냅니다.</p><p>첫째,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사역을 인간의 힘과 지혜에 의존하려 합니다. 포로 귀환 공동체처럼, 예산·인력·전략으로만 사역을 계산하며 성령의 절대적인 능력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p><p>둘째, 우리는 죄를 용인합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언약을 깨뜨리는 거짓과 부정직과 불의를 책망합니다. 이런 죄는 하나님의 거처를 부패하게 합니다. 에바 속의 여인은 악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처”를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는 힘으로 성공을 재고, 편의로 거룩함을 판단하며, 성령과 말씀의 정결케 하심을 거부하는 데 있습니다.</p><p><br/></p><p>은혜</p><p>은혜는 성령의 충만하심의 약속에서 빛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은 반드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스룹바벨이 성전을 완공하는 것은 리더십의 탁월함이나 정치적 연합 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4:9–10).</p><p>또한 은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서 악을 제거하시겠다는 결심에서 드러납니다. 심판하시는 주께서 동시에 깨끗하게 하시고, 악을 봉인하여 멀리 옮기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왕이자 제사장이신 분께서 교회에 성령을 부어 증인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행 2장). 죄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시 103:12) 옮겨졌습니다. 할렐루야!</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의 다섯 번째 환상(4:1–14)은 하나님의 일을 향한 격려의 주제를 다시 다룹니다. 선지자는 위에 그릇이 있고, 일곱 등잔과 등잔마다 일곱 관이 달린 금 등잔대를 보았습니다. 등잔대의 양쪽에는 두 감람나무가 서 있습니다. 이 등잔대는 성전의 금촛대를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서는 끊임없이 기름이 공급되어 빛을 발합니다. 스가랴가 그 의미를 묻자, 천사가 이 환상의 핵심 해석을 6절에서 말합니다.</p><p>“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6).</p><p>성전 재건 사역과 언약 사명을 완수하는 일은 인간의 힘이나 재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두 감람나무는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서 있는 두 기름 부음 받은 자”(14절)로 설명되는데, 문맥상 성전 재건을 위해 세우신 지도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먼저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하나로 이루신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줍니다.</p><p>여섯 번째 환상(5:1–4)은 길이 20규빗, 너비 10규빗의 큰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봅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의 율법을 상징하며, 도둑질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 위에 날아가 심판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죄를 드러내고 백성을 깨끗하게 하시는 장면입니다.</p><p>일곱 번째 환상(5:5–11)은 한 에바(곡식 단위의 큰 되)에 “악”이라 불리는 여인이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뚜껑으로 봉해진 채, 날개 달린 두 여인에 의해 시날 땅(바벨론)으로 옮겨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가운데서 악을 제거하여 멀리 치워버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p><p>이 모든 환상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집을 세우시고, 죄를 제거하셔서 하나님께서 거하실 거룩한 처소를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합니다.</p><p><br/></p><p>하나님</p><p>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집을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나라의 힘이나 인간 지도자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으시며, 오직 성령으로 그 일을 이루십니다(4:6).</p><p>그분은 언약의 거룩함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빛을 비추고 심판하며, 순종하는 자를 복 주시고 회개치 않는 자를 제거하심을 보여줍니다.</p><p>또한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악을 제거하시는 분이십니다. 단순히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거룩한 처소로 성결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등잔대”와 같이 성령의 기름으로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p><p><br/></p><p>우리의 죄</p><p>이 환상들은 두 가지 형태의 죄를 드러냅니다.</p><p>첫째,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사역을 인간의 힘과 지혜에 의존하려 합니다. 포로 귀환 공동체처럼, 예산·인력·전략으로만 사역을 계산하며 성령의 절대적인 능력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p><p>둘째, 우리는 죄를 용인합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언약을 깨뜨리는 거짓과 부정직과 불의를 책망합니다. 이런 죄는 하나님의 거처를 부패하게 합니다. 에바 속의 여인은 악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처”를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는 힘으로 성공을 재고, 편의로 거룩함을 판단하며, 성령과 말씀의 정결케 하심을 거부하는 데 있습니다.</p><p><br/></p><p>은혜</p><p>은혜는 성령의 충만하심의 약속에서 빛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은 반드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스룹바벨이 성전을 완공하는 것은 리더십의 탁월함이나 정치적 연합 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4:9–10).</p><p>또한 은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서 악을 제거하시겠다는 결심에서 드러납니다. 심판하시는 주께서 동시에 깨끗하게 하시고, 악을 봉인하여 멀리 옮기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왕이자 제사장이신 분께서 교회에 성령을 부어 증인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행 2장). 죄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시 103:12) 옮겨졌습니다. 할렐루야!</p><p><br/></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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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스가랴 3:1–10</itunes:title>
    <title>스가랴 3:1–10</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네 번째 환상에서 스가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 있고, 사탄이 그를 고발하려고 옆에 서 있는 장면을 봅니다(1절). 여호수아는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공동체의 영적 리더십을 대표합니다.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죄와 정죄의 상징입니다(3절). 사탄의 고발은 근거가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사탄을 꾸짖으십니다. 2절,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하나님의 택하심은 이스라엘의 무죄함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이 벗겨지고, 정결한 예복과 깨끗한 관이 씌워집니다(4–5절). 이는 단순한 용서 그 이상으로, 의의 회복과 제사장 직분의 완전한 회복을 뜻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이...]]></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네 번째 환상에서 스가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 있고, 사탄이 그를 고발하려고 옆에 서 있는 장면을 봅니다(1절). 여호수아는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공동체의 영적 리더십을 대표합니다.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죄와 정죄의 상징입니다(3절). 사탄의 고발은 근거가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사탄을 꾸짖으십니다.</p><p>2절,</p><p>“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p><p>하나님의 택하심은 이스라엘의 무죄함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에 기초한 것입니다.</p><p>그 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이 벗겨지고, 정결한 예복과 깨끗한 관이 씌워집니다(4–5절). 이는 단순한 용서 그 이상으로, 의의 회복과 제사장 직분의 완전한 회복을 뜻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이어서 순종의 삶에 대한 권면(7절)과 함께 메시아적 약속을 주십니다.</p><p>&quot;내 종 싹”을 보내시고, “하루에 이 땅의 죄악을 제거하겠다”고 하십니다(8–9절). 마지막 절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아래에서의 평화와 풍성함을 묘사하며 마무리됩니다(10절).</p><p>이 비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고, 그 죄를 영원히 제거하시는 은혜의 복음을 설명합니다.</p><p>하나님</p><p>하나님은 심판자이시자 의롭다 하시는 이십니다. 그분은 더러움을 보시고, 사탄의 고발을 들으시지만, 자기 백성을 위해 변호하십니다.</p><p>“여호와께서 사탄을 책망하시노라!” (2절)</p><p>하나님의 권위는 고발을 능가합니다. 고발이 거짓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긍휼을 베풀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p><p>또한 하나님은 정결케 하시는 분이십니다.</p><p>“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였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4절)</p><p>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스스로 깨끗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시고, 명령하시며, 정결케 하십니다.</p><p>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거룩하시되 긍휼을 베푸십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시지며 의롭게 하십니다</p><p>죄</p><p>우리의 죄는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에 선명히 드러납니다. 대제사장임에도 그는 하나님 앞에 부정하고, 섬기기에 합당치 않으며, 정당하게 고발당한 자로 서 있습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죄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 오염, 특히 지도자들의 죄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p><p>우리의 가장 선한 행위조차도 더러운 옷과 같으며(이사야 64:6), 우리는 종종 직분, 사역의 열매, 종교적 열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결케 하심 없이는 우리는 모두 정죄받을 수밖에 없습니다.</p><p>사탄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고발하지만, 성령은 우리를 회개와 회복으로 이끌기 위해 책망하십니다.</p><p>은혜</p><p>은혜는 이 환상의 모든 구절에 스며 있습니다.</p><p>사탄에 대한 책망(2절), 더러운 옷의 제거(4절), 새 옷의 선물(5절). 모두 하나님의 주도하심에서 비롯됩니다.</p><p>여호수아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정결하다고 선언하십니다.</p><p>이것이 바로 오직 은혜로 의롭다 하심(Justification by grace alone)의 복음입니다.</p><p>8절에 기록된 “싹”은 메시아에 대한 분명한 예언입니다.</p><p>예수는 다윗의 뿌리에서 나신 의로운 가지(렘 23:5–6)입니다.</p><p>9절의 결정적 선언은 복음 그 자체입니다.</p><p>“내가 하루에 이 땅의 죄악을 제거하리라”</p><p>이날이 곧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뤄졌습니다.</p><p>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짊어지시고, 단번에 속죄를 이루셨습니다.</p><p>4-5절, &quot;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p><p>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quot;</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네 번째 환상에서 스가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 있고, 사탄이 그를 고발하려고 옆에 서 있는 장면을 봅니다(1절). 여호수아는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공동체의 영적 리더십을 대표합니다.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죄와 정죄의 상징입니다(3절). 사탄의 고발은 근거가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사탄을 꾸짖으십니다.</p><p>2절,</p><p>“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p><p>하나님의 택하심은 이스라엘의 무죄함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에 기초한 것입니다.</p><p>그 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이 벗겨지고, 정결한 예복과 깨끗한 관이 씌워집니다(4–5절). 이는 단순한 용서 그 이상으로, 의의 회복과 제사장 직분의 완전한 회복을 뜻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이어서 순종의 삶에 대한 권면(7절)과 함께 메시아적 약속을 주십니다.</p><p>&quot;내 종 싹”을 보내시고, “하루에 이 땅의 죄악을 제거하겠다”고 하십니다(8–9절). 마지막 절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아래에서의 평화와 풍성함을 묘사하며 마무리됩니다(10절).</p><p>이 비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고, 그 죄를 영원히 제거하시는 은혜의 복음을 설명합니다.</p><p>하나님</p><p>하나님은 심판자이시자 의롭다 하시는 이십니다. 그분은 더러움을 보시고, 사탄의 고발을 들으시지만, 자기 백성을 위해 변호하십니다.</p><p>“여호와께서 사탄을 책망하시노라!” (2절)</p><p>하나님의 권위는 고발을 능가합니다. 고발이 거짓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긍휼을 베풀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p><p>또한 하나님은 정결케 하시는 분이십니다.</p><p>“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였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4절)</p><p>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스스로 깨끗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시고, 명령하시며, 정결케 하십니다.</p><p>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입니다. 거룩하시되 긍휼을 베푸십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시지며 의롭게 하십니다</p><p>죄</p><p>우리의 죄는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에 선명히 드러납니다. 대제사장임에도 그는 하나님 앞에 부정하고, 섬기기에 합당치 않으며, 정당하게 고발당한 자로 서 있습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죄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 오염, 특히 지도자들의 죄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p><p>우리의 가장 선한 행위조차도 더러운 옷과 같으며(이사야 64:6), 우리는 종종 직분, 사역의 열매, 종교적 열심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결케 하심 없이는 우리는 모두 정죄받을 수밖에 없습니다.</p><p>사탄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고발하지만, 성령은 우리를 회개와 회복으로 이끌기 위해 책망하십니다.</p><p>은혜</p><p>은혜는 이 환상의 모든 구절에 스며 있습니다.</p><p>사탄에 대한 책망(2절), 더러운 옷의 제거(4절), 새 옷의 선물(5절). 모두 하나님의 주도하심에서 비롯됩니다.</p><p>여호수아는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정결하다고 선언하십니다.</p><p>이것이 바로 오직 은혜로 의롭다 하심(Justification by grace alone)의 복음입니다.</p><p>8절에 기록된 “싹”은 메시아에 대한 분명한 예언입니다.</p><p>예수는 다윗의 뿌리에서 나신 의로운 가지(렘 23:5–6)입니다.</p><p>9절의 결정적 선언은 복음 그 자체입니다.</p><p>“내가 하루에 이 땅의 죄악을 제거하리라”</p><p>이날이 곧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뤄졌습니다.</p><p>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짊어지시고, 단번에 속죄를 이루셨습니다.</p><p>4-5절, &quot;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p><p>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quot;</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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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author>Jubilee Christian Life Coach</itune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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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9 Mar 2026 10: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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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가랴 2:1–1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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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세 번째 환상에서, 스가랴는 예루살렘을 측량하러 나가는 한 사람을 봅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다시 세우고 회복하시겠다는 상징적 장면입니다(1–2절). 그러나 또 다른 천사가 그를 막으며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장차 사람들과 가축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더 이상 물리적인 성벽이 필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불 성곽이 되시고, 그 가운데 임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p><p>4–5절,</p><p>&quot;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quot;</p><p>이것은 단순한 도시 재건 계획의 비전이 아닙니다. 생명과 안전과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찬 언약 공동체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 언약적 비전입니다.</p><p>이후 하나님은 아직 이방에 흩어져 있는 백성들에게 외치십니다(6–7절). 바벨론에서 도망쳐 시온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자신의 백성을 약탈했던 열국을 심판하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p><p>8–9절, &quot;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p><p>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quot;</p><p>마지막 구절들(10–13절)은 종말론적 성취의 기쁨으로 전환됩니다. 하나님은 다시 백성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10–11절), “그날에 많은 나라들이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예루살렘의 회복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나라, 열방이 왕 되신 예수께로 모여드는 구속사의 비전을 보여줍니다. 모든 인류는 침묵하며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요구받습니다(13절).</p><p>하나님</p><p>하나님은 그 백성을 모으시고 지키시는 왕이십니다. 사람의 손에 들린 측량줄은 예루살렘의 경계를 복구하려는 인간의 계획을 상징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넘어서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보호하시는 불 성곽이 되시며, 단지 외적인 보호만이 아니라 내적인 임재를 약속하십니다.</p><p>5절, “내가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p><p>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성전에 가서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 가운데 친히 거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열방의 심판자이십니다. 자기 백성에게는 긍휼로, 대적에게는 공의로 역사하십니다. 만유의 주되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벨론에서 우리를 불러내어 자기 임재로 초대하십니다.</p><p>우리의 죄</p><p>우리의 죄는 이 세상에서의 안일함입니다. 바벨론을 떠나기를 주저하는 모습은 오늘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호라 너 바벨론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피할지니라” (7절)라고 하십니다. 이는 일부 백성들이 심판의 땅에 영적 거처를 두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p><p>소돔을 떠나기를 머뭇거리던 롯처럼, 우리도 타협에서 벗어나는 일에 더디고 느립니다. 또 하나의 깊은 죄는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표를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측량줄(1–2절)처럼 인간의 기준과 계산을 절대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인간의 “측량”을 넘어 하나님의 초자연적 비전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안정된 경계, 예측 가능한 성장, 계획의 보장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경계를 넘어선, 성령으로 충만한 “성벽 없는 백성”을 세우시며, 그 중심에 자신이 거하십니다.</p><p>마음을 찢고 주님이 부르시는 우리의 예루살렘으로, 우리의 시온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세 번째 환상에서, 스가랴는 예루살렘을 측량하러 나가는 한 사람을 봅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를 다시 세우고 회복하시겠다는 상징적 장면입니다(1–2절). 그러나 또 다른 천사가 그를 막으며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장차 사람들과 가축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더 이상 물리적인 성벽이 필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불 성곽이 되시고, 그 가운데 임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p><p>4–5절,</p><p>&quot;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quot;</p><p>이것은 단순한 도시 재건 계획의 비전이 아닙니다. 생명과 안전과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찬 언약 공동체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 언약적 비전입니다.</p><p>이후 하나님은 아직 이방에 흩어져 있는 백성들에게 외치십니다(6–7절). 바벨론에서 도망쳐 시온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자신의 백성을 약탈했던 열국을 심판하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p><p>8–9절, &quot;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p><p>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quot;</p><p>마지막 구절들(10–13절)은 종말론적 성취의 기쁨으로 전환됩니다. 하나님은 다시 백성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10–11절), “그날에 많은 나라들이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예루살렘의 회복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나라, 열방이 왕 되신 예수께로 모여드는 구속사의 비전을 보여줍니다. 모든 인류는 침묵하며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요구받습니다(13절).</p><p>하나님</p><p>하나님은 그 백성을 모으시고 지키시는 왕이십니다. 사람의 손에 들린 측량줄은 예루살렘의 경계를 복구하려는 인간의 계획을 상징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넘어서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보호하시는 불 성곽이 되시며, 단지 외적인 보호만이 아니라 내적인 임재를 약속하십니다.</p><p>5절, “내가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p><p>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성전에 가서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 가운데 친히 거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열방의 심판자이십니다. 자기 백성에게는 긍휼로, 대적에게는 공의로 역사하십니다. 만유의 주되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벨론에서 우리를 불러내어 자기 임재로 초대하십니다.</p><p>우리의 죄</p><p>우리의 죄는 이 세상에서의 안일함입니다. 바벨론을 떠나기를 주저하는 모습은 오늘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호라 너 바벨론에 거하는 시온아 이제 피할지니라” (7절)라고 하십니다. 이는 일부 백성들이 심판의 땅에 영적 거처를 두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p><p>소돔을 떠나기를 머뭇거리던 롯처럼, 우리도 타협에서 벗어나는 일에 더디고 느립니다. 또 하나의 깊은 죄는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표를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측량줄(1–2절)처럼 인간의 기준과 계산을 절대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인간의 “측량”을 넘어 하나님의 초자연적 비전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안정된 경계, 예측 가능한 성장, 계획의 보장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경계를 넘어선, 성령으로 충만한 “성벽 없는 백성”을 세우시며, 그 중심에 자신이 거하십니다.</p><p>마음을 찢고 주님이 부르시는 우리의 예루살렘으로, 우리의 시온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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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9 Mar 2026 10: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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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스가랴 1:7–21</itunes:title>
    <title>스가랴 1:7–21</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는 회개를 촉구하는 첫 번째 메시지를 선포한 지 몇 달 후, 여덟 개의 환상 중 첫 두 개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그 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이 환상들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낙심하고 영적으로 지쳐 있는 남은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첫 번째 환상(7–17절)에서는 붉은 말을 탄 한 사람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고, 그의 뒤에는 붉고 자주빛이며 흰 말들이 서 있습니다. 이 말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온 땅을 순찰하는 천상의 사자들을 상징합니다. 여기 많은 학자들이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로 이해하는 여호와의 사자가 예루살렘을 위해 중보하며 “여호와여 언제까지나 예루살렘에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시려나이까?”(12절)라고 탄식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13절)으로 응답하시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14절) 다시 시온을 택하고...]]></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는 회개를 촉구하는 첫 번째 메시지를 선포한 지 몇 달 후, 여덟 개의 환상 중 첫 두 개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그 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p><p>&quot;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quot;</p><p>이 환상들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낙심하고 영적으로 지쳐 있는 남은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말씀입니다</p><p>첫 번째 환상(7–17절)에서는 붉은 말을 탄 한 사람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고, 그의 뒤에는 붉고 자주빛이며 흰 말들이 서 있습니다. 이 말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온 땅을 순찰하는 천상의 사자들을 상징합니다. 여기 많은 학자들이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로 이해하는 여호와의 사자가 예루살렘을 위해 중보하며 “여호와여 언제까지나 예루살렘에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시려나이까?”(12절)라고 탄식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13절)으로 응답하시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14절) 다시 시온을 택하고, 성전을 재건하며, 번성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p><p>두 번째 환상(18–21절)에서는 네 개의 뿔이 나타나는데,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은 열국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quot;네 명의 대장장이&quot;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그 뿔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이 두 환상을 통해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억누르던 열국을 심판하시고 다시 회복하실 것을 확실히 선언하십니다</p><p>하나님</p><p>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이시며, 온 땅을 감찰하시고 열방을 통치하시며, 권위와 사랑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12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중보하는 장면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깊은 통찰을 줍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13절)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시는”(14절) 분이십니다. 여기 &quot;질투&quot;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의 표현입니다</p><p>17절, “다시 외쳐 이르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p><p>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심판 이후에도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불의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일꾼을 일으켜 열방의 악한 권세를 무너뜨리십니다(20절). 즉, 우리의 하나님은 절대로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의와 긍휼, 그리고 회복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p><p>우리의 죄</p><p>백성들의 죄는 낙심과 영적 무기력 속에 내재된 불신앙의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비록 그들은 포로에서 귀환했지만, 여전히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은 폐허로 남아 있었고, 성전은 완공되지 않았으며, 주변 열국은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만일 우리도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p><p>그러나 진정한 죄는 단지 낙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잊고, 현실로 하나님을 평가한 것입니다. 열국이 이스라엘을 흩을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의 과거 불순종 때문이지만, 지금의 더 큰 문제는 회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열심마저 의심하는 새로운 형태의 불신입니다. 우리 역시 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의심하고, 회복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은 채 무너진 “우리의 예루살렘”만 바라보며 절망에 빠지기 쉽습니다</p><p>은혜</p><p>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하심입니다. 백성이 먼저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을 위해 역사하셨습니다 (12절).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심판의 진노가 아니라 선하고 위로에 찬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p><p>“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3절)</p><p>하나님은 시온을 향한 질투의 사랑을 선언하시며(14절), 다시 성전을 세우시고 성읍들을 풍성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6–17절). 이것이 바로 언약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기억하시고 회복하십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는 회개를 촉구하는 첫 번째 메시지를 선포한 지 몇 달 후, 여덟 개의 환상 중 첫 두 개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그 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p><p>&quot;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quot;</p><p>이 환상들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낙심하고 영적으로 지쳐 있는 남은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말씀입니다</p><p>첫 번째 환상(7–17절)에서는 붉은 말을 탄 한 사람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고, 그의 뒤에는 붉고 자주빛이며 흰 말들이 서 있습니다. 이 말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온 땅을 순찰하는 천상의 사자들을 상징합니다. 여기 많은 학자들이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로 이해하는 여호와의 사자가 예루살렘을 위해 중보하며 “여호와여 언제까지나 예루살렘에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시려나이까?”(12절)라고 탄식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13절)으로 응답하시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14절) 다시 시온을 택하고, 성전을 재건하며, 번성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p><p>두 번째 환상(18–21절)에서는 네 개의 뿔이 나타나는데,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은 열국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quot;네 명의 대장장이&quot;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그 뿔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이 두 환상을 통해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억누르던 열국을 심판하시고 다시 회복하실 것을 확실히 선언하십니다</p><p>하나님</p><p>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이시며, 온 땅을 감찰하시고 열방을 통치하시며, 권위와 사랑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12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중보하는 장면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깊은 통찰을 줍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13절)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시는”(14절) 분이십니다. 여기 &quot;질투&quot;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의 표현입니다</p><p>17절, “다시 외쳐 이르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위로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라”</p><p>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심판 이후에도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불의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일꾼을 일으켜 열방의 악한 권세를 무너뜨리십니다(20절). 즉, 우리의 하나님은 절대로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의와 긍휼, 그리고 회복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p><p>우리의 죄</p><p>백성들의 죄는 낙심과 영적 무기력 속에 내재된 불신앙의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비록 그들은 포로에서 귀환했지만, 여전히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은 폐허로 남아 있었고, 성전은 완공되지 않았으며, 주변 열국은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만일 우리도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신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p><p>그러나 진정한 죄는 단지 낙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잊고, 현실로 하나님을 평가한 것입니다. 열국이 이스라엘을 흩을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의 과거 불순종 때문이지만, 지금의 더 큰 문제는 회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열심마저 의심하는 새로운 형태의 불신입니다. 우리 역시 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의심하고, 회복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은 채 무너진 “우리의 예루살렘”만 바라보며 절망에 빠지기 쉽습니다</p><p>은혜</p><p>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하심입니다. 백성이 먼저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을 위해 역사하셨습니다 (12절).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심판의 진노가 아니라 선하고 위로에 찬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p><p>“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의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3절)</p><p>하나님은 시온을 향한 질투의 사랑을 선언하시며(14절), 다시 성전을 세우시고 성읍들을 풍성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6–17절). 이것이 바로 언약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에 기억하시고 회복하십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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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가랴 1장</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요약 스가랴는 포로기 이후 활동한 세 명의 선지자(학개, 스가랴, 말라기) 중 두 번째 인물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인도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의 이름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는 뜻으로, 오랜 포로 생활 이후 ‘잊혔다’고 느낄 수 있었던 백성에게 하나님의 언약적 기억과 신실하심을 선포하는 이름입니다. 그의 사역은 주전 520년, 바사 왕 다리오 1세 제이년에 시작되었으며, 이는 학개의 사역이 시작된 지 두 달 후였습니다. 이 두 선지자의 사역 목적은 성전 재건을 독려하고 영적 회복을 촉구하는 데 있었으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학개가 성전 건축의 시급성과 순종을 강조했다면, 스가랴는 그보다 더 넓은 비전을 제시합니다. 그는 환상과 종말론적 이미지, 메시아의 소망과 우주적 회복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스가랴서는 복음서의 예수님 수난 이야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책으로, 그리스도...]]></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는 포로기 이후 활동한 세 명의 선지자(학개, 스가랴, 말라기) 중 두 번째 인물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인도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의 이름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는 뜻으로, 오랜 포로 생활 이후 ‘잊혔다’고 느낄 수 있었던 백성에게 하나님의 언약적 기억과 신실하심을 선포하는 이름입니다. 그의 사역은 주전 520년, 바사 왕 다리오 1세 제이년에 시작되었으며, 이는 학개의 사역이 시작된 지 두 달 후였습니다. 이 두 선지자의 사역 목적은 성전 재건을 독려하고 영적 회복을 촉구하는 데 있었으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p><p>학개가 성전 건축의 시급성과 순종을 강조했다면, 스가랴는 그보다 더 넓은 비전을 제시합니다. 그는 환상과 종말론적 이미지, 메시아의 소망과 우주적 회복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스가랴서는 복음서의 예수님 수난 이야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책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속사적 의미가 매우 풍성한 예언서입니다.</p><p>하나님의 백성에게 먼저 회개와 귀환을 촉구합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돌이키며,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시급하고도 인격적인 언약의 호소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3절)는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교정이 아니라 관계 회복의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 언약적 친밀함을 원하십니다. 조상들에 대한 언급(2, 4–6절)은 회개 없는 신앙이 결국 심판과 유배로 이어졌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하며, 진정한 회복이 없으면 같은 역사가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p><p>하나님</p><p>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음성은 권위로 충만하지만 동시에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딱딱한 가부장적 독재자가 아니라, 간절한 남편입니다. 마치 바람난 아내를 다시 부르는 신실한 남편의 애끓는 마음으로 돌아오라 말씀하십니다.</p><p>“여호와가 너희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2절)</p><p>하나님은 조상들의 불순종에 진노하신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돌아오는 자를 기꺼이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허한 경고가 아니라 반드시 성취되는 실재입니다. “내 종 선지자들로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6절) 하나님의 약속과 심판은 절대로 우리가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큰일 납니다.</p><p>우리의 죄</p><p>“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악한 길과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4절)</p><p>우리의 죄는 영적 조상들과 같이 고집스럽고 무감각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둔감한 데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도 여전히 외적인 신앙은 유지했지만, 마음 중심의 회개 없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갈 위험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고, 교훈을 배워 돌이키라는 부르심입니다. 조상들의 죄는 무지나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거절과 반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들은 척만 했으며, 진정한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그러할 때가 많습니다. 말씀을 듣지만 순종하지 않고, 말씀을 읽지만 회개하지 않으며, 열심히 움직이지만 아무 열매 없는 삶. 겉모양은 신실해 보이지만, 정작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은 모습이 우리의 죄입니다.</p><p>은혜는?</p><p>은혜는 하나님의 초청 그 자체에 담겨 있습니다.</p><p>“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3절)</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요약</p><p>스가랴는 포로기 이후 활동한 세 명의 선지자(학개, 스가랴, 말라기) 중 두 번째 인물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인도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의 이름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는 뜻으로, 오랜 포로 생활 이후 ‘잊혔다’고 느낄 수 있었던 백성에게 하나님의 언약적 기억과 신실하심을 선포하는 이름입니다. 그의 사역은 주전 520년, 바사 왕 다리오 1세 제이년에 시작되었으며, 이는 학개의 사역이 시작된 지 두 달 후였습니다. 이 두 선지자의 사역 목적은 성전 재건을 독려하고 영적 회복을 촉구하는 데 있었으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p><p>학개가 성전 건축의 시급성과 순종을 강조했다면, 스가랴는 그보다 더 넓은 비전을 제시합니다. 그는 환상과 종말론적 이미지, 메시아의 소망과 우주적 회복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스가랴서는 복음서의 예수님 수난 이야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책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속사적 의미가 매우 풍성한 예언서입니다.</p><p>하나님의 백성에게 먼저 회개와 귀환을 촉구합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돌이키며,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시급하고도 인격적인 언약의 호소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3절)는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교정이 아니라 관계 회복의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적 형식이 아니라 언약적 친밀함을 원하십니다. 조상들에 대한 언급(2, 4–6절)은 회개 없는 신앙이 결국 심판과 유배로 이어졌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하며, 진정한 회복이 없으면 같은 역사가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p><p>하나님</p><p>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음성은 권위로 충만하지만 동시에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딱딱한 가부장적 독재자가 아니라, 간절한 남편입니다. 마치 바람난 아내를 다시 부르는 신실한 남편의 애끓는 마음으로 돌아오라 말씀하십니다.</p><p>“여호와가 너희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2절)</p><p>하나님은 조상들의 불순종에 진노하신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돌아오는 자를 기꺼이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허한 경고가 아니라 반드시 성취되는 실재입니다. “내 종 선지자들로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6절) 하나님의 약속과 심판은 절대로 우리가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큰일 납니다.</p><p>우리의 죄</p><p>“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악한 길과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4절)</p><p>우리의 죄는 영적 조상들과 같이 고집스럽고 무감각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둔감한 데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도 여전히 외적인 신앙은 유지했지만, 마음 중심의 회개 없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갈 위험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고, 교훈을 배워 돌이키라는 부르심입니다. 조상들의 죄는 무지나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거절과 반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들은 척만 했으며, 진정한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그러할 때가 많습니다. 말씀을 듣지만 순종하지 않고, 말씀을 읽지만 회개하지 않으며, 열심히 움직이지만 아무 열매 없는 삶. 겉모양은 신실해 보이지만, 정작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은 모습이 우리의 죄입니다.</p><p>은혜는?</p><p>은혜는 하나님의 초청 그 자체에 담겨 있습니다.</p><p>“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3절)</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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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9 Mar 2026 09: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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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39;목사&#39;가 불필요한 세상을 꿈꾸는 목회자</itunes:title>
    <title>&#39;목사&#39;가 불필요한 세상을 꿈꾸는 목회자</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작년 이즈음에는 한국에서 약 8년의 삶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지교회 목회 전선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라이프 코칭과 크리스천 상담을 공부하였고 그 결과 라이프 코치와 상담사로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30년 동안 목회자로서 공부한 성경 신학과 실천 신학이 아주 든든한 기반이 되어 준 것은 감사한 사실입니다. 제가 미국으로 다시 거점을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제가 15년 전에 담임을 하였던 영어권 교회의 어려움을 들어서였습니다. 그 교회는 제가 떠난 후 세 명의 담임 목사를 바꾸었고 제가 크리스천 코칭과 상담을 위한 미국 비영리 단체 설립과 후원을 위해 방문할 당시 3년 동안 담임 목사 없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두 번에 걸친 청빙 실패와 아울러 더 이상 마땅한 청빙 대상자가 없었던 상황에서 저를 다시 부르고자 하는 뜻을 전달받았습니다. 그 교회는 제게는 늘 아...]]></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p><p>작년 이즈음에는 한국에서 약 8년의 삶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지교회 목회 전선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라이프 코칭과 크리스천 상담을 공부하였고 그 결과 라이프 코치와 상담사로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30년 동안 목회자로서 공부한 성경 신학과 실천 신학이 아주 든든한 기반이 되어 준 것은 감사한 사실입니다. 제가 미국으로 다시 거점을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제가 15년 전에 담임을 하였던 영어권 교회의 어려움을 들어서였습니다. 그 교회는 제가 떠난 후 세 명의 담임 목사를 바꾸었고 제가 크리스천 코칭과 상담을 위한 미국 비영리 단체 설립과 후원을 위해 방문할 당시 3년 동안 담임 목사 없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두 번에 걸친 청빙 실패와 아울러 더 이상 마땅한 청빙 대상자가 없었던 상황에서 저를 다시 부르고자 하는 뜻을 전달받았습니다. 그 교회는 제게는 늘 아픈 손가락처럼 마음이 쓰이던 상황이라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apos;교회&apos;를 다시 세우고자 사역을 하였습니다</p><p>에베소서 4장 11-12절, &quot;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quot;</p><p>여기 &quot;성도를 온전하게 하여&quot;로 번역된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헬라어 &apos;카타르티스모스&apos;로, 찢어진 그물을 깁듯이 수선하고 복구하며, 흐트러진 것을 정돈하고 바로잡고, 맡겨진 사명을 위해 준비시키고 갖추게 하며, 마침내 각 지체가 제 기능을 다하도록 성숙하게 세우는 것을 뜻하므로, 주님께서 목회자를 따로 세우신 이유를 성경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목회자도 한편으로는 모든 성도와 다름이 없는 주의 양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따로 세우셔서 교회, 즉 성도를 바로 세우시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p><p>그러면 제가 왜 오늘 묵상 타이틀을 &quot;목사가 불필요한 세상을 꿈꾸는 목회자&quot;라고 잡았을까요?</p><p>목회자가 불필요한 세상은 더 이상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apos;목사&apos;라는 직분은 만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다면 불필요한 직분입니다. 그래서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히 통치하는 세상이 오면 목회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세상을 꿈꾸며 삽니다</p><p>목회자가 불필요한 상황으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성도가 더욱 온전해지는 만큼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quot;봉사의 일&quot;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교인들을 대신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이나 성경을 잘 아는 목사와 함께하는 것으로 성도는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모든 성도님들이 마치 신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성경과 교회 역사 그리고 신학을 잘 아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다 나누고자 합니다. 저를 따르는 성도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를 능가하는 성경과 신학의 깊이가 저를 뛰어넘는 성도들을 세우는 것이 저의 꿈이자 목표입니다</p><p>역설적으로 그런 세상을 위해서 오늘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는 더 많은 신실한 목회자들입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신학교들이 문을 닫습니다. 목사나 신학자가 되기 위해 지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해도 많은 경우 bi-vocational, 즉 이중직업을 갖고 주말에만 &apos;사역&apos;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왕의 복음을 선포하며, 말씀으로 양육하고, 성도를 바로 세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하여 세우신 사람들이 있다고 기록합니다</p><p>문제는 목사에 대한 부적절한 의존입니다. 게으른 신앙이기도 합니다. 목사는 자신을 교회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성도를 세우는 일을 하여야 하고, 성도는 목사를 통한 대리 종교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p><p>교회는 건물이나 재정이 아니라 성도입니다</p><p>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성도요 교회임을 꼭 기억하시길!</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p><p>작년 이즈음에는 한국에서 약 8년의 삶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지교회 목회 전선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라이프 코칭과 크리스천 상담을 공부하였고 그 결과 라이프 코치와 상담사로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30년 동안 목회자로서 공부한 성경 신학과 실천 신학이 아주 든든한 기반이 되어 준 것은 감사한 사실입니다. 제가 미국으로 다시 거점을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제가 15년 전에 담임을 하였던 영어권 교회의 어려움을 들어서였습니다. 그 교회는 제가 떠난 후 세 명의 담임 목사를 바꾸었고 제가 크리스천 코칭과 상담을 위한 미국 비영리 단체 설립과 후원을 위해 방문할 당시 3년 동안 담임 목사 없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두 번에 걸친 청빙 실패와 아울러 더 이상 마땅한 청빙 대상자가 없었던 상황에서 저를 다시 부르고자 하는 뜻을 전달받았습니다. 그 교회는 제게는 늘 아픈 손가락처럼 마음이 쓰이던 상황이라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apos;교회&apos;를 다시 세우고자 사역을 하였습니다</p><p>에베소서 4장 11-12절, &quot;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quot;</p><p>여기 &quot;성도를 온전하게 하여&quot;로 번역된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헬라어 &apos;카타르티스모스&apos;로, 찢어진 그물을 깁듯이 수선하고 복구하며, 흐트러진 것을 정돈하고 바로잡고, 맡겨진 사명을 위해 준비시키고 갖추게 하며, 마침내 각 지체가 제 기능을 다하도록 성숙하게 세우는 것을 뜻하므로, 주님께서 목회자를 따로 세우신 이유를 성경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목회자도 한편으로는 모든 성도와 다름이 없는 주의 양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를 따로 세우셔서 교회, 즉 성도를 바로 세우시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p><p>그러면 제가 왜 오늘 묵상 타이틀을 &quot;목사가 불필요한 세상을 꿈꾸는 목회자&quot;라고 잡았을까요?</p><p>목회자가 불필요한 세상은 더 이상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apos;목사&apos;라는 직분은 만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다면 불필요한 직분입니다. 그래서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히 통치하는 세상이 오면 목회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세상을 꿈꾸며 삽니다</p><p>목회자가 불필요한 상황으로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성도가 더욱 온전해지는 만큼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quot;봉사의 일&quot;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교인들을 대신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이나 성경을 잘 아는 목사와 함께하는 것으로 성도는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모든 성도님들이 마치 신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성경과 교회 역사 그리고 신학을 잘 아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다 나누고자 합니다. 저를 따르는 성도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를 능가하는 성경과 신학의 깊이가 저를 뛰어넘는 성도들을 세우는 것이 저의 꿈이자 목표입니다</p><p>역설적으로 그런 세상을 위해서 오늘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는 더 많은 신실한 목회자들입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신학교들이 문을 닫습니다. 목사나 신학자가 되기 위해 지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해도 많은 경우 bi-vocational, 즉 이중직업을 갖고 주말에만 &apos;사역&apos;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왕의 복음을 선포하며, 말씀으로 양육하고, 성도를 바로 세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하여 세우신 사람들이 있다고 기록합니다</p><p>문제는 목사에 대한 부적절한 의존입니다. 게으른 신앙이기도 합니다. 목사는 자신을 교회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성도를 세우는 일을 하여야 하고, 성도는 목사를 통한 대리 종교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p><p>교회는 건물이나 재정이 아니라 성도입니다</p><p>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성도요 교회임을 꼭 기억하시길!</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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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author>Jubilee Christian Life Coach</itunes: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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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9 Mar 2026 09:00:00 -04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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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unes:title>가스펠인(人) 소개</itunes:title>
    <title>가스펠인(人) 소개</title>
    <itunes:summary><![CDATA[Send us Fan Mail 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오늘은 가스펠인(人) 사역을 소개하는 말씀을 나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처음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배경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핍박이 있었습니다. 종교인들은 스데반이라는 사람을 신의 이름으로 죽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은 어쩔 수 없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열악한 상황에도 그들은 예수의 복음, 즉 왕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찌 보면 오히려 핍박 때문에 복음은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그 결과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기록합니다(사도행전 11장). 그런데 요즘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단어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는 '교회'의 타락이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75.4%가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에 ...]]></itunes:summary>
    <description><![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오늘은 가스펠인(人) 사역을 소개하는 말씀을 나눕니다.</p><p>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처음부터 &quot;그리스도인&quot;이라 일컬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처음 &quot;그리스도인&quot;이라 불린 배경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핍박이 있었습니다. 종교인들은 스데반이라는 사람을 신의 이름으로 죽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은 어쩔 수 없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열악한 상황에도 그들은 예수의 복음, 즉 왕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찌 보면 오히려 핍박 때문에 복음은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그 결과 &quot;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quot; 기록합니다(사도행전 11장).</p><p>그런데 요즘은 &apos;그리스도인&apos;이라는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단어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는 &apos;교회&apos;의 타락이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75.4%가 &apos;교회&apos;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에 놀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p><p>어찌하여 &apos;교회&apos;와 &apos;그리스도인&apos;은 이렇게 되었을까요? 저는 가장 큰 원인으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apos;왕의 복음&apos;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apos;왕의 복음&apos;이 왜곡되면서 &apos;복음&apos;은 천당행 티켓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울러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천당행 티켓을 판매하는 자들, 즉 기득권이 되고 말았습니다.</p><p>&apos;그리스도인&apos;이란 단어가 오염되었듯, 솔직히 &apos;교회&apos;라는 단어도 더 이상 복음 공동체를 뜻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quot;교회&quot;는 건물이나 재정 혹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apos;교회&apos;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p><p>가스펠인(人) 사역은 역사상 처음 비로소 &quot;그리스도인&quot;이라 일컬음을 받게 된 본질을 회복하고자 성경 말씀을 함께 찾아보는 흩어진 나그네, 즉 필그림을 위한 사역입니다. 요즘 이단들이 기승을 부림으로 더 이상 &apos;그리스도인&apos;이란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만을 뜻하지 않아 하나님 나라의 복음(가스펠)을 듣고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apos;가스펠인(人)&apos;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p><p>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겠으나 온전함을 추구하는 복음 공동체를 세우고 싶은 마음에 가스펠인(人) 사역을 수년 전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스펠인(人) 사역은 &apos;복음&apos;과 &apos;교회&apos; 그리고 &apos;그리스도인&apos;의 온전한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생각보다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p><p>이렇게 이 채널은 가스펠인(人)들과 동행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이 채널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된다면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격려와 기도, 댓글, 그리고 후원은 이 시대에 신실하게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사역에 큰 힘이 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target="_blank"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fan_mail/new">Send us Fan Mail</a></p><p>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오늘은 가스펠인(人) 사역을 소개하는 말씀을 나눕니다.</p><p>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처음부터 &quot;그리스도인&quot;이라 일컬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처음 &quot;그리스도인&quot;이라 불린 배경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핍박이 있었습니다. 종교인들은 스데반이라는 사람을 신의 이름으로 죽였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은 어쩔 수 없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열악한 상황에도 그들은 예수의 복음, 즉 왕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찌 보면 오히려 핍박 때문에 복음은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그 결과 &quot;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quot; 기록합니다(사도행전 11장).</p><p>그런데 요즘은 &apos;그리스도인&apos;이라는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단어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는 &apos;교회&apos;의 타락이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75.4%가 &apos;교회&apos;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에 놀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p><p>어찌하여 &apos;교회&apos;와 &apos;그리스도인&apos;은 이렇게 되었을까요? 저는 가장 큰 원인으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apos;왕의 복음&apos;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apos;왕의 복음&apos;이 왜곡되면서 &apos;복음&apos;은 천당행 티켓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울러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천당행 티켓을 판매하는 자들, 즉 기득권이 되고 말았습니다.</p><p>&apos;그리스도인&apos;이란 단어가 오염되었듯, 솔직히 &apos;교회&apos;라는 단어도 더 이상 복음 공동체를 뜻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quot;교회&quot;는 건물이나 재정 혹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apos;교회&apos;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p><p>가스펠인(人) 사역은 역사상 처음 비로소 &quot;그리스도인&quot;이라 일컬음을 받게 된 본질을 회복하고자 성경 말씀을 함께 찾아보는 흩어진 나그네, 즉 필그림을 위한 사역입니다. 요즘 이단들이 기승을 부림으로 더 이상 &apos;그리스도인&apos;이란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만을 뜻하지 않아 하나님 나라의 복음(가스펠)을 듣고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apos;가스펠인(人)&apos;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p><p>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겠으나 온전함을 추구하는 복음 공동체를 세우고 싶은 마음에 가스펠인(人) 사역을 수년 전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스펠인(人) 사역은 &apos;복음&apos;과 &apos;교회&apos; 그리고 &apos;그리스도인&apos;의 온전한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생각보다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p><p>이렇게 이 채널은 가스펠인(人)들과 동행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이 채널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된다면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격려와 기도, 댓글, 그리고 후원은 이 시대에 신실하게 복음을 나누고자 하는 사역에 큰 힘이 됩니다.</p><p><a rel="payment" href="https://www.buzzsprout.com/2601879/support">Support the show</a></p>]]></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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